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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Dec 24. 2022

"여기 있는 게 의미 있는 건지 모르겠어."

1막 4장.

"술자리는 시끌벅적할 뿐, 나한테 맞지 않는 것 같아. 여기 있는 게 의미 있는 건지 모르겠어."

나를 따라 다른 지역의 동호회에서 춤을 배우기 시작한 동생이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많은 이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왜 자신이 이곳에서 이렇게 있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이었다. 그의 말에 머릿속에 술자리가 그려졌다. 큰 노래 때문에 상대의 목소리에 집중할 수 없는 공간, 아무 의미 없이 오고 가는 대화, 몇몇 큰 목소리에 의해 주도되는 분위기, 무리 속에서 느끼는 고독감 등등. 그러한 상황이 지금의 그에게는 조금은 맞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특히나 술을 잘 마시지 않아 취하지 않으니 더욱 그 공간의 요란함과 동떨어진 느낌도 들었을 것이다. 

"내가 술을 먹으면 해결될 일이야."

그는 사실 정답을 알고 있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술을 먹으면 될 일이야…."

여운을 남기듯 말하는 그의 말에는 여러 생각이 묻어 나는 듯했다. 그 말에는 여러 뜻이 담겨 있는 듯했다. 그리고는 조금의 정적….

"춤은 재미있어."

그의 말에 나 역시 20년간의 여러 술자리 속에서 겪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가깝게는 이 동호회에 가입하고 함께한 술자리부터 20년 전 처음으로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 때 느꼈던 술자리까지…. 그리고는 어느 새벽에 술자리에서 돌아와 화장실 밝은 거울 앞에 설 때, 입가에 깊게 파인 주름을 발견하곤 그것을 걱정스럽고 또 슬픈 듯 만져보았던 그때를 떠올린다. 그리고는 괜스레 나이 때문이 아니라, 그 술자리에서 자신이 얼마나 억지스러운 웃음을 지었는가를 떠올리곤 서글퍼진다. 누가 그러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 자리는 마땅히 웃음이 필요한 자리라 생각해, 몇 잔을 옆 사람과 거나하게 마시고 별거 아닌 말에도 이게 진짜 웃음인지, 가짜 웃음인지 생각하기도 전에 술의 힘을 빌어 그냥 깔깔 웃어버렸던 것이다. 그의 말대로 술을 먹어버리고 큰 음악에 더 큰 목소리로 웃어버리면 될 일이었을 것이다. 집에 돌아와 가면을 쓴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을 벗어버릴 때 느끼는 서글픈 감정 따위는 다음날 오전까지 자버리고 나면 잊힐 일일 터인데, 그는 고작 그 작은 병에 담긴 술을 마시지 않아서 주름 가득한 하회탈 같은 가면을 쓰지 못한 것이다. 그런 그에게, 사실은 모두가 다 알고 있고 이미 자신도 누군가에게 했을 어쭙잖은 조언 따위를 나의 이야기를 빌어 이런 식의 말을 건넸다. 

"알다시피 나는 대학 시절에 몇 가지 동아리를 했었고, 그 친구들과 지금도 계속 연락하고 있어. 그러나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회식이나 술자리가 좋은 건 아니었지. 특히, 술을 마시고 왁자지껄 떠들고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 설 때쯤이면, '이게 내가 아닌데…' 싶을 때도 있더라. 좀 전까지도 큰 소리로 떠들어대던 눈앞에 있는 얼굴 시뻘건 저 사람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 같은 거야. 그런 거지 같은 기분이 들면, 바쁜 내가 왜 여기에서 이렇게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야만 하지 싶어서 몇 번 동아리를 탈퇴할까도 생각했었어. 거리를 둘 때도 있었지. 그런데 어느 시기를 거쳐오니 나를 생각해주는 동기나 몇몇 선후배가 있더라고. 물론 동아리에 대한 추억도 생겼고. 지금은 다들 좋은 관계가 되었어. 종종 만나며 계속 연락하고 지내고 있지. 돌이켜보면, 그때 완전히 발을 빼 버렸다면, 지금은 추억도 잊고 연락할 사람도 없었을 텐데, 그 소속에 계속 발을 얕게나마 담그고 있어서 지금까지도 관계가 유지가 된 것이니 순간의 판단으로 나가지 않았던 게 잘한 일인 것 같아. 물론 그러면서 서로가 좀 더 알아가게 되어서 그런지 이젠 술자리에서 그렇게 나서거나 마시지 않아도 편하게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고." 

차라리, 그의 이야기를 좀 더 귀담아 둘 걸 하는 생각하면서도 한 번 터져 나온 말은 끝날 줄 모른다. 

