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점검하는 시간 / 의미를 담은 평범한 삶
나의 일상 여행기. (39)
※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버튼을 누르는 결단 이후에는
밥이 되기까지
꾸준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당최 7시 5분 전에 깨어 매일 부리나케 달려가는 까닭은 스릴을 즐기기 때문인 건가? 아니면, 변화할 준비가 되지 못해서인가? 누구나 의지는 있지만, 변화할 준비가 된 사람은 드물다. 나 역시 그러하다. 어떠한 변화는 연속적이다. 서서히 바뀌어 어느 지점에 이른다. 그러나 다른 변화는 불연속적이다. 불연속적인 변화는 서서히 바뀌기보다 변화할 준비가 끝나면 한 번에 바뀐다. 이때에는 마음의 준비까지가 연속적이다. 밥을 하는 데까지의 과정을 보면, 쌀을 씻고 불리고 밥통에 넣고서 취사 버튼을 누르는 데까지의 과정이 단계별로 연속적이다. 그러나 취사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끝까지 준비 단계에 머무르며 밥으로 바뀌지 않는다. 취사 버튼을 누르는 결단만이 쌀을 밥으로 바꿀 수 있다. 취사 전까지의 모든 과정 역시 중요하나 쌀을 덜 씻어도 덜 불려도 취사 버튼만 누르면 밥은 완성된다. 다만, 만족스럽지 못할 뿐이다. 버튼을 누르는 결단 이후에는 밥이 되기까지 꾸준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어느 지점까지 결단 후 지속해서 시간의 흐름에 맡기고 반복 숙달 과정을 거쳐야만 밥에 이를 수 있다. 버튼은 개인에게는 변화를 위한 큰 결단이며 사회에게는 혁명적 사건이다. 사건 전으로는 그 결단을 위한 조짐이 보인다. 사건 후에는 과거의 모습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개인과 사회에 변화가 이루어진다.
7시 전에 일어나는 변화는 이루어낸 듯하다. 그러나 그것이 불안한 까닭은 밥솥에 관한 비유로 계속 이야기하자면 그게 자꾸 설익은 밥처럼 쌀도 아니고 밥도 아닌 상태가 되어간다는 점이다. 사실 결단은 일찍 일어나기에 있다기보다 일찍 자기에 있다. 늦게 자도 어쩔 수 없이 일찍 일어나야 하기에 몸이 계속 피곤하다. 7시에 일어나는 것은 그 자체가 결단이긴 하나 취사 버튼이 아닌, 취사 후 예정된 시간에 밥솥을 열어보는 행위였을 따름이다. 취사 버튼은 저녁에 있었다. 그 버튼을 일찍 누르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의지는 있으나 변화할 준비를 하지 않는 까닭은 만성화된 게으름이거나 변화를 두려워해서겠지. 그것을 익숙해져 바꾸기 어려운 습관 때문이라고 여기면서.
좋은 책들은 그 본질 속에
유사한 진리를 담고 있으며
논의의 중심 바깥 부분을
충실히 채워준다.
간신히 아침 7시 발도장을 찍고 어제 구매한 전자책을 보았다. 「논문 잘 쓰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의 책이다. 논문을 쓸 일이 없어 지금까지 구매를 보류하고 있다가 어제까지 써야 할 포인트가 있기에 생각난 김에 구매했다. 항상 궁금했다. 연구자나 정교한 글을 쓰는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어떻게 합당한 주제와 결론을 도출하는지. 이 책을 통해 에코의 사유 방법을 알고 싶었다. 이러한 책은 자기 생각을 구체화하는 데 있어서 훌륭한 산파 역할을 한다. 훌륭한 산파는 창작의 고통을 아예 없앨 수는 없으나 이것이 효율적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훌륭한 책들은 단순히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 사용되기보다 우리의 삶 속에 겪게 된 수많은 경험과 그에 따른 사고 과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아직 보지는 않았으나 사람에 따라 '글 잘 쓰는 방법'이나 '말 잘하는 방법'으로 읽힐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책이 앞서 말한 특정 목적 이외의 방법에 두각을 드러내진 않을 것이다. 말을 잘하려면 '말을 잘하는 법'이라는 책을 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좋은 책들은 그 본질 속에 유사한 진리를 담고 있으며 논의의 중심 바깥 부분을 충실히 채워준다. 아무리 훌륭한 책이라도 핵심 주제와 관련된 모든 것을 채울 수는 없으며 관련 분야나 다른 분야의 다양한 책들이 주변부를 채워주는 것이다. 다양한 책 중에서 고전은 대체로 작가의 충실하고 깊은 사유 속에서 만들어지며 부족한 시간 속에서 충실하며 가장 믿을만한 산파다. ‘충만은 명석에 이르게 하고 심연은 속에 진리가 있다.’라는 공자의 말은 사람뿐 아니라 폭넓은 지식과 깊은 사유로 완성된 고전에도 해당하는 말이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다짐할 뿐이다.
