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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Aug 19. 2022

Que sera, sera 어떻게든 되겠지

1막 2장.

나는 왜 그 공간이 어둡다고 생각했을까? 두 번째 찾아간 그곳은 전혀 어둡지 않았다. 단지 천장이 검은색일 뿐이고 바닥이 갈색일 뿐이며, 적절한 조명이 잘 닦여진 바닥에 닿아 반사하고 있었고 아직은 해가 지지 않아 창밖에서 적당한 양의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 빛 속에서 한 번의 만남에 익숙해진 사람들과 새로운 사람들을 구분할 수 있었다. 

새 신을 신고 갈색 바닥 위로 올라서자, 5층 계단을 오르며 느끼던 두근거림이 점차 가라앉았다. 상기된 기분이 가라앉자 차츰 지난 시간에 배웠던 것들이 하나하나 갈색의 바닥 위로 떠 올랐다. ‘아웃사이드 언더 암 턴(Outside Under Arm Turn), 인사이드 언더 암 턴(Inside Under Arm Turn), 리더 아웃사이드(Leader Outside), 쉬고즈 히고즈(She goes, He goes), 핸드 체인지와 사이드 패스(Hand Change & Side Pass)….’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려고 할 때, 그 이름을 떠올리면 많은 것들을 기억할 수 있어요. 그 사람의 인상이나, 행동 또는 함께한 추억을 포함한 관련된 많은 것들이 쉽게 떠오르죠. 이름이라는 게 그래요. 그래서 그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고요. 마찬가지로 용어는 어떤 동작이나 기술 등의 이름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용어를 기억하고 그 용어의 명칭이 어떤 의도로 만들어졌을지 기억할 때, 많은 정보를 떠올릴 수 있어요."


학생들이나 누군가에게 특정 용어를 설명할 때, 무엇보다 그 명칭을 이해하고 기억하도록 하거나 걸맞은 용어가 없다면 스스로 만들어 보기를 권했던 게 떠올랐다. 물론 용어에 매몰되어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경험상 처음 무언가를 시도하는 사람들에게는 두루뭉술하게 접근하기보다 용어의 특징을 중심으로 분류하여 이해해 보도록 하는 것이 좀 더 나은 방법이었다. 특히, 동작에 관한 용어는 사람의 이름을 딴 기술이 아니라면, 대체로 기술의 이름 자체가 핵심일 가능성이 컸다. 가령, 아웃사이드 언더 암 턴을 해석하면, 리더의 팔이 바깥쪽(Outside)에 위치하고 팔뤄가 리더의 팔 아래(Under Arm)에서 도는 동작(Turn)이라는 말이며, 인사이드 언더 암 턴은 팔을 안쪽(Inside)에 둔 뒤, 팔뤄가 리더의 팔 아래(Under Arm)로 도는(Turn) 동작을 의미했다. 

용어에서 따로 리더를 언급하지 않는 이상, 지난 시간에 배운 모든 동작은 팔뤄인 파트너의 움직임을 우선으로 하는 동작이었다. 즉, 리더 중심의 용어 설명이되, 턴을 도는 동작의 주체는 레이디 퍼스트였다. 쉬고즈 히고즈 동작(She goes He goes) 는 좀 더 명확하게 용어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데, 팔뤄가 먼저 가도록 하고 리더가 그다음 가는 순서까지도 고려한 용어였다.

용어를 중심으로 이해를 하고 나니, 강사님들의 동작이 비교적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렇게 용어를 이해해 본 뒤에는 팔을 중심으로 동작을 분류해봤는데,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되었다. 


① 리더의 팔이 바깥쪽(Outside)에 위치하는 것은 아웃사이드 언더 암 턴, 리더 아웃사이드 

② 안쪽(Inside)에 위치하는 건 인사이드 언더 암 턴, 쉬고즈 히고즈 

③ 핸드 체인지(Hand change)가 이루어지는 것은 핸드 체인지 & 사이드 패스


아마도 앞으로 배울 기본 동작에서도 대체로 팔의 위치에 따라 구분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렇게 이해를 한다고 해서 그것이 동작으로 바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해-반복-숙달이라는 배움의 기본 과정에서 불과 첫 단추를 끼운 것밖에 되지 않는다. 

