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상 여행기. (81)
"그림 상반부에 한 인물의 큰 화상(畵像)이 그려져 있는데, 그 사람은 머리에 왕관을 쓰고 손에는 힘의 상징을 들었다. 그는 얼핏 보기에는 쇠사슬 갑옷을 입은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머리며 어깨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그림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즉 그것은 통치의 대권이 무수한 작은 사람들의 자연적 권리를 통치자에게 위임함으로써 형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자연적 권리를 군주에게 바칠 때에 공민(公民)이 된다. 그 군주, 즉 '리바이어던'이 손에 들고 있는 힘의 상징은 칼과 십자장(十字杖)이다. 홉스가 그것으로써 의미하고자 한 것은, 군주가 속세의 일뿐만 아니라 종교에 관해서도 전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하면 종교도 본래 정권이 마땅히 전적으로 통제해야 할 여러 영역 가운데의 하나라는 것이다. 칼과 십자장 밑에는 또 다른 상징들이 쌍을 지어 깊은 뜻을 암시하는 듯 나열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쌍을 짓고 있는 것은 군주의 대권이 미치는 두 영역을 뚜렷이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이 상징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성(城)과 교회, 왕관과 사교관(司敎冠), 대포와 파문(破門)의 빗장, 전쟁 때 소용되는 갑옷과 변증법의 문서(文書), 그리고 무술 경기와 이교도의 재판 등이다. 홉스는 군주가 모든 인간사에 관하여 절대 권한을 갖기를 원했다. 그러나 종교적 분쟁으로 말미암은 혼란을 주목한 그는, 특히 종교의 교리와 교회 제도에 대한 군주의 통제를 강조하였다. <리바이어던>의 반은 가톨릭 교회의 세속적 권리 주장과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의 정치에 관련한 외람됨을 공박하기 위하여 씌어졌다." 《위키 백과: 리바이어던 中 표지 그림에 대한 설명》
※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당연한 듯이 일찍 일어나 7시까지 학교로 가서 상윤이에게 인증사진을 찍어 보내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러한 일상 속에서 나는 충분한 글을 쓰고 영어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는 등 다른 일상을 만들어낸다. 아침의 기상은 하나의 기준점이 되어 다른 일상들을 그 기준으로부터 세울 수 있었다. 내게 있어 아침 기상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루의 기준점이라는 것, 그 기준점이 너무나 명확해서 다른 해야 할 일들을 차례대로 집어넣을 수 있다는 것, 미리 다른 일들에 대해 준비할 수 있다는 게 아침 기상의 어마어마한 힘이다.
이러한 기상에 함께할 신뢰할만한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은 혼자라는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한다. 외로움의 가장 큰 힘든 점은 열심히 하던 일조차 무의미한 것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어차피 이렇게 해도 삶은 외로운데, 내가 이렇게 할 필요가 있어?'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도록 한다. 아니, 사실 벗어난다기보다는 약속이니까, 나의 외로움과는 상관없이 당연히 해야만 하는 것이 된다.
여러 사람이 지키는 익숙해진 약속은 의무가 된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지 않고서도 당연히 하는 것이며, 하지 않으면 불편함을 느낀다. 행여 늦게 일어날 때마다 자기 자신에게 느끼는 불쾌한 감정은 당연시하던 의무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아침 기상 모임 이후 처음으로 상윤이에게 지각할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새벽에 축구를 보고 잔 것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마음이 조금은 느슨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그에게 알겠다고 말하고 월천 라운지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참을 쓰고 있으니 다시 그에게 연락이 왔다. 그는 캡처된 사진 하나를 함께 보냈는데, 얼마 전 면접을 본 곳에서 합격했다고 메일이 온 것이었다. 그에게 잘됐다고 그동안 고생했다고 말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곳을 떠날 것을 생각하니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그 녀석 덕분에 아침 기상을 잘할 수 있었는데, 행여 이 일상이 다시 무너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것, 의무가 무너지는 것, 어떤 관계에서 누군가가 지키지 못하게 됨에 따라 의무라고 여기던 게 깨지는 것은 기준점이 명확한 나의 일상을 다시 좀먹을 수도 있었다.
한동안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던 것들을 신경을 써야 하는 시기가 오고 있다.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한다는 기쁨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익숙해졌던 것들을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버려야 하는 데에서 오는 슬픔도 있다. 다시 이러한 모임을 하기 위해서는 타인을 이해시키고 약속을 위한 동의를 구해야 한다.