<야구 선수 오타니의 만다라트에 육하원칙의 구체적인 계획을 적용한 만다라트>
나는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는 고전을 만들만한 사유를 하고 있을까? 모르겠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다짐할 뿐이다. 아침에는 힘을 다해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것, 오전에는 충실히 영어를 진행하는 것, 오후엔 심사숙고하여 글을 쓰는 것, 저녁에는 힘써 일하는 것이 나의 본분이다. 단순한 하루면서도 꾸준히 그렇게 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영화 회화 실력은 분명히 전보다 좀 더 나아진 것 같다. 년 초부터 지금까지 충실히 영어 패턴을 암기하자는 다짐이나 단순히 취미로서가 아닌 그 이상을 보자는 생각은 지금까지 계속 이어오는 중이다. 더북어 이번 달부터는 어휘력을 조금 더 높이려고 한다. 영어에서도 한 단계를 넘고 다음 단계로 들어서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만다라트를 통한 100일 계획 중 중반을 갓 넘어온 시점에 이르렀다. 아홉 개의 계획 중에 잘해온 것과 못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그를 통해 얻은 능력은 무엇인가?
우선 기상은 만족스럽다. 매일 부리나케 나가긴 하지만 적어도 7시까지 학교에 가 있는 것은 대견할 정도이다. 다만, 아까 언급한 대로 취침 시간이 늦어져 수면 시간이 부족한 것은 여전히 문제이다.
건강은 매일 2시간가량 영어 공부를 하며 걸어서 그런지 전보다는 건강한 체형과 체중을 유지 중이다. 다만, 이틀에 한 번 하자던 타바타 운동(20초 운동, 10초를 쉬며 4가지 종목의 운동을 총 8세트 하는 인터벌 운동 프로그램)이 희찬 씨의 시험으로 미뤄지거나 취소되고 나서는 일주일에 두 번도 힘들어지고 있다. 날씨마저 더워지고 있어서 다음 주부터는 운동장에서 운동하기보다는 헬스장을 다녀야 할 것 같다.
독서는 글쓰기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지고 나서는 하루에 2~3시간 정도 진행하고 있다. 요즈음에는 오전 영어 모임 전에 책을 읽고 오후에 전적으로 글 쓰고 있으나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는 조언처럼 글쓰기를 먼저 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프로그래밍은 당분간 쉬고 있다. 사실, 지금 당장 중요하거나 그것이 바로 내게 어떤 이득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므로 보류하는 점도 있다. 좀 더 실력을 키우려면 실제 프로젝트를 통해 경험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으나 일단 글을 쓰고 영어 공부에 좀 더 초점을 두고 싶다.
심야 모임은 참가자가 적어 모임을 마무리 지은 상태이다. 이 모임은 심야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는 방편으로 진행한 것이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인원 모집이 어려웠다. 아무래도 다른 방안을 고려해야 할 것 같다.
