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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Oct 27. 2020

대회 참가를 신청하다.

나의 주짓수 도전기 25.

일단 시작하라. 그것으로 두려움의 절반은 줄어든다.


"오늘 문자 받으셨어요?"

도장에 들어오자마자, 사범님이 내게 물었다. "아뇨. 안 받았는데, '승급식' 관련 문자 말씀이신가요?"

"그거 말고 주짓수 대회 관련 문자를 보냈는데, 발송이 안 되었나 보네요. 이번 주 목요일 8시에 주짓수 대회를 여는데, 한번 나가 보지 않으실래요? 코로나 때문에 내부적으로 진행하는 대회라 부담이 없으실 거예요."

"아……. 생각 좀 해볼게요. 그날 저녁에 다른 일이 있어서……."

"생각 있으시면, 오늘 자정까지 참여 인원을 받으니까, 문자 보내 주세요."

실은 그날 저녁에 어떤 일도 없었지만, 대회라는 말에 조금 부담을 느꼈는지, 다른 일정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나는 이 운동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걸까?'

그 대답이 언제나 헬스나 다른 체육활동을 대체하는 취미 활동이었기에, 선수로서 대회 참여는 아무리 부담 없는 대회라고 하더라도 조금은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선수는 내 옆에 스트레칭을 하는 젊고 어린 친구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운동이 끝나기 전까지도 대회 참여에 관한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일단 시작하라. 그것으로 두려움의 절반은 줄어든다.'

운동이 끝나고 저녁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도중, 때마침 어제 카톡의 프로필로 적어둔 문구가 떠올랐다. 근래에 나태해지고 무기력감을 느끼는 까닭 중 하나가 시작의 두려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적어둔 것인데, 때마침 하나의 도전 과제가 내게 들어온 것이었다. 나는 무엇이 그리 두려운 것인가?

"난 내가 웃음거리가 되는 게 두려워요."

문득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 그녀를 사랑했던 알렉세이 블론스키가 말한 이 구절이 떠올랐다. 나는 어쩌면 웃음거리가 되는 게 두려운 것인가? 혹은 현재의 타성에 젖어 무언가를 새로 시도하는 것 자체가 귀찮은 것인가?

그 모든 게 결합하여 '이 나이에 뭐 그런 걸…'이라는 생각으로 나 자신을 가둬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살을 먹으면 마치 나이테처럼 마음에 벽 한 줄이 생기고 말아. 그리고 어느 순간에 그 벽을 뛰어넘는 연습을 하지 않고 그저 현재에 머무르게 되지. 그러다 정신 차리고 나면 벽은 내 키보다 높아져서 뛰어넘을 엄두가 나지 않게 되기도 해. 그래서 매번 뛰어넘는 연습이 필요하지.' 마음속의 현자는 도전을 두려워하는 자아에 말을 건넸다.

'이게 굳이 내게 필요한 일은 아니잖아? 굳이 도전하지 않아도 충분히 운동을 즐기고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너는 조금은 해보고 싶잖아? 그걸 귀찮음과 번거로움, 그리고 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굳이 해서 뭐해?'라고 포장하고 있는 건 아냐? 더구나 외부에서 하는 것도 아니고 내부적으로 네가 매일 운동을 하는 시간에 진행하는 대회일뿐이잖아.'

마음속의 그는 나를 뜨끔하게 만들 이야기를 거침없이 해댔다.

'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일단 해. 그리고 생각해. 생각해보면 지금껏 그러면서 길을 찾아왔잖아.'

실로 그래왔다. 나도 자신감 넘치는 저 도장의 친구들처럼 어느 시절에는 누구 못지않게 도전을 즐겼고 그로 인해 얻은 것도 많았다. 아마 그때가 제일 알차게 하루를 보내던 시절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고 주변으로부터 많은 기대를 받기도 했다. 물론 여러 목표를 향해 달리고 걸어야 하는 일이었기에 그만큼 많은 에너지와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달리면, 걷고 싶고 걷다 보면, 서고 싶고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다'라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어쩌면 지금 나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전처럼 달리고 걷나?'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너는 어쩌면 삶의 여러 선택 중 기회비용으로 어쩔 수 없이 타협해야만 했던 것을 넘어 삶 자체를 타협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스무 살의 나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계획했던 많은 일을 시도조차 못한 까닭은 모두 이 거지같은 코로나 때문이라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게 바로 지금 도전할 수 있는 일을 못 하게 한 건 아니잖아?'

내 안의 그는 살짝 미소 지으며 내게 계속 이야기를 했다.

'이런 일로 고민하지 말게 해 줘. 차라리 귀담아 듣지를 말걸.'