반복은 스스로 직접 해 보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머릿속에 동작을 그려보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일단 신체적 동작이 익숙해진 상태에서는 그 동작을 선명하게 그려보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직접 해 보는 것만큼 효과가 있다는 게 여러 실험을 통해 이미 증명된 바 있었다. 무엇보다 이 방식은 어느 시간이나 공간에서도 자유롭게 해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또한, 세세한 부분까지도 확대하거나 속도를 조절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데, 그 점이 꽤 재밌기도 했다.


"자! 이전 시간에 했던 것을 복습해볼까요?"

전처럼 둥글게 모여 처음부터 하나하나 복습을 하기 시작했다. 지난 한 주동안, 여러 형태로 복습을 해보았다. 가령, 강사님이 올려주신 복습 영상에 내 모습을 중첩시켜보거나, 자전거를 타고 오는 길 위에서 배운 것들의 이미지를 종종 상상해 보곤 했다. 또한, 운동을 하면서 도장에서 이따금 도복 깃을 잡을 손으로 '락-스텝, 스테엡, 스텝!'을 부르짖으며 몇가지 지터벅 동작 연습을 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춤바람 났다면서 웃으면서 반쯤 장난 식으로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까닭에 배운 다섯 가지 동작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동작의 리듬감이나 어떤지 나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 생각해보질 않아, 실제로 괜찮은 몸동작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강사님이나 손을 맞잡고 있는 팔뤄들의 움직임을 참고하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는데, 맞잡은 팔뤄마다 서로 다른 리듬감이나 움직임을 보였기에 어떤 게 좀 더 나은 동작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예를 들면, 어떤 파트너는 상체의 움직임이 절제됐지만, 하체의 바운스가 비교적 컸고 다른 파트너는 상체의 움직임이 물결치는 느낌이라면 하체의 바운스는 비교적 크지 않았다. 무엇이 좀 더 나은 동작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가지 상대와 교감이 된다고 느낄 때만큼은 알 수 있었는데, 바로 상대의 움직임에 맞춰 동작을 취할 때였다. 상대가 갈색 바닥 위에서 물결(~)같이 출 때는 나도 비슷하게 물결(~)이 되려 했고, 상대의 다리 바운스가 파도를 타는 것처럼 크면 나 역시 그 바운스의 폭을 맞추려고 했다. 이렇게 상대의 모습에 따라 움직임을 맞출 수 있던 까닭은 나의 발이 아니라, 상대의 눈이나 어깨 등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윙이라는 동작에서 상대의 눈을 본다는 것의 의미가 교감이라면, 그 교감은 단지 느낌만을 주고받는 게 아닌 듯했다. 이는 상대의 동작이나 상태를 이해하고, 나아가 상대에게 어떤 확신을 줄 수 있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그 감각을 이해해 보려고 좀 더 눈을 마주쳤다. 마주친 눈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있는 듯했다. 누군가의 눈에는 나를 안다는 듯한 반가움이 있었고, 춤에 대한 즐거움이 있는 듯했으며, 또 누군가는 이따금 어떤 피곤함이 보이는 듯하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눈을 마주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럽게 여기는 것 같기도 했다. 가만히 눈을 보기보다 상대와 대화를 시도하면, 서로 눈을 마주하는 게 조금 더 편해졌다. 

생각해보니 누군가의 눈을 보는 일을 이처럼 의지적으로 해 본 적이 별로 없던 것 같았다. 물론 의지적으로 들여다보던 일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눈을 떠올리면, 뭔지 모를 아련함이 가슴팍으로 올라와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 들여다보던 그 눈에 행복이 보이든, 또는 슬픔이 보이든 간에 의지적으로 바라보던 그 모든 눈의 추억은 결국 가슴 시린 추억일 뿐이었다. 물론 이는 지금의 눈앞에 있는 다른 이의 눈보다 더 깊게 들여다볼 때의 이야기일 것이다. 춤을 출 때는 상대의 심연으로 들어가거나 내 심연까지 열어둘 필요는 없었다. 

너무 깊지 않지만, 교감을 할 수 있는 범위까지가 춤에서 요구하는 시선 같았다. 이 범위는 친근함, 또는 적당한 우정이 요구하는 거리와 유사한 듯했다. 상대의 눈과 눈 사이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깝지 않고 그렇다고 멀지 않다. 둘 사이에는 배려의 공간이 있으며 그 공간 사이로 리더의 의지에 따라 가까워졌다가 멀어진다. 그리고 다시 적당한 거리가 생긴다. 50cm 이상의 안정감을 주는 거리이다. 둘은 손을 잡았다 떼면서 닫힌 공간과 열린 공간을 만든다. 닫힌 공간에서는 안정감을 주며, 열린 공간에서는 역동감을 준다. 음악이 둘 사이의 닫힌 공간에 머물다가 열린 공간의 틈으로 휘돌아 나간다. 바람개비다. 그 모습이 영락없는 바람개비였다. 바람개비가 음악을 타고 날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때로는 안쪽, 때로는 바깥쪽, 그리고 손을 바꿔서. 그러나 너무 멀리 날아가지 않게 다시 붙잡는다. 