"어린 시절에는 이따금 '이게 내가 아닌데' 싶을 때는 마치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그렇다고 술자리가 재미없다고 웃지 않는 모습이나 조용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싫어서 더 왁자지껄 떠들어 대곤 했지. 생각해보면 가면을 쓴 모습도 내 모습인데,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 이 모습도 내 모습이고 저 모습도 내 모습인 건데 말이야. 때로는 웃길 수도 있고 때로는 조용한 것도 내 모습인 거지. 뭐, 그게 이따금 그 분위기와 맞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어느 시기부터 저 모든 모습이 내 모습인 것을 인정하고 나니까, 나는 조금 내가 술자리를 주도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더라. 물론 지금도 이따금 멋진 연기자처럼 분위기와 상황에 따라 제대로 된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할 때도 있기야 하지만, 예전처럼 '이 모습이 내가 아닌데'라는 생각보다도, 분위기와 상황에 맞춘 적절한 다른 내 모습을 보인다랄까 싶은 게 있어. 뭐, 20대 때의 그 모습이 인위적인 것 같이 느껴져 서글펐다면, 지금은 그때보다는 경험이 많아져서 그런지 비교적 자연스럽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칼 융이 청년기에는 여러 가면(페르소나)을 써야 한다는 말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에서의 가면, 사회에서의 가면, 친구 사이에서의 가면 등등.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사람과의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가면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중년의 시기에 이르면 가면을 벗고 진정한 자기실현의 길에 접어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때가 되면 사회적 관계가 어느 정도는 단단히 형성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가면을 써야만 할 기회는 적어지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자신의 본디 모습, 내적인 진정한 자아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일이 적당한 때가 있듯, 그는 여러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시점인 청년기부터 모든 가면을 벗어던지고 자기실현으로 향하려는 모습은 옳지 않다고 보는 듯했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본 책에서 칼 융은 중년기의 시기를 약 35~36세(이는 현대적인 의미에서는 조금 더 뒤로 물러나야 옳은 것 같다)로 보았던 듯하다. 

여하튼, 내가 그의 책을 읽고 감동한 것 중 하나는, 관계를 형성해 가면서 가면을 쓰는 행위(물론 이는 누군가를 기만하거나 사기를 치기 위해 쓰는 가면이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들어가는 여러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가면,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다)가 잘못된 것도 아니며, 나만 그런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라는 점이었다. 가면은 누구에게나 있으며, 어떻게 생각하면 일종의 내적 자아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 중에 있게 되는 일종의 성장통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모습도 내 모습이며, 저 모습도 내 모습이라 생각할 수 있게 되었으며, 가면을 쓴 나를 스스로 두려워하지 않으니 나아가 편하고 진솔하게 자신을 밝히거나 이따금 온전한 나 자신을 보여줄 수도 있게 된 것이다. 뭐 이제 진짜 칼 융이 말한 자기실현을 하기 적절한 나이인듯하니, 외부적으로 보이는 것이 그다지 두렵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겠다. 이제는 정말로 타인에게 비치는 나보다도 나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볼 시간이 된 것이다. 이런 어렴풋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으나, 결국 늘 그렇듯, 동생은 결국 잘 해낼 것은 알고 있었기에 더 긴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좋은 쌀과 좋은 밥통만 있다면, 그리고 초반에 쌀을 잘 씻은 뒤 적당량의 물을 담는 수고로움만 있다면, 취사 버튼을 누른 이후에는 밥통에 담긴 시간만이 좋은 밥을 해주는 법이다. 그 수고로움이 번거롭고 힘들어 포기하거나 취사가 다 되기도 전에 조급한 마음에 밥통을 열어버리면 밥을 못 먹게 되거나, 설익은 밥에 만족해야 한다. 모든 관계나 노력도 그러하다. 수많은 감정의 기복이 있는 상태에서 일시적 판단은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걸 막는다. 동생은 사실 스스로 답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관계라는 밥을 짓는 동안 발생하는 불만이나 고충이 있을지언정, 결국 적당한 시간을 거쳐 제일 맛있는 밥을 먹을 것이다. 그가 사랑하게 될 스윙도,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도…. 설령, 이 밥이 싫어져 다른 것을 먹는다고 해도 나는 동생을 응원한다. 결국, 뭐든 시장기를 느낄 그 시간에 맞춰 잘 먹고 배부르면 장땡이니까. 물론 이건 새벽에 배고파 라면에 밥을 말아 먹을까 고민하는 내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아니, 돌이켜보면 사실 난, 동생에게 어디까지 어떻게 말을 해줬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동생이 저런 말을 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음악을 느끼는 게 중요해. 재즈 음악은 8박으로 구성되어 있어. 들어봐. 에잇, 원! 투쓰리포, 파이브식스세븐 에잇! 원투쓰리포 파이브식스세븐 에잇!"

