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안무에 대한 여러 생각과 즐거운(?) 고민을 하며 여러 영상을 짜깁기하던 찰나, 터키에서 다녀온 다니에게 연락이 왔다. 졸공을 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나는 어차피 리더 안무야 스콜피온(혹은 버터플라이?) 등의 동작을 제외하고는 다 할 수 있는 거였으니, 수업에 대한 연습 경험이 별로 없더라도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아쉬운 것이 없을 테니, 그녀에게 어떻게든 찾아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신청하라고 안심시켜놓고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합류를 시켜놓았으니, 어떻게든 졸업 공연을 성사시켜야 한다는 나름의 사명의식까지 생겼다.
사실, 리더부족으로 공연을 참가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던 팔뤄는 다니 뿐 아니었다. 실은 그 전에도 임미 역시 졸공 신청을 했다가 취소했기에, 그녀도 함께했으면 싶었다. 그러나 지금의 안무로는 더 할 수 있는 리더를 한 명 더 찾기도 쉽지 않았다.
어쨌든 그다음 날부터 다니가 합류하고 일단 1주 차부터 5주 차까지 배운 것들을 차례대로 연습해보았다. 리보가 사정이 있어서 그날 나오지 않았기에 팔뤄 3명을 상대해야만 했다. 문제는 동작들의 디테일을 내가 잡아 줄 수 없다는 점이었다. 알려줄 상대가 리더라면 1주에서 5주까지 외운 안무들을 알려줄 수 있을 텐데, 팔뤄인데다 이들이 수업을 나오지 않을 때 진행했던 안무를 어찌어찌 잡아준다는 것도 쉽지 않을 듯했다. 전에 졸공 연습을 할 땐, 리더들이 많거나 나보다 경력이 많고 잘하는 리더들이 있었기에 생각해보지 않았던 일이었다.
"차라리, 1절 2절 구분해서 리더 1명에 팔뤄 2명으로 구성하는 거 어때요? 임미도 하고 싶지만, 상황이 이래서 못한다고 했으니 차라리 팔뤄를 1절, 2절로 나눠서 같은 안무로 하죠."
내 고민이 보였는지 어땠는지, 팔뤄들 사이에서 이야기하다가 하로가 이런 아이디어를 냈다. 그녀와는 매주 안무 연습을 하기도 했고 팔뤄들에게 시범을 보이거나, 또 디테일을 봐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기에, 나는 절대적으로 동의했다.
"좋아. 차라리 그게 나을 것 같아. 현재로서는 중급에서 한다는 리더는 더 없을 것 같고, 구하려면 외부에서 구해야 할 텐데, 수업 내용이 쉬운 건 아니라 리더가 알려주기도 쉽진 않을 것 같아. 임미는 또 나랑 계속 연습해서 거의 모든 내용을 다 외우고 있어."
다들 너나 할 것 없이 동의했고 바로 그녀에게 연락을 보냈다. 그리고 그녀가 합류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에 있던 부담감 하나가 덜어지는 듯했다.
문제는 기존에 생각했던 안무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은 다시 졸공까지 열흘 정도 남겨놓은 시점에서 모든 것은 다 원점으로 돌아갔다.
"어차피 우리 목표는 배운 것들을 연습하고 졸공 안무에 활용하는 거니까 이번 주는 주차별 안되는 것들에 관해서 연습해요! 뭐, 안무는 하다 안되면 만난 응원 음식을 얻어먹고 도저히 안 되겠다고 하지 뭐."
"그래. 뭐, 어떻게든 안 되겠어? 일단 해보면서 생각해보자고."
절대 다들 그만둘 마음 따위는 없을 거면서, 졸업 공연에서 너무 많은 부담은 갖지 말자며 이런 저런 말을 건넸다. 확실히 졸업 공연을 2년 동안 해오면서 생긴 여러 경험의 누적 중에는 이 졸업 공연이 끝이 아니라 스윙 댄스라는 긴 동호회 생활의 반복되는 과정이라는 점이었다. 말하자면, 공연 자체의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서로의 협력과 화합을 통해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드는 게 더 중요했다.
의미 있는 시간.
행복할 수 있는 시간.
뭔가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힘들어도 결국 이루고 나면 하길 잘했다 싶은 게 있었다. 그런가 하면, 힘들기만 하고 짜증스럽기만 할 뿐, 괜히 했다 싶거나 다시 하고 싶지 않다고 느끼는 것들이 간혹 있기도 했다. 나는, 적어도, 이 과정이 조금은 힘들어도 함께 하는 과정을 통해 다들 뭔가 마음에 남는 기억이 되었으면 싶었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와! 우리 함께해서 너무나 좋았다.'라는 말이 나올 시간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려면 서로가 서로의 흔적을 묻히고 또 묻어가는 시간이 되어야 했다.
‘서로 물들어가는 시간이 의미로 남는다면, 뭐든 아무거나 상관없다. 어떻게 하든, 누가 무엇을 하자고 하든 상관없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무언가를 하겠다고 고집은 피우지 말고, 귀가 순해진 상태로 연습에 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