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점|말해야 알 수 있는 것|기술발달과 사회진보

나의 일상 여행기. (82)

by Chris


《조셉 라이트, 현자의 돌을 찾는 연금술사 (The Alchemist in Search of the Philosopher's Stone, 1771)》
조셉 라이트는 (1734 년 9 월 3 일 – 1797 년 8 월 29 일)는 영국의 풍경과 인물화가였다. 그는 " 산업 혁명의 정신을 표현한 최초의 전문 화가"로 호평을 받았다. 《위키 백과》|※ 자아의 신화는 자기 내면의 시간을 점을 찾아 의미를 밝힐 때 가능하다.


※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이틀 전, 지현 누나와 함께 캠퍼스 주변을 거닐다가 그녀는 내게 이렇게 말을 했다. "나 이번 겨울에 산티아고를 가보려고. 너도 같이 가자. 파울로 코엘료가 그 길을 걷고서 연금술사를 쓸 영감을 얻었다는데 너도 그렇게 될지 모르잖아?" 그 말에 나는 돈이 없다며 손사래를 치며, "내가 가는 길이 산티아고지. 내가 누나만의 산티아고 길을 만들어줄게. 그 길 위를 걷는 것처럼 지금 이 길에도 의미를 담으면 되지 않을까?"라고 웃으며 말한 게 문득 기억이 났다. "지금 내가 쓰는 글들도 그와 비슷한데, 여행은 일상이 아닌 새로운 경험을 특별한 경험으로 여기는 거잖아? 그를 통해 얻게 되는 감정적 안정이나 생각을 통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거고. 그러나 우리가 매일 흘려보내고 있는 일상은 그렇지 못해. 정작 우리가 사는 세상은 특별한 한두 번의 여행으로 구성되어 있다기보다 평범한 일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말이지. 나는 이 일상에서도 의미를 들여다보고 싶었어. 나를 찾아보는 것이 그저 이따금 벌어질 특별한 여행에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일상 속에서도 내가 하는 행위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 속에서도 찾을 수 있기를 바랐거든. 결국 이렇게 이야기하면, 여행에서 우리가 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발견하는 거잖아? 우리의 일상 속에서 그렇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여행과 같아지지 않을까? 마치 이 길을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생각한다면 말이야."

물론 돈을 벌어서 언젠가 그런 곳에도 가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 돈을 벌려면, 하루를 온전히 일에 쏟아야 하나, 나는 적게 벌고서라도 매일 충분한 시간을 들여 글을 쓰고 싶었다. 누나는 차라리 몇 달 바짝 일해서 돈을 넉넉히 마련한 뒤에 글을 쓰는 것은 어떻겠냐고 물었다. 나도 그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도 벌이는 넉넉지 않으나 글쓰기에 방해가 되지 않을 만큼은 돈을 벌고 있는 터라 심각하게 생각해보진 않았다.

여행이 주는 묘미가 단지 어떤 의미나 가치를 발견하는 것만 있지 않고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재미가 있다는 것을 안다. 특별한 경험이 주는 묘미라는 것은 맛집을 가는 것과 같아서 집에서 매일 먹는 음식과는 다른 즐거움을 부여한다. 열 번을 하든, 백번을 하든 별반 차이 없는 매일의 반복적인 일들과는 달리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한 번의 경험은 평생 가운데 기억에 남는 소중한 시간이 된다. 나 역시 그것을 알며, 일상의 가치와는 다른 특별한 여행만의 가치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주로 살아가는 이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자아의 신화'를 찾지 못하고 특별한 장소에까지 가서 발견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은 우리의 수많은 시간에 어떤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여기는, 현대인들의 깊은 우울과 관계된 듯하여 서글프기까지 하다.

매일 보아왔던 집 뒷마당에 엄청난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려면, 스스로 파헤쳐 봐야 한다. 일상도 마찬가지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표면 위에서는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기가 어렵다. 그 안에 '자아의 신화'가 들었을지 '엑스칼리버'가 꽂혀 있을지 알지 못하고 그저 그러한 것은 아주 먼 곳에 있는 것이며 지금 나는 삶이 바빠서 찾지 못한다고 여긴다. 그러는 사이에 하루는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고 십 년이 된다. '자신을 찾으러 가야 하는데'라는 소망은 5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매번 다를 바 없다. 그러한 삶 위에서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문득 어느 날 달력을 보는 순간,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을 실감하며 한숨을 쉰다.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을 쓴 알랭 드 보통은 여러 형태의 여행 가운데 의미를 발견하는 것을 '시간의 점'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수많은 평범한 시간 가운데 지워지지 않는 선명한 점을 찍는 것이다. 그 지점은 마치 어느 게임의 세이브 포인트처럼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다시 그 지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한다. 물리적으로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의 의미와 감동을 다시 기억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점은 삶을 다시 시작하는 기준점이 된다. 삶이라는 거대하고 공허함마저 느껴지는 우주 공간에서 언젠가 내가 떠나온 저 푸른 점이 우리 뒤에 있음을 기억하게 하고 그 지점으로부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꾸준히 상기시킨다.

