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파 경제학과 무위자연 |예술의 선(線)에 관하여

나의 일상 여행기. (79)

by Chris
《파블로 피카소, 황소 연작, 11단계의 석판화, 29 x 37.5cm, 1945~46》

| ※ 어떤 현상과 모습은 어떤 선을 드러내고 있는가? 그 선에서 무엇이 느껴지는가?


※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교과서에서만 접하는 도교의 사상, 이를테면 '무위자연'과 같은 사상을 볼 때면, '바른 정치는 자연의 순리대로 두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국가가 우리를 지켜보거나 통제하는 느낌조차 없다면 그 또한 좋은 것이 아니겠는가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유교의 정치사상이나 공자를 높게 평가 하지만 사상적으로는 도교에 좀 더 매료되곤 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태평성대에는 도교처럼 그대로 두는 게 정말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만약 기근이나 혹은 엄청나게 많은 인구 증가로 말미암아 식량 부족 등이 일어난다면, 혹은 자연재해인지, 인재인지 모를 거대한 사건에 국민 다수가 휘말리게 된다면, 그때에도 무위자연이라는 말이 통할 것인가?

학교 교육의 한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이상의 궁금증에 대해서 도가는 어떻게 대답하는지를 듣지 못했다. 그 당시 우리는 그저 윤리 시간의 교과서 한 페이지에 쓰여 있는 '도가=무위자연'과 같이 암기만 했을 따름이며, 반항기 가득한 시절에 우리를 학교에 가둬둔 사회 제도를 욕하며 '도가'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반면에 대학에 들어와서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이라는 사회 주류가 되는 경제 제도를 보면서 불만을 느끼고 그에 대안이 될 수 있는 다른 경제학을 동경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핵심인 모든 것은 '시장의 섭리에 맡겨야 한다.'라는 논리는 도가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노자의 '무위자연'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을 언급하면서 시장의 메커니즘을 설명했지만, 국가가 부를 위해서는 어떻게 그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정치가 관여해야 할 것인가가 그에게는 더 중요한 화두였다. 문제는 그 이후이다. 산업 혁명 이후, 즉 애덤 스미스의 이후에 등장하는 토머스 맬서스는 식량의 공급과 인구 증가에 따른 수요에서 국가의 역할보다 철저하게 시장에게 맡겨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에 감명을 받은 영국 총리는 실제로 구빈법을 개정하여 빈민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공급과 수요는 시장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결정될 것이며 그 과정을 위하여 우리가 빈민들을 도와주지 말아야 한다.'라는 섬뜩한 논리가 있으며 거기에는 인(仁)의 정신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시장에 맡겨야 하는 것에 대해서 고전파 경제학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빈민들이 나와 같은 인간이고 그들이 눈앞에서 굶어 죽어가는 모습을 상상할 때, 불편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며 시간이 가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가진 자들의 논리가 어처구니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조금씩만 나눠도 모두가 살아갈 수 있을 텐데, 그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공동체를 위하여 꺼내놓을 생각은 하지 않고 마치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는 그것을 이해해야만 하는가?

어떤 이들은 정치와 경제의 영역이 따로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고 여긴다. 정치는 국가 운영에 관한 부분이라면 경제는 시장의 운영에 관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마치 정치가 우리 몸의 두뇌를 담당하며 이성적인 사고와 판단을 통해 운영되는 것이라면 경제는 심장이며 자율 신경계에 의하여 자율적으로 피가 돌게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자율적으로 피가 돌 때, 두뇌가 할 일은 없으며 시장의 자율 운영을 막는 것들이 있을 때만 개입해야 한다는 논리는 언뜻 보면 매력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 안의 국민을 하나의 세포로 비유할 때, 그 세포에는 인격이 없으며 심장의 건강을 위해서는 죽어도 되는 존재로 격하된다. 이러한 믿음은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음에도 경제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내버려 두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리고 경제 문제로 고통받거나 죽어가는 사람들은 대체로 가난한 사람들이다.

추상화된 사물이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상상력을 이용한다. 그것과 유사한 다른 어떤 사물을 설정해놓고 거기에 대입해서 생각한다. 흔히 유추라고 하며 '더글러스 호프스태터'나 '엠마뉴엘 상떼'는 이를 「사고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상상계 혹은 같은 범주로 놓고 사고하는 이러한 방식은 우리의 사회를 분명히 사상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엄청나게 발전시켰다. 그러나 잘못된 유추 혹은 그 유추로 대중의 마음에 동일한 상상을 하도록 심어 놓았을 때, 그로 말미암은 피해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를테면 시장을 자연과 동일시하는 상상도 그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과서에서 언급한 '무위자연'을 통해 '보이지 않는 손'을 상상하고, 교육을 통해 매력적인 도교의 단편적인 설명을 통해 주류 경제학에 긍정적인 측면을 자연스럽게 유추하도록 하는 것이 의도적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두 사상이 주장하는 것이 같은 것인가? 교과서를 통해 본 것만으로는 거의 그렇게 느껴진다.