나는 새로운 모임을 만드는 것을 즐기는 편이고 비교적 잘한다. 책임감 있게 이끌어나갈 능력도 있다. 그러나 잘 지켜오던 것들을 정리할 때가 되면 다시 열정에 기름을 부어 새롭게 시작하기가 쉽지는 않다. 특히 너무 익숙해지고 잘 되어 오던 것들을 떠나보내고 나서는 더욱더 그렇다.
나이를 먹으면 사람이 보수적으로 바뀐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로서는 어쩌면 진보라는 이름이 자신에게 너무 익숙하고 잘 돌아간다고 여기는 것들을 잘못되었다고 여기고 바꾸려는 데에서 느끼는 폭력으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집단이 어떤 규약이나 제도가 자신들에게 폭력적이라고 느껴 바꾸려는 것을 보수적인 집단에서는 자신들에게 폭력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물론 그 안에는 기존에 제도적으로 혜택을 받던 집단이 있을 수 있겠지만, 딱히 그러한 이익이 없이도 바꾸지 않으려는 현상을 비일비재하게 보아왔다. 결국, 폭력에 대한 투쟁인데, 국가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제도적이며 은밀한 폭력에 대한 집단의 투쟁으로 바꾸었다.
홉스의 리바이어던과 '만인의 투쟁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길거리 싸움과 링 안에서의 싸움이 생각난다. 물론 여기에서는 어느 정도의 규정이 존재하는 길거리 싸움이 아니라 빼앗기 위한 강도질에 가까운 싸움을 의미한다. 이 둘의 큰 차이점은 규정과 링이다. 강도질에 가까운 싸움의 경우 그 싸움에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약육강식이 지배하며 승자는 언제 어디에서든 빼앗을 수 있고 심지어는 상대방을 죽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심판이 존재하는 링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목숨을 빼앗는 건 안 되고 재산을 갈취할 수도 없다. 결투를 원하는 이들은 링의 룰에 따라야 한다. 이러한 링 위에서 때때로 심판은 대결자 중 한 명을 편파적으로 대할 수도 있고 그들의 교묘한 속임수를 눈치채지 못할 수 있다. 그를 감시하는 존재는 링 밖에 있는 관중이다. 국가란 홉스가 살던 시대에 그가 이야기한 거대한 리바이어던이 아니다. 완전하고 절대적인 의지를 가진 존재가 아니다. 국가는 그저 링 위의 심판과 결투를 하는 대결자와 관중을 포함하는 보이지 않는 건물일 뿐이다. 군중은 이 건물 안에서 이루어지는 링의 룰과 관중의 룰을 대략 알고 있으며 경기가 심판과 주최 측에 의해 합리적으로 이루어질 것을 기대한다. 그리고 익숙해진 룰 가운데 중요한 것은 지켜야 할 도덕과 의무가 된다.
집단을 만들 때 무엇보다 규정을 초기에 잘 짜야하는 까닭은 그 약속이 이후에는 익숙해져 의무처럼 되기 때문이다. 습관화된 의무나 관습은 다수가 합의할만한 타당하며 강력한 이유가 없다면 다시 바꾸기가 쉽지 않다.
오전 중에 어느 정도 글을 마무리하고 평소보다는 조금 일찍 운동하러 갔다. 헬스장까지 가는 길 위에 내가 아는 사람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그냥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보통 인연이 될 사람은 반경 3Km 거리 안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던데, 이들 가운데에도 있을까? 문득 어린 시절 본 티비 프로그램 중에 20년 전 한 국립공원에서 찍은 사진의 배경에 지금의 아내가 놀러 와서 사진을 찍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다. 그렇게 나를 스쳐 지나는 사람 가운데 십 년 뒤 내 인연이 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헬스장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으니 한 사람이 와서 철봉 하는 걸 잡아달라고 요청했다. 매번 이 시간에 와서 운동하는 분이었다. 아마 이렇게 말을 거는 게 그에게는 큰마음을 먹고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터라 그의 등을 살짝 밀어줬다. 문득 <마의 산>에서 주인공인 한스 카스토르프가 학창 시절 그가 동경하는 히페에게 용기를 내어 연필을 빌리던 행위가 떠올랐다. 그 행위는 연필을 빌리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기보다 그에게 용기를 내어 동경하는, 그래서 자기보다 엄청 높게 보이는 한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는 데에 의미를 둔다.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행동이 주인공에게는 지극히 가치 있고, 숙고가 필요한 행동이다. 마치 나라는 사람이 한 여자에게 말을 쉽게 건네지 못하고 자기 마음이 들킬까 속으로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는 동경하는 한 사람에게 그런 마음을 품고 사소한 일을 하는 척 연필을 빌리고 있었다.