저 '시간의 점'은 그래서 중요하다. 특별한 여행으로부터 '시간의 점'을 얻을 수 있다면, 아무리 비싼 여행일지라도 의미가 있다. 아니, 그게 여행의 본질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의 점'을 돈을 써야만 하는 여행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가난한 사람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부의 척도일 뿐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신은 모두에게 허락된 천국처럼 모든 이들에게 이러한 시간의 점을 허락해 두셨고 비단 특별한 여행만이 시간의 점에 이르는 길이 아님을 삶의 여러 경험을 통해 알려주셨다. 인생이라는 '게임' 속에 우리의 시선이 머물다 갈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시간의 점으로 삼을 수 있게 한 것이다. 길을 가다 눈길이 머무른 이름 모를 들꽃에 점을 새길 수 있고 엄마의 해맑은 미소를 시간의 점에 담을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잊히지 않는 시간의 점으로 만들 수 있다. 시간의 점은 가까이서 들여다볼 때 의미의 그릇이 된다.

역사는 인류가 먼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겪은 수많은 시간의 점들 가운데 역사가가 의미 있다고 여기는 것을 현 시점의 언어를 통해 현재로 불러오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에서의 시간의 점은 과거의 것이며 그것이 의미를 담는 그릇이 될 때는 현재 시점의 것이 된다. 인류라고 불리는 거대한 사회 집단도 이처럼 시간의 점을 만들어낸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의미를 담느냐인데, 그때 활용하는 도구가 바로 언어를 통해 기술한 역사이다. 이러한 시간의 점은 프랑스 대혁명이나 3.1 운동처럼 거대하고 이례적인 사건에 부여되기도 하지만, 역사가에 의해서 새롭게 발굴되기도 한다.

모든 개인에게는 서로 다른 과거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과거의 많은 부분은 평범한 일상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깊은 의식의 땅속에 묻혀 버리고 만다. 이를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나라는 존재가 세워져 있는 과거라는 의식의 깊은 퇴적층을 파고 들여다보고 그것을 해석하고 기술해야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의미가 아니라 '나'라는 인생길 아래에 존재하는 수많은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나만의 현재 언어로 기술해야 한다. 이것이 지금 내가 하는 일이며 삶의 공허를 막고 흔적을 남길 수 있는 한 가지 방식이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어김없이 월천 라운지로 향했다. 요즘에는 스터디룸 사용이 어려워 얼마 전부터 라운지로 바꾸었는데, 커피숍 같은 라운지의 분위기가 오히려 스터디룸보다 더 집중도를 높였다. 교문을 지나 문에 다다를 무렵 3년 전에 매일 아침 학생들을 데리고 운동을 할 때 만났던 할머니 한 분이 걸어오고 계신 걸 보았다. 매일 아침 운동을 하고 있으면 비슷한 시간에 나오셔서 남편분과 함께 운동장 트랙을 돌곤 했었다. 가까이 가서 인사를 드리니 매우 반가워하셨다. 왜 요즘에는 운동장에 나오지 않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그때 운동하던 사람들은 잘 있는지 등, 이것저것을 물어보시며 반가움을 표시하셨다. "요즘은 다른 장소에서 운동하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함께 운동하던 사람들은 취업하거나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르신은 안녕하시지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건강히 지내시라고 말씀드리고 다시 서둘러 라운지로 향했다. 요즘에는 길을 걸어도 아는 사람이 없는데, 뜻하지 않게 아는 사람을 보니 반가웠다.