'그냥 해봐. 어쩌면 이게 너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줄지 누가 알아? 시도하면 50%, 시도하지 않으면 0%야. 너는 말로만 네 삶의 의미를 만들고자 한 거야? 삶의 의미는 의미 있는 행동에서 일어난다며? 이게 네 삶의 의미가 되려면,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신청해봐.'

'알겠어. 까짓것, 해보지 뭐. 부담 없이 웃으며 해보지 뭐.'

"참여 인원은 코로나로 인하여 저희 회원만 참여 가능합니다! 경기 시간은 3분으로 단축하여 진행할 예정입니다. 우리 체육관 인원만 참여 가능하므로 부담 갖지 마시고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일이 끝나고 휴대폰을 보자 사범님으로부터 대회 참가에 관한 안내 문자가 와 있었다. 한참 휴대폰을 바라보다가 지금 안보내면 마감 기한을 넘기겠다 싶었다. '그래. 까짓 것 해보자! 별 것 아냐.'

"참여 원합니다!"

조금 서늘해진 밤 공기를 가르니 속이 시원해졌다. 문득 언젠가 그 사람에 내게 해줬던 말이 떠올랐다.

"나중에 무(無)그랄 비기너 대회도 참여해봐요."

"비기너 대회요?"

"주짓수 경력 6개월 미만의 초보자들이 참여하는 경기인데, 잘하실 거 같아요."

왜 그때가 떠오르는 것일까?

"에이, 대회라뇨. 그냥 전 지금으로도 족할 것 같아요. 저보다는 xx 씨가 열심히 해서 나갔으면 좋겠어요."

그 사람을 향해 손사래를 치면서도 잠시 나도 모르게 경기장 위에서 현란한 기술을 펼치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 한국 주짓수 협회(KBJJA)에서 안내하는 나이와 시합 시간에 관한 공식적인 규칙(나이는 만 나이 기준).

(출처 : http://kbjja.org/registration/regulations/)


주짓수 재밌죠?


목요일이 되자, 평소처럼 6시 30분이 되기 전에 도장에 도착했다. 도장에서는 작고 어린 친구들의 상장 수여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만약 내가 저 때 혹은 지금보다 좀 더 어릴 때 이 운동을 시작했으면 어땠을까? 과연 계속할 수 있었을까?'

문득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직전에 태권도장을 다녔던 기억이 떠올랐다. '1단도 따지 못하고 그만뒀었는데, 아마 주짓수도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어린아이들을 보면서 끈기 없던 그 시절의 모습을 잠시 떠올리곤 웃음 지었다.

상장 수여식이 끝나고 오래간만에 관장님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나이는 나와 같았으나, 언제나 그가 차고 있는 블랙 벨트를 보고 있노라면 존경심이 커지고 그 존재가 하늘같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이러한 느낌은 사범님이나 혹은 나보다 몇 그랄 앞서 있는 저 선배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이기도 했다. 이러한 까닭에 이따금 내 마음은 마치 강아지처럼 도장 안의 사람들을 보면 무척이나 반가우면서도 그 내색을 하지 못하는 때도 있었다. (그럴 땐, 그저 살짝 미소를 띠며 두 번, 세 번 먼저 악수를 청할 뿐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싶은 것은 함께 의지하며 훈련을 할 만한 동료나 강아지처럼 굴어도 괜찮은 동료가 몇몇 생겼다는 점이다. 지금 같이 하루 대부분을 홀로 침전과 침묵으로 삶을 견디는 시기에 그렇게 마음을 풀어둘 동료가 아예 없었다면 나는 아마 진작에 이 하얀 매트 위를 떠났거나 아무런 관계 맺기조차 하지 않고 차라리 이게 낫다며 무미건조한 표정과 침묵 속에서 운동만을 했을지도 모른다.


"주짓수 재밌죠?"

상장 수여식을 마치고 아이들을 보내고 나서 그제야 의자에 앉은 관장님이 나를 보더니 웃으며 물었다.

"네. 재밌어요. 그런데 아이들을 봐서 그런지, 지금보다 더 어릴 때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쉽기도 해요."

"그 생각은 고등학생 친구들도 해요. 그 친구들도 '좀 더 빨리했더라면'이라고 말을 한다니까요."

잠시 그를 보다가, 고개를 돌려 다시 아이들이 앉아 있던 흰 매트 위를 바라보며 좀 전에 상념에 젖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말했다.

"생각해보면, 제가 그때 시작했다면, 계속 주짓수를 계속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실은 나쁘진 않아요. 뭔가 지금이라서 좀 더 꾸준하고 성실하게 할 수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거든요."