우리는 때때로 이처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에서조차 그 마음을 숨기고 사소한 척 행동하는 때도 있다. 상대방이 그 마음을 알게 될까 두려운 마음이기도 하거니와 어떠한 행위에 대하여 타인이 모를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학 시절 어느 수업에서 한 여인의 뒷자리에 매번 앉아 그녀의 아름다운 뒷모습과 옆 선만을 보면서도 쉽사리 말을 걸지 못하고 지켜만 봐야 했던 기억이나 당장에라도 터질 듯한 심장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아주 평범하게 지우개를 빌렸던 그 시절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그녀의 작고 하얀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로 이 물렁물렁한 지우개를 집어 천천히 지웠을 것이었다. 아직 그녀가 나에게 건네주면서 그 지우개에 남긴 온기가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녀에게 다시 지우개를 돌려주기까지 아주 사소한 과정이었지만, 그녀에게 건네는 가벼운 감사의 말조차도 나에게는 100명의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분명, 그 공간에 있는 나는 결코 '평범한 나'가 아닌, 몇 번을 속으로 연습해도 실전에서는 실패하고 마는 바보 천치가 되어버렸다.
그를 돕고 나서, 그는 감사의 인사를 내게 건넸다. 그리고 혹시 운동하시다 도움 필요하시거든 말씀하라고 했다. 나는 딱히 그렇게 할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호의를 감사해하며 알겠다고 했다. 운동하며 호의를 구하는 것은 지금 상황에서 불필요할뿐더러,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도움을 주는 존재로서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일까? 적어도 내 일에서만큼은 다른 누구에게 도움을 받는 것을 마치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 받는 것처럼 느끼는 것 같았다. 나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내가 제법 잘한다고 여기는 분야에서는 나는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었지, 도움받는 존재로 남기를 원치 않았다. '어쩌면 이게 나보다 못하여 여기는 이에게 도움을 주면서 느끼는 어떤 우월의식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도움을 받아야 할 상황까지 온 적도 없는 것 같거니와 실제로 도움을 받아야 할 시점인지 인지하는 것도 어려웠다. 더 시간을 들이거나 더 인내하면 해결될 수 있는 일이며 내가 실제로 도움을 받아야 할 부분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팀 프로젝트와 같이 서로 도와야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애당초 처음부터 몫을 분담했다. 자기가 충분히 생각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제대로 시도하지 않고 도움을 청하는 이를 싫어했고 나 자신이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여겨지는 것은 혐오했다. 내 영역에 선을 만들고 그 영역은 날을 새서라도 어떻게든 해냈으며 타인이 넘어오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가끔은 이러한 노력이 어쩌면 자신을 외롭게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적당한 호의를 받을 줄 알고 나 역시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과정 중에 친밀함이 싹틀 수 있는데, 나는 지금처럼 그 호의를 거절함으로써 그들이 용기를 내어 내게 말을 건 이면의 친해지고 싶다는 욕망마저 차단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그의 호의를 거부하는 무언의 시늉인 것 마냥, 평소보다도 더 격하게 운동을 했다. 격렬한 운동 후에 온몸이 산소를 요구하듯이 꿈틀거렸다. 가뿐 쉼을 몰아쉬고 나서 정수기의 물을 마시며 몸과 마음을 진정시켰다. 시계를 보니 조금 있으면 지현이 누나가 올 시간이었다. 며칠 전에 함께 식사하자고 연락이 왔다. 짐을 정리하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나서 가볍게 대화를 나눈 그에게 가볍게 눈인사하고 길을 나섰다. 헬스장에서 이렇게 관계를 맺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이 될까 의문을 가지면서 밖으로 나섰다.