대학 시절에는 지금 걷고 있는 길을 걷노라면 수많은 사람이 내게 아는 척을 했고 나 역시 그러했다. 친구 녀석들은 그런 나더러 정치에 출마해 보라고 우스개를 꺼내곤 했었다. 그때만 해도 여기저기 다양한 사람을 만나 교류하는 것을 즐겼고 많은 사람이 있는 자리에 나서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나와 연락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이다. 그러나 그 점이 슬프거나 하지는 않다. 단지 관계의 방향이 외부가 아닌 자신의 내부로 바뀌었을 뿐이다. 무의미하게 스쳐 지나가던 나의 과거와 관계 맺기를 시도하고 있으며 이로써 나를 둘러싼 외부로부터 정체성을 찾던 시기를 넘어서 나의 내부에서 존재 의미를 찾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관계를 소유할 필요도 없이 자신을 들여다보며, 나라는 존재가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은 융의 말대로 나이를 먹고 나서야 실행할 수 있는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라운지로 들어오니 잠시 뒤에 상윤이가 뒤따라 들어왔다. 라운지로 가자고 아침 일찍 연락했는데, 답변이 없길래 아직 자나보다 싶어 그가 늦게 오면 놀려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기대와는 달리 제시간에 도착하여 웃음 짓고 있었다. 참으로 성실한 친구이며,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그런 친구가 좋은 곳에 취업했으니 기쁘면서도 그를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 아쉽기도 했다.

아무리 관계의 방향이 바깥이 아니라 내부로 향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아예 없다면 지금처럼 내부로의 관계 맺기를 시도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아마도 외로움에 쌓여 결국 자포자기를 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에너지를 자기 자신의 내부로 쏟는다고 하더라도 외부와의 교류가 필요한 게 인간의 마음인데, 나는 내 옆에 매일, 이 친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친구가 곁을 떠나버리면 그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일었다.

하루를 시작하기에 앞서 커피를 타고 잠시 밖에서 있노라니 상윤이가 함께 따라 나와 어제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어제 누나가 집에 대형 폭탄을 날렸어요. 제가 누나한테 했던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다 했다나 봐요. 가족이 싫다는 이야기, 그들이 가식적이며 나한테 매번 상처밖에 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가감 없이 한 거 같더라고요." 나는 그의 얼굴을 돌아보지 않고 가만히 따뜻한 커피를 살짝 들이켰다. 이제 막 입에 댔을 뿐인데, 커피 향으로 벌써 졸음이 가시는 듯했다. 상윤이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제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는데, 술을 마셨더라고요. 제가 술 마시고 통화하는 거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말이죠. 저더러 취업 축하하고 할머니한테 네가 잘하는 거 알고 있다고, 그래서 정말 고맙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러더니 마지막에 '이것도 가식적으로 들리니?'라고 하는 거예요."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그에게 통화하는 장면이 눈에 그려졌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물어보니까, "취업했다고 전화해서 저에게 그렇게 하는 것도 싫고 술을 마시고 통화하는 것은 더더욱 싫고, 모든 게, 그 모든 게 가식처럼 느껴졌어요. 힘들 때는 어떤 말도 안 하고 매번 내게 상처가 되는 말만 하다가 인제야 그렇게 하는 게…."

"형이 예전에 어린 시절 동생과 친해진 계기를 말한 적이 있었지?" 그는 그렇다고 했다. "나는 동생에게 잘하고 있는 줄 알았어. 그에게 엄하게 말하는 까닭, 뭐라 하는 까닭은 다 동생을 위해서라고 생각했거든. 그러면서 우리는 가족이니까 날 이해할 거라고도 생각했고.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동생의 마음은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그가 나를 이해해주겠거니 생각했던 거야. 그래서 동생에게, 깜깜했던 그 날에, 처음으로 그에게 주먹으로 말을 듣게 하고자 마음을 먹었던 그 날에, 방죽 옆 갓길에 세워놓은 차 안에서 들었던 말이 정말 충격이었어. '나는 형이 정말 싫었어….' 이 말이 말야." 다시 커피를 입에 가져가며 이야기를 했다. 커피가 아까보다는 조금 식어 마시기에 부담이 없었다. 문득 차 안에서 울면서 내게 자신의 진심을 말하던 동생이 떠올라 마음 한쪽이 아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 말을 시작으로 그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 그가 겪어온 고충이 고작 일주일 혹은 격주에 한 번 오는 내가 알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거든. 동생은 집안의 일들을 모두 감내하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선 그러한 스트레스 때문에 모두 있고 컴퓨터를 하고 있을라치면, 형이라고 와서 자리를 빼앗고 계속 공부도 안 한다고 뭐라고 했던 거지. 나는 동생을 이해한다고 생각하고 그도 이렇게 말하는 나를 이해할 거라고만 생각했던 거야." 나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말을 하지 않으면 몰라. 그래서 차라리 네 누나가 그렇게 가족에게 말해준 게 잘한 거 같기도 하다."

