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삶의 즐거움|가족에 관하여|고슴도치와 여우

나의 일상 여행기. (80)

by Chris
《빨강, 파랑 그리고 노랑의 구성(Composition with Red Blue and Yellow is a 1930 painting by Piet Mondrian)》
※ 단순한 형태의 그림을 보는 것은 단순한 삶을 즐기는 것만큼 즐겁다.


※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시계가 8시를 가리켰다. 외로운 기분이 들어 저녁 늦게까지 본 드라마가 화근이었고, 그 전날 동생 집에 있을 때 그가 깰까 봐 알람을 모두 꺼둔 게 문제였다. 휴대폰으로 상윤이에게 지각을 알리고 이따 커피 한잔 사겠다고 말했다.

이번이 상윤이와 아침 기상 내기를 하고 나서 세 번째 지각인듯했다. 어차피 벌어진 일, 짜증을 내면 뭐할까 싶어 오늘은 좀 늦게 갈 것 같다고 말하고 한숨 더 잠을 청했다. 일종의 사소한 일탈인데, 마음을 차라리 편하게 먹으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요즘처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상황에서 하루쯤 이렇게 일탈을 하는 게 오히려 신선했다. 반복되는 일상은 그 하루의 형태가 비슷하다 보니 흘러간 시간에 대해서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그 안에서는 시간의 흐름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갔음을 인지하게 되는 것은 가끔 날짜를 물어보거나 내 나이를 물어볼 때였다. 그렇기 이러한 일탈이 흘러간 시간과 흘러갈 시간을 구분짓는 지점으로 삼고 자신을 재정비하기에도 적절했다.



자고 일어나 시계를 보니 어느덧 10시였다. 예전 같았으면 아침 영어 모임 때문이라도 바로 일어났을 텐데, 아침 모임을 하지 않으니 오전에 마음껏 잘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그러나 이것은 한편으로 내게 '아침 모임을 하는 게 나았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했는데, 그 까닭은 아침 모임을 하지 않고서 오전에 글을 쓰는 데 전 시간을 활용하고 싶었지, 이렇게 잠으로 보내길 원한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잠을 자게 되면 아침 모임을 하는 게 나았다. 물론 이러한 일탈은 어쩌다가 한 번뿐이긴 하나 그런 후회의 감정이 단 한 번도 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대충 씻고 옷을 입고 월천 라운지로 향했다. 우울한 기분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날씨였다. 하늘도 맑고 구름도 별로 없었다. 적당한 바람이 시원하기까지 했다. 소풍을 놀러 가기 딱 좋은 것 같아, 상윤이가 오면 야외에서 밥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라운지에 오니 공부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오전이라 그나마 자리가 있어서 창가 쪽 가운데 기둥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후에 이름 모를 여성 한 명이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펼쳤다. 코딩하는 것으로 보아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듯했다. 문득 파이썬을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으로선 프로그래밍에 할애할 시간이 마땅치 않았다.

요즘은 삶이 그 어느 때보다 단순해졌다. 그러나 그게 아쉽거나 하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는데,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가능하다면 지금 하는 일에 더욱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언급했던 것처럼 생각만 끊임없이 할 수 있다면, 하루 전부를 글쓰기에 쓰고 싶었다. 이 정도에 만족하고 싶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참으로 관심사가 많았다. 그리고 작은 시간이라도 할애하여 모든 일을 매일 하는 것을 즐겼다. 이러한 방식은 다양한 것들에 대한 지식과 능력을 조금씩이나마 길러주었다. 문제는 어느 하나 잘하는 것이 없이 '그럭저럭 한다'에서 만족한다는 점이다. 어느 경지를 넘어서려면 몰입을 위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데, 계획을 세워 그 계획안에 하고 싶은 것을 모조리 다 집어넣으니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기가 어려웠다.

예전에 본 어떤 모 교수는 티비에 나와 남자와 여자의 학습방식에 관해 이야기하며, 어떤 방식이 효율적이냐에 대한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여자의 학습방식에 대한 언급이 내 방식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말하자면, 나처럼 일정을 짜고 그 안에서 골고루 무언가를 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남학생의 방식은 하나에 몰입하면 그것만 판다는 점이었다. 가령, 토요일에 독서실에서 공부할 거 한두 과목을 가져가서 문제를 풀고 좀 쉬다가 다시 문제를 푸는 식으로 온종일 풀고 있는데, 이 부분이 학습 효과를 더 높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요는 어떠한 학습 후 장기기억화 하려면, 그것을 충분히 상기할만한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논의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점이 아니라 어떤 학습방식이 중요한가에 초점을 두고 설명한 것이지만, 이런 이야기를 보다 보면 여성과 남성의 차이점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페미니즘에서는 이런 식의 남성과 여성에 대한 차이를 두는 것에 대해 비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심리적 특성이나 그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이 충분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도출한 통계적 결과로 이해한다면, 그 자체의 구분이 남녀 차별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성을 이해하고 진정한 평등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통계, 즉 확률적 가능성으로 접근해야 한다. 과학적 접근법의 겸손함이라고 생각하는데, 과학에서는 100%로 진리로 여기는 것이 없으며 가능성의 측면에서 접근한다. 이는 과학의 진보와도 관련이 있는데, 그 전 세대에서 진리에 가깝게 여긴 패러다임의 중심이 아닌 바깥 부분의 테두리가 깨어지면서 발전했기 때문이다.

