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the elder), ‘시골의 결혼식(1567)’》
※ 우리의 끝은 잔치와 같으며 이는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자 마음의 준비이다.
※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3개월 동안 진행한 아침 기상 모임의 마지막 날이다. 학기 말까지로 정하고 시작한 이 모임이 내게는 아침 기상을 위한 넛지가 되었을 뿐 아니라 계획하던 것들을 어느 경지까지 이룰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무엇보다 최대의 성과는 글쓰기인듯한데, 아침에 일찍 일어남에 따라 글쓰기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매일 일기를 해당 그룹 대화방에 올림으로써 점점 하루를 심도 있게 고찰하고 습관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로 살고 싶다고 다짐을 했지만, 다른 일이 많아서라는 핑계로 망설이던 글쓰기를 이제야 할 수 있던 것도 바로 이 모임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한두 시간 쓰던 글이 이제 내 하루 삶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고 이것 외에는 삶에서 중요한 게 없다고 여기게 된 것도 그 시작은 이 모임 때문이었다. 물론 그 덕에 처음 모임을 만들면서 계획했던 것 중에는 시작조차 제대로 못 한 것들도 있다. 프로그래밍이나 일본어를 배워보자는 생각이 그렇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는 까닭은 매일 중요한 것을 위하여 많은 시간을 들이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커다란 도전이었으며 게으른 나와의 경쟁이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어제와 다른 나를 매번 찾아야 했다.
《약 3개월 간의 만다라트 양식을 수정한 계획표》
무언가를 얻고자 하면 나는 철저한 계획을 짜서 사람을 모집하고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한다. 지현 누나는 이런 나를 계획적이며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전혀 그 반대이다. 무계획적이며 매사에 덜렁덜렁하기 때문에 모임을 만드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를 내 계획 속에 함께 끌어들이지 않는다면, 내 삶은 매번 어지럽혀진 나의 작은 방과 다를 바 없었다. 다행인 건 나는 내가 게으르고 지저분하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으며, 남들 앞에 있을 때 모범인 것처럼 보이는 걸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런 성격 때문에 모임을 만들어서 하게 되면 어떻게든 잘하려고 노력했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게 최고의 학습 방법이듯, 모임의 리더로서 더 많은 시간을 들여서 모임과 자료를 준비하면서 지식과 기술을 터득해 나갔다. 혹자는 이렇게 힘들게 준비하는 것을 비효율적이라고 하기도 했지만, 혼자 했더라면 아마 아무것도 못 했을 것이다.
내가 '힘들고 더 많이 준비해도 모임을 만들어서 하는 걸 좋아한다'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대학 시절 프로젝트를 통해서였다.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경영학 원론 수업을 재수강하면서, 그리고 마케팅 관련 수업을 들으면서 팀 프로젝트를 해야만 했다. '부딪혀서 몸으로 경험해보지 않으면 잘할 수 없다'가 좌우명이었고 그 다짐에 따라 모든 발표를 도맡았다.
그때엔 새벽까지 날을 새서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게 너무 재밌었다. 그보다 더 좋았던 것은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때 어떤 말이 나올까 하는 기대감! 칭찬이나 그런 뉘앙스의 반응을 보는 게 몹시도 짜릿했다. 물론 그렇게 힘들게 하면서 실력이 느는 것도 좋았다.
집단 밖에 있을 때, 또는 혼자서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무척 소심해지거나 자포자기하는 경향이 컸다. 그러나 집단 안에 있을 때는 뭔가를 이루기 전까지는 좀처럼 멈추는 법이 없었다. 적어도 자기 계발에서만큼은 한 번의 행동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과 같으며, '탁월함은 반복적인 행동, 습관에서 비롯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격언을 늘 기억하고 있었다.
내게 있어서 모임은 특정 목적을 위한 공간을 의도적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마치 운동을 위해서 집에서 하기보다 굳이 헬스장에 가고 공부를 위해 굳이 도서관에 가듯, 의도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하면 나는 이러한 공간의 변화에 민감한 것 같다. 헬스장처럼 실재하는 공간이든 참여자들끼리 목적을 위해 만드는 공간이든 나는 그 공간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고자 노력한다.
그렇다면 집 안에서 혼자 있을 때도 그렇게 할 방법은 정녕 없을까? 혹은 혼자 있는 집과 같은 공간에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고 특별한 목적과 의미를 부여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 시간이 흐를수록 고독해지는 시간이 많아질 텐데, 그때 그렇게 혼자가 될 때, 이 공간마저 지금처럼 슬픔이 머물다 가지 않게 할 수는 없을 것인가?
슬픔이 머물다 간 자리가 아닌 인연이 언제든 머물다 갈 수 있는 자리가 되는 것을 간절히 바란다. 인연이란 그런 것이라며 먼 길에서 오는 누군가가 이곳에 잠시 다리를 주무르며 머물다 갈 때, 물 한 모금 웃으며 줄 수 있는 평온한 곳이 되기를 바란다. 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