상윤은 누나의 이야기를 하면서 누나는 자기와 다르게 가족과 치열하게 싸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엄마와 친밀한 관계를 이어가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며, 어쩌면 그렇게 속내를 털어내니 뒤끝도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가족에게 기대하지 마." "저도 더는 기대 안 해요. 가족이 어떻게 해줄 수 있을 거라는…" "아니, 내 말은 실망감으로 인해 '그들에게 가족의 역할을 기대하지 말라', '관심을 끊자'라는 말이 아니라, 그들이 '내게 이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거야. 너도 알겠지만, 가족이라고 다 알 수 없어. 너도 마찬가지로 네 부모의 고충을 알 수 없듯, 너희 부모님 역시 너에 대한 고충을 다 알 수 없을 테니까. 나는 그때, 내 동생이 실토하지 않았더라면 내 부모가 가진 고충을 전혀 모르고 있었을 거야. 그들은 나를 힘들게 할까 봐 아무 말도 안 했던 거지. 그래서 나는 그들의 고통은 아무것도 몰랐어. 너희 부모도 마찬가지일 거야. 서로가 처해 있는 상황이 다르니까. 분명 네 부모도 네가 취업 준비를 하면서 겪는 스트레스가 있는 것처럼 고통이 있을걸? 다만 말을 하지 않았거나 이해해 줄 거로 생각했겠지. 네 부모 역시 그들의 힘든 상황에서 너에게 자식으로서의 따뜻한 말을 기대했지만, 네가 실망을 안겼을 수도 있는 거고." 나는 커피를 다시 한 모금 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너는 단지 따뜻한 말 한마디를 원했을 뿐일 텐데? 그렇지?" "그렇죠. 내가 다른 것을 기대한 것도 아니고 따뜻한 말 하나를 사실, 해주기를 바랐는데…" "그러게. 단지 너를 무시하는 말이 아니라 따뜻한 말 한마디면 될 텐데…."

문득 취업 때문에 힘들어하던 시절 아버지와 나누었던 통화가 떠올랐다. "아빠가, 많이 부족해서 미안해." 수화기 너머로 힘이 없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녜요. 아빠도 참… 내가 많이 부족해서 미안해요. 아빠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데, 아직도 못하고 있네요." 나는 울컥해지는 마음을 부여잡고 웃으면서 이렇게 이야기했었다. "사랑해요. 우리 열심히 살자!" 부끄러운 말이었지만, 꼭 해야만 했던 말이다. 이런 말을 배운 것도 내 동생으로부터였다. 내 동생은 그러한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도 부모에게 스스럼없이 이런 말을 했었고, 동생으로부터 받은 충격 이후에는 나 역시 표현을 해야 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신적 독립이나 부모와의 상하 관계를 개선해 나가고 네 할 말을 제대로 하려면 경제적 독립 역시 중요해. 경제적 종속 관계 속에서는 부모는 너를 아이로 볼 수밖에 없으니까. 물론 경제적 독립을 한다고 해도 혈연관계로부터 비롯되는 종속 관계는 어쩔 수 없지만, 하다못해 용돈이라도 쥐여주면 할 이야기를 좀 더 따박따박 할 수 있게 되는 거 같더라고."

동생이 부모에게 속에 있는 말을 다 할 수 있는 까닭을 생각해보니 문득 그가 경제적 독립을 하여 가족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조금은 그들에게 충격이 될 말이라도 표현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미 오래전부터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경제적 독립은 그 말을 빙빙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던질 수 있도록 했다. 초기에는 그 과정 중에 아버지와 싸우는 일도 있었지만, 그러한 관계가 가족과의 끈을 나보다 더 단단히 만들었다.

