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해지지 말자. 어리석은 글쟁이는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대화할 친구가 별로 없는 어리석은 글쟁이는 혼잣말을 이따금 한다. 그는 종종 자신을 찾아오는 공허함 이후에 모든 것을 자포자기하고픈 마음이 뒤따라 온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떨어지는 비를 보면서 이럴 때일수록 ‘충실함’만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텅 빈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거라고. 삶의 즐거움이 매번 있을 수는 없다고. 그럴 때일수록 그런 생각을 버리고 해왔던 일들에 집중하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그 텅 빈 마음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래도 놓치지 않고 계속해 온 자신을 대견하게 여길 것을 또한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에 오기로라도 저 빗속을 뚫고 커피숍으로 향했다. 그곳에 내가 해야 할 일을 두고 왔으니, 더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텅 빈 마음에 우울한 생각이 채워질 때, 괜찮다며 나를 포근히 안아주고 토닥거려줄 어여쁜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 싶은 적도 있었지만, 그러한 행운이 내게 주어지진 않을 것 같다며 자조 석인 웃음이 피는 입가에 쓰디쓴 커피를 들이붓는다. 그런 행복 따위는 기대하지 말자며, 절대 그런 것 따위는 기대하지 말자며, 차라리 그런 생각을 하고 ‘나는 왜 그런 것을 갖지 못할까?’를 고민할 시간에 할 일을 충실히 하자고 또다시 되뇌었다. 따스한 커피가 목구멍을 넘어 가슴에 닿았다. 그 안에 얹혀있던 답답한 무언가가 뚫리는 기분이 들었고, 가슴에서부터 올라오는 커피 내음이 내 머리까지 닿았다.
쓰디쓴 커피를 마시는 건, 그에게 몇 안 되는 즐거움이었다. 커피는 하루의 시작이었고 아침에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지시해주는 존재였다. 커피를 들이켤 때 느껴지는 쓴맛은 내게 글을 써야 한다고 재촉했고 뒤에 느껴지는 약간의 단맛은 글을 음미하면서 써야 한다고 당부했다.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고 나서 아주 약간의 현기증과 함께 온몸을 휘감는 커피의 향은 그를 지상에서 몇 센티 떠오르게 했다. 그제야 그는 '방을 뛰쳐나오길 잘했다!'라며 미소를 다시 지으며 커피를 한 번 더 들이켠다.
어리석은 글쟁이는 행복한가? 그는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에는 분명 사랑을 받는 기분이 들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아주 아주 오래전 짧은 마지막 연애 이후로 사랑받는다는 기분이 들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의 상태를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삶에 충실할 뿐이었다. 그것이 적어도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는 것을 마찬가지로 경험을 통해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행복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불행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다. 적어도 그에게 있어 삶의 즐거움이 행복함은 아니었다. 지금 당장 갖지 못할 행복을 동경하여 그것을 갖지 못해 불행하다고 느낄 바에는 시간의 충실함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편이 좋았다. 적어도 불행하다고 느낄 겨를이 없을 테니까.
그는 고통을 즐기는 편이었다. 무의미한 고통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쥐어짤 때 느껴지는 고통이 즐거웠다. 생각을 쥐어짜거나, 근육을 쥐어짜고 또는 숨이 머리까지 차올라 헉헉댈 수밖에 없는 그런 고통에서 오는 즐거움이 좋았다. 결국 그러한 일을 해내고 나면 결국 찾아올 만족감을 위해서 감수할만한 고통이었다. 그 고통 뒤에 찾아올 기쁨 또한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기에 그는 극한에까지 자신을 몰아넣기를 바랐다. 자신이 성장할 것을 기대하며. 물론 그 극한은 성장을 방해할 주화입마에 빠질 극한은 아니었다. 고통은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부분까지의 고통이어야만 의미가 있었다. 그 이상 무리하여 번아웃이 오거나 신체가 손상된다면 그러한 고통은 있으나 마나 한 것이었다. 그렇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원칙과 자세가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한계를 명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했다.
그 한계를 안다는 것은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한계 직전까지 도달하는 방법을 생각게 한다. 가령, 운동하면서 자신이 들 수 있는 무게와 들 수 없는 무게를 안다면 들 수 없는 무게를 들면서 다칠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자신의 한계점에서 계속 노력을 하다 보면 조금씩 한계점에 있는 무게를 늘려 갈 수 있게 된다. 그다음에는 올바른 방법이 필요하다. 많은 선배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통해 만들어온 올바른 방법들을 배우고 그것은 자신에 맞게 조정해 나가는 것이 필요했다. 운동에서 어떤 근육을 단련하면서 동시에 부상의 위험을 최소화하려면 바른 자세가 필요하듯, 고통이 성장의 밑거름이 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었다. 그 이후로는 고통이 반복되어야만 한다. 그 고통에 익숙해져야 비로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성실함과 꾸준함은 언제나 성장을 위한 미덕이었다.
그는 생각을 쥐어짜 글을 쓰는 행위도 신체 운동만큼이나 이러한 방법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여러 한계점을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했다. 언제까지 머리를 쥐어짤 수 있고 그것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이 필요한가에 관한 시간적-방법적 한계, 무엇을 잘 쓰고 어떤 것은 그렇지 못한가라는 능력적 한계, 어느 공간에서 잘 써지는가에 관한 장소적 한계, 글을 쓰게 하고 또한 글을 쓰지 못하게 제약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관한 심리적-실제적 한계 등등. 그다음에는 그 한계를 목표로 삼아 그 이상을 뛰어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 과정 중에는 성실함과 꾸준함이 답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는 좋은 글이라 일컬어지는 글들을 보고 이를 본받아 자신도 그러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일이 필요했다.