음악이 없이 연습하고 있음에도 그 동작과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오는 ‘락-스텝, 스테엡, 스텝’의 발음이 어우러져 리듬과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너무 잘하셨어요. 이제 바운스를 좀 더 타봐요. 포지션이 이동할 때에도 바운스를 타고 움직여야 하는데, 그때 조금 정적이에요."

움직일 때마다 반짝거리는 신발을 신은 파트너가 말한다. 막 걸음마를 뗀 아기에게 보일법한 얼굴이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듯한 말과 그 행동에 덩달아 신이 나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본다. 익살이 가득한 그녀의 말투에서 배려를 느낀다.


한 때, 사랑과 우정의 근본 개념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어떤 관계가 점점 더 두터워지고 농밀해져 갈 때, 그것이 다른 관계와는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알며, 또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를 생각했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사랑도 우정도 '나는 너를 생각한다.'라는 의미의 다른 이름이었다.(집착적이거나 비정상적인 사랑과 우정의 경우 이 ‘생각한다’는 표현방식이 왜곡되거나 변질된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상대를 생각함에 있어서 사랑은 성적인 부분마저도 포함된 친밀감이었고, 우정은 성적인 부분이 배제된 친밀감이었다. 물론 사랑은 대체로 상대에 대한 열정이나 헌신과 같은 다른 폭넓은 형태로 그 모습이 변화되기도 하지만, 비교적 긴 기간을 두고 볼 때는 '나는 너를 생각한다.'는 의미에서 비롯되는 친밀감이 중심을 이루는 듯했다. 물론 거기에는 자신의 사랑, 우정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하는 건 두말할 것도 없었다. 

대체로 상대가 나를 생각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결국 그 진심, 의미의 표현이었다. 그것은 단지, 말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말로써 '너를 사랑해' 혹은 '너는 내 가장 친한 친구잖아'로 될 것이 아니라, 온몸이나 어떤 행위로 표현되어야만 하는 일이었다. 마치 강아지가 주인인 나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반기듯, 그것은 오로지 사랑하는 또는 우정으로 여기는 상대가 알아차릴 만한 방식으로 전달해야만 할 일이었다. 진심을 전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였다. 단지 나만 알고 있는 방식으로 간직하고 있는 게 아니라, 때로는 내가 인지하기도 전에 상대가 알아차릴 만한 방식으로 전해져야만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비싼 명품 선물을 상대에게 준다고 해도 그 안에 '나는 너를 생각한다.'는 의미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냥 돈이 좀 비싼 선물일 뿐 감동을 주는 선물이 되지 못한다.

물론 이는 내 마음이 의도하지 않아도 깊은 사랑이나 깊은 우정을 확신할 때는 그 의미가 자연스럽게 표현되지만, 수증기가 온도가 내려앉으면서 자연스럽게 물로 변하듯 상대에 대한 열정과 헌신이었던 사랑이나 우정이 긴 시간을 거쳐 자연스레 친밀함으로 바뀌어 갈 때는 이 또한 당신을 진정 생각하고 있음을 알리는 새로운 표현법이 필요하며 어떤 노력이나 표현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는 상대에 대한 그러한 노력과 표현을 이따금 배려라고 뭉뚱그려 이름 붙이기도 한다.

쓸데없는 사랑이나 우정학 개론 따위는 집어치우고 말하고 싶은 요지는 진심만큼이나 그 전달 방식이 중요하다는 건데, 적어도 내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 타인을 배려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진정 상대에 대한 기쁜 마음으로부터 행동이 우러나온 것인지, 아닌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감사하게도 그녀가 나를 생각해서 계속 배려하고 있음은 분명하니까. 

이곳에 있는 많은 이들이 그런 배려를 하는 게 온통 느껴진다. 상대를 생각한다는 것. 사랑이나 우정이 아니더라도, 그러한 마음과 다를 바 없지만, 조금은 옅은 '나는 너를 생각한다.'가 온통 그곳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반짝거리던 그 신발처럼, 모두의 눈과 얼굴이 반짝거린다. 반짝반짝. 