'여성은 이런 존재야.'라고 규정하는 것은 폭력일 수 있으나, '여성에게는 이런 성향이 있을 수 있어.'는 이해이다. 물론, 이러한 경향이 커지면 무의식 중에 가능성이라고 여긴 것을 확신이나 고정관념처럼 여길 수도 있다. 지성인이라면 누구나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여하튼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한두 가지에 몰입하는 방식을 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하는 일 자체는 어려운 게 아니었음에도 그 생각을 바꾸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매번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계획되어 있는 다른 일들로 인해 시간을 들여 충분한 양의 글을 쓰기가 어려웠고 무엇 하나 매일 하지 못하면 안 되는 것처럼 여겼다. 이렇게 삶의 형태가 단순하게 바뀐 것은 실로 우연적인 일 때문이었으며, 이 일로 인해 내 삶이 전혀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것이 바로 아침 기상 모임이었다. 매일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기상 모임을 시작하고 하루를 어떻게 잘 사용하고 있는지를 기록하고 싶어서였고 그 기록이 좀 더 재밌고 충실했으면 하는 바람이 지금의 결과를 만든 것이다. 그 까닭에 기상 모임을 통해 만들게 된 계획서의 수많은 계획을 철회해야 했지만, 내가 진짜 하고 싶고 해야만 하는 일을 찾았으니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지루하지 않은가?" 이러한 몰입적 삶, 그중에 글을 쓰는 것을 일종의 게임으로 생각해보자. 게임에 몰입하면서 이따금 지루하거나 혹은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게임을 계속하는 까닭은 이번 판의 게임이 저번 판의 게임과 다르기 때문이다. 게임의 기본적인 규칙과 게임을 위해 사용하는 도구나 운영은 비슷할 수 있으나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대결은 매번 다르다.

글을 쓴다는 것도 그렇다. 긴 시간, 가령 7시간 동안 쓰는 글들의 각각의 문단을 하나의 게임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게임은 매번 다른 기술과 생각을 요구한다. 다른 기술과 생각이 있다면 지루할 수 없으며, 지루하다면 그것은 같은 말이 반복되고 있거나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게임이든 재미를 얻는 과정은 비슷하다. 생각해서 전략을 짜고 전략대로 실행되는 결과를 지켜보고 승리를 거둘 때 재미있다. 그 과정 중에 계획과 임기응변이 만나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든다.

자판을 두드리며 전날의 일기를 썼다. 지금까지 써왔던 글들이 이제는 상당한 양이 되었다. 맞춤법을 비롯하여 글을 퇴고하는 일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마도 이번 주 혹은 다음 주쯤이면 온라인으로 진행한 기상 모임을 마무리할 텐데, 이 모임이 시작할 무렵 글을 썼고, 이 모임을 끝낼 무렵, ‘나의 일상 여행기’도 끝을 내자고 생각했으니, 아마 이제 슬슬 글쓰기 계획의 1부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드는 게 아닌가 싶었다. 거의 3달가량 쓴 글들을 마감하면서 차례대로 다시 볼 때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해졌다.

곰곰이 생각하면 3개월이라는 시간이 참으로 빠르게 흘러갔다. 처음 이 글들을 써 내려갔을 때는 이렇게까지 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삶의 중심이 글 쓰는 것으로 바뀌어버렸을 만큼 매력적인 일이 되었다. 일이 거의 고정처럼 되어버림에 따라 삶은 평범해졌지만, 그 삶 속에서도 생각은 물처럼 계속 흐르고 변해가고 있었다. 어쩌면 3달간의 성과 중에 가장 큰 성과는 글쓰기보다도 ‘평범한 삶’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모든 사람이 특별한 여행을 할 수는 없으며, 매일 쳇바퀴 돌듯 삶을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무엇을 생각하냐에 따라 내 영혼을 여행 상태로 만들 수 있음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을 한동안 '나의 일상 여행기'라고 부른 까닭도 여기에 있다. 시간과 공간을 넘는 무한의 세계로 여행을 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비록 그곳에는 화려한 경치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인도했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슬픔의 기억을 상기하고 위로해주며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찾게 해 주었다. 학습 효과도 있었는데, 기존에 봤던 책들을 다시 끄집어내 기억을 더듬어 주었다는 면이나 그것을 다시 내 손으로 기록했다는 면에서 꽤 좋은 학습 방법이었다.