시간이 없어 씻지도 못한 상태였는데, 누나 역시 조금 늦는다고 하여 겸사겸사 짐만 다시 집에 가져다 두고 돌아왔다. 오래간만에 돈가스와 냉면을 함께 주는 식당으로 안내하면서 살 빼는 중인데 괜찮으냐고 물으니, 요즘에는 다이어트를 잠시 중단한다고 했다. "다이어트는 할 때 쭉 해야 하는 거 아냐?"이라고 물으니 오늘은 먹어야겠다고 웃었다. 자리에 앉아 누나를 보니 확실히 살이 빠진 것 같아 물어보니 10kg 이상 빠졌다고 했다. "돈 쓴 값 했네."라고 말하면서 웃고 주문을 했다.
먹으면서 환불 업체에 대해 어떻게 해결이 되었는지, 누나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이야기 나누었다. 나는 지금까지 내게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집안의 많은 일을 감당했던 동생의 고충이 생각났으며 고향에서 올라오는 도중에 그런 동생이 보고 싶어 천안에 다녀왔다고 말했다. 누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지난주 새벽에 각자 응급실에 다녀온 일을 이야기하면서, 늦둥이 막내딸로서 유일하게 나이 드신 부모와 함께 살면서 집안의 모든 것을 감당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말하며 내 동생의 고충에 대해 공감했다.
부모가 나이를 먹고 능력을 잃어가면서 자녀들이 그들을 도와야 할 때, 그들은 자식으로 해야 할 도리를 알면서도 동시에 고통을 느낀다. 공자의 말대로 부모는 아기 시절의 자신의 똥오줌마저 치워줬으나, 내 부모의 문제는 그들의 의지로부터 시작된 문제이며 어떻게 자식이 해결하기조차 어려운 문제였고 누나 부모의 문제는 수많은 자녀 중에 오로지 그녀에게만 부여되는 문제이며 자녀로서 해야 할 도리를 강요하는 문제였다. 긴 병 앞에 효자가 없다는 속담은 그녀는 빈번하게 출입하는 응급실에서 느끼는 듯했다.
내 동생이나 나나 정말 내 부모가 처한 문제를 해결해 주고 싶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불가능할뿐더러 돈을 조금 가져다주거나 단편적인 도움을 주는 것만으로는 절대 해결될 사항이 아니며 때로는 모두를 지치게 만드는 일이 될 수도 있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내 부모는 우리에게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으려 하고 우리 역시 그 처참함을 보고 우리의 미래조차 좌절감을 느끼지 않도록 적당한 물리적 거리를 두고자 했다.
찰리 채플린은 "인간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나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다."라고 했다. 적당한 거리는 불행을 안빈낙도로 포장하지 않으며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차가운 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불행과 안빈낙도는 다른 것이지만,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은 안빈낙도와 같은 환각적 현실로 포장한다. 이따금 인민의 아편을 이용해서, 이따금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하면서 불행을 희극화한다. 살아가면서 그때그때 생각하게 됨에 따라 발생하는 일들은 희극처럼 우스꽝스럽게 엉켜버린다. 그들은 신호등의 파란불처럼 때가 되면 생각을 하고 그 일이 끝나면 다시 빨간불로 생각을 닫아버린다.
그녀와 오랜만에 캠퍼스 주변을 산책했다. 그녀가 다녔던 건물은 예나 지금이나 외관이 변하지 않아 오래된 건물의 무미건조한 외관을 보며 한숨을 쉬면서도 건물에 묻어 있는 자신의 추억을 상기했다. 그녀는 근래에 자신이 본 드라마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거기에는 국가 탄생 이전의 사회가 나오는데, 동물을 가축화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그에 대한 잔인함을 느끼는 장면이 나온다고 이야기했다.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문득 '홉스적 자연 상태'와 '루소적 자연 상태'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문명화 단계에서 필연적으로 벌어지는 가축화에 대하여 실제로 원시 부족들이 잔인하게 생각했을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말하는 그 장면에서 가축화를 두고 "잔인하다"라고 대사에는 문명화에 대한 잔인성을 함축할 뿐 아니라 원시 사회를 낭만적으로 보는 견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라는 책에서도 비슷하게 언급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가축화와 작물화 단계 이전에 수렵 채집 생활에서 원시 부족들은 그 이후의 삶보다 더 행복하고 평온하게 살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문명화는 곡식과 가축을 기르는데, 엄청난 시간을 투여해야 하므로 더 고통스럽고 자유를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해양 기술의 발달로 전 세계를 항해하며 식민지를 형성하던 18세기에 여러 학자와 항해자들은 원시 부족들과 조우하며 그들의 생활 방식에 대한 글을 서구 사회에 전했다. 그들이 서구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문명화 단계에서 뒤처져 있으면서도 행복하고 만족한 줄 안다는 점은 원시 사회에 대한 동경과 더불어 사회적 진보가 인간에게 더 큰 자유와 행복을 주었을 거라던 서구인들의 사고방식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장 자크 루소는 이러한 견해를 바탕으로 인간의 불평등은 문명화 단계를 거치면서 만들어졌다는 견해를 지지하였으며, "이후의 모든 발달은 모든 종의 쇠락을 향한 단계였다고 말하는 듯하다."라고 주장했다.
