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오귀스트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호메로스의 예찬(Apotheosis of Homer), 1827
| ※ 지금의 일을 계속하게 되면 훗날 어느 자리에 서 있게 될까?
※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하루를 기록하는 글을 쓰는 까닭이 글쓰기에 참 좋은 점은 아무리 생각해도 소재 선택 때문에 고민하는 시간 낭비를 막을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창조적 영감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소재와 주제에 대해 따로 고민하지 않더라도 나의 일과라는 꽤 좋은 서사적 소재가 존재하며 그 안에서 만나는 다양한 인물과 사건, 그리고 배경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전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의 글쓰기든, 그것이 소설이든 에세이든 혹은 학술적인 글쓰기든지 간에, 그것을 쓰려면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무엇보다 작가 자신이 재미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스스로 재미를 느끼지 않는다면, 얼마나 따분한 일이 될 것인가? 물론 이 재미는 일차원적인 재미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창작의 고통 속에서도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재미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단계 이전에 경험과 지식을 얻고 이를 통해 글을 쓰면서 생각을 하고 완성 후에 기쁨을 느끼는 이 과정은 무엇인가 만들어 낸다는 측면에서 그 자체로 재미가 있다.
글쓰기가 재미가 없다는 것은 이 과정에서 실패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경험과 지식을 얻었을지언정 그것을 어떻게 글로 만들어가야 할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번번이 완성을 하지 못하고 패배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와 같은 글쓰기는 그것을 비교적 쉽게 극복할 수 있게 한다. 바로 삶 자체를 들여다보고 글을 쓰면서 그 안에서 느꼈던 생각과 현재의 생각들을 기록하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에는 하루라는 거대한 공간에 깊이 있는 생각이라는 멋진 건물을 세우기에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일에도 마치 장인이 되기까지에는 어느 정도의 숙련이 필요하듯, 시간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초라하게나마 낮은 높이의 건물을 세우다 보면 점점 더 높은 건물을 세울 수 있게 된다. 글쓰기의 비숙련자가 처음부터 대단히 높은 생각의 건물을 세우겠다고 한다면, 탄탄하지 못할 수 있으며 쉽게 고꾸라지거나 포기할 수도 있다. 글쓰기도 장인이 되기 위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방식이 유치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다. 이러한 방식은 비록 방법은 다를지언정, 제임스 조이스조차 시도했던 방법이고 그는 이러한 방식을 통해 거장이 되었다. 물론 그의 책은 단순히 하루라는 소재를 다뤘다기보다는 그것을 10년간의 여행을 다룬 오디세우스라는 호메로스의 고전 서사의 구성을 따라 만든 것, 그 안에 다양한 생각과 모호한 의미들을 가득 담아 놓고서 그 수수께끼를 풀려고 머리를 싸매는 사람들을 놀려대느라 유명해졌지만, 이 방식을 따라 해서 당신도 유명해졌다고 한들 누가 뭐라 할 사람이 하나 없을 것이다.
이를 제임스 조이스적이라고 말하기 싫다면 열하일기의 일상 여행 편이라고 여겨도 될 것이다. 굳이 여행의 형태를 새로운 경험을 위한 장소로 떠나는 것이라고 한정 짓지만 않는다면, 그저 무엇인가 우리에게 도움이 될 의미 있는 것들을 발견하는 것, 뭔가 신선한 생각을 주는 게 여행의 참다운 가치라고 생각한다면, 그 여행지를 반복적인 삶의 공간으로 잡아 그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일을 세심하게 다뤄보는 것도 여행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하루의 일기도 쓰다 보면 알겠지만, 그저 단순하게 여정을 기록할 수도 있고 열하일기의 '일야구도하기'같이 하루 중에 있었던 독특한 경험을 기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호질이나 허생전 같은 이야기가 떠오를 수도 있으며 무엇인가를 보고 나와의 차이점을 구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청나라까지의 독특한 여정이기는 하나 무엇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해진 세상에서 내 발걸음에서 벌어지는 의미를 파악할 줄 안다면 굳이 깨달음을 쓰려고 인도나 중국까지 나갈 필요가 무엇이 있을까? 그냥 내가 서 있는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단지 멍하게 있지만 않으면 된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가운데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라.'는 말이나, 원효 대사의 해골 물에 대한 일화는 하루라는 시간 속에서도 우리가 보고자 한다면 충만한 의미가 있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글을 쓰는 것도 시간을 요구하는 일이기 때문에, 전문적인 작가이거나 학교의 과제가 아닌 이상에는 언제나 이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에 놓인다. 특히 낮 동안 쓴다는 것은 대체로 일해서 돈을 번다는 것을 포기한다는 말과 동의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역시 그러한데, 나 같은 아마추어에겐 이렇게 낮에 글을 쓴다는 것은 그로 말미암아 돈을 벌기를 포기하고 미래의 가능성에 투자하겠다는 말밖에 안 되며, 나이를 먹고도 부모에게 불효하겠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면 저녁에 쓰는 것은 어떻겠냐라고 한다면 그 시간에는 책을 보기 때문에 안된다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사실 나도 모르겠다. 이 일이 가치 있다고 여기기는 하지만, 비극은 내가 J. K 롤링이 아니라는 점이며 미래에 작가로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내가 재미있다고 느껴도 독자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인데, 이 부분은 일단 만들어보고 평가를 받아야만 알 수 있을 것 같다. 일단은 내가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정 중에 느끼는 가장 큰 비극은 나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마치 엔도 슈사쿠의「침묵」에서 로드리고 신부가 변심한 까닭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듯, 나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면 차라리 쉽게 감내할 수 있을 텐데 내 가족의 짐을 나의 이 선택으로 말미암아 나누어 짊어지지 못할 때 느끼는 괴로움은 그 무엇보다 크다. 특히 장남으로서 늙어가는 부모의 짐을 조금도 옮겨 담지 못했다는 것은 '하고 싶은 일을 하라.'라는 온갖 자기 계발서 저자들의 주장을 배가 부른 소리로 만든다.
