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어제 팝핀 현준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하면서 문화는 배우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며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러한 묻어남이라는 말이 눈에 익어 곰곰이 생각해보니 작년과 올해 초에 읽은 책인,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이 떠올랐다. 그는 거시적 관점에서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것이며 이것이 별도의 체계로 구축되어 있기보다 여러 사회적 조직망에 흩어져 깊이 묻어 들어 있는 것(embedded)으로 여겼다. 즉 모든 사회에서 경제라고 하는 일종의 문화가 전 사회 계층에 묻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라고 하는 공통되며 합의된 관계망에 놓여 있게 되자 상품 뿐 아니라 거의 모든 것들을 거래 가능하게 만들었다. 현준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embedded 적인 개념이었을 것이다. 하나의 혈관에 특정 약을 주입하면 그 혈관을 타고 전신에 이어진 모든 혈관에 퍼지듯, 그렇게 embedded 되는 것이다. 문화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하나의 집단의 혈관에 문화를 주입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문화가 내재한 특성들은 그 특정 집단의 거의 모든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정치에 있어서 경제 문제가 중요한 까닭은 바로 시장 경제라는 피가 사회 전체의 혈관을 돌고 있기 때문이며, 그 안의 세포인 개별 인간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거대한 인간, 법인체인 국가는 전체의 혈관이 건강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하며, 그 관리를 위한 두뇌를 맡는 것이 바로 정치이다. 혈관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이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다른 혈관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자연치유를 선호하느냐, 개입하느냐 등에 따라 경제를 바라보는 견해가 달라진다.
묻어남이라는 말은 며칠 전에 본 영화 '기생충'의 주제 의식과도 관련이 있다. 묻어남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냄새이며 영화에서는 특정 인간과 집단을 그 특유의 냄새가 동일하게 묻어나는 것으로 표현한다. 묻어나는 냄새는 바로 계층을 구분하는 은유이며 이러한 은유와 상징이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주는 예술의 언어가 된다.
아침에 계속 글을 쓰면서도 그가 말한 '문화는 묻어나는 것'이라고 말한 게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그 단어를 생각하면 마치 나무뿌리처럼 여러 생각이 연이어 떠올랐고 그 생각들의 하나를 집으면 또 다른 생각들이 연이어 떠올랐다. 나는 그 생각들이 너무 좋았다. 희미해지는 기억의 끝을 따라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그 생각을 하던 때의 전체적인 인상과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생각이 다시 그때의 전체적인 인상으로 남는 순간이었다.
글을 쓰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는 것은 마치 땅속에 숨겨진 원석을 캐내고 그것을 다듬어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 원석들의 가치는 그 자체에 있기도 하지만, 얼마나 희소한 것이냐, 혹은 어디에 활용되느냐에 따라 다르다. 그 생각이 희소하며 독특할수록 가치는 커진다.
팝핀 현준은 춤에 있어서 자신만의 아이덴티티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신만의 색깔, 스타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덴티티는 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김훈의 소설에서 놀라움을 느끼는 까닭도 그의 아이덴티티가 글 전체에서 묻어 나오기 때문이며 고흐가 인정을 받는 까닭도 그림 전체에서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직감적으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의 아이덴티티는 무엇일까? 그 누구와도 다른 나만의 스타일을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의 글에서 풍기는 특유의 냄새는 무엇일까? 나는 아직 그것을 찾지 못한 것 같으며, 이것이 거장과 나의 차이점이 아닐까 싶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다시 어제의 질문으로 이어지는데, 나만의 스타일이나 창조적 영감을 위해 파우스트적 거래를 알 수 있느냐는 것이다. 사회로서는 개인의 일탈로 인한 성취가 드러나면 다른 많은 이들이 이러한 거래를 동경하고, 나아가 사회 전체에 미칠 파장이 크기 때문에 제재를 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개인의 관점에서, 만약 그것이 타인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악마적인 거래는 목숨을 깎아서라도 가지고 싶지 않을까? 어제의 글에는 분명 그러면 안 된다고 말했음에도 나 역시 그런 유혹이 있다면 쉽게 뿌리치지 못할 것 같다.
