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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Oct 28. 2020

콤바치! (Combate)

나의 주짓수 도전기 26.

콤바치(Combate)!

Combate : 전투, 대결, 싸움을 뜻하는 'combat'의 포르투갈어.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말이며, "콤바치"로 읽는다. 심판이 이 말을 부르면 보통 상대와 가볍게 손바닥을 쓴 뒤, 주먹을 친다.


관장님은 시작 전에 이 대회를 개최하는 까닭과 안전 수칙과 마스크 착용을 비롯하여 준수해야 할 방역 수칙을 다시금 강조하시고는 이어서 대회의 시작을 알렸다.

"선수 부르겠습니다. 호명되는 선수는 양쪽으로 서서 대기해주세요!"

대회가 시작되자마자 도장 안에 내 이름이 울렸다. 마음을 다스릴 틈도 없이 나는 선수석에 서 있어야만 했고 머릿속에서는 어떻게, 어떤 기술로 경기를 치러야 할까 복잡한 생각들이 가득했다. 다행히도 상대편 선수는 내가 몇 번 롤링을 해봤던 친구였다. 나보다는 무게가 덜 나가지만, 순발력이 대단히 좋았던 기억이 났다. ‘부담 갖지 말고 이기고 지는 것보다 온전히 내가 배운 기술을 써볼 수 있도록 하자.'

“콤바치(Combate)!”

상대에게 인사를 하고 심판의 외침에 경기를 시작했다. 가볍게 손바닥과 주먹을 부딪치자마자 그는 빠른 속도로 가드로 내려왔고 나 역시 동시에 가드로 아래로 내려왔다. 최근에 계속 연습했던 스파이더 가드 스윕(Spider Guard Sweep)을 생각하고 아래로 내려왔건만 그가 좀 더 빨리 가드의 유리한 포지션을 가졌고 나는 작전을 바꾸어 위로 올라섰다. 그는 갑자기 강한 힘으로 내 가랑이 사이에서 싱글 엑스 가드(Single X-guard)를 하고 발목을 붙잡았다. 나는 갑작스러운 그의 공격과 힘에 당황하여 그의 깃을 붙잡아 앵클락(Anklelock)을 방어했다. 어정쩡한 자세에서 간신히 공격에서 빠져나갔지만, 그는 연이어 클로즈 가드(Closed Guard)로 전환하여 기무라(Kimura Armlock)를 시도했다. 제대로 걸리지 않은 기무라 공격이었지만 그는 온 힘을 다해 내 팔을 꺾으려 들었다. 아마 롤링이었다면 그 정도에서 다른 공격을 시도했을 텐데, 얼마 남지 않은 경기 시간 동안 다른 것을 하기에는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그는 계속 내 팔을 붙잡았다. 나는 힘을 써서 꺾이는 팔을 되돌렸다. 그러한 공방이 한동안 되면서 결국 시간이 다 흘러갔고 그는 어드벤티지(advantage) 하나를 받아 승리했다.

나로서는 서글픈 패배였다. 승패에 별로 신경을 쓰지는 않겠다고 했지만, 아무런 기술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방어에만 급급했던 것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동안 열심히 가르쳐준 분들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왜 생각했던 것들, 배운 것들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써먹지 못했을까? 코로나와 인해 한동안 쉬게 되어서 익혀왔던 것을 까먹은 탓도 있지만, 롤링에서의 그의 스타일만을 생각하고 왔던 패착도 있었다. 이런 대회나 스파링이 어떤지 알지 못했기에 롤링에서보다 갑절은 강한 힘으로 들어오자 당황한 것이다. 롤링을 좀 더 강하게 하면 스파링이 되는 줄 알았건만, 모두가 그 이상으로 근력을 상당히 이용하고 있었다.

시합이 끝나고 자리에 앉으려니 B 군을 비롯한 여러 친구가 아쉬운 눈으로 고생했다고 내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 말 한마디가 대단히 고맙고 미안해졌다. 좀 더 잘했더라면!

“롤링과 스파링이 다르다는 말씀을 이제야 제대로 알겠어요. 힘 차이가 이렇게 난다니!”

