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는 지금 자신이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이 그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인지 되물었다.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을 하는 것은 그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분명 아니었다. 건강한 몸을 만드는 것 역시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에 의미가 있을 만한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것은 책을 만들어 내는 것이나 어떤 구상이나 형식만을 활용하여 글을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다. 책으로 완성하는 것이나 어떤 형식을 갖추는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글이 바로 본질이며 실체였다. 이야기라는 형식이나 책이라는 틀로 덧입히는 것은 본질의 바깥의 것이었다. 물론 본질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본질을 잘 포장하는 것 역시 게을리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본질 바깥의 것만큼 그것이 인생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그는 생각했다.
'만약 책이나 어떤 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라면, 더는 내가 책을 만들어 낼 수 없거나 혹은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그의 삶의 수많은 행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좀 더 살펴보게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는 목적 없는 글쓰기가 자칫 무의미해지거나 사변적으로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그러면 또 어떤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글의 형식에 구애받지 않은 채 자유로운 글의 흐름에 자신의 몸을 맡겨보는 것도 이따금 즐거운 일이었다. 의식의 흐름 속에서 건져 올린 수많은 단어는 생생한 활어처럼 뛰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활어들이 담긴 글의 수조는 그 자신의 의식 체계 속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감각들이었고 그 녀석들은 이따금 형식이 부서진 것들에서 발견되는 리듬감처럼 재밌는 화음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것들이 인생이라는 짧고도 긴 시간에서 중요한 일을 방해하는 권태로움을 이겨내는 힘이 되기도 했다.
그는 책으로까지 완성되지는 못한 내 불쌍한 자식들을 보면서, 비록 너희가 아직 책이 되지는 못했지만, 글로 태어난 것 자체만으로 귀한 존재들이라며 위로했다. 미숙아 같은 글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은 내가 머리를 깨고 나온 자식들이었고 나는 그들을 부끄럽게 여기기보다 부모처럼 사랑해야만 했다. 글 모두는 내 생에 가장 중요한 것들이었다. 그들이 비록 책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중요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어리석은 글쟁이는 자신이 비루하게라도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리고 지금껏 자신이 책을 만들어 낼 능력 따위는 없는 것 아닐까 하는 의심과 좌절 또한 사라졌다. 그저 내 능력을 다하여 꾸준히 글을 짓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언젠가는 빛을 발하든, 혹은 결국 서글픈 취미 활동으로 그치든 간에 나의 소임은 오로지 글을 꾸준히 쓰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뿐이다, 그뿐이면 된다. 삶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수많은 상실감과 공허로 모든 것을 손 놓게 되더라도 내게 오로지 글을 쓸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된다.
그는 실로 글 짓는 기계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불현듯 찾아오는 회한과 상실조차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묵묵히 글을 짓는 그런 기계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계! 감정의 기복 따위 없이 일정한 생산물을 뽑아내는 기계가 잠시나마 부러웠다. 그것이 안 되니 숨을 깊게 들이쉬고 최대한 마음을 안정시키는 수밖에.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면서…….
그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며 한 사람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사람이 나타났더라면 인생은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다. 그는 문득 어느 시기 무렵에 다가왔던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런 시기마다 그는 멀어질 이유를 찾았다. 그렇게라도 해서 상대를 시험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들은 모두 떠나갔다.
감정의 빈자리는 그들이 떠나간 자리였다. 그는 모두가 떠나고 남은 자국에 글을 새기기 시작했다. 글만은 마치 날 떠나지 않을 테니까. 날 떠난 어느 세상을 항해하고 누군가의 손에 닿을지라도 끝내 혈육처럼 피가 남아 있을 테니까. 문장 하나하나마다 내 피를 새기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가 자식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그 자녀들이 나의 엄마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어리석은 글쟁이는 무엇이라 답해야 할 것인가? 고독이었다고 답해야 할 것인가? 솔직하지 못한 글쟁이는 그 답조차 수많은 말로 포장하겠지. 그 껍데기를 모조리 뜯어보고 조용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위로해줄 사람을 기대하며. 그것이 망할 놈의 예술이라며.
글쟁이는 자신을 작가라고 자신 있게 부르지도 못하면서 제 자식 같은 글들은 자신과 다르다며 소리쳤다. “나는 한낱 글밥을 짓는 소작인일 뿐이지만, 내 자식 놈은 엘리트가 될 것이라우. 그 녀석들은 많은 이들이 알아봐 주고 읽어봐 줄 것이라우. 비록 내 삶은 비루하지만, 그래서 실낱같은 희망이 있다우.”라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글을 잉태하려고 노력하겠지.