한 사람이라도, 단 한 사람이라도 이러한 글을 사랑해줬으면 싶다. 나의 글을 읽어주고 의미를 발견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 역시 자기 삶의 단면을 기록할 글쓰기를 했으면 싶다. "당신의 글을 읽고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당신의 글로 삶의 의미를 찾았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 얼마나 기쁠까? 아마 그런 날이 오면 종일 눈물이 나서 어쩌지 못하다가 다시 글을 쓸 것이다.

나의 글은 내 삶의 의미를 되찾는 과정이다. 글을 쓰는 것은 하루의 수많은 단면을 들여다보고 어느 하나 버릴 곳이 없음을 깨닫기 위함이고, 글을 사람들에게 공개해야 하는 까닭은 이로써 나와 다른 누군가에게 어떤 형태로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함이다. 눈물 나게 슬픈 일을 겪거나 찬란하게 기쁜 일을 겪은 것은 아니지만, 삶의 사소한 일들 가운데의 슬픔과 기쁨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 책과 지식이 어떻게 삶에 관여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사소한 삶조차도 잊히지 않는 의미로서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다.




점심이 되자 동생 집에 갔다 왔을 때 사둔 호두과자를 들고 가격 파괴 분식점 이모네로 갔다. 2박스를 건네며 하나는 이모가 먹고 다른 하나는 저녁 이모를 주라고 했다. 선물을 받고 소녀처럼 웃는 이모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모의 모습을 보니 오전에 바쁘게 움직였는지, 뒤로 묶은 머리임에도 앞머리가 빠져나와 이마 주변으로 이리저리 흔들렸다. 이모는 지난 주말에 엄청 바빴다면서, 나한테 도와달라고 연락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꼭 내가 어디를 가면 그렇게 바쁘네?"라고 안쓰러운 듯 되물었다. 이모는 웃으면서 "뭐 줄까?"라고 물었다. 나는 오래간만에 밖에서 친구랑 먹게 비빔밥을 싸 달라고 했다. 이모는 재활용 용기에 주려다가 말고 식당 안에서 먹을 때 쓰는, 양푼에 밥과 반찬을 하나 가득 꾹꾹 눌러 담았다. 나는 놀라서 너무 많다고 비비지도 못할 것 같다고 말했지만, 들은 채도 안 하고 듬뿍듬뿍 넣어 주셨다. 이모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김치와 단무지를 함께 가지고 월천 라운지 맞은편의 벤치로 갔다. 근래 들어 미세먼지는 준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휴대폰으로 확인해보니 '좋음'이 떠 있었다. 상윤이에게 연락을 보내고 그곳에 앉아 잠시 휴대폰을 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좋은 사람들과 언제랄 것 없이 이렇게 음식을 함께 준비하고 같이 나누고 싶었는데, 그랬던 사람들도 이제는 모두 떠나고 말았다. 학교의 친구들이 먹는다고 하면 카레도 만들고 밥도 집에서 어서 만들어 먹던 것도 벌써 2년 전 일이었다. 옥상에 앉아 고기를 굽고 채소와 함께 가지고 올라와, 선선하면서도 청명한 날씨에 밤새 이야기꽃을 피웠는데, 이제는 그 친구들이 모두 떠나고야 말았다. 언젠가는 그렇게 떠나리라 생각했지만, 그 시간도 어느덧 1년도 더 지났다. 이 친구도 머지않아 그렇게 떠날 친구였다. 당장 엊그제 면접 본 곳에서 합격 통지만 뜨면 떠나갈 친구였다. 하다못해 오늘 이렇게라도 밖에서 먹으면 그때의 기분이라도 날까 싶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렇게 모두 떠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어쩌면 내가 너무 지나치게 마음을 주지 않을 까닭, 최소한의 내 공간을 만들고 타인이 쉽게 넘어서지 못할 선을 만드는 까닭은 언젠가 이들이 떠나갈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중학교 시절에 선생님에게서 들었던 한마디 말, 회자정리 거자필반,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고, 헤어지면 반드시 만나게 된다는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아득히 먼 옛날부터 들어왔던 말인 것 같았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었던 말, 눈을 떠서 세상에 첫 울음소리를 내면서부터 알고 있었던 말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득한 옛날부터 아득한 미래까지 닿아 있는 말 같았다. 그때부터일까? 내 감정 주변에 굵은 선을 칠하고 그 안으로 쉽게 들어오지 못하게 만든 것이……. 내 중심이 뽑혀 나갈 만큼의 감정의 기복을 느끼지 않게 된 것이 바로 이 말이 부적처럼 내 마음의 한가운데 딱 붙어서였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너무 줘서 그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달라붙어 버리면, 언젠가 그 사람을 떠나보낼 때 그것을 떼어내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그래서 마음의 선을 지키기로 했다. 모든 것이 쓰나미처럼 쓸려가도 마음의 집만큼은 남을 수 있도록, 웃으면서 보내고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낼 수 있도록……. 이 친구와 따뜻한 햇볕에 나와 늦기 전에 함께 비빔밥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가 도착하고 비빔밥을 꺼내자, "이게 뭐예요?"라면서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엄청난 양에 놀란 것이다. 나는 웃으면서 가져온 숟가락과 젓가락을 꺼내 비비라고 말했다. 양푼에 하나 가득이라 비비기도 만만치 않았다. 다 비비고 조금 더 몸을 양푼에 가까이하고 밥을 먹으면서 그는 나를 못 본 며칠 사이에 있던 일들을 말했다. 아주 사소한 일로 감정이 상해 할머니와 말다툼한 이야기, 어린 시절 아버지와 어머니와의 싸움을 지켜본 이야기, 누나가 자신을 괴롭힌 이야기 등등. 가정은 언제나 그에게 행복한 공간이 아니었고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헤아릴 줄 모르며, 언제나 자신을 힘들게 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가족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감정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며 폭력적으로 대하는 부모와 가족들의 모습 속에서 진절머리가 난다는 말을 했다. 너무 화가 나서 빨리 취업하고 떠나고 싶다는 말, 가족이 싫다는 말을 했다.