가까이에 있던 사범님에게 말하자, 사범님은 웃으며, “그래서 경기 1분만 뛰어도 땀이 뒤범벅돼요.” 라며 말하곤 다시 사진기를 들고 경기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갔다.

“솔직히 처음에 신청했을 때엔 그냥 부담 없이 ‘경험이나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했는데, 지니까 아쉬워. 더 아쉽고 나 자신이 부끄러운 것은 졌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지금껏 배운 것을 활용하지 못하고 그냥 끝냈다는 점이야.”

“너무 아쉬워 말아요. 형, 이게 경험이죠. 고생했어요.”

벽에 기대어 다른 이들의 멋진 경기를 보면서, 몇 번이고 그때 왜 이렇게 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되었다.

'형님은 조급해요. 천천히 디테일을 살려야 해요. 힘을 쓸 때는 쓰고 뺄 때는 뺄 줄 알아야 해요.'

한 친구가 내게 말해줬던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평정심도 없었고, 기술을 완전히 숙지하지도 못했고, 정교함도 없었다.‘

완전한 패착이었다. 내가 보여준 것은 마치 처음 롤링을 했던 때와 다를 바 없었다 싶었다. 상대의 행동에 당황하자 오로지 힘만으로 어떻게 해보려는 그때의 모습이 경기에 드러난 것이다.

"형, 많이 부드러워지셨는데요?"

어느 날 한 친구가 나를 칭찬하며 이런 말을 건네었던 게 기억났다.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지금의 내 실력은 발전은커녕 배움이 없는 경기 운영이었던 것 같아 부끄러웠다.

'나는 롤링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매번 고민하던 것이었지만, 실제 경기 한 번으로 눈이 떠지는 느낌이었다. '롤링은 경기와 다르며, 그러므로 롤링에서 이기고 지는 것에 연연할 필요 없다. 그저 너의 평정심 속에서 숙지한 기술을 실제 경기와 유사한 상황에서 디테일을 살려 반복적으로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실제 경기에는 힘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으니 체력을 기르고 힘을 뺄 때는 빼고 쓸 때는 강하게 쓰는 강약의 조절 연습을 해야 한다. 팔은 결코 다리를 이길 수 없으니 다리를 힘으로 이기려 들지 말고 비좁은 공간에 다리를 집어넣는 순발력과 유연성을 길러야 한다.'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순간 뭔가 주짓수 수련에 관한 뚜렷한 목표가 생기는 것 같았다.


"사실 중요한 것은 시작하는 것이다. 목표는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찾게 된다. - 브릿짓 라일리"


문득 오래전에 메신저의 프로필로 적어둔 명언이 떠올랐다. 목표는 작업이 진행되면서 찾게 된다는 말이었다.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계속 어떻게 운동하면 좋을까에 대해 의심하면서 롤링을 마치 스파링처럼 하는 것에 만족했을 것이다.

대회가 끝나고 바로 앱솔루트(무제한)급 경기가 시작되었다. 도장 내에서 진행한 것인 만큼 그 자리에서 출전자를 뽑아 경기를 진행했는데, 이것도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어 참가를 신청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출전 의사를 표시한 까닭에 시간 관계상 두 체급으로 나누어 경기를 진행했다. 인원을 몸무게별로 구분한 결과 이들 가운데 나는 비교적 가벼운 체급에 속했다.

대진표가 그 자리에서 만들어지고 나는 도장 안에서 함께 롤링을 해보지 않은 사람과 붙게 되었다. ‘좀 전의 미숙한 경험을 되풀이하지 말자. 최선을 다해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보여주자!’ 주먹을 부딪치면서 재차 다짐했다. 게임을 시작하자, 그는 내가 하던 실수를 비슷하게 하고 있었다. 억지로 힘을 쓰고 기술의 디테일을 살리지 못하고 있었고 상대의 도복을 붙잡고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첫 경기와 마찬가지로 급하게 들어오는 상대의 힘에는 조금 놀랐지만, 아까와 같은 당혹감은 없었다. “천천히 하세요! 급할 필요 없어요! 옳지! 오쓰!” 이따금 관장님이 나의 롤링을 할 때 마치 추임새처럼 하던 말들이 떠올랐다. ‘천천히, 배운 대로.’