그의 삶은 그렇게 잉태의 연속이다. 어느 누가 알아주지 않는 괴로움 속에서도 그 잉태의 기쁨으로 살아간다. 어리석은 글쟁이에게 이는 그 어느 것보다 값진 일이며, 눈알이 뽑히고 귀머거리가 되고 손이 잘리게 된다고 할지라도 어떻게든 해내야 할 일이다. 자신의 고통으로 잉태한 것들이 바로 사는 이유이니까. 살아갈 이유는 오직 그뿐이다. 어리석은 글쟁이는 생각인지 다짐인지도 모를 말을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그리고 그제야 그는 모든 관계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 누구도 필요 없고 오로지 자기 자신과 글만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그러니 제게 무한한 영감을 주시오. 그러하면 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소.
그는 오랫동안 가진 것도, 누구도 없던 자신을 돌아보며, 아마 앞으로도 없을 테니 차라리 그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자고 생각했다. 글을 쓰려면 모든 것이 홀가분해져야만 했다. 삶에 벌어질 수많은 기대를 바라지 않는다면 두려워할 것도 없었다. 그러면 나는 세상의 속박에서 풀리게 될 것이다. 누가 자신을 사랑해줄 것을 기대하지도 않았고 그의 사랑을 받지 못할까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 거? 모두 좆 까라 그래. 나는 오로지 자유롭고 당당하게, 그 무엇, 심지어 나 자신에도 구애받지 않고 글을 쓸 거야.’
그는 빈방에 앉아 노트북을 잠시 닫은 채 창문 틈을 타고 들어와 책상에 닿고 만 빛 쪼가리를 보았다. 그토록 밝은 빛이었지만, 문득 그 빛을 보며 외로움을 느꼈다. 저 빛을 모조리 가려버릴까 싶었지만, 빛이 무슨 죄일까 싶어서 그냥 내버려 두었다. 창문을 넘어 들어온 빛들은 죄가 없었다. 그렇기에 이 방의 주인인 내게 사과할 필요도 없었다. 때때로 화가 치밀일 때면, 사과하라고 요구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실은 그들이 잘못은 아니었다. 잘못은 그 빛을 사랑하고 그리워하게 된 내 잘못이었다.
‘내가 창문을 제대로 닫아두고 블라인드를 닫아 놓았더라면 빛이 들어오지 않았겠지. 그래서 그렇게 열어둔 내 잘못이라 이거지? 도둑놈처럼 나도 모르게 들어와 있는 빛, 네 녀석의 잘못이 아니고? 자기는 그냥 와 있는 거다? 누가 내 방에 들어와 내가 잘 보이는 곳에 있으래? 차라리 눈에 띄지 않는 곳이나 있을 것이지. 내 옆 가장 가까운 곳에 파편처럼 들어앉아서는 자기는 내 마음을 뒤흔들 의도가 아녔다? 그래, 너 잘났다.’
어리석은 글쟁이는 그 빛 더러 꺼지라고도 못 하고 그냥 말없이 쳐다보다가 손을 내밀어 보았다. 책상과 바닥에 내려앉은 파편의 일부가 내 손등 위에 앉았다. 빛은 블라인드의 움직임을 따라 마치 살아있는 듯 사근사근 움직여 댔다. 손등 위에 내려앉은 그 빛을 잡아보려 손을 돌려 손바닥을 위쪽으로 한 채 주먹을 쥐어 봤다. 그러나 이내 손바닥을 빠져나와 손 위로 머물렀다.
‘젠장, 잡을 수도 없는 것이로군.’ 그는 그 사실을 모르기라도 했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는 손바닥을 다시 펴 빛이 주는 미세한 온도를 느껴보았다. 따스함이 느껴졌다. ‘이게 36.5도의 만질 수 있는 온기라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나마 이런 생각을 하며 거친 손이라도 상관없으니 저 손바닥 위로 포개어질 무게감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빛의 온기보다 지문이 주는 거친 촉감과 온기가 그리웠다. 그는 알고 있었다. 결코, 그러한 그리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어리석은 글쟁이는 하루 종일 되뇌었지만 이 글의 끝에서 자신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이 어쩌면 '글'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우울해졌다.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 지금껏 걸어온 삶을 부정하는 것이기도 했기에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가장 중요한 것은 글이라며, 글일 거라며 되뇌었다. 한숨을 크게 한 번 쉬고 그 밖의 것들은 개나 줘버리라고 속으로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