인디언에 관한 어떤 책에서는 수렵 채집 생활을 하는 인디언 부족들이 동물을 사냥할 때 애도나 감사를 드리고 사냥했다고 전한다. 자연을 파괴하며 무분별한 가축화를 하고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문명에 비해 원시 부족들이 생명 존중 사상이 강했음을 드러낼 때 흔히 인용하는 부분이다. 분명 그 자세는 문명 안에 있는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하고 존중해야 할 문화이다. 문득 '드라마가 그것을 표현하고 싶어서 가축화의 장면을 집어넣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누나는 내 동생에게 여자 친구가 있는지 물어보더니 소개팅을 시켜주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천안에 살며, 32살의 심리 상담가라고 했다. 그 정도면 나이도 서로 비슷하겠다, 사는 곳도 비슷하다 싶었다. 그녀를 보내고 나서 동생에게 물어보니, 동생은 소개팅보다도 친구같이 대화하고 만날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 아무것도 없이 단지 취업 때문에 올라온 천안이다 보니 그저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생각을 누나에게 이야기하고 혹시 소개팅 말고 서로 번호 교환하고 친구처럼 만날 생각은 있는지 여쭈어보라고 전했다. 동생도 이야기를 들어주는 걸 좋아하니 의외로 친구처럼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잘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뒤에 누나로부터 그 친구도 요즘에 바빠서 '연애는 부담스럽고 친구는 괜찮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복권에 당첨이 되려면 복권을 사야 하는 것처럼 인연이 되려면 가능성을 열어둘 노력이 필요하다. 내 경우에는 인연은 만날 것을 소망하면서도 지금의 내 사정을 이유로 들어 시도조차 안 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핑계이고 자신이 없었다. 호감이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할 자신이 없었다. 차라리 고백으로 관계가 어그러지거나 혹은 상대 혹은 내 마음에 상처를 주기보다는 그저 적당한 선을 지키며 지내는 것을 택했다. 이러한 우유부단한 관계는 비단 연애에서뿐만 아니라 삶의 여러 결정을 회피하도록 만든 원흉이었다. 글을 쓰자고 다짐을 하고 나서도 그랬다. 그런 다짐이 있었다면 그 세계에 발을 푹 담갔어야 했다. 그러나 그 결정으로 인해 평가받는 게 두려워 그 변두리에서 변죽만 울렸다. 그래서 지금 내가 이 글을 계속 써 내려가는 것은 한편으로는 커다란 변화일 수 있었다. 마치 산업 혁명이 그 시대에는 혁명인지 몰랐지만, 지나고 봐서 혁명이었음을 인지하게 되는 것처럼, 지금의 변화가 혁명 인지도 몰랐다.
꾸준히 글을 쓰면서 작가적 삶에 관한 자신감을 얻고 이런 ‘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어느 만큼의 분량을 넘어서면 '그 이상도 쓸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이 샘솟는다. 이 도전이 너무 행복했다. 실로 시도해보지 않으면 실패도 성공도 없다. 그저 나이만 먹을 뿐이다. 삶은 여러 단계로 이루어져 있어 하나의 단계를 넘어서야 다음 단계가 보인다. 한 단계를 넘어서지 못한 나는 아직도 작가가 되기로 한 어린 시절의 나와 다르지 않았고 7~8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시도를 하고 있었다. 사랑에도 도전이 필요했다. 무언가, 누군가를 얻으려면 거절과 비판을 극복하고 자신이 만들어놓은 선을 넘어서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어제의 글을 다 완성하고 나니 어느덧 시간이 9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계산해보니 기존의 하루 최고 분량을 넘어선 양이었다. '온종일 생각하고 글을 쓸 수 있을까?'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으로선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책을 읽지 못해 아쉬웠지만, 도전한 분량을 넘어섰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