"문득 너희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어떤 생각으로 전화했을지 궁금해지네. 분명, 누나에게서 들은 그 말은 너희 아버지에게도 충격이었을 거야. 그리고 어떤 이유 때문에 술을 마시게 되었겠지. 친구들과의 술 약속일 수도 있고 혹은 네가 말한 것에 대한 충격으로 술을 마셨을지도 몰라. 그러고선 네가 떠올라서 전화를 걸었겠지. 아마 슬프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도 들고 섭섭한 마음도 들었을 거야. 사랑하는 아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을 테니까. 그리고서 너에게 취업 축하한다고 말하고 또 누나에게서 들은 말을 은연중에 함으로써 자신의 섭섭함도 조금은 표현하고 싶었겠지." "그러니까요. 누나는 왜 그런 말을 해서…, 그리고 왜 술을 먹고 그런 말을 하는 건지…." 상윤이는 웃음을 담아 조금은 어색한 듯 말했다. 그 말에 나도 따라 가볍게 웃었다. "그런데 나는 아버지가 할 말 자체보다, 네가 아버지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전화했을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네. 사이코패스 같은 부모가 아닌 이상에야, 어느 누가 아들에게 애정이 없겠어? 단지 그런 표현을 잘 못 할 뿐이지." 그는 자기 역시 가족에게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흥분을 하거나 화가 나면 오히려 더 표현을 못 하게 된다고 했다. "젊은 너도 그런데 너희 부모는 오죽하겠어?" 나는 다시 한번 옅은 웃음을 지으며 남은 커피를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오늘 자기가 취업한 기념으로 밥을 사겠다고 먹고 싶은 것을 골라보라고 했다. 점심 메뉴 선택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인지라 그에게 다시 바통을 넘기고 알아서 사주라고 말했다. 점심이 되고 그를 따라 학교 정문에 있는 샐러드 바를 갔다. 후문의 밥값이 꽤 올라서 그런지 점심 메뉴의 가격이 그리 비싸 보이지 않았다. 우스개로 "우리 천천히 먹으면서 공부나 할까?"라고 하니 그가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쳤다. 식당 안에는 두 종류의 접시가 있었다. 하나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둥근 접시로 보통은 여기에 음식을 골고루 담는다. 다른 하나는 어린아이를 위한 식판같이 생긴 접시였다. 식판같이 생긴 접시가 공간이 구분되어 있고 또한 크기도 일반적인 접시보다 큰 터라 그것을 집어서 담아보았다. 음식이 섞이지 않아서 오히려 둥근 접시보다 먹기가 좋았다. 상윤이도 내가 하는 것을 보더니, 다음에는 자기도 거기에 먹어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득, '아이를 위하여 별도로 마련된 식판인데 이것을 내가 막 써도 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혹은 어느 문구에도 '이 식판은 어린이를 위한 것입니다.'라는 것은 없었지만, 누가 봐도 어린이를 위해 마련된 식판이라는 느낌이 드는지라, 이것을 사용하는 것이 옳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조금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 다음부터는 접시를 사용하기는 했으나, 확실히 어린이용 식판보다 담을 수 있는 양이 적을 뿐 아니라 음식의 소스나 국물이 섞여서 몹시 불편했다.

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음식을 먹으면서, 그는 이제 졸업 논문을 써야 한다고 했다. "주제는 뭐로 할래?"라고 물었더니 학과에서 이미 '핀테크 기술 동향과 전망'으로 정해주었다고 했다. 논문의 주제를 정해주다니, 이상하기는 했으나 거의 형식적으로 통과시켜주는 학사 졸업 논문인지라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논문을 쓸 때가 4학년 학생들로서는 한창 취업에 목을 매는 시기일 테니, 학과 취업률을 고려한다면 졸업 논문에 대해 깊게 고찰해보도록 요구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학부생 수준의 졸업 논문인지라 연구 논문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주제까지 정해주는 것은 리포트와 논문의 차이가 무엇인지 심히 궁금할 따름이었다. 학사 논문은 원래 이런 것인가? 내가 다닌 과에서는 졸업 논문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알 도리가 없었다.

그는 자신이 취업할 수 있었던 것을 내 덕으로 돌렸다. 나는 따로 한 일이 없으므로, 그게 왜 내 덕이냐며 웃었다. "형이 없었으면 아마 다음 학기까지 계속하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형 덕분에 포기 안 하고 여기까지 온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좋은 건 이제, 하기 지겨운 이 공부를 안 해도 된다는 거예요. 논문만 끝나면 책도 보고 그간 못한 것들을 할 거예요."라고 말하며 앞으로 무엇을 할지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웃으면서 "그래.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지금까지 고생 많았으니까 그래도 돼."라고 말하며 웃었다.