실로 배가 부른 소리이다. 그리고 나는 그 배가 부른 소리를 아직도 진리인 양 따른다. 그런 고통을 등지고 그저 길을 간다. 다행인 것은 내가 부모와 살지 않는다는 점과 그들 역시 내가 고통을 떠안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점이고 불행한 것은 나는 언제나 자식으로서 마음의 짐을 버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새벽에 안방에서 들려오는 코 고는 듯한 소리는 내 부모가 내는 편안한 잠의 소리가 아니라 뼈가 갈리는 고문과도 같은 소리였다. 그들의 삶은 뼈를 깎는 고문이며 나는 문밖에서 이 소리를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새벽에 그 소리를 듣다가 늦게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니 이미 다들 각자 일을 하러 나갔고 할아버지만 자리에 멍하니 앉아 계셨다. 티비를 보는 것도 아닌 그저 시선을 한 곳에 두고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으로 있는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는 놀라며 내게 언제 왔느냐고 물었다. "어제저녁에 할아버지 주무실 때 왔어요."라고 답하자 반가운 듯 손을 맞잡는다. 아버지처럼 거칠고 투박한 손이 그의 치열하고 설움 많던 삶을 말해주었다. 그의 옆에 앉아 한동안 정적 속에서 나도 그와 비슷한 자세로 있다가 일어나 씻으러 갔다. 침묵의 공기가 감도는 이곳에서 있다가는 나도 그 침묵 속에 파묻혀 아무것도 못 해 버릴 것 같았기 때문에 나는 한시라도 이곳에서 나가 사람이 있는 곳에서 나의 일을 해야만 했다. 방에서 나와 가방을 메고 시골의 한적한 길을 나섰다.
걸어가는 길 위에서는 늘 그렇듯 영어 공부를 했다. 가는 길 위에 누군가 아는 사람을 만날까 싶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시골은 정이 있는 곳이라고들 하지만, 그 말은 그 공동체 안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관심을 두는 곳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쑥덕공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도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하지는 않겠지만, '너희 아버지, 어머니 뭐하시냐?'라는 질문 속에 소문으로 들어왔던 것들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은근한 말과 눈초리가 짜증스러웠다. "계속하시던 일 잘 일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도 일하고 계시고요." 이 말을 웃으면서 하지만 모래를 삼킨듯한 답답함이 남는다. 이런 기분을 내쫓으려 더 큰 소리를 내며 영어 단어와 문장을 외웠다. 나에게는 이 문장이 '옴마니 반메 홈'이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였다.
정류장에 다다르니 정류장 뒤쪽으로 지연네 집이 눈에 보였다. 제법 튼튼한 벽돌집에 잔디를 깐 마당, 곳곳의 장미 덩굴과 붉은 꽃들이 조화를 이루었다. 날씨마저 아름답고 조용한 풍경이 어린 시절, 이 앞에서 뛰놀았던 어린 시절로 나를 인도했다. 지금처럼 여러 대의 버스가 머물던 시골의, 한적한 터미널 길 건너 맞은편에는 기사식당을 하는 우리 집이 있었다. 시골이기는 하나 면 소재지로 그때는 비교적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 점심때만 되면 손님들로 제법 북적거렸다. 그때는 그 옆, 옆집에 친구 지연이가 살고 있었다.