멘탈 관리에 있어서는 오랫동안 참여했던 모든 정기 모임을 정리한 이후로 한동안 좀 흔들리는가 싶더니 매일 상윤이와 함께한 덕분에 지금은 꽤 좋아졌다. 때로는 사람들과의 교류가 적어서 그런지 혹은 자존감의 문제인지, 전보다 사소한 일에도 옹졸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발끈하진 않는다. 글을 쓰고 나서는 자신과의 대화에 더 많이 귀를 기울이고 있다. 외롭다는 생각도 처음보다 많이 좋아졌다.
이틀 전에 생각했던, 나라는 존재의 의미가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 존재하는 시간이 내게 어떤 의미를 가지냐’에 따라 달린 거라면, 그 시간의 점들을 잘 모아 선(線)으로 비교적 잘 이어가고 있고 유사한 형태의 선들을 쌓아 나만의 면으로 잘 만들어가고 있다고 확신한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그 면(面)은 계속 층층이 쌓일 것이며 계속 유동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가 자랑스러워 할만한,
인생의 등불이 되어줄
친구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영어 모임이 끝나고 점심을 간단히 먹고 나서 스타벅스로 향했다. 면접이 잡혀 자기소개를 준비하는 상윤이가 면접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내게 물었다. "누군가를 알려면 그 사람의 친구를 보면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최현을 친구로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합격할 감이 됩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2002년 대선후보 시절에 문재인을 친구로 두고 있어서 자신이 대통령감이 된다는 말을 패러디 한 것이다. 상윤은 "최현이 누구지?"라며 면접관들의 이목을 끌긴 하겠다고 말했다.
누군가가 자랑스러워 할만한, 인생의 등불이 되어줄 친구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나는 그런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비록 우스개로 한 말이지만, 그런 친구로서 남을 수 있다면 정말 자신이 자랑스러울 것 같다. 대중 앞에 그렇게 말할 때는 그만큼 누구에게나 내세울 만한 친구일 것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친구인가? 혹은 그 반대는 아닐까?
가치 있는 내가 되려면 가치 있는 일을 실현해야 한다. 스스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네 행동의 준칙이 보편 입법의 기준이 되도록 하라.'
이런 말들이 뇌리를 스치면 수많은 부끄러운 행동들이 연이어 떠오른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수없이 많은 인간 존재의 정의 가운데, '부끄러움을 아는 존재'라는 말만큼이나 인간을 인문학적으로 잘 설명한 말도 없을 것이다. 부끄러움, 수치심은 인간 존재를 끊임없이 수양토록 한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를 금수와 같은 자라고 부르는 것도 그와 같은 이치이다.
‘우리의 어떤 본성이 그러한 부끄러움을 갖게 하는 것일까? 부끄러움은 유전자에 각인된 본성일까, 사회의 교육일까?’ 뇌의 중추에 부끄러움과도 같은 감정을 담당하는 기관을 두고 이야기를 하느냐 혹은 사회에 따라 저마다 다른 도덕 기준을 두고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이 감정에 대한 설명에 다르게 접근해야 할 부분이다. 이는 마치 유전자의 기본 구조는 같으나 환경에 따라 다른 형태로 발현되는 것과 유사하다. 혹자는 둘 중 하나만을 들어 부끄러움을 설명하려 하지만, 이 둘은 상보적이다.
암기 확인 및 테스트 방식은
라이트너 학습 방식이나
퀴즐렛의 학습 모드 방식에서
낱말카드 표시방식으로
자가 테스트를 하는 것이 유용하다.