잠깐 얽히고설킨 공방 중에 두 손으로 바지 깃을 눌러 바닥에 고정한 뒤 측면으로 들어가 그의 목 뒤 깃을 잡았다. 그가 움직이지 못하게 상체로 그의 몸을 누른 상태에서 엉덩이를 뒤로 밀어 올린 뒤 사이트 마운트를 했다. 이어 문득 저번 주에 배웠던 풀마운트(Full Mount) 상태에서 암바(Armbar)까지 하는 기술이 떠올라 재빠르게 그의 위로 올라탔다. 머릿속에서는 지난 시간에 연습했던 장면이 하나하나 떠오르고 있었다.

‘이렇게 마운트에서 두 손으로 상대의 머리를 잡고 가슴으로는 상대의 얼굴을 계속 압박한 상태에서 가슴 쪽으로 향합니다. 상대의 겨드랑이까지 파고서 한쪽 팔의 삼 두 쪽을 손으로 잡아 끈 다음 다른 쪽도 마찬가지로 잡아 고정합니다. 이 상태에서 한쪽 다리를 상대의 머리 쪽으로 돌려놓은 뒤 손을 바꾸어 한 손을 상대의 무릎 쪽을 잡아 누르고 중심을 잡은 상태에서 몸을 돌려줍니다. 한쪽 발은 상대의 목에 다른 쪽 발은 상대의 겨드랑이 쪽에 꽉 붙여주고 장딴지를 좁히고 상대의 엄지가 위쪽으로 향하게 한 뒤, 뒤로 천천히……’

나는 사범님이 보여줬던 것처럼 내 몸을 굽힌 뒤, 그의 복부에서 가슴 쪽으로 올라탔고 암바(Armbar)를 피하려고 손을 두 손을 맞잡으려는 것을 막으려고 한쪽 팔을 무릎으로 눌렀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사범님이 보여줬던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암바(Armbar)까지 다 왔다 싶은 찰나, 그는 스스로 지쳤는지 탭을 치고야 말았고 나는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일어났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경기가 시작되었다. 두 번째 상대는 전에도 몇 번 함께 롤링해본 상대였다. 그는 흰 띠 3그랄(Grau)로 한 2년가량 꾸준히 수련해온 친구로 평소에도 힘이 좋기로 잘 알려진 사내였다. 평소에 롤링할 때에도 그에게 제대로 된 기술을 써보지 못하거나 아래에서 빌빌대다가 끝나는 일이 많았기에 이긴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내 목표는 오로지 하나였다. '하나라도 내가 배운 기술을 써 보자.'

그와 마지막 롤링을 하던 때에 B 군이 알려준 스파이더 가드 상태에서 한쪽 다리를 언더 훅(Under Hook)으로 잡고 스윕(sweep)을 하던 게 떠올랐다. 져도 좋으니 이번에도 그런 기술을 써서 점수라도 땄으면 좋겠다 싶었다.

시합이 시작되고 그는 침착하게 나를 붙잡았다. 붙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의 강한 힘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는 나를 가볍게 스윕(sweep)하더니 위에서 계속 압박을 했다. 계속 새우 빼기를 했지만, 그는 어느새 가까이 와서 나온 밸리(Knee on Belly)로 나를 눌렀다. 언뜻 보이는 심판의 손에는 3초가 지날 때마다 점수를 알리는 표시를 주최 측에 알렸고 나는 뭐라도 해봐야 할 것 같아 다시 조급해졌다. 정신없이 그를 피하려던 찰나, 그는 내 몸을 누르고 내 목에 초크를 걸었다. (손으로 깃을 잡았는지, 혹은 라펠로 목을 감았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목을 아래로 기울여 방어했고 조금은 답답했지만, 버틸 수 있었다. 그는 점점 더 세게 조였고 그 순간 심판은 위험하다고 판단되었는지 시합을 종료시켰다. 목으로 버티고 손으로 뜯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끝나버린 게 너무나 아쉬웠고 항변이라도 하고 싶었다.