집 앞과 버스 터미널 주변은 언제나 우리들의 놀이터였고 저녁이 되면 언제나 떼거지로 모여 그 주변으로 모험을 떠났다. 터미널의 오른편에는 3m 높이의 언덕이 있었는데 수백 년은 되었을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고 그 아래에는 누구나 쉴 수 있는 벤치가 있었다. 그 나무는 여러 번 벼락을 맞았는지 갈라져 있었고 곳곳에 보수를 위해 시멘트를 채운 흔적이 보였다. 그런 모습에도 여전히 살아남아 녹색 잎으로 하늘을 채우는 게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그 위에 오르면 터미널과 우리 집과 곳곳의 전경을 넓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뛰어놀다가도 엄마의 손짓에 바로 달려갈 수 있는 곳이었다. 엄마가 나와 있던 그 건물, 그 느티나무, 심지어 버스마저 지금도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이곳이 좋았다. 내 어린 시절의 추억 중 가장 좋은 기억이 이곳에 있었다. 동네의 친구들이 다 이곳에 모여 있었고 심심하거나 배가 고플 때면 난 아무 집에나 가서 친구와 밥을 먹었다. 친구의 어머니는 날 반갑게 맞이해 주셨고 인사성이 바르다고 늘 칭찬해주셨다. 북적대던 곳의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갔을까? 이제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사람의 목소리보다 더 많아진 듯한 느낌이다. 느티나무를 스치는 바람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곳곳에 검은색 이끼가 낀 건물들이 아까 보았던, 말없이 자리에 앉아 한 곳을 하릴없이 응시하던 할아버지의 검버섯 같았다. 필시 저 건물들은 일도 사랑도 없이 그저 살아가는 할아버지였다. 저 건물들도 이대로 죽을 수 없다고 저 수백 년 먹은 느티나무처럼 발버둥 쳤으면 싶었다. 눈앞에 보이는 지연네 집처럼 농익은 중년 아줌마의 느낌과도 같은 색을 보여줬으면 싶었다. 늙으면 다 그런 것이라고, 인생이라는 게 다 그렇게 그 끝은 초라할 뿐이고 몸이 고장 나면 정신마저 끝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생각지 않았으면 싶었다. 그런 생각이 그 어떤 것보다 큰 비극일 것 같았다.
아버지는 끊임없이 발버둥을 치고 있다. 온몸으로 내가 아직 일을 할 수 있으며 내 아내를 사랑하고 있다고 발버둥 치고 있었다. 발버둥을 칠수록 점점 더 나빠지고 있음에도 그는 우리 앞에서 웃음을 잃지 않으려 했다.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쉴 수 있게 망했으면 싶다가도,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 슬프게도 응원을 하게 된다. 아직도 잘될 것이라는 희망을 보이는 그를 미워할 수도 싫어할 수도 없게 된다.
버스 문이 열리고 다시 시동을 거는 것을 보았다. 건물은 예전 그대로 있지만 뭔가 변해버린 주변을 한번 바라보고 옛날 그 버스에 올라탔다. 40분 정도 버스를 타고 내려 도시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층층이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자리에 있었다. 다행히 자리를 찾아 앉아 노트북을 펼치고 커피를 주문했다.
글을 마무리할 때쯤 대용으로부터 출발한다고 연락이 왔다. 짐을 정리하고 아래로 내려가 그를 기다리니 잠시 후 그의 차가 보였다. 차를 타고 석준이와 그의 여자 친구를 데리러 전주로 향했다. 중복 할인되는 쿠폰이 있어서 오래간만에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하자고 했다. 패밀리 레스토랑 자체가 조금 부담이 되는 제안이기는 했지만, 그의 말을 따라 그리로 향했다. 스테이크를 시키고 샐러드 바에서 음식을 함께 먹었다.
눈앞에서 석준이와 그의 여자 친구가 행복한 듯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음식을 함께 먹었다. 도란도란 이야기하여 음식을 먹는 그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대용에게도 자신을 배려해 줄 수 있는 그런 여자 친구가 있었으면 싶었다. 어쩌면 그가 여자 친구가 없어서 나와 자주 볼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에게 좀 더 괜찮은 사람이 있다면, 그 탓에 어쩌면 행여 친한 친구가 없어진다고 해도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그는 지금보다 더 행복하고 사랑받을 권리가 있으며 다만 그런 이성을 아직 못 만난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1인당 2만 원가량을 그에게 주고―어쩌면 그는 좀 더 큰 비용을 냈을지도 모른다―석준이와 그의 여자 친구를 내려주고 나서, 대용의 집으로 갔다. 그의 집이 우리 집보다 좀 더 편했고 나이를 먹고 나서는 고향 집에 내려와서도 우리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따금 집에 내려와서도 부모를 고작 보는 것은 두, 세 시간도 채 안 되면서 이 친구를 보는 데에는 하루 전부를 쏟기도 했다.
사랑이라는 것은 그 사람을 그토록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고 그럼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행위를 동반해야 한다. 행위가 동반되지 않고 그저 마음만 있는 것은 가식이거나 착각일 뿐이며, 마음은 없는데 행위만 사랑인 척하는 것은 다른 꿍꿍이 속이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생각에 다다르면, '내 부모를 진정 사랑하고 있는가? 허울뿐인 사랑이 아닐까?' 스스로 의심을 한다. 내 부모를 사랑하면서도 그 믿음을 의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