내게 이 스윙을 소개해준 형이 동호회의 무대 위에서 들었던 흔한 재즈 음악 하나를 들려주면서 말했다. 나는 잠시 형의 대화를 멈추고 여덟 박을 입으로 세며 음악을 들었다. 음악은 여덟 박에 맞춰서 비슷한 리듬을 만들고 있었다. 

"이 음악의 흐름을 들어야 해. 약간의 변주는 있을지언정 비슷한 리듬을 가지고 있지?"

"정말 그러네요? 첫 번째가 8박이 A라면 그다음은 A', 그다음은 A''처럼 들려요."

입으로 박자를 세며, 발로는 지터벅의 리듬을 타다가 형의 물음에 답했다. 

"맞아. 그런데 지터벅은 여섯 카운트야. 그래서 스윙에 지터벅을 추면 2박이 남지. 그래서 린디를 계속 추던 사람이 지터벅을 오랜만에 하면 어색할 수 있어."

지난번 지터벅 수업을 마치고 소셜 시간에 린디를 잘 추는 분과 췄던 지터벅이 떠올랐다. 그분과 출 때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어색함이 있었는데, 왠지 여섯 박 이후 남는 2박을 자신만의 바운스로 맞추는 듯했고 락스텝, 스텝, 스텝을 입으로 따라하기 바쁜 나는 왜 그분이 그렇게 하는 건지 사실 잘 몰랐다. 그저 스윙은 즉흥적인 부분이 있고, 스텝이 꼬여도 그게 바로 스윙이지 싶었기에, 그런 행동을 취하는 것으로만 인식했던 것인데, 형의 말을 듣고서야 그런 즉흥적인 것이 왜 발생하는지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8박을 세 번 하면 24박이고, 지터벅 6박을 4번 하면 마찬가지로 24박이야. 이걸 생각하고 맞춰서 추면 얼추 맞지. 나는 리듬감이 없어서 일일이 이걸 계산하면서 췄어."

휴대폰으로 들려오는 스윙 음악의 멜로디와 코드의 반복을 머릿속에 그려보면서 발의 스텝을 맞춰 보았다. 형의 손을 잡고 락스텝, 스텝, 스텝의 구호에서 벗어나 에잇 카운트 재즈 음악의 연속적 흐름에 몸을 맡기면서 24마디의 비슷한 패턴 속에서 나도 비슷한 패턴으로 배운 동작을 했고 리듬에 변화가 발생할 때 그것에 맞춰 다른 패턴의 배운 동작을 해보았다.

운동이 끝나 쉬고 있던 주짓수 도장 사람들이 그런 나를 보면서 깔깔대며 웃었다. 나는 웃고 있는 그 사람들의 손을 잡아 이렇게 추는 거라며 무릎과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또 함께 추었다. 락스텝, 스텝, 스텝. 

"형님, 스윙의 바운스나 리듬감이 주짓수에도 도움이 될 거 같아요."

옆에 있는 여자 동료와 계속 바운스를 타며, 형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 운동장 나가서 뛰어봐. 주짓수에 도움 되지 않겠어?"

형님의 말에 모두가 또다시 깔깔 웃는다. 다른 게 행복인가, 이렇게 사심 없이 웃는 게 행복이지. 그렇게 언젠가 다가올 불행에 대비한 행복을 조금 더 적립한다. 

뭐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실 진짜 불행이라 말할 수 있는 거대한 일이 보통 사람에게 닥치는 일이 얼마나 될까? 적어도 내 경우에는 불행하다는 말을 입에 올리는 일은 극히 드물다. 어쩌면 불행을 말하면, 진짜 불행해질 것 같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구체적으로는 그저 이따금 행복하지 않은 기분을 느낄 뿐이라 그렇기도 하다. 그 기분이란 공허와 고독, 고립, 응어리진 마음, 서글픔, 뭔가 채워지지 않는 기분이다. 내 마음을 이해해 줄 이가 아무도 없는 것처럼 지극히 혼자가 된 기분이다. 뭐, 그런 응어리 정도는 이제는 가슴에 푹 묻고선 한숨 자고 다음날 일어나면 되는 일이다. 