"파트너 바꿀게요!"

새로운 분이다. 처음의 나처럼 발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리듬을 타기보다 한 발, 한 발 꾹꾹 눌러서 몸을 이동한다. 마치 출렁다리에 위에 있는 사람처럼 꽉 움켜쥔 손을 놓지 못한다. 흔들려 넘어질세라 몸을 다시 고쳐 잡고 천천히, 천천히 움직인다. 그러다 실수 한 번 하고 나면, 그제서야 날 바라보며 멋쩍은 듯 웃는다. 나는 파트너에게 눈을 떼고 날 바라보라고 말하지 못한다. 지금의 파트너는 눈을 바닥에서 떼기보다 자신의 발의 움직임을 한 걸음, 한 걸음 익혀가는 단계가 좀 더 옳은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단계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렇게 걸음마를 하나 둘 떼고 있는 나와 파트너를 보다가, 문득 재즈 피아니스트인 빌 에반스와 그의 형의 대화가 떠올랐다. '성공의 단계에 이르는 빌 에반스의 연습 방법'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5분짜리 짧은 번역 영상이었다. 


다들 그렇겠지만, 첫 지터벅 모임이 끝나고서 흥겨운 재즈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근 15~20년 만에 오랫동안 접하는 재즈였다. 어린 시절의 음악적 취향이 재즈에 가 있던 적도 있었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음악을 듣는 폭은 적어지고, 재즈는 그저 공부를 위한 배경 음악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여하튼, 몇 번 재즈를 유튜브에서 검색하니, 그와 연관된 여러 영상이 눈앞에 나타났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이 영상이었다. 이후 원본을 찾아보니 Universal Mind of Bill Evans로 1966년에 소개된 45분짜리 영상의 일부였다. 대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해리 에반스 : 우리가 어렸을 때 같이 연주를 했던 기억이 나는데, 네가 연주하면서 음악에 푹 빠져들고, 계속 신나있던 모습이 기억나. 요컨대 사람들은 자신이 성공하길 원하지만 몇 년 동안 더 준비되고, 그 분야를 탐구하는 과정을 잊어버리고 성공하길 원하는 게 사실이지. 어떤 분야에서건 말이야. 사업을 하든, 의사가 되려 하든, 변호사가 되려 하든…. 그 분야에 깊이 빠져들면서 느끼는 감정과 고유한 가치들은 간과하고 그 결과만 보는 거지. 


빌 에반스 : 형의 말이 뭔지 정말 이해해. 나에게도 종종 조언을 구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에게도 같은 문제점을 보곤 하지. '제가 이걸 계속해도 괜찮을까요?'라고 묻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진전을 이루기 힘들어하는데, 그들은 단계마다 이루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정확하게 수행해야만 해. 자신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 알고 진실되고, 현실적이고, 정확하게 수행해야 하지. 그들은 작은 부분을 현실적으로 해결하려는 대신 하나로 뭉뚱그려서 커다란 문제로 보려고만 해. 

내 생각엔 어떤 레벨에서든지 이런 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 정확하고, 현실적이고, 분석적으로 되는 것 말이야. 한 번에 모든 걸 다 할 순 없어. 모든 문제를 가져와서 이것을 하나의 큰 문제로 만들면, 무언가 잡히는 것 같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 더욱 혼란스러워져서 함정에 빠지게 될 뿐이지. 무언가에 성공하는 사람들은 모두 현실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어. 초기에는 문제가 클 수밖에 없기에 그것을 단계별로 나눠야 해. 그리고는 단계별로 배우는 순간들을 즐기는 거지. 그러니까…. 노래를 하나 연주해볼게. 노래 하나를 예로 여러 방식으로 연주해보자. (그는 피아노로 가서 앉는다.)

'I like New York in June, how about you?'라는 곡이야. 자, 이 노래에 즉흥 연주를 하고 싶다고 하자. 그리고 그들은 대가들이 연주하는 걸 들었었겠지. 예를 들면…. (대가다운 피아노 연주를 한다.)

사람들은 이런 대단한 솔로들의 근사치에 다다르려 해. 좀 더 간단하고 솔직해서 곡에 잘 맞는 솔로들도 있는데 말이야. 예를 들면…. (단순한 연주를 한다.) 

