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진: 영화 Knockin' on Heaven's Door |※ 사실, 우리는 예능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 바다를 바라보며 같이 웃고 있었다.
※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피나스테라이드 정 계열의 약에 대해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성욕감퇴 및 우울함이나 불안감을 동반할 수 있다고 언급한다. 근래에 탈모가 조금 진행되는 듯하여 약을 먹고 있는데, 약 때문인지는 몰라도 마치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 그것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내 가족이 관련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다. 어차피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니, 고민해도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도 우울감이 든다. 그전까지는 몰랐던 일이라 '그 근원이 무엇일까? 무슨 일이 발생한 것도 아닌데, 이런 감정이 드는 것은 왜일까?'라고 생각해보니 바로 먹고 있는 이 약이 떠올랐다. 슬픔을 느끼게 하는 게 정말 이 약 때문일까? 필시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일을 증폭하게 만드는 촉매로서 기능하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그저 어찌할 수 없는 부모의 고난과 슬픔에 감정이입을 하는 것인가?
친구 대용의 집에서 잠을 자고 새벽에 일어났다. 더 잘까 하다가 글이 너무 쓰고 싶어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펼쳤다. 세 시간 정도를 내리 자판을 두드리니 대용이 일어나 오전에 자기랑 고향 집에 가서 마늘 좀 뽑는 걸 도와달라고 말했다. 그를 도울 수 있는 게 언제나 기쁜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흔쾌히 알겠다고 말하고 휴대폰으로 틈틈이 작업할 수 있도록 동기화를 해 두었다.
차 안에서도 계속 휴대폰으로 작업을 했는데, 그에게 이렇게 휴대폰으로도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구양수의 말대로 마상(말 위), 측상(변소), 침상(침실) 할 것 없이 어디에서나 생각하고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상은 없으니 이제 차(車)상이라고 해야 맞을 테고 난 그 일을 친구의 차 안에서 실현하고 있었다. 그와 틈틈이 이야기를 나누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글로 쓰고 있었다. 이렇게 글을 쓰면 어떤 우울감이나 불안의 감정이 좀 가시는 듯했다. 하루의 다양한 단면들을 살펴보면서 내게 우울한 일보다 기쁘거나 감사할 일들이 더 많았음을 느끼게 했기 때문은 아닐까 싶었다. 분명 그랬다. 우울한 사건은 극히 적었고 대부분은 평범한 일들이었으나 그 일들을 곱씹다 보면 감사할 게 너무나 많았다. 지금 내가 대용이라는 둘도 없는 친구를 만나고 있는 것도 내 부모가 돈이 없어서 그렇지 아프지 않고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노릇이었다. 나를 감싸고 있는 세계의 수많은 의미를 들여다볼 때, 단순히 슬퍼할 일만 가득한 건 아니었다. 분명 그랬다.
차 위에서도, 일하고 쉴 때도 자판을 두드렸다. 문득 석준이가 휴대폰으로 틈틈이 게임을 하던 장면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이 일을 게임과 같이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일이 게임과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는데, 지금 그렇게 여기고서 하고 있었다.
글을 쓰면서 삶의 단면에 슬픈 일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하기도 하나 어쩌면 게임과도 같은, 그 자체로 몰입을 하게 되면 현실을 잊게 하는 요소가 존재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아니, 어쩌면 그건 모든 몰입할 수 있는 것들에 공통으로 들어 있는 속성이겠지. 모든 일을 잊고 몰입하기를 바라는가? 하루든 한 달이든 혹은 일 년이든 몰입 속에서 시간 따위는 잊고 '이것 또한 지나가리니….'라고 여기는 것일까?