어제의 일기는 많은 시간을 들였으나 길게 쓰지는 못하고 일을 하러 가야만 했다. 쉬는 날인지 모르고 있다가 느지막이 반장님의 연락해서 일찍 가야는 걸 알게 되었다. 글을 완성하지 못한 찜찜한 상태로 아르바이트 길 위에 올랐다. 길에 오르자마자 어김없이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영어 구문을 암기하는 데 있어서 말이 바로 떠오르지 않고 5초 이상 넘어가는 것은 두뇌에서 아직 장기기억화 하지 못한 것이다. 오랫동안 생각해야 떠오르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잊어버린다. 이를 보완하려면 처음부터 꼼꼼히 암기하여 즉문즉답이 되어야만 한다. 이렇게 하고도 전혀 복습하지 않으면 대부분은 까먹는다. 패턴을 내 것으로 만들려면 반복학습을 해야 한다. 5일치 복습 분량을 계속 제공하고 모임에서 계속 시간을 잡고 빠르게 테스트하는 까닭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바로 전날 학습 패턴 문장을 꼼꼼히 외우면 나머지 4일 치 패턴을 암기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모임에서는 선입선출방식으로 같은 패턴을 5일간 반복해서 보기 때문이다. 가령, 오늘이 월요일이라면 지난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총 5일 분량중에 바로 전날치와 나머지 4일치 모두가 포함된 시트 두개를 만들어 복습한다. 그리고 주말에는 한 달 치나 두 달치를 보게 해야 한다.
하루 치 암기 확인 및 테스트 방식은 라이트너 학습 방식(Ebbinghaus 망각 곡선 이론에 근거한 효율적인 암기 방법의 하나로, 주기 학습법 또는 분산학습법이라고도 함.)이나 퀴즐렛(무료 암기 프로그램, www.quizlet.com)의 학습 모드 중 낱말카드 방식으로 자가 테스트를 하는 것이 유용하다. 스스로 복습할 때에도 가능한 철저히 테스트해야 한다. 시간이 걸려도 익숙해질 때까지 그렇게 해야 마찬가지로 4일 치 나머지 테스트를 빨리 끝낼 수 있다. 암기 및 자가 테스트를 할 때는 큰 소리로 영어 문장을 내뱉어야 한다. 또한, 암기한 패턴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문장을 만들어 뱉게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길 위에서는 영어로 중얼거리는 것이 비교적 자유롭다. 이러한 이유로 미세먼지가 심하지만 않다면 1시간 거리의 아르바이트 장소까지 걸어가는 것을 선호한다.
이익이나 의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지 말고
의미 측면에서 바라보면
평범한 시간도 꽤 즐거워진다
삶을 이익이나 의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지 말고 의미 측면에서 바라보면 평범한 시간도 꽤 즐거워진다. 그리고 이 평범한 일상 가운데 그저 흘려보낸 시간들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게 될 때, 무의미하게 걸어왔던 이 길은 뜻이 있는 길이 되고 내 주변에서 머무는 이들은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밝혀줄 이들이 된다. 그리고 때로는 의미는 생명이 없는 존재들에게조차 생명력을 주게 된다. 무의미한 것은 의미가 되고 의미는 생명이 된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슈뢰딩거가 했던 말처럼 유기체의 생명 유지는 낮은 엔트로피를 가진 다른 생명을 먹어 죽음이라는 높은 엔트로피로 향하는 것을 막는 것이라면, 의미를 창조하는 것은 죽음과도 같은 높은 엔트로피의 무의미를 낮은 엔트로피의 생명(의미)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가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김춘수의 시는 무의미한 것이 꽃이라는 의미를 가진 생명이 된 것이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자신의 주변에 생명을 가진 꽃을 만드는 것이며 이것을 먹어 당신의 정신적 엔트로피를 낮은 상태로 유지할 수 있다. 이것만이 현대 사회에서 죽음에 이르는 병인 절망감의 해독제이다.
문득 낮에 영어 모임이 끝나고 한때 그토록 아끼던 이로부터 걸려온 전화가 생각났다. 나는 꽃을 떠나보내고 의미를 다시 무의미화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절망스러운 것은 그 노력조차 내게는 의미가 된다는 것이었다. 무언가를 잊으려 할수록 잊혀지지 않는 까닭은 그 노력조차 꽃이 되기 때문이다. 한번 각인되어 마지막까지 잊혀지지 않는 의미들을 우리는 추억이라 부른다. 이러한 질긴 추억은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서도 떨어지지 않는, 마지막 잎새와도 같다. 그 질긴 잎새가 언젠가는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절대 떨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 잎새는 기쁨이며 동시에 슬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