오후에 고향 집에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창조적 영감을 위하여 정신을 퇴폐로 만드는 악마적 유혹에 굴복하는 것을 경계하는 글을 썼지만, 나 역시 그러한 유혹에 자유롭지 않을 것 같았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에 예술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몸과 정신이 망가지는 것 따위는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때 이를 설득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인간성의 상실이라는 말보다 현실적인 답변은 무엇일까?' 이 점이 궁금하던 차에 친구 대용이 나를 데리러 터미널로 왔다. 대용에게 "만약 내가 예술을 위해 마약을 하거나 불을 지르는 등의 일탈을 한다면 어떻게 할래? 그리고 이러한 행동을 하고 나서 엄청난 작품이 나온다면 말이야."라고 물어봤다. 대용은 그냥 내 동생에게 알려서 나를 정신 병원에 집어넣고 지금까지 작품 활동을 통해 받은 인세는 동생이 갖도록 한다고 우스개로 말했다. 그는 이미 그런 상태에서 희열을 맛본 사람에게 설득의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스스로 자신을 관리할 상황은 지났고 강제적 치료를 받아야 할 대상으로서 인식하는 것이다. 물론 인세를 동생이 갖는다는 부분은 농담이겠지만….
무언가에 대한 광적인 집착, 혹은 중독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인식하더라도 현재 상태를 바꿀만한 힘이 없다. 쾌락적 중독이 주는 문제이며 사회적 파장마저 고려해 국가가 한 인간의 자유를 한계짓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날은 고향에 오르는 버스에 타기 전에 친한 동생에게 연락이 온 날이기도 한데, 나도 모르게 예전에 그랬듯이 친근하고 다정하게 전화를 받아버렸다. "오빠…."라는 말에 "오야…." 라고 대답한 것이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하지 말았어야 할, 애정을 담아 답했다는 느낌이 들어 당혹스러웠다. 이미 결혼한 사람이고 배우자를 위하여 거리를 둘 필요가 있겠다 다짐을 했는데, 무심코 받은 전화에 그런 대비를 못 했던 것이다. 잠결에 몽롱한 상태에서 받아버린 전화처럼, 이미 상황이 바뀌었는데도 예전에 그 느낌을 잊지 못해 머리보다 감정이 먼저 반응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오빠….", "오야….", "오빠….", "오야…."를 반복했다. 내게 다가온 한 마리의 고양이가 내게 '야옹." 하면서 다리에 고개를 비빌 때, 나도 모르게 애정을 한가득 담아 "오야…." 라고 말하고 그 사랑스러운 생명을 안아 올려 손으로 얼굴로 쓰다듬듯이,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마음의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고 생각했다. 그리나 그 짧은 말 한마디에 어이없게도 틈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 문이 조금 열리자 감정이 진도 2~3정도의 가벼운 지진처럼 요동쳤다. 그 정도에도 깜짝 놀라 잠시동안 감정을 붙잡지 못하고 흘러가는 대로 두어야만 했다.
이미 열린 문을 급하게 다시 걸어 잠그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한 일이었다. 나는 그녀 앞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싶었다. 강한 흔적을 남기고 사라지기보다는 점점 자연스럽게 흐릿해져 어느 순간 그 자취조차 알지 못하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도록 무감각하게 사라지고 싶었다. 자연스러운 망각, 강렬한 인상을 주지 않는 망각, 나는 너를 보지 않는 것이 아무렇지 않고 너는 그냥 내 기억 속에 그저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일 뿐이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나는 너를 잊었다.'라고 강하게 마침표를 찍기보다, '너는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아무런 의미 없는 존재로서의 망각을 기대했다. 단단히 걸어 잠근 마음의 문이 열린 것을 다시 쾅 닫는다는 것은 '나는 너를 잊을 것이다.'라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었고 그렇게 하면 분명 그녀가 더 기억에 남을 것이었다. 그보다는 그저 자연스럽게 아무렇지 않은 척 통화를 끝내고 아무렇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문을 닫고 자물쇠를 걸어버리면 될 터였다. 그녀로부터 묻었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흩어지도록 두면 될 터였다. 늘 그렇게 해왔듯, 그러면 되는 일이었다.