"네가 그들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하거나 당당히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우선 물질적으로 독립을 해야 할 수밖에 없어. 네 가족이 너에게 그러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까닭의 이면에는 그들이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너의 보호자임을 자처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거든. 경제적으로 속박이 되면 정신적으로도 그들보다 아래에 있다고 여기게 돼. 사회든 가족이든 어쩔 수 없어. 적어도 동등한 위치에 있으려면 네가 돈을 버는 처지, 혹은 나아가 그들에게 돈을 주는 입장이 되어보는 게 좋아. 그러니 얼른 취업해서 독립해." 그러면서 말을 더 이어갔다. "가족이라고 해서 같은 공간에 있고 매번 보는 게 좋은 것은 아닌 거 같더라. 같이 있겠다는 것은 그 사람의 치부나 나쁜 모습까지도 보게 되는 거니까. 차라리 조금은 떨어져 있는 게 서로에 대한 그리움이나 애틋함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어. 내가 가족을 매번 그리워하는 까닭이나, 고향에 있는 친구가 아직도 가장 친한 친구로서 남아 있는 까닭은 어쩌면 자주 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해.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소식을 계속 주고받으면, 좋은 모습이나 그리운 모습만 떠올릴 수밖에 없거든. 아마 그런 때가 너한테 오면 너 역시 너희 가족에게 갖는 감정이 바뀌게 될지도 모르지."

우울해하는 그를 보면서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청소년기를 보낸 내 동생이 떠오르고 나한테 매번 가족에 대한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이야기하던 영은이가 떠올랐다. 내 동생은 이제는 덤덤한 듯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곤 하지만, 10대 시절의 동생의 가족에 대한 처참한 기억은 그를 너무 힘들게 했었다. 물론 그것이 가정의 불화로 인한 문제라기보다 빚을 해결하지 못하여 발생했던 슬픈 기억이었다. 지금도 그때를 이야기하면 지긋지긋했던 기억들이 떠올라 몸서리를 치지만, 그러한 점이 내 동생이 나보다 우리 가족을 애틋하게 생각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자기보다 더 불안에 떨며 고생하는 엄마의 얼굴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토록 힘든 세상에서 그래도 마지막까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가족밖에 없다는 것을 그는 매번 되풀이한다. 반면에 영은이의 경우에는 상윤이의 경우와 비슷했다. 어린 시절에 자신이 가장 힘들 때, 힘이 돼주지 못하던 가족을 원망했다. 따뜻한 말 한마디를 바랐을 뿐인데, 그들의 가족은 그녀를 차갑게 대했다. 상황 자체는 동생이나 내가 겪었던 빚이 있거나 하는 문제는 아니었지만, 인생의 큰 결정이 있던 시기, 자기 인생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시기에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고, 믿었던 가족으로부터 받은 차가운 말 한마디는 비수가 되어 그녀의 가슴 한가운데 꽂혀 그녀 스스로는 뽑을 수도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 말 한마디는 아마 가족은 기억도 못 할 것이다. 그녀가 그렇게 상처 받았다는 것을 표현해도 가족들은 과민 반응을 하는 거라며 오히려 이상하게 치부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자신의 잘못은 없다는 듯 '가족끼리 그런 말 할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며 사과하기는커녕 자기를 방어하기 급급했을지도 모른다. 가족으로서 자신이 어른이기 때문에, 앞에서 씩씩거리는 어린 딸을 부양하는 어른이라는 자존심 때문에 목젖에 걸려있던 미안하다는 말을 다시 삼켜버린다. 그런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도 않으며 평생에 걸쳐 잊어버리지 않게 된다.