이해관계 따위는 개의치 않는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도록 하는 모임은 그런 기분을 멀리하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런 모임과 관계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그 시간의 점 위에 의미를 부여토록 한다. 적어도 내겐 스윙 모임과 더불어 동기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수많은 모임이 그러했다. 지터벅을 배우기 위해 모인 수업 그 자체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함께 모여 캘리 그래피를 해보고, 볼링을 치고, 음식을 함께 나누고, 그림을 그리면서 나누었던 모임들 하나하나가 토대가 되어 좀 더 깊은 인간적인 유대를 쌓아갈 수 있게 되었다. 서로의 존재를 조금 더 깊이 있게 인식하고 소속감을 느낌에 따라, 혼자 있는 기분이나 혹은 도피하고 싶은 기분을 조금 더 탈피할 수 있게 해준다. 물론 이런 번개 모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정기적인 출석은 같은 것을 함께 따라 함으로써 동질감을 느끼고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게 한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라는 속담처럼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던 존재는 참여자들의 마음에 스며들 듯 어떤 인상을 줄 수밖에 없다. 성실하고 꾸준한 참여는 그래서 어디에서나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태도가 행복을 준다고 장담할 수는 없어도 살면서 느끼는 외로움, 공허감 같은 행복하지 않은 기분을 아주 조금은 완화해 줄 거라고는 믿는다. 불행은 아니지만, 행복하지 않은 기분을 달래준 여러 모임과 그 안의 사람들이 참 고맙다. 아마 어느 시기에 이르러서는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것을 생각할 때, 이런 것들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강습의 마지막 날에 이르러서도 우리는 한 동기의 재능 기부 덕분에 캐리커처를 그리는 모임을 했고 5시에 이르러 마지막 수업을 들으러 동호회로 갔다. 아직은 밝은 무대 위에서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지난 시간에 배운 찰스턴의 여러 동작을 맞춰 보았다. ‘탠덤 찰스턴’과 뒤이어 오는 ‘핸드 투 핸드’으로 빠져나가는 게 어색했다. 특히 손과 다리가 걸을 때처럼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락스텝을 할 때 계속 같은 방향으로 뻗어졌다. 

'뭔가 잘 안될 때는 두루뭉술하게 다 하려고 하지 말고 더 나눠서 연습해야 해.' 

흑백 영상의 빌 에반스가 나를 보며 말한다.

상대에게 양해를 구하며 '핸드 투 핸드'를 세 부분으로 나눠 연습했다. 탠덤 찰스턴에서 빠져나오는 부분, 양쪽으로 계속 킥을 차며 상대의 손을 맞대는 부분, 마지막으로 사이드 패스로 나가는 부분. 안되는 부분을 반복하자 익숙해진다. 익숙해지고선 앞부분과 뒷부분을 붙여서 연습해본다. 안되는 부분은 성공할 때까지 계속한다. 그리곤 전체적으로 조금씩 마디를 붙여본다.

'무작정 외우는 것보다 왜 저런 식의 동작이 나왔는지를 이해하는 게 중요해. 맞닿은 손은 상대가 더 앞으로 나가지 않으면서 반대 방향으로 돌 수 있도록 받쳐주는 역할이야. 적당한 공간 안에서 상대가 너무 멀어지거나 가까워지지 않도록 당겨주고 밀어주는 손의 역할이 중요해.'

머릿속에서는 잊지 말아야 할 주문처럼 중얼거리면서 연습을 계속한다. 

이러한 연습 방법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지만, 뭔가 그 진의를 이제야 깨달은 것 같았다. 전부터 알고 있던 것과 현재 방법과의 미세하면서도 큰 차이 중 하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작은 단위로 분절해서 연습하는 것이었다. 이는 마치 1cm의 길이로만 인식한 것을 밀리(mm) 단위로 인식하거나 나아가 마이크로나 나노 단위로 인식할 수도 있다는 식의 깨달음과 유사했다. 둘째는 그 방법을 적용해볼 훈련 기회가 주어진 것이었다. 이게 빌 에반스의 영상이 내게 준 큰 의미였다.

복습이 끝나고 우리는 미니딥과, 커들딥, 그리고 20년대 찰스턴이라는 걸 배웠다. 특히 이 20년대 찰스턴이 이 지터벅에서 내게 주는 마지막 난관처럼 느껴졌다. 클로즈 포지션으로 측면에 가까이 있던 상대를 앞쪽으로 끌어오는 동작인데, 이는 시야를 가리는 완전히 사적인 공간으로 상대를 끌어와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지금까지 내가 헤쳐온 부끄러움에 관한 모든 난관을 종합적으로 시험 보는 듯했다. 