이런 심플한 연주 대신에 애매하게 아까의 대단한 연주를 따라 하려고 하지. 예를 들면…. (애매한 연주를 한다) 그러니까 즉흥 연주에 대해 일반적으로 접근하면 안 돼. 무언가를 계속 쌓아 올릴 수가 없잖아. 혼란하고 애매한 곳 위에 자꾸 쌓아 올리려고 하면, 결국 더 나아질 수 없어. 


해리 에반스 : 너 지금 나 까는 거지?


빌 에반스 : (형을 보고 웃음 짓는다.)


해리 에반스 : 그건 내 문제기도 해. 너무 많이 연주하는 거. 그런데 평범한 연주자들은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나 같은 사람 말이야. 우린 기본적인 것들을 연주하기에도 급급하단 말이지.


빌 에반스 : 그런데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는 조금 더 간단하더라도 리얼한 연주를 하는 게 중요하단 거지. 이런 연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울 수 있고, 더 성장할 바탕이 될 수도 있잖아? 뭘 하는지 알고 있으니까. (쉬운 연주를 한다) 이건 굉장히 쉬운 연주이지만 정확히 딱 맞아떨어져. 그렇지만 뭘 하는지도 모른 채로 대단한 연주를 따라가려고 하면, 더 나아질 수 없고, 무언가를 배우지도 못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거야.


해리 에반스 : 그런데 멋진 연주를 따라 하는 걸 아예 버릴 순 없을 거야. 거기에도 무언가 흥미로운 점이 있잖아? 즐거움도 있고 말이야. 그렇다고 이런 연주를 하지 않는 건 좀….


빌 에반스 : 맞아, 조심해야 할 점이 분명 있는 것 같아. 새로운 걸 발견하지 못하는 것을 경계해야 해. 어떤 모험을 하기도 해야 하지. 그런데 길게 보자면, 무엇이 정확한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야 하고 모험을 할 땐, 그게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알아야 하는 거야.


출처 : 유튜브, '성공의 단계에 이르는 빌 에반스의 연습 방법' https://youtu.be/anH8Y8vAz2Q

원본 : Universal Mind of Bill Evans (1966 Documentary)




영상에서 제시하는 방법은 단순히 재즈 피아니스트들에게만 적용되는 방법이 아니었다. 이는 인생 전체에서 탁월함을 추구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에 해당하는 말이었으며, 초보자로서 앞으로 배우게 될 스윙 댄스를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지를 생각게 하는 대화였다. 

이 영상을 떠올리면서 스스로 물었다. ‘나는 지금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정확하게 수행하고 있는가? 혹시 어떤 것을 뭉뚱그려서 하거나 내 단계에서 마땅히 해야 할 기본적인 것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음 한쪽에서는 '그냥 즐겨요!'라는 말이 들린다. '즐긴다.'라는 건 무엇일까? 대화를 즐기는 것은 5살짜리도 아이들도 할 수 있으며, 20살의 성인도 할 수 있다. 각자가 자신의 수준에 맞는 대화를 즐기면 된다. 다만, 성인이 되어서도 5살이 즐길만한 대화나 화법을 언제까지나 계속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는 법이다. 어떻게든 즐기는 것은 상관이 없으나, 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즐길 때와 자신이 실은 제대로 못 하고 있다고 느끼지만 즐길 때, 실은 자신도 잘하면서 즐기고 싶은 욕망을 결국 느끼게 된다. 내가 즐기는 데 있어서, 그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인생의 다양한 선택들 사이에서의 적당한 타협이나 게으름이다. 이 순간 적어도 익히는 데 있어서 게으르지는 말자고 다짐한다. 


"이제 오늘 배울 것을 연습해 볼게요." 

복습이 끝나자 새로운 배움이 시작된다. 가르쳐준 팔뤄 강사님의 개인 사정으로 다른 강사님이 리더 강사님과 함께 춤을 선보인다. 

첫 번째는 비하인드 백이다. 뭔가 영어로 하면 있어 보이지만, 우리 말로는 ‘등 뒤’이다. 등 뒤를 팔뤄에게 보여준다는 데에서 파생된 용어인 듯했다. 락-스텝, 스테엡 할 때, 팔뤄의 손을 바꿔 잡고 상대의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등을 보이며 도는 동작이었다.

두 번째는 맨즈 스쿼트였다. 리더 아웃사이드 동작과 유사하나, 손이 머리 위가 아닌 상체에 있고 리더가 스쿼트 자세를 해서 지나가는 형태였다. 