그 많던 양을 다 해치우고 나서 그는 커피를 마시자며 산책 겸 캠퍼스 밖으로 나를 이끌었다. 길을 걸으면서 문득 혹시 '이 친구도 나처럼 함께 구매한 약으로 인해 불안감이나 우울함이 증폭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러한 우울하고 화가 나는 상황이 계속 떠오른다고 했다. 그 약이 촉매가 되어 우울한 생각을 증폭시켜주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에게 이러한 말을 하니, 그는 그래도 머리를 지켜야 한다고 웃었다. 그렇게 웃는 게 보기 좋았다. 이런 웃음 하나에 우울 하나가 상쇄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커피숍에 들려 나눠 먹을 쓰리 샷 커피 하나를 받고 세계 과자점에서 초콜릿과 과자 한 개씩을 골라 다시 돌아왔다. 자리에 앉아서 글을 마저 쓰면서 사 온 커피를 텀블러에 담아 들이켰다. 초콜릿의 달콤함과 커피의 씁쓸함이 제법 잘 어울렸다. 이런 커피를 즐겨 마시면서도 내가 왜 이런 것을 즐겨 마시는지 알 수 없었다. 언젠가 커피의 맛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지만, 커피의 애호가도 아니기에 커피를 잘 음미해서 마시지도 않는다. 커피 맛을 못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맛보다도 익숙함이 더 크다. 물론 이따금 먹는 달달한 음식과 아메리카노는 단맛을 배가시킨다. 그러나 나는 대체로 그저 커피만 마실 뿐이다.

익숙한 것들은 의미를 만들지 않는다. 의미는 주로 '왜?'라는 질문에서 나오는데, 익숙하면 의문을 갖기 전에 일을 저지른다. 사람 사이에서 익숙해진다는 것은 서로에게 '왜?'라는 질문을 배제한다. 마음이 통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굳이 그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의미를 찾으려는 행위 자체에 익숙해지고 나면 정말 '왜?'를 찾아야 할 상황에서도 익숙하게 넘어가고 만다. 그리고 점점 서로가 그런 ‘왜?’를 묻지 않는, 무의미 속에서의 사소한 행동으로 상처를 입는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물어야 할 상황에서도 묻지 않고, 가족으로서 '왜 나는 동생에게 충고의 말을 해야만 하는가?'의 까닭은 전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조차 익숙하게 벌인 행동 이후에 상대방이 의문을 제기하면 그제야 까닭을 찾는다.