어제저녁에 아르바이트하면서 오래간만에 들었던 팟캐스트에서 맬서스의 「인구론」을 집필하던 시대의 배경 설명이 나오면서 문득 어린 시절에 교과서를 통해 배운 도교와 '무위자연' 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나 자신이 서양의 사상보다도(물론 서양 사상에 대한 지식도 단편적이지만) 동양 사상에 대한 지식이 부족함을 절실히 느꼈다. 다음번에 기회가 되면 관련 책을 좀 읽어 봐야겠다. 그러면 어제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자고 일어났더니 동생은 이미 일을 하러 간 상태였다. 잠결에 그에게 알아서 갈 테니, 일 잘하고 오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차피 이제는 아침 영어 모임이 없는지라 늦게 가도 될 터였다. '무엇을 할까? 그냥 여기서 글을 쓰고 갈까?' 이곳을 떠나 인천으로 가는 게 너무 싫어 어떻게든 시간을 늦춰보고 싶었다. 며칠 전부터 모든 것에 다 손을 놓고 철저하게 게을러지고 싶은 마음, 시간 따위는 아무런 상관없이 멍을 때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글을 쓰는 것도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그마저도 그만두고 싶었다. 그냥 어제처럼 티비를 보며 종일 웃고 싶었다.

그런 생각이 계속 들자 안 되겠다 싶어서 머리만 감고 가방을 들고 바로 밖으로 나왔다. 지금으로선 어느 것도 멈춰서는 안 되는 시간이었기에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가는 길에 호두 과자점이 보였다. 문득 인천에 있는 가격 파괴 분식점 이모님들이 생각나 들려 호두과자 두 상자를 샀다. 한 상자에 스무 알이 들었고 오천 원이었는데, 휴게소의 것보다 맛도 좋고 양도 많아 선물용으로 좋은 듯했다.

지하철에 앉아 휴대폰을 꺼내고 다시 글을 썼다. 석수에 다다르자 그곳에 내려 버스로 갈아탔다. 버스 시간만 잘 맞으면 시외버스를 제외하곤 이 노선이 가장 빨랐다. 안양과 석수를 지날 때쯤, 근처에 사는 영은이 생각이 났다. 매번 그녀가 나를 보러 학교에 올 때면 안양에서 지하철을 타고 이곳까지 와서 이 버스를 탔을 것이다. '너 생각나더라.'라고 연락이나 한번 해볼까 하다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일 때문에 바쁜 애한테 연락하기가 미안하기도 했거니와, 보고 싶다는 말을 꺼내는 게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건 이 친구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립다는 말도 보고 싶다는 말도 혹은 어떻게 지내느냐고 안부라도 섞어 이야기하던 것도 이제는 잘 안 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인간관계를 위해서 의무적으로라도 하던 것들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자랑으로 삼던, 수많은 친구 관계도 소원해지고 하던 사람 몇몇에만 하는 것이 전부였다. 어른이 되는 것은 혼자 외로움을 삼키는 법을 알아가는 것일까? 자신의 바쁜 일상 탓에 타인에게 관심 둘 시간조차 없는 것, 외로움에 익숙해져 가는 것이 연락을 안 해도 상관없게 만드는 요인일까? 연락하지 않아도 빈 시간을 채울 방법이 무수하게 많았다. 그래서 연락을 하지 않다가도 이따금 한 번씩 뒤를 돌아볼 때 내 곁에 남은 사람이 없다고 느끼게 될 때, 외로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 이모에게 줄 선물을 들고 식당으로 갔으나 때마침 휴무일이었다. 선물을 건네주고 굶주린 배나 채울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이 닫혀 있으니 아쉬웠다. 집 옆 컵 밥집에서 간단하게 요기할 거리를 사고 집으로 올라갔다. 방은 정리하고 나간 상태 그대로 있어서 난장판이었다. 주섬주섬 옷가지를 담아 세탁기에 넣고 빨래를 돌렸다. 쓰레기는 담아 쓰레기통에 버리고 정리를 했다. 그리고선 컴퓨터를 켜고 마저 글을 썼다. 오늘따라 빨리 마무리 짓고 싶은 마음이 컸다.




글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유튜브를 켰다. 드라마를 요약한 비디오를 보고서 그 드라마를 내려받았다. 한 천사가 세상에 내려와 장애가 있는 발레리나의 재활을 돕다가 결국 그녀를 사랑한다는 이야기였다. 거기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소년이 발레리나의 춤을 보고서 "너무 아름답다."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있었다. 그 장면을 보고 나 역시 한 사람의 춤을 보고서 감동을 하였던 기억이 떠올랐다. 춤을 통해 감동할 때, 무엇이 우리를 눈물 흘리게 하는 것일까? 작중 주인공 중 한 사람의 말처럼 그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찌릿찌릿하게 만드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왜 그녀의 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짓고 말았을까?