다만, 만약 하다못해 고등학생, 스무 살 때라도 시작했더라면 취미 활동 이상의 열정으로 다가갔을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내게도 끈기라 부를 게 있다는 걸 알아챈 군대 이후라도 했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지금쯤이면 자랑할만한 특기에 이 이름을 적어둘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러한 생각을 하면, 이 운동에 관심이 있었을 때, 시도도 해보지 않은 자신의 우유부단함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뭐, 그러한 우유부단함으로 놓친 것이 한두 개일까? 선택의 책임에 관한 두려움, 선택 이후에 노력해야만 하는 번거로움, 그 생각들이 결합해 발생한 소심함, 이러한 일들이 반복-강화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낮아진 자존감 등에 관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한몫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 가운데 선택한 일들, 그게 고심 속에서 선택한 것이든 충동적이든, 적어도 내가 해야 할 일이 분명하게 정해진 것들만큼은 성실하게 하고 싶었다. 늘 그렇듯 과거의 나는 어떻게든 후회와 반성을 반복할 것이며 미래의 나는 무엇을 선택할지 전전긍긍하게 될 것이 분명하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지금을 충실하게 채워나가는 것이라고 믿어왔다. 그것도 하지 않으면 분명 아무것도 못 하는 바보 천치가 되었을 것이다.

대회를 시작하려면 1시간 정도 남았기에 아직 사람들이 오지 않은 상태였다. 상념을 다시 떨쳐버리고 도복으로 갈아입고 매트 위로 올라서 나보다 먼저 온 B 군에게 인사를 건넸다. 몸을 풀면서 전날 개인적으로 복습했던 라쏘 가드 패스(Lasso Guard Pass)를 생각했다.

"한쪽은 라쏘, 다른 한쪽은 스파이더 가드가 걸려 있을 때 일단 스파이더 가드가 되어 있는 상대의 다리는 무릎으로 재빠르게 쳐서 가드를 풀고 손목을 돌려 다시 스파이더 가드가 들어오지 않게 막아 줘야 해요. 그리고 다리를 세워 엉덩이를 산처럼 만든 뒤, 라쏘가 걸려 있는 다리를 어깨에 체중을 실어 눌러주세요. 그런 다음……“

'그다음이 어떻게 되더라?'

전날 사범님께 여쭈어보고 연습을 해보았지만, 다음 날이 되자 순서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이럴 때 B 군은 언제나 내게 도움을 주었고 나는 늘 그랬듯 그에게 가서 라쏘 가드 패스에 관해 물었다. 그는 친절하게 방법을 알려주었고 나아가 자신은 이런 방식으로 한다며 다른 방법을 보여주었다. 몇 번을 함께 연습하고 고맙다고 다시 악수를 청했다. 그 외에도 궁금한 것들이 많았지만, B 군도 대회에 참가하는지라 몸을 풀어야 할 것 같아 나는 조용히 벽 쪽으로 가서 전날 인터넷에서 본 리커버리 연습(Recovery Drill)을 했다.

"형, 시합 전에 저랑 롤링 한판 하실래요?"

매번 내게 롤링으로 도움을 주던 C 군이 내게 먼저 롤링을 청했다. 롤링대 한 번이라도 제대로 가드 패스나 내가 쓰는 기술이 통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그와는 수준차가 많이 났지만, 그는 언제나 나의 도전을 친절한 방식으로 받아주었다. 롤링을 시작하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난 바닥에 깔려 어떻게든 빠져나오려고 했고 그는 나의 리커버리보다도 빠르게 들어와 탭을 칠 수밖에 없게 했다. 그렇게 C 군에 이어 다른 친구와도 가벼운 롤링을 하고 나자 꽤 많은 사람이 도복으로 갈아입고 매트 위로 올라올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라쏘 가드(Lasso Guard) : 상대의 한 팔에 '라쏘 훅' 이라는 것을 감아준 형태. 예를들어 상대의 오른팔에 라쏘 훅을 건다 치면, 본인의 왼쪽 무릎을 오른쪽으로 향한 상태에서, 사두박근/허벅지 부위는 상대의 팔 위에, 그리고 본인의 발은 상대의 겨드랑이 밑에 가도록 감는다. 본인의 왼쪽 다리를 구부렸을 때 상대의 팔에 걸려서 다리가 완전히 접혀지지 않는다면 올바르게 감은 것이다.


리커버리 : Recovery/retention. 상대의 가드 패스 시도를 저지하고 내 가드를 유지하는 것. 이스케이프는 상대가 패스에 완전히 성공해서 공격적인 자세로 압박할때 그것을 탈출하는 것이지만, 리커버리/리텐쳔은 상대의 패스 시도를 도중에 저지하고 가드를 회복/유지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스케이프와 더불어 역시나 매우 중요한 초식 중 하나.


출처: 나무 위키


※ 기타 기술에 관한 설명은 다른 페이지를 참고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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