"상대의 눈을 보세요. 상대의 등 중앙에 자신의 손바닥을 가져다 대세요. 상대와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세요." 

정면이지만 약 50cm의 사적인 거리를 유지할 때나, 측면에서 있을 때와는 다른 당혹감이었다. 사적인 거리는 부서지고 상대의 눈과 머리는 내 바로 앞에 있었다. 다리는 자칫하면 서로 부딪힐 것 같았고 등에 닿은 손은 내 팔보다 길고 큰 물건을 잡을 때처럼 간신히 손가락이 끝에 걸리는 것 같았다. "락스텝, 스테엡, 스텝"으로 외치던 것을 "스텝스텝스텝. 스텝스텝스텝." 으로 바꿔 부르는 것도 다리를 꼬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당혹감과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휘감자 마치 1주 차 강습을 받을 때처럼 모든 것을 까먹고 실수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내색하지는 않지만, 또다시 부끄러움이 고개를 쳐들었다. '이는 상대가 이성이기 때문에 느끼는 부끄러움인가? 아니면, 내가 못해서 생기는 부끄러움인가?' 그러나 나는 끝까지 내색하지 않는다. 나는 참을성이 많다.

뒤이어 졸업 공연을 위한 약간의 강습을 했다. 기존의 배운 것들을 전체적으로 복습할 수 있도록 짜여 있었다. 6주 동안 나는 잘했는가? 지금의 움직임을 볼 때, 꽤 익숙해진 것은 분명해 보였다. 돌이켜보면 부끄러움을 이겨내고 상대에게 계속 홀딩 신청을 하면서 배운 여러 가지 것들을 골고루 쓰려고 한 것과 수요일 정기모임에도 나와서 강습에서 배운 걸 계속 시도해 본 게 도움이 되었다. 특히 수요일은 사람이 많지 않아서 보다 넓은 공간에서 좀 더 심도 있게 연습해 볼 수 있었다. 강습 이후 소셜 모임에서도 한 도우미 팔뤄의 도움으로 계속 졸업 공연을 위한 안무 연습을 할 수 있었는데, 조금 익숙해지자 이것만으로도 팔뤄를 자신있게 이끌 수 있는 라인 동작이 되었다. 

연습한 동작들이 편안해지자, 문득 음악을 들으라던, 도장에서의 형님의 말이 떠올랐다. 상대의 손을 잡고 음악을 들으면서 8박의 흐름을 잡았다. 문제는 6박의 락스텝, 스텝, 스텝의 구호가 머릿속에서 계속 흘러나오는데, 스윙 음악의 8박 패턴을 귀담아들으려니 스텝이 자꾸 꼬여버린다는 것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머릿속을 맴돌던 락스텝, 스텝, 스텝의 목소리를 잊고 그 동작을 다리에 내맡기니 음악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동작이 따라오기 시작했다. 

'이거구나!'

뭔가 비밀을 좀 더 알아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동작의 어색함이 사라지자 상대도 뭔가 변화한 것을 알아차린 듯 바라보았다.

'6주 동안 나는 잘했나?' 

글을 쓰는 지금, 다시 묻는다. 뭐랄까, 나 자신을 돌아보면 단순히 지터벅이라는 하나의 춤을 배운 게 아니라 부끄러움과 어색함을 극복하는 과정이었다. 다른 하나는 학습-반복-숙달이라는 배움의 과정을 어떻게 하면 좀 더 효율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그 물음에는 이렇게 답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적어도 무대 위에서 참여한 그 순간만큼은 후회가 없도록 노력한 것 같습니다." 

그럼 나는 스윙이 좋아졌을까? 고백하건대, 스윙과 사랑에 빠진 것은 아니다. 춤이 미치게 좋은 것도 아니며, 슬프지만 내일 당장 조금이라도 나에게 중요한 일이 스윙을 배울 시간에 생기면, 이 춤은 일단 내 인생의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될 게 분명하다. 다만, 이 스윙이라는 걸 좀 더 알아보고 싶고 몇 번은 더 마주치고 싶은 호감이 생겼을 뿐이다. 내색은 하지 않지만, 춤을 추며 종종 마주하게 되는 부끄러움을 이겨내려는 용기가 조금 더 생겼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스윙을 마주하며 '저번보다 오늘, 조금 더 좋은 적이 많은 것 같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걸음이 더디더라도 계속되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스윙을 좋아한다.'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는 날이 오지 않을까? 뭐, 나는 꽤 인내심이 크고 성실한 편이니까 말이다. 부디, 언젠가는 그런 날이 굴곡없이 평탄하게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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