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의 동기에 관한 이론 / 전자책 구매에 따른 독서법
나의 일상 여행기. (38)
※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하나의 행동을 여러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많다.
아침 7시는 아직 새벽의 침묵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간이다. 길 위에는 분주함보다 침묵이 머물러 있고 사람들도 평소보다 느릿한 걸음으로 움직인다. 아무도 없는 빈방에 홀로 남아 침묵과 졸음을 밀어내려고 늘 듣는 재즈를 틀고 커피 한잔 마시러 정수기로 향했다. 가는 길에 열람실을 청소하는 이모님을 만나, 커피를 타는 김에 그녀의 것도 탄다. 이모는 겉으로는 안타 줘도 된다며 "뭘 이런 걸, 다…." 라고 말하며 웃는다. 자주 가는 식당의 이모도, 환경 미화를 하는 이모도 다들 작은 선의에 늘 똑같은 손사래를 친다. 나 역시 으레 인사와 같은 것임을 알기에 언제나 "많아서 괜찮다."라고 응대하며 주머니에 있는 가루 커피 몇 봉을 그녀의 앞치마 주머니에 넣는다. 이 모든 과정이 작은 선의에 담긴 가벼운 인사이다. 단순히 스쳐 지나가듯 안녕이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친근하며 부담스럽지 않은 보답이다. 호혜성의 측면에서 무엇을 딱히 기대해서라기보다는 자주 마주치게 됨에 따라 느끼는 친근함과 내가 점유하는 공간을 청소해 주신다는 고마움, 나이 든 여성에게 느끼는, 고생하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 작은 인사 표현에 가깝다. 이러한 행동은 이기적이며 합리적인 생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며 비합리적인 감정을 기반으로 한 행동이다. 사소한 행동부터 둘 사이의 오가는 비합리적인 대화가 그렇다. 물론 이를 심리학적 호혜성으로도 현상을 풀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생각으론 그것은 옳은 풀이 방식이 아닐뿐더러 뉴턴의 물리학과 그 이전의 물리학의 차이처럼 인간에 대한 이해 측면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전체 중에 미세한 부분에 균열을 일으키겠지만, 그 부분이 근본적인 차이를 깨닫는 열쇠가 된다.)
호혜성은 타인에 대한 합리적 기대로부터 발생한다. 내가 선의를 보이면 타인 역시 나에게 선의를 보일 것이라는 기대감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규범은 우리 사회 전반에 문화적, 도덕적으로 자리 잡아 인간 행동을 의식적 뿐 아니라 무의식적으로도 규정한다. 나의 행동 역시 그러한 무의식적 호혜성을 기대해서 선의를 행한 것일는지도 모른다. 더불어 이러한 행동은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도 설명할 수도 있다. 상대에게 호감을 주도록 하는 무의식적인 행동이 유전자의 생존 측면에 더 유리하다는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이처럼 하나의 행동을 여러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많다.
여하튼, 이모에게
무의식적이며 직관적으로 보내는
사소한 선의는
마음을 담은 반가운 안부이다.
인간 행동의 동기를 어느 차원에서 설명하느냐, 가령 사회-문화적 차원에서인지, 개인적 심리의 차원인지, 진화적 차원에서 인지 혹은 유전자 단위의 차원에서인지에 따라 다양한 이론이 등장한다. 가령, 칸트는 사회적-인간적 차원에서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가, 의무로서인가'로 분석을 했으며,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수전 울프의 책에서는 거기에 '삶의 의미'라는 측면을 포함한다. '삶의 의미'라는 측면은 이익이나 의무가 아니어도 인간은 어떤 행동을 하며 그것이 인생의 '의미'가 되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어떤 이득도 바라거나 의무라고 생각지 않는 나의 행동이 바로 ‘삶의 의미’이다. 물론 이원론을 따르는 칸트적 견해에서도 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 저 행동을 심도 있게 분석해보면 내가 이득이 될 것을 기대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사회적 의무처럼 여기는 도덕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현상을 설명하는 다양한 이론이 공통으로 존재할 때 과학자들은 선택의 기준을 '오컴의 면도날'로 둔다. 이들은 두 개의 합리적 설명 중에 좀 더 명료하며 단순한 것을 채택한다. 그래서 나도 칸트적 이원론보다 복잡한 설명이 적은 수전 울프의 삼원론으로 설명하길 더 좋아한다. 여하튼, 이모에게 무의식적이며 직관적으로 보내는 사소한 선의는 마음을 담은 반가운 안부이다.
지식 습득과 간접 경험을 통한
개인의 통찰을 제공하는 게
책의 목표라면,
종이의 감성보다도 전자책의 장점이
나로서는 더 많다.