익숙함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일화가 생각난다. 아인슈타인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수년간 상대성 이론에 대해 강의를 했다. 수백 번의 강의를 따라다니며 그를 수행하던 운전기사는 어느 날 아인슈타인에게, 강의가 너무 익숙해져 자신도 강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아인슈타인은 "다음번에는 당신이 강단에 서서 강의를 해보시오."라고 제안을 했다. 기사의 모습이 자신과 닮았기 때문에, 바꿔치기해도 모를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익숙해진 강의를 마치 자신이 아인슈타인인 것처럼 설명했다. 설명이 끝나고 한 대학생이 손을 들어 그의 강의 중 의문이 드는 점을 질문했다. 이에 운전기사는 "당신의 질문은 너무 쉬워서 저기 있는 나의 운전기사도 설명할 수 있겠군요."라고 말하며 운전기사가 된 아인슈타인을 불러 설명토록 했다는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사건인지 그냥 떠도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익숙해진 어떠한 일에 대해서 그 근본 원리나 이유를 모른다면 이러한 돌발적인 의문에 대하여 알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단지 아인슈타인의 설명에 익숙해졌을 뿐이지, 상대성 이론이 도출되는 이유는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원래의 아인슈타인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익숙해진다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까닭은 익숙해진다는 것이 안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는 너무 익숙해서 우리는 안다고 생각한다. 이는 익숙한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글을 쓰고 나서 남은 시간에는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읽었다. 여러 가지 방대한 지식과 생각이 들어가 있어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이지만, 차근차근 책을 읽고 발췌를 해보기도 하고 거기에 내 생각을 덧붙여 보기도 했다. 책 내용에서는 한스 카스토르프가 학창 시절 자신이 동경하던 프리비솔라프라는 학생에게 연필을 빌리고 감격하여 연필 부스러기의 일부를 보물을 다루듯 1년 가까이나 보관하고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굉장히 엉뚱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이따금 자신이 동경하는 유명 연예인들의 굉장히 사소한 물건, 심지어 먹고 버린 껌딱지나 그의 머리카락마저도 갖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 아닌가? 주인공이 비록 유명 연예인은 아니라 할지라도 자기 반의 동급생에게 그런 동경의 마음을 갖고 있다면 이 일도 충분히 이해될 법한 일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추억 속에서 굉장히 사소한 것이 보물처럼 의미가 있는 일은 우리의 어린 시절에도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 보았던 일일 것이다. 그때에는 사소한 것, 그의 말대로 연필 부스러기와도 같은 것에 우리 역시 의미를 담고 그것을 몇 번이고 자신만의 보물 상자에서 꺼내 바라보는 것을 낙으로 삼기도 했다. 햇빛을 받으면 반짝거리는 영롱한 구슬이 그러했다. 개천의 모래사장에서 겉면이 물에 닳고 닳아 마치 에메랄드 보석 같던 파란색 사이다 유리병의 파편이 그러했다. 심지어는 어느 해안가에서 주워온, 여름내 만지고 있어도 그 차가운 온도를 잃지 않는 주먹만 한 돌멩이도 나의 보물이었다. 그 보물을 잃어버릴세라 나만 알고 있는 비밀 장소에 숨겨두고 이따금 우리 집에 놀러 온 친한 친구에게만 그 비밀을 몰래 보여주곤 했다. 누가 알세라 그를 향해 눈짓하며 집게손가락으로 입을 막는 시늉까지 하면서. 나의 소중한 보물들도 한동안 나만의 장소에 있다가 고학년이 되어서도 그 시절의 그리움을 잊을 수 없어 한동안 서랍장 깊숙한 곳에 보관되어 있곤 했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은 신비로 가득했던 것 같다. 우리는 제각기 다른 우리만의 보물들을 가지고 있었고 언제나 조금 먼발치에서 치타처럼 생긴 동물이 나를 따라다녔다. 내가 버스를 타고 갈 때면, 집과 담장이 끊임없이 이어져 바닥이라곤 보이지 않는 그 집들의 지붕을 타고 나를 따라왔다. 그 존재는 나만 알 수 있었고 언제나 나를 지켜주는 존재였다. 그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심지어 내 동생에게조차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그를 떠올리기만 하면 어느새 늘 저 먼발치에서 나타났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버스를 따라 거침없이 달릴 때면, 버스의 속도로 인해 산란하는 거리의 풍경 위로 선명하게 달리는 그의 모습은 몹시 대조적이었고 그로 인해 그 모습은 더 깊은 선명함을 얻었다. 특히 장관은 마을을 지나 연이어 펼쳐진 건물들이 사라지고 오로지 긴 도로와 갓길, 그 너머로 익어가는 금색의 벼들만 끊임없이 늘어져 있을 때였다. 그는 달리는 동안 지칠 줄 몰랐고 유일하게 쉴 때는 버스가 멈출 때였다.

책을 읽다가 잠시 쉬는 동안에 문득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한동안 노래방을 가지 않아 목이 근질근질하던 차였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현찰이 몇천 원가량 있었다. 텀블러에 물을 담아 근처에 있는 동전 노래방으로 향했다. 천 원어치는 조금 아쉬워 또 천 원을 넣고 여덟 곡의 노래를 부르니 만족스러웠다. 누군가 '단돈 이천 원으로 느낄 수 있는 최대의 만족감을 구하시오.'라고 문제를 낸다면 단언컨대 동전 노래방이 제일이었다. 여기에 만약 누군가가 내 노래를 감상한다는 느낌마저 든다면 이 만족감은 더욱 극대화될 것이었다. 수년 전에 딱 한 번 노래방이 아닌 무대 위에서 노래를 콘서트처럼 여러 곡 부른 적이 있다. 그때 사람들은 분명 내 노래를 경청하고 있었고 이따금 눈을 감고 노래를 감상했다. 나는 그 모습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나만을 위해 세워진 공간과 시간 위에서, 많은 이들이 나를 바라보고 심지어 눈을 감고 들어줄 때, 그들로부터 만족감을 넘어 뭔가 알 수 없는 힘을 얻었다. 그런 경험은 그곳뿐 아니라 그보다 훨씬 이전에 제법 신실한 믿음으로 교회를 다니고 있을 때, 찬양단의 일원으로서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때에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었다. 노래를 부르면 내 앞에서 나를 바라보고 심지어 따라 부르는 이들이 크게 감동한 모습을 볼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한껏 고무되어 더 기쁘게 소리 높여 찬양하곤 했었다.