그는 고통스럽지만, 이를 위하여 책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고 때로는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이렇게 하고 있을까?'라고 생각하면서도 글 쓰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궁둥이를 의자에 땀이 찰 때까지 붙이고 생각을 쥐어짜 무슨 글이든 써 내려가려고 노력했다. 쓰디쓴 커피는 이러한 나를 위로하고 계속 글을 쓸 수 있도록 하는 동반자였다. 커피는 쓴맛은 고통을 상기했고 고통과 고통 뒤에 올 기쁨이 글을 계속 쓰는 원동력이 되었다.
내가 담배를 피웠다면 아마 담배도 그러할까? 담뱃값을 급격히 인상하자 문인들이 가격 인상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냈다는 일화가 생각나서 잠깐 웃음이 났다. 담배 맛을 알지 못하는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했으나 동시에 글을 쓰는 데 혹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아쉽기도 했다. 그렇지만, 내게는 커피가 있지 않은가? 나를 잠시나마 환각에 젖어들게 만드는 검붉은 유혹! 글을 쓰는 도구는 단 세 개만 있으면 된다. 이따금 참고할 만한 책과 노트북과 아침의 커피 한잔! 무엇이 더 필요한가? 아니, 사실 노트북도 책도 다 필요 없다. 커피만 있으면 된다. 이조차 없으면 나는 견디지 못할 것이다. 아마 이마저도 없었다면, 나는 공허감도 나태함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이게 무슨 개 같은 짓거리인가? 남들은 돈도 벌고 여행도 다니고 사람도 만나고 다니는데, 나는 모든 것을 버리고 홀로 앉아, 외로움을 이겨가며 이런 짓거리를 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하다가 파멸해 버렸을 것이다.
실은 알고 있다. 만일 내가 다른 선택을 하여 가정을 가지고 번듯한 직장에서 일하며 이따금 휴가철이 되면 여행을 다닌다고 하더라도 나는 지금을 내가 하는 일들을 그토록 동경하며 때로는 자조 섞인 말로 '어쩔 수 없이 먹고사는 걸 선택했지만, 사는 것 같지 않다'라며 고백했을 거라는 걸. 원래 사람이란 자기가 갖지 않은 것, 하지 못한 것을 동경하는 법이니까.
하루를 비교적 충실히 보내는 법이라는 글을 쓴다면 어리석은 글쟁이는 할 말이 많다. 하루의 모든 시간을 의미 있는 것들로 채우려고 노력을 하니까 말이다. 글을 쓰든, 운동하든, 혹은 언어 공부를 하든. 어쩌면 그러한 까닭에 그는 비록 단칸방에 화장실도 공용인 방에 살지만, 자신이 사는 환경에 그리 큰 불만이 없었던 것일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환경에서도 자기 삶의 물질적인 측면 자체가 그리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으니까. 다만 그 의미 있는 것들의 상태가 조금 무너져 공허해지는 날에는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것이 단지 그러한 것들이기에, 내 옆에는 누구도 없고, 이렇다 할 재산도 갖지 못한 내게 어느 누가 좋다고 날 사랑해 줄 것인가 하는 우울감이 들뿐이다. 감정, 그놈이 언제나 문제이다.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드는 수많은 공허와 우울의 감정이 어리석은 글쟁이를 더욱 어리석은 나태 속으로 빠지게 만드는 주된 이유이다. 그 원인을 따라가다 보면 사랑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문제이다. 그는 어느 시절에 이 어리석은 결과에 빠지는 궁극적 원인이 사랑임을 깨닫고 결국 이것을 해체해 버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결코, 사랑에 빠져서 나 자신을 위태롭게 만들지 않으리라! 나는 그들에게 잘 보이려고 마음을 먹지도 않을 것이거니와 꽃 같은 그들에게 마음을 주어 나를 쓸쓸하게 만들지 않으리라! 이렇게 다짐을 해버렸다. 그 다짐은 이내 꽃다운 실체가 눈앞에 등장하여 내게 아무렇지 않게 웃음꽃을 피워줄 때 결국 무너지고 말 모래성 같은 다짐이었지만, 그래도 나를 거기까지 이르지 않게 하는 작은 울타리가 되기도 했다. 그는 자기 마음의 어린 천사 같은 양들이 먼 곳에서 서성이다가 내 마음을 우연히 바라볼 여성들을 쳐다볼 수 없도록 작은 울타리를 친 것이다. 자신의 마음의 울타리 안에서 편안하게 머물러 있는 이 착한 양들을 들여다볼 여인이 있다면 그들의 머리로 내쳐버리기를! 내게 사랑을 고백하지 않을 그대라면, 나 역시 그대에게 마음 따위는 절대로 주지 않으리라! 어리석은 글쟁이는 이로써 마음에 자유를 얻었다. 나의 마음을 구속하는 헛된 좋아함, 사랑 뭐 이따위 것들에서 벗어났다. 정말 그러할까? 정말? 정말!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