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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Dec 12. 2024

한여름 밤의 꿈이었으며 8월의 크리스마스였다. (1)

1.


“안무를 짜주는 건 안 될 것 같아요.”


5주 차 찰스턴 1교시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 하로가 안무에 관해 물어보고 은근히 짜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쌤들로부터 안무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랬던 것일까? 투표 마지막 날까지도 참여자가 단 네 명뿐이었다. 굳이 안무 탓을 하지 않더라도 각자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더 사람이 늘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전처럼, 난감한 상황이라고 여겨지진 않았다. 분명 예전 같았으면, 사람도 없고 안무도 없는 마당에 무얼 어떻게 할 수 있겠나 싶었겠지만,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번 중급 수업에서 배운 패턴과 루틴을 다 외우고 있었기에 ‘까짓것 안되면 졸공 연습을 빌미 삼아 지금까지 배운 패턴들을 엮어서 연습이라도 하지 뭐. 그렇게 하면 않는 것보다 내게 이득이잖아!’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런 생각에 미치자, 컴퓨터를 켜서 1주에서 5주까지 찍어둔 영상들을 살펴보았다. 5주 차 찰스턴을 제외하곤 대체로 미디엄 템포였다. 5주 차 음악에 다른 것들을 넣기에는 어려워 보였기에, 그나마 속도가 빠른 편이었던 1주 차 음악인 Jonathan Stout and His campus Five의 Jacquet in the Box 깔아두고 그 뒤에 차례대로 주차 별 영상의 속도를 약간씩 조정해 음악에 집어넣었다. 


주차별 영상에 나오는 루틴들은 2프레이즈, 64카운트를 깔끔하게 차지하고 있었다. AABA 구조의 음악은 앞 2프레이즈가 지나자 새로운 구조(B)의 리듬이 나왔기에 다른 주차의 영상을 집어넣기 수월했다. 우선 1주 차 영상으로 기준을 잡고, 그다음 2프레이즈는 할타키어를 하는 2주 차 영상을 집어넣었다. 영상과 음악의 싱크를 맞추고 영상과 영상 사이이 연결이 안 맞는 부분은 최대한 어색하지 않게 편집을 하니 2분 조금 넘는 분량이 되었다. 한 두 시간 정도를 그렇게 했을까? 오랜만에 만져보는 영상 편집 도구였기에 조작도 엉성했지만, 그래도 뿌듯하고 만족스러웠다. 


사실 난,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공연 안무 짜기에 관한 일종의 트라우마가 있었다. 경력도 짧고 해보지도 않았는데, '내가 어떻게 그걸 해?'라는 어린애 같은 발상과 더불어 과거 수강생들끼리 안무를 짜면서 발생했던 고성과 욕설, 그리고 크고 작은 마찰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마치 어른의 성장에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그리고 초급자에게는 초기 경험의 감정적 측면이 중요하듯,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으나 스윙 댄스를 하는 것 자체를 고민했을 만큼의 씁쓸함이 묻어 있었다. 


그렇기에 쌤들이 안무를 짜주지 않는 이상 별로 공연 연습에 참여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을뿐더러, 이 일은 적어도 쌤들이 아니라면, 나 같은 사람이 아닌 경험 많은 사람이 통솔해 나가야만 하는 일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물론 음악을 들으면서 종종 이런 리듬과 박자에는 이런 무브가 좋겠거니 상상을 하곤 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아직 상상의 영역이었을 따름이었다. 


그 막을 깨고 ‘안무 짜기에 한 번 도전해 보자!’라고 생각하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절 나와 같은 조건 아래에 있던 럭키라는 한 친구를 통해서였다. 이 수업을 듣기 바로 전에 나는 지터벅을 끝내고 막 린디합이라는 춤을 경험하는 이들을 위한 입문 수업의 도우미로 활동을 했다. 쌤이었던 내 동기 사케누는 졸업 공연을 앞두고 과거 쌤이 우리에게 안무를 직접 짜보라고 했던 것처럼 기짱인 럭키에게 안무를 한 번 짜보라는 주문을 했다. 그리고 그는 스스럼없이 두 쌤들의 그 주문을 받아들였다.


그 주문을 받아들이고 만들어보려는 과정은 그때의 우리와 다를 바 없었다. 아니, 우리가 입문반에 있을 때에는 적어도 경험자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럭키나 그 주변에 같은 수업을 듣는 사람들 중에는 경험자 조차 없었으니 우리보다 안무를 짠다는 것이 막연했을 것이다. 다만, 그때의 우리와 지금의 이들 사이에는 깊은 차이가 존재했다. 바로 쌤들에 대한 신뢰와 유대감 그리고 친근함이 있었다.


어느 날 어느 영상에서 어느 강아지가 물가 반대편에 있는 주인의 부름을 듣고 스스럼없이 뛰어드는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또 어느 영상에서는 5~6살짜리 유아가 조금 낮은 곳에 있는 엄마를 향해 뛰어내리는 장면을 보기도 했다. 


누군가는 그렇게 뛰어내리고, 누군가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


상대가 나를 얼마만큼 진정성 있게 대했는가? 그리고 어떻게 유대감을 쌓았고 서로를 신뢰하고 있는가?


"괜찮아. 잘 못 해도 되니까 한 번 해봐. 어차피 잘 안되는 거 다 알고 안되는 건 봐줄게."


때로는 대화로, 그리고 때로는 비언어적인 몸짓과 눈빛으로. 분명 입문반의 두 쌤들은 전달하고 있었고 수강생들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동호회의 가치는 무엇일까? 이해관계가 아닌 서로 간의 유대관계를 통해 성과가 아닌 조직과 개인의 성취와 거기까지 도달해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과정은 힘들어도 때로는 고난같이 느껴지더라도 마치 천상병 님의 시처럼 결국 돌이켰을 때 결국 아름답고 즐거웠다고 느껴져야 한다고 본다. 동호회는 아카데미가 아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 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린디합을 들은 지 몇 개월 되지 않던 시기에 있던 쌤들이 우리에게 안무를 직접 짜보라고 주문한 의도도 사실은 지금의 사케누 쌤이 기짱인 럭키나 다른 친구들에게 직접 안무를 짜보라고 했던 의도와 다를 바 없을 것이었다. 다만, 우리의 유대감이 그만큼 깊지 않아 안무를 짠다는 것의 의미를 발견하기 이전에 큰 스트레스였을 뿐이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불안만 더 커졌을 뿐이다. 


그래서 럭키가 스스럼없이 안무를 만들어보려고 하던 그 행동이 내게는 꽤 충격이었다. 동시에, '나 역시 그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이제는 나만의 것을 만들어가야 할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터벅 포함 고작 3달째인 저 친구도 저렇게 뭔가를 하려고 하는데, 질 수는 없었다. 더욱이 2년 동안의 동호회 생활을 경험하면서 이제는 나 역시 여러 경험과 관계를 쌓았고 나 자신을 음악에 맞춰 좀 더 표현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 동호회의 성격상 어떤 식으로 내가 먼저 진정성을 보일 수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내 나름의 최선을 다해보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과 서로가 줄 수 있는 협력.


그것을 어떤 식으로 보일 수 있느냐가 성공적인 졸업 공연에 이르는 과정의 핵심이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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