아르바이트하고 돌아오는 길에 영진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지, 나를 따라왔다. 오늘은 기필코, 느슨해진 영어 공부에 박차를 가하자고 생각했건만, 그렇다고 무언가 논의하기를 원하는 이 친구를 내칠 수는 없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독서 토론 모임을 진행자 없이 운영할 수 있을 것인가?'를 두고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한 권의 책을 읽고 와서 하는 독서 토론 모임이 아닌, 각자 자신이 읽어온 책을 가져와서 대화를 주고받을 때, 진행자가 없이도 가치 있는 토론을 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를 물었다. 예전에 내가 만든 '고요 독회'라는 모임을 두고 하는 말이었는데, 이 모임은 책 읽기를 훈련하기 위해 고안된 프로그램으로 매일 2시간의 시간을 주고 25분 읽고 5분 쉬는 방식을 세 번 한 뒤, 나머지 시간에 각자 읽은 책의 부분에 대한 소개와 생각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토론을 하도록 한 프로그램이었다. 모임에는 대체로 정형화된 질문,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질문들이 섞여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는데, 사실 나는 독서 모임에 대한 경험이 많아 어렵지 않았고 오히려 토론 시간이 적어 저녁 식사 시간까지 할애한 적이 다반사였다.

처음 학기를 그렇게 마치고 다음부터는 이러한 방식으로 하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조언했지만, 사실 훈련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처럼 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진행자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적어도, 충분히 모임이 돌아갈 수 있도록 질문 카드를 만들라고 했다. 능력 있는 한 친구가 기존의 내가 해왔던 질문들을 바탕으로 질문 카드를 만들어 코팅했고 모임에서 자유롭게 사용될 수 있도록 비치를 했다. 나는 그게 잘 사용되었는지는 모르고 그것을 만들어 비치하는 과정까지만 보고 개인 작업을 위하여 동아리에서 나왔다.