언어로 표현되는 형태의 예술은 눈물을 짓게 하는 게 비교적 어렵지 않다. 우리의 마음을 살짝 건드려 주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진 공통의 관념 중에 슬픈 것을 건드려 주면 된다. 부모, 사랑, 죽음 같은 경험은 거의 모든 이들이 겪는 관념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자신의 경험처럼 적절히 표현해주면 사람들은 눈시울을 붉힌다. 그러나 그림이나 춤은 어떠한 과정을 거치는 것일까? 특히 가사나 내용조차 전달하지 않고 오로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댄서들은 어떻게 그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일까? 텔레파시로 '내가 이 마음을 전해야지.'라고 해서 될 일은 분명히 아니다. 결국, 곡의 해석과 몸의 표현으로 보이게 되는 것일 텐데, 아마 온몸으로 그릴 수 있는 선들이 음악과 잘 어우러질 때 가능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다.

춤을 추면서 보이는 여러 동작은 공간에 다양한 선을 그린다. 그 선은 음악과 맞물려 어떤 색깔을 그려낸다. 강하게 울리는 부분에서는 강한 선으로, 여리게 울리는 음에서는 여린 선으로 표현된다. 말하자면, 그들은 칸딘스키의 작품처럼 공간이라는 캔버스 안에 동작으로 음악의 그림을 그리고 있던 셈이다. 그것은 이차원적인 것이 아니라 삼 차원적이다. 그 선들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냄으로써 감동하는 것이 아닐까? 그 이야기 속에는 작품 자체가 가지는 내용을 담기도 하지만 그 섬세한 손동작의 표현 속에서 느껴지는 짜릿한 감동 같은 것이 있다. 스탕달이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을 보다가 느꼈다는 그 충격처럼 그 동작 속에서 예술의 극치를 발견한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의 상상력은 완벽한 작품 뒤에 숨은 예술가들의 노고를 시공간을 뛰어넘어 상상한다.

춤에서 선이라는 것은 몸 자체의 선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 몸이 그리는 동작에서 느껴지는 선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선은 공간에서 면으로 구성된 물질이 아니므로 어떻게 표현되느냐에 따라 굵을 수도 있고 여릴 수도 있다. 춤은 표현되는 수많은 선의 조화이다.

이 선을 생각할 때면 피카소의 그림들이 떠오른다. 그의 그림 중에 '화가와 모델'이라는 작품을 보면 피카소가 어머니의 뜨개질을 보면서 그 움직임을 캔버스에 담는데, 「생각의 탄생」이라는 책에서는 찰스 토머스 R. 윌슨이 발견한 소립자의 궤적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또한, 그가 그린 그림 중에 '소' 그림을 연작한 게 있는데, 사실적인 동물의 모습에서 점차 선으로만 이루어진 추상화된 그림으로 발전해 나간다. 그러나 그 추상화된 그림에서도 초기 소의 역동적인 부분이 그대로 남아 있다. 만약 그가 발레리나나 댄서의 춤을 그린다면 어떤 식으로 바뀌었을까? 소의 그림에서는 그 댄서 자체가 가진 군더더기 없는 본질을 그리고, 댄서의 움직임에서는 '화가와 모델'에서와 같은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



이와 더불어 하나 더 생각나는 것은, 한국의 미를 '선의 미학'이라고 이야기했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 시대의 '야나기 무네요시'라고 하는 일본의 민예 학자는 한국의 미를 표현할 때, 비애와 선의 미학이라고 했다. 조선의 민중 예술 작품들을 보면 가느다란 곡선이 주조를 이루는 여성스러운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그는 그 아름다움을 칭찬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까닭에 대해 수천 년 동안 침략받아온 우리의 역사에 대한 슬픈 운명과 비애, 쓸쓸함이 그대로 예술에 반영되어 비애의 미학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주장은 해방 이후에도 받아들여져 우리도 흔히 우리의 예술을 생각할 때 '한'의 정서를 생각하게 된다. 야나기가 우리의 예술에 대해 고정관념을 끼쳤다고 여겨질 수는 있으나, 우리 역시 그것을 제외하더라도 한국적인 예술을 볼 때면 그 선에 대해 감탄을 하곤 한다. 이러한 예술은 단순히 조형 예술품뿐 아니라 한복을 입고 추는 전통적인 춤에서도 볼 수 있다. 그 춤을 보다 보면 우리는 가슴 한쪽에 아련함을 느낀다.

어떠한 행위나 형태의 가장 단순화이며 연속되는 형태가 바로 선이다. 이 선을 이해한다는 것은 예술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과 같다. 피카소의 작품에서처럼 하나의 그림에서 색을 지우고 면을 지운 선은 그 존재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며, 춤에서의 선은 움직임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추상화를 통해 단순화하는 과정인데, 논리적인 사고를 요구하는 글은 어떤 현상이나 사건을 단순화하여 본질을 파악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이런 선을 만드는 행위일 것이다. 그러면, 문학은 어떤 경험이나 사회 현상으로부터 발견한 선을 뼈대로 하여 그 안에 다시 자신만의 색과 배경을 집어넣는 행위가 아닐까?

'이 현상과 모습은 어떤 선을 드러내고 있는가? 그 선에서 무엇이 느껴지는가?' 우리가 제 육감을 통해 직감적으로 눈치채는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저녁이 되고 나는 오늘도 아르바이트를 떠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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