스터디룸으로 돌아와 커피를 마시며 오늘까지 사용해야만 하는 온라인 서점의 포인트를 보며 무슨 책을 살까 고민한다. 2년 전 홍수 피해로 집안의 많은 책이 물에 젖은 이후로 될 수 있으면 전자책을 구매한다. 종이책보다 가격이 저렴할뿐더러 적어도 물에 젖을 염려는 없고 두꺼운 책이라도 휴대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이사하면서 또한 깨달은 바는 작은 방에 많은 책을 들이는 것은 방을 비좁게 할 뿐 아니라 이사를 망설이게 한다. 물론 종이책이 주는 감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지식 습득과 간접 경험을 통한 통찰을 제공하는 게 책의 목표라면, 종이의 감성보다도 전자책의 장점이 나로서는 더 많다. 전자책은 잘 안 읽힌다는 이도 있고 일부 연구에서는 종이책으로 공부하면 학습효과가 더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으나, 이 역시 어디서나 학습할 수 있는 전자책의 휴대성이나 다른 장점으로 충분히 상쇄 가능하다.
현재의 독서법은
발췌와 더불어
발췌만큼의 생각을
그 하단에 기록해둔다.
과거 전자책을 구매하지 않았을 때의 독서법은 책을 더럽게 쓰는 방식이었다. 내키는 곳에 밑줄을 치거나 해당 페이지에 직접 메모를 하거나, 요약한 것을 챕터의 뒷장에 남겨두곤 했다. 더구나 전자책의 느린 반응 속도와 각주 보기의 어려움은 전차책에 대한 반감마저 들게 했다. 아마 프로모션으로 함께 구매한 기기와 180여 권의 책이 아니었으면 지금도 종이책을 선호했을 것이다.
이북(ebook)으로 많은 책을 꾸준히 구매하던 이 무렵부터 마인드맵이나 워크플로위(workflowy; 트리 구조로 되어 있는 아웃라이너 프로그램) 혹은 스크리브너(scrivener, 작가를 위해 디자인 된 워드 프로서서겸 아웃라이너 프로그램 ) 등의 여러 컴퓨터 프로그램를 활용한 나름의 독서법을 개발했다. 그 중에서 주로 활요하는 독서법은 발췌와 이에 따라 떠오른 생각이나 참조할 책을 그 하단에 기록해두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발췌 "앞에서 우리는 서양인의 의식을 구성하는 세 가지의 사실이라고 믿어지는 것들을 이야기로 꺼냈다. 죽음에 대한 깨달음, 자유에 대한 깨달음, 사회에 대한 깨달음이다. 첫 번째 죽음에 대한 깨달음은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구약성경의 이야기 속에 계시된 바 있다. 두 번째인 자유에 대한 깨달음은 신약성경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속에서, 모든 개인의 인격 하나하나가 우주에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라는 발견을 통해 계시가 된 바 있다. 세 번째인 사회에 대한 깨달음은 산업사회에서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가 되었다. 어떤 사람의 이름을 여기에 붙일 수는 없겠으나, 아마도 그러한 계시의 예언자 역할에 가장 가까웠던 이로써 로버트 오언을 말할 수 있다." <E. H 콜, 로버트 오언 전기>
#생각 인간이 죄악으로 말미암아 평생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말년에는 차디찬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생각, 구약에서는 인간에게 죽음을 내리는 엄한 심판자로서의 신의 모습을 통해 인간은 죽음에 대해 깨닫게 한다. 자유에 대한 깨달음을 발견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무엇일까? (칼 폴라니의 저서를 읽어봤지만, 잘 생각이 안 난다. 다시 읽어봐야 할 듯싶다. 그래도) 기억이 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 하나하나를 보살피는 장면이라거나 혹은 아흔아홉 마리 무리 떼의 양과 한 마리의 사라진 양 사이의 이야기 등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 사회에 대한 깨달음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칼 폴라니는 사회는 발견되었다고 말한다. 그 사회에서 인간다워질 수 있는 것은 시장에 의해서 작동되는 사회, 시장의 메커니즘 안에서 돌아가는 사회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다워질 수 있는 사회는 무엇인가를 발견했다는 의미 아닐까? 나는 이러한 추측을 하며 이 책을 읽기 시작한다.
#참조 칼 폴라니 <위대한 전환> 찾아서 정리할 것.
이러한 방식 외에도 문학은 발췌한 것을 나름의 방식으로 각색해보거나 비문학은 한 문단이 챕터를 읽고 중심 문장을 찾아보거나 또는 요약하여 트리 형태 등으로 나열을 해보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작성할 수 있었던 까닭이 전자책 덕분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종이책을 보면서도 똑같이 이런 방식으로 발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서 구매량의 비중이 종이책보다 전자책이 많아짐에 따라, 과거처럼 종이의 빈 여백에 생각을 써놓는다든지, 포스트잇을 활용하여 글을 쓰거나 글의 중요한 부분에 붙여 논다든지의 일을 하지 않게 되면서, 이러한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