대용의 차에 타고나서 그간 있었던 일들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시골집의 수리를 하기 시작했다고 말하며 어머니의 뜻대로 하는 것으로 하고 자신은 전적으로 그 말에 따르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 까닭은 어떤 의견을 내면 분명 훗날 잘 안되면 자기 탓을 할 게 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말에 웃었지만, 그가 가진 어머니에 대한 양가감정을 불현듯 느꼈다. 자신을 사랑하는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과 더불어 어머니의 성격에 대한 불쾌함이었다. 모든 자식이 자기의 부모를 사랑하지만, 그 모든 행위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듯 그 역시 어머니를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비판했다. 이는 나 역시 그랬다. 나는 내 아버지를 사랑하지만, 아버지의 생각과 행동은 비판했다. 때로는 내가 보기에 잘못되었다 싶은 생각에 비판을 넘어서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사랑은 그 존재 자체를 투영하는 것이고 비판은 그의 일부 행위에 관련된 것이다. 그와 나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기억의 총체가 바로 그의 존재이다. 그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관계 속에서 형성된 현재 시점의 긍정적인 감정이다. 내 아버지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그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애틋한 감정이 느껴진다. 그를 생각할 때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그런 느낌을 나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오늘은 부모와 함께 있고 싶어 대용에게 집에 갔다가 내일 보자고 말했다. 그는 부모님 댁에 잠시 들린 뒤 나를 바래다주었다. 그의 집에 갔을 때 어머니,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고치고 있는 집을 보았다. 옛날 집을 다 부수지 않고 외관을 벽돌로 덮은 다음에 서까래나 기와는 살리는 형태로 간다고 했다. 마루와 방 사이의 기둥이 방을 좁게 만드는 느낌을 주었지만, 이에 대해 내가 꺼낼 말은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벽돌로 쌓고 있는 외벽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보고 이쁘다고 말해줬다면서 컨테이너나 조립식으로 된 것은 싫다며, 고개를 저으며 경멸하듯 말했다. 역시 마찬가지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이 말이 마음에 남아 둘이 대화를 하는 도중에 조용히 밖으로 나가, 짓고 있는 외벽의 주황색 벽돌들을 바라보았다.
몇 달 전에 지은 우리 집은 벽돌집이 아니라 조립식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집을 짓고서 너무 기뻐하셨다. 무엇보다 편히 쉴 수 있는 집다운 집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공장 옆에 딸랑 붙어 있어 시끄러운 소리와 먼지를 매일 감당해야 했던, 그런 불안한 집도 아니고 매번 아픈 다리를 이끌고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던 외할아버지 소유의 20평 미만의 작은 아파트도 아니었다. 손목이 저려 일을 그만두고 받은 어머니의 퇴직금과 외할아버지의 쌈짓돈 일부, 그리고 나와 동생이 간신히 마련한 조금의 돈으로 만든 조립식 집이었다. 그토록 어렵게 마련한 집이었다. 평생에 걸쳐, 죽으라고 일밖에 안 했지만, 빈털터리밖에 될 수 없던 우리 부모의 소중한 집이 친구 어머니의 말 한마디에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내 친구의 어머니는 잘못이 없다. 그저 나는 자식으로서 씁쓸했을 뿐이며 단지 어둠에 슬픔과 씁쓸함을 감출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기쁘게 나를 맞이해주셨다. 나는 이번 환불 업체 사건을 계기로 우리 가족이 가진 문제를 더 깊게 알고 싶었다. 내 부모가 나를 위해 침묵해야만 했던, 그 수많은 울분과 고통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 듣고 싶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거든, 숨기지 말고 무엇이든 다 말하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야 앞으로 대비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혹시 내가 지금처럼 아버지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줄 수도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그런 거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어렴풋하게 알고 있거나 혹은 의심이 가는 부분들에 관해서 이야기를 꺼내니, 아버지는 조금 더 허심탄회하게 말씀을 해주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마치고서 어머니는 "너는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잘 살면 돼. 이거는 우리가 감당할 일이니까. 너에게 절대 부담 안 줄 거야."라고 말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로 신경 쓸 일 아니라고 일축했다.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며, 문득 동생 생각이 났다. 지금까지 이러한 일들을 옆에서 보고 겪었던 것은 내가 아니라, 이 집에서 부모와 함께 살았던 동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동생은 내게 힘든 이야기 한번 하지 않았다. 나이를 먹고 집안의 큰일들이 잠잠해지고 나서야 체념한듯한 말투로 이야기해 줬을 뿐이었다. 내 부모가 잠깐 해준 말들에도 나는 이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임을 깨달았다. 심지어는 상황이 이러한 것에 대해 답답한 마음과 두려운 마음이 들어, 당장이라도 인천으로 올라가 신경을 쓰지 않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도 이런데, 내 동생은 오죽했을까?