"시합을 끝내지 않았으면 기절했을 거예요."

경기 심판인 관장님은 이런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나를 일으키면서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자존심 때문에 억지를 부리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가 잘하고 또한 십중팔구는 나를 이길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결코 쉽게 지지 않겠다'라는 자존심 같은 게 있었다. 마찬가지로 기술도 제대로 써보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처음부터 압도적으로 차이가 날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남자로서 한 가지 자존심만큼은 지키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나의 경기는 끝이 났다. 나로서는 숙제를 많이 남겨 준 시합들이었다. 돌이켜보면 승리보다도 패배로부터 배운 것이 더 많은 경기였다. 시도조차 하지 않았으면 승리도 패배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배움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대회가 끝나고 일 때문에 남들보다 조금 일찍 길을 나서면서, 어느 순간 내가 놓치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이를 먹고 나서 어느 순간부터 승리도 패배도 하지 않으려 했던 것, 그에 따른 어떤 피드백도 받지 않고 우유부단한 상태로 계속 머물러 있었던 나 자신이었다. '나이 때문에, 돈이 없어서, 부족해서…….' 나를 방해하던 그 모든 것들로 인해 나는 제자리에 서서 발도 구르지 않고 있었고 무엇을 시도하지도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다. 발이라도 구르면 누군가는 친절히 손을 내밀지도 몰랐을 텐데, 그깟 자존심 때문에 세상을 다 안다는 것처럼 뒷짐만 지고 제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사범님, 올해 제가 한 선택 중에 제일이 바로 이 주짓수를 시작한 거예요!"

어느 날 사범님께 웃으며 말했던 이 말이 결코 거짓이 아닌 까닭은 이 운동이 주는 효과적인 측면뿐 아니라, 나의 정신을 조금 더 가다듬고, 머물러 있던 나의 길의 장애물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까짓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너는 일단 시작하고 도전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그렇게 말할 영감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오노레 드 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에서 청년 외젠 드 라스티냐크는 그의 삶의 무대인 파리를 향해 이렇게 소리친다.

“이제 파리와 나, 우리 둘의 대결이다!”

이 문구가 문득 떠오르는 까닭은 무엇일까? 주짓수를 향해서도, 그리고 세상을 향해서도 이렇게 외치고 싶어서일까? 아직, 세상 앞에 '미숙하고 부끄러운 나'이지만, 그럼에도 피할 수 없는 콤바치(Combate)를 해야할 때여서일까?




주짓수 득점 체계(KBJJA 룰 북 中) 와 어드밴티지에 관해서


2. 6 득점

2.6.1 가장 많은 득점을 가진 선수는 승자이다.

정규 시합 시간 안에 또는 두 선수가 부상으로 고통 받아서 시합이 중단된 경우

2.6.2 아래에 표에서 보여지는 대로 득점을 수여한다.

2.6.3 득점의 수에서 무승부 일 때 가장 많은 어드밴티지 점수를 가진 선수가 우승한다.

2.6.4 득점과 어드밴티지가 무승부 일 때 가장 적은 감점을 가진 선수가 우승한다.


5장 어드밴티지

5.1 어드밴티지 득점은 한 선수가 득점 가능한 포지션을 3초 동안 유지 하지 못한 경우 주어진다.

5.2 어드밴티지는 득점하려는 자세가 불완전한 경우다. 심판은 선수가 명확하게 득점하려는 포지션인지 아닌지와 상대편이 어떤 위험에 있는가를 평가한다.

5.3 상대편이 서브미션에 걸려 위험한 상황에 있을 경우 어드밴티지를 준다. 또 다시 얼마나 서브미션 성과에 가까운지를 평가하는 것은 심판의 의무다.

5.4 어드밴티지는 심판이 주고 심지어 시합이 막 끝난 후 그러나 결과 선언 전까지만 가능하다.

5.5. 심판은 득점 포지션의 기회가 더 이상 없는 선수에게 어드밴티지를 부여한다.


※ 그 밖에 시합 규정에 관한 여러 설명은 아래의 룰북에서 확인바랍니다.

http://kbjja.org/wp-content/uploads/2019/03/kbjja_rules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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