배쓸기는 비하인드 백과 유사한 형태이나 리더가 돌 때 상대의 손을 바꿔 잡는 게 아니라, 팔뤄의 손이 상대의 배를 쓸면서 가는 동작이었다. 지터벅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손으로 상대와의 거리를 잡는 것 같은데, 손을 맞잡지 않으니, 그 거리감을 측정하는 것을 팔뤄의 손으로 하는 듯했다. 

엔젤링이 제일 어려웠는데, 핸드 체인지 상태에서 락스텝으로 멀어진 팔뤄가 다시 가까이 올 때, 그걸 손으로 막아 역으로 돌게 하는 동작이었다. 핸드 체인지 상태에서 락-스텝, 스테엡 후 첫 5박인 ‘스-’에서 발을 멈추고 손을 선서하듯 내밀어 상대가 더 다가오는 걸 막고 마지막 그다음 박자인 ‘테’에서 역방향(시계방향)으로 돌며, 마지막 ‘엡’에 발의 박자를 맞춰 스텝의 끊김이 없어야 하는 동작이었다. 

더 큰 문제는 핸드 체인지였는데, 핸드 체인지 이후 할 수 있는 동작이 많아지면서, 핸드 체인지 이후 신호를 팔뤄가 오해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그 이후에 ‘팬’ 동작을 배우게 되면서 핸드 체인지 이후에 팔뤄가 바로 ‘팬’ 동작을 하려고 할 때가 종종 있었다. 이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나 자신이 무엇을 할지 준비 동작에서부터 결심이 서야 하고, 하고자 하는 것의 의도를 명확히 전달할 수 있도록 동작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었다. 

'뭔가 어색하고 부끄럽다고 표현을 소극적으로 하면 상대는 내 신호를 잘못 알아듣는다. 아직은 어색해도 동작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전체적으로 배우고 연습을 하면서 느낀 바는, 첫 번째 날에는 대체로 손이 머리 위쪽에 있는 동작이 많았다면, 오늘 배우는 동작은 대체로 손이 상대의 머리 쪽에 위치하기보다 상체에 위치한 움직임들이 많은 것 같았다. 태권도로 치면 첫날은 상단 막기, 둘째 날은 중단 막기 정도에 해당한다고 해야 할까? 


"자, 그러면 음악을 틀고 연습을 해 볼 거에요."

오늘도 어김없이 경쾌한 재즈 음악이 흘러나온다. '락-스텝, 스테~엡, 스텝!'의 움직임이 제법 몸에 붙는다. 첫째 날을 포함해 열 가지 동작을 다양하게 해 본다. 점점 더 익숙해진다. 이번에는 스텝이 좀 꼬이더라도 '락-스텝, 스테~엡, 스텝!' 대신 멜로디를 따라 흥얼거려 보기로 마음먹는다. 스윙 특유의 선율이 조금은 익숙해진다. 나는 지금 갈색 바닥, 재즈라는 파도 위에서 서핑을 하고 있다. 음악의 파도를 거스르지 않는 흐름을 온몸으로 느껴보고자 한다. 마스크 안쪽으로 재즈 음악에 맞춰 흥얼거린다. 누군가 실제로 들으면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뭐 어쩌랴! 마음이 더 편안해지고 스텝도 좀 더 편안해진다. 음악이 신나게 될 때는 움직임도 덩달아 커진다. 음악이 점점 줄어들 때는, 나도 움직임을 줄여본다. 


'실수를 하거나 스텝이 엉키거나, You just swing on~. 

뚜루두루두루 뚜두 두 두루~뚜루두루두루 쐅뚜드 빠라바라~

♭♬♬♬♬ ♮♫ ♩ ♫♩ ♯♫♩ � '

케세라세라(Que sera, sera), 까짓것~! 


나의 이런 마음을 상대가 알아차린 듯하다. 아니, 뭔가 달라진 느낌이다. 상대에게 끌려가지 않고 억지로 끌어당기지도 않는다. 상대가 전보다 조금 더 편안해하는 걸 느낀다. 그 틈을 타, 여러 배운 것들을 도전해 본다. '나는 지금 최고다.'라는 마음을 스스로 주입해본다.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을 이 마음을 동작 하나하나에 담아 잠들어 있던 자신감을 한번 일깨워본다. 부끄러움에 볼모로 붙잡혀 있던 이성이 풀려나는 순간이다. 음악이 끝나기 전까지는 이 마음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 


까짓것, 케세라세라(Que sera, s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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