일을 마치고 잠깐 다시 집에 들렀다. 동생이 은행 업무를 봐야 하는데 계좌를 모른다는 말을 통장이 필요하다는 말로 알아듣고 찾아보러 들른 것이다. 집에 갔더니 두 분 다 소파에 편안한 자세로 누워 계셨다. 그렇게 늘 언제나 마음고생 없이 편안하게 계셨으면 싶었다. 통장을 찾아도 없어서 나중에 찾아봐달라고 말씀드리고 다시 인천에 올라간다고 말씀드렸다. 그들이 잘 계시기를 바라며 한 번씩 껴안고 친구의 차에 다시 올라탔다. 대용은 "하루 더 있을 수 있으면 있다가 가지."라고 말했지만, 더는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불효자네, 불효자." 친구는 웃으면서 돌아오면서 내가 했던 말을 따라 했다. 거기에 대고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내 가족에 대한 모든 것을 당분간 다 잊고, 할 수 있는 한 모든 능력을 다 투자하여 최대한 빨리 성공하여 돌아오고 싶었다. "아버지, 우리 열심히 살아요. 나도 그렇게 살게요." 아버지와 껴안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래. 우리 생각하지 말고 네 인생이나 잘 살아." 아버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다시 친구의 집으로 가서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버스는 밀릴 것 같아 기차를 알아보니 다행히 좌석이 있었다. 재빨리 예약하고 다시 그의 차로 역까지 향했다. 그와 조금 일찍 헤어지고 타는 곳으로 들어와 앉아 전자책을 꺼냈다. 한적한 기분보다는 외로움이 밀려왔다. 그가 조금만 더 놀다 가라고 말해줬으면 싶었다. 물론 그 역시 야간 일을 하러 갔어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겠지만 뭔가 외로운 인천의 집으로 들어가기가 싫은 기분마저 들었다. 기차를 타고도 그런 생각은 계속되었다. 피곤함에 잠시 눈을 붙였다.
자고 일어나니 서대전역을 지나고 있었다. 문득 이 기차가 천안을 지나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떡볶이가 너무나 먹고 싶었다.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음이 통했는지, 동생은 때마침 점심때 저녁까지 먹으려고 배달시켜 둔 떡볶이가 있다고 건너오라고 말했다. 떡볶이가 먹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동생이 보고 싶었던 것일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때마침 이 기차가 천안을 지나기 전이었고, 나는 떡볶이가 먹고 싶었고, 집안의 이야기를 모두 알고 있으면서 타지에 있는 내가 걱정할까 봐 꼭꼭 숨겨 두었던 그 모든 슬픔과 고통을 감내해야 했을 동생이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정말 힘들었겠구나….' 싶은 그 얼굴을 보고 싶었다.
기차에서 내릴 무렵 입석으로 서 있는 할머니에게 영등포까지 편안하게 가시라고 자리를 양보하고 천안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동생의 집으로 갔다. 집 앞에 도착해 초인종을 누르니 동생이 웃으면서 문을 열었다. 떡볶이 양이 적을 것 같아 거기에 햄이며, 어묵이며 이런저런 음식을 더 넣고 자글자글하게 조리하는 중이었다. 가방을 내려놓으며 집에서 들었던 이야기들을 꺼내 놓았다. 동생은 그냥 그저 웃으면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우리가 돈이 있으면 되는 일이지만, 아무것도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미 뭔가 마음을 내려놓은 듯한 발언이 오히려 나를 안심시켰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 그래서 차라리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커졌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 그러나 지금보다 더 최선을 다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시선 따위는 상관하지 말고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 일에 대한 보상을 받자.' 지금까지의 일들은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기도 어려우며 정당한 보상 따위는 더더욱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래선 안 된다. 지금으로서는 충분한 보상을 받아야 생을 영위해 나갈 수 있었고 나아가 우리 부모님을 저 수렁에서 끄집어 올릴 수 있었다. 전에 동생이 말하던 게 줄곧 생각이 났다. '성공하려 하지 마. 오히려 그게 더 실패를 야기하는 거니까.' 그래, 성공보다는 일단 하는 게 중요했다. 두려워하지 말고,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동생과 함께 침대에 나란히 걸터앉아 예능 프로그램을 보았다. 유튜브에서 짧은 비디오 클립 정도만 보다가 몇 편을 내리 보니 재밌었다. 그의 냉장고에서 마음껏 꺼내 먹고 보고 즐기고 쉬었다. 아마 내일이면 하지 못할 일탈과도 같은 주말이었다. 동생과 내가 있는 그 시간 그 공간은 동생의 작은 원룸 방이 아니라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의 마지막 장면과도 같은 해변이었고 우리는 예능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바다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적어도 내게 그 시간의 공간은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