문득, 부모가 안쓰럽고 불쌍해졌다.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포부 따위는 생각조차 못 하고 그저 자포자기의 상태에서,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상태라고 느꼈다. 소파에 누워, ‘나는 자연인이다’ 방송을 즐겨 보는 그들은 사실, 그저 일이 있으면 하고 아니면 포기하는 그런 상태, 이미 목까지 차올라 간신히 물 위로 눈코입만 내밀고 겨우 숨을 쉴 만큼의 딱 그런 상태였다. 누가 이 지경까지 만들었는가?
사업가로서의 포부를 안고 있던 아버지가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왜 어머니는 손이 망가져 가면서도 일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 왜 그들은 미친 듯이 발버둥 치는데도 결국 신용불량자가 되어야만 했는가? 왜 그들은 빚쟁이가 되어야만 했는가? 왜!!! 그들은 두려움과 슬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가?
2천만 원어치 물건을 납품하고도 상대는 돈이 없다고 잡아떼고 조정 기관에서는 100만 원이라도 받을 거냐고 합의를 제시하고, 소송했음에도 그쪽에서도 자기들이 망해서 돈을 줄 수 없다고 잡아떼는 게 현실이었다. 아버지가 살아온 현실에서는 정직하게 살아오면 병신이 되었고 악해지지 않으면 결국 자기마저 사기꾼이 되는 게 현실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젊음을 세월에 송두리째 빼앗겨 결국 자신을 받아주는 다른 직업 따위는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위해 수십 년간 자신에게 고통밖에 주지 않은 이 거지 같은 일을 계속 잡고 있는 게 현실이었다. 제기랄, 이게 현실이다. 사람을 자포자기하게 만들고 꿈과 희망 따위는 없게 만드는 게 이들의 현실이었다. 열심히 살면 복이 온다고? 정직하게 살면 언젠가 복이 온다고? 아버지가 종교를 집착적으로 믿은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현실 따위가 이러니 다른 위안이라도 받고 싶은 기분, 아예 현실을 등지고 싶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왜 아버지가 그토록 정치를 혐오하고 누가 권력을 잡든 그 정권을 늘 싫어하는지 문득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가 와도 내 삶은 나아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발버둥 쳐도 어쩔 수 없는 현실 탓이며, 그 현실과 법을 주무르는 것은 정치이고 정치인들이다.' 이 마음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자신의 영광된 과거를 그리워하고 그 당시의 정치인이 누구이건간에 그를 그리워하는 까닭도 바로 그 이유에서이지 않을까?' 경제는 아버지가 사업을 하던 모든 시대에 마찬가지도 묻어 있을 것이기에 자신의 경제력이 가장 좋았던 시대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문득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군대에 제대하고 몇 개월간 집에 있으면서 느꼈던 공황장애 같은 답답함이 다시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마음, 견디기 힘든 괴로움, 내 부모를 향한 연민, 내가 처한 상황, 그리고 지금의 선택이 아닌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한 번에 밀려왔다. 이대로는 안 된다. 나는 이제 도망칠 수 없다.
나는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돈을 벌어야만 한다. 나는 이제 거대한 나만의 집을 소유해야 할 욕심이 생겼다. 나는 내 인생이라는 한편의 영화를 비극으로 끝낼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