영진이가 정말 묻고자 한 것은 바로 원활한 토론과 해당 프로그램의 흥미를 돋우기 위한 시스템이나 도구를 어떻게 만들거나 개선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나는 그에게 가장 좋은 것은 우선, 모임을 진행할 수 있는 훈련된 사람들을 양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독서 토론은 사람이 참여하는 것이며 그들에게는 ‘참여자의 권리’도 있지만, 모임을 가꾸어 나갈 ‘의무’도 있었다. 그들은 서비스를 받는 참여자임과 동시에 훈련을 받아야 할 대상인 것이다. 그 자체 프로그램의 매뉴얼화도 중요한 일이지만, 그들 자신이 동아리의 일원으로서 성장해야 하며, 그러한 과정을 위해 필요한 것은 모임을 위한 도구나 시청각 자료보다도 그들을 위한 양성 시스템이었다. 이 양성 시스템은 모임을 하면서 그들에게 자율적으로 믿고 맡기거나 스스로 내부에서 모임을 만들어보도록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주는 데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만약 지금의 랜덤 질문카드를 운영 도구로 사용하여 심도 있는 토론을 추구한다면, 지금처럼 수평화된 질문이 아니라 계층화된 질문이 필요했다. 가령, 1번을 뽑았을 경우 그 질문이 "인상 깊은 구절과 그 까닭은 무엇인가요?"가 나온다면 그다음 뽑을 수 있는 1.1번의 질문은 "다른 분들의 경우에는 어떤 건가요?", 1.2번은 "이 구절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또는 혹시 이 책을 읽었다면 생각이 남는 구절이 있나요?"와 같은 계층화된 질문을 만드는 것이다. 생각에 꼬리를 물어 들어가는 방식으로 모임의 운영자의 능력이 가장 많이 요구되는 부분이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 중에서 사람들이 모임의 의미와 만족감을 얻어가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만약 구성원들의 흥미를 원한다면, 네가 좋아하는 블루마블 부류의 보드게임을 개발하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혹은 참여자들에게 꾸준한 참여율을 측정할 수 있는 상황판 같은 것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요약하면, 첫 번째는 토론 모임 진행자의 양성, 두 번째는 모임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토론의 질문의 세분화, 세 번째는 모임 자체의 흥미를 이끌 수 있는 도구의 개발이다. 나는 그에게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이 그들이 스스로 자율적인 모임을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진행자가 어떠한 참여도 없이 가장 최소한의 규칙만 가지고 그들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모임을 하면서 가졌던 가장 큰 딜레마는 모임의 운영자가 개입하면 할수록 그들이 스스로 질문하는 능력을 잃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었다.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다양한 질문들과 그 안에서 발견되는 의미들의 도출은 처음 참여하는 이들에게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것이 지나치게 숙련된 이들로부터 이루어지다 보니 초심자들은 자신이 하기 어려운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다음부터 한번 해보세요."라고 하면, "제가 어떻게 하나요?"라고 손사래를 쳤다. 또 하나는 도구의 사용이 익숙해지다 보면 그들 스스로 자신이 생각해서 만들어내는 질문들이 없고 정형화된 질문들에 빠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러한 과정이 계속되다 보면 이들이 모임이 익숙해지더라도 도구 없이는 독회를 진행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이어졌다. 그래서 무언가 처음에는 힘들더라도 이들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모임을 가꾸어나갈 수 있도록 지켜만 보는 게 이들을 훈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어서, 영진에게 이런 생각과 진행자가 아닌 참여자로 있으면서 실제 그렇게 자유롭게 모임을 이끌어간 경험을 이야기했다. 이 친구들이 토론에 익숙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초, 중, 고등학교 이후 대학까지의 과정 중에 반복적으로 토론을 해본 경험이 있으며, 참을성 있게 기다릴 수만 있다면 비교적 즉흥적인 독서 토론에서 충분히 질문과 답변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러한 방식이 그들을 훈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늘 강조하지만, 초기에 그러한 분위기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서 모임을 진행하면서 그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해야 하는지, 그들 스스로가 독서 모임을 만들고자 할 때, 혹은 그런 모임을 만들기 위해서 회의를 할 때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질문과 답변을 뽑아오거나 계획 초기에 육하원칙이 들어갈 수 있는 충분한 계획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상해와야 회의에서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는 내 생각에 공감하며 회의를 할 때 원하는 대로 가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화를 내게 된다고 이야기를 했다. 나는 충분히 계획하고 가야 하는 까닭에 대해서 즉흥적으로 생각하기보다 미리 계획을 짜 놓으면 네가 원하는 대로 회의를 이끌어갈 가능성이 커짐을 재차 이야기했다.

그와 함께 학교 정문 쪽 담장 길을 걸으면서 문득 '강호동'과 '이수근'이 떠올랐다. 강호동은 카리스마가 있고 경험도 출중해서 그의 말을 거의 거역하지 못하고 거의 그의 의견에 따라간다. 이수근의 경우에는 꾀가 있어서 상황에 따라 센스 있게 딱딱, 할 말만 하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획득한다. "네가 그 정도의 힘과 능력, 혹은 카리스마가 있다면 그렇게 모임을 주도하고 이끌어도 상관이 없어.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이수근식의 방식이 좋을 수 있지." 물론 이는 실제 그들의 모습이 아니라 여러 티비에서 보았던 모습을 종합한 설명이었다.

강호동 같은 호랑이가 아니라면 회의에서 화를 낸다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다. 자기주장의 근거를 전달하기도 전에 상대가 감정적으로 거부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보다는 때로는 여우처럼 꾀를 부려서 중요한 것은 얻고 중요하지 않은 것을 내어주는 것도 필요한 방식이다. 이와 더불어 그에게 이해관계가 있는 모임이 아닌 토론에서는 상황에 적절한 농담이나 센스가 꽤 중요한 요소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그는 호랑이와 여우 방식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생각이 났는지, 이사야 벌린의 「고슴도치와 여우」라는 책을 언급하였다. 그 책에서는 톨스토이는 자신이 고슴도치인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여우였고,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이 여우인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고슴도치였다면서, 자기는 어떤 인간인지 궁금하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생각을 거듭하더니 "형 저는 지금까지 제가 여우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고슴도치인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도 다 제가 고슴도치인 줄 알고 있는데, 저만 여우 행세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잘 꾀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나 봐요."라고 말했다. 그 말에 웃으면서도 나는 그렇다면 무엇일까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계속 이어서 말을 했다. "차라리, 이제부터 고슴도치인 것을 인정하고 온갖 형용하는 말로 장황하게 할 것 없이 딱딱 내 뜻만 정확하게 말하는 게 좋은 거 같아요." 다시금 웃으면서 그게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금 나누다 보니 그가 타고 갈 버스가 멀리서 오고 있었다. 그를 보내고 깜깜한 캠퍼스를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갔다.

keyword
이전 09화고전파 경제학과 무위자연 |예술의 선(線)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