몇 접시를 더 먹고 커피까지 들이켜고 나서야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포만감에 저녁은 먹지 말아야겠다며 웃으면서 서로 이야기를 했다. "네가 인천이나 본사 쪽으로 발령 났으면 좋겠다.", "나도 그래요. 연고지를 고려해 준다고 했는데, 그렇게 되면 할머니를 모시고 지금 반지하 집을 나오려고요." 그는 마치 부모에게서 못 받은 애정을 할머니에게라도 보답하고 싶은 것처럼 그녀를 모시고 가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아는 친구들이나 삶의 터전이 여기에 있을 텐데, 괜찮겠어?" 이렇게 물었더니, 인천 지하철 2호선 근처에 집을 잡으면 할머니도 일터와 멀지 않아 괜찮고 자신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시 라운지로 돌아와 글을 쓰다 보니 오후 8시가 되었다. 한 시간 정도 책 읽을 시간이 난듯하여 다시 <마의 산>을 꺼냈다. 책에서 세템브리니는 한스 카스토르프의 직업인 공학을 칭찬하며, 이 공학은 점점 더 자연을 정복하고 교통망과 전산망을 확충하여 기후의 차이로 인한 문제를 극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러한 기술의 진보는 여러 민족을 서로 접근시키고 이들 간의 친목을 돈독하게 할뿐더러 증오와 오해를 없애고 화해의 길로 나아가게 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그리고 인류는 선과 행복이라는 최종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이를 위한 가장 유용한 수단이 공학임을 강조했다. 기술에 대한 유토피아적 전망이 가득했다. 이 자는 이성의 진보, 계몽을 중시하는 인물로서 이 사람이 보기에 분명 과학 기술, 공학의 발전은 사회의 진보를 가져올 것이라는 장밋빛 미래를 내비치고 있었다.

'공학의 발달이 사회의 폭력을 감소시키고 사회의 진보를 가져왔는가?'라는 질문에는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버튼 하나로 세계 인구의 절반을 날려 버릴 수도 있는 세상에서 공학이라는 수단을 통해 선과 행복을 가져왔다고 누가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시대의 진보와 기술의 발달로 전쟁이 더 과격해졌고 무기의 발달로 죽임을 당한 인구의 수도 엄청 많아졌고 문명 간 갈등도 더 심화하였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쟁 등으로 인한 절대적 사망률이 아니라 상대적 사망률로 비교한다면 그 수치가 눈에 띄게 감소하였으며, 이를 통해 기술의 발달과 사회의 진보가 인류의 폭력성을 감소시켰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절대적 인구수로 서로 다른 시대를 비교하여 기술에 발전에 더해 사회가 폭력적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아니면 상대적 인구수로 비교하여 사회는 진보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나로서는 후자의 견해를 더 존중하기는 하나, 기술 발달로 한 번의 공격이 엄청난 피해를 얻는 것을 보면 자신 있게 인류는 선과 행복을 위한 최종 목표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어쩌면 "악이 되지 말자."가 인류에겐 그저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아르바이트를 가는 길 위에서 영어 공부를 하다가 오후에 화장실에 잠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만난 외국인 교수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이제는 전보다 회화를 비교적 자유롭게 하면서도 아직은 세부적인 표현에서 배웠던 것들이 쉽게 튀어나오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잘못 설명한 표현들이 떠올라, 아직도 영어 실력이 많이 부족하구나 싶었다. 아니 어쩌면, 영어 모임을 그만둔 이후 나태해진 것이 아닌가 싶어 더욱더 매섭게 공부를 했다. 분명 나는 영어 공부에서만큼은 한 달 전보다 나태해졌다. '전력으로 해야만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 내가 처음으로 빠진 어떤 아이돌 그룹 멤버의 좌우명이다. 이 나이 먹고 아이돌을 좋아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최선을 다하는 모습과 멋진 춤 실력으로 그녀를 보자마자 푹 빠져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마치 어린아이가 자신이 따르는 부모의 말과 행동 그리고 가치관마저도 배우듯, 그녀의 가치관에 감동하고 따라 배우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저 말이었다.

마음이 흔들리고 나태해질 때마다 나는 이따금 그녀의 인터뷰를 보거나 웃는 모습을 보았다. 그것만으로도 힘을 얻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그녀의 저 말을 떠올리고 다시 전력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녀는 나의 최초의 아이돌이며 롤모델이다. 내가 만약 어떤 일로 성공한다면, 가족과 친구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동시에 이 친구 덕분에 성공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진짜 이 친구를 보고 싶어서라도 성공하고 싶었다. 집에 돌아와 그녀의 인터뷰를 다시 보니 거기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서두르지 마세요. 아직 꿈이 없더라도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 지금 열심히 하고 있으면, 언젠가 어떻게든 성공할 거라고 생각해요!"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 이 말은 그녀가 내게 해주는 말이었다. 나는 나의 성공과 동시에 그녀의 성공을 진심으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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