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이 꽂힌 화병을 본다

자존심과 버팀

by 정언

도시에서 떨어진 외곽에 근무할 때였다. 출근길에 동료가 들꽃을 꺾어 와 내가 마시던 생수병에 꽂아 두었다. 나는 들꽃을 꽂아둔 동료의 미적 감각에 감탄하며 사진을 찍어서 단체 대화방에 공유했다.

동료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내가 찍은 사진은 사무실의 어수선함을 배제한 한 폭의 그림처럼 보였다.

그땐 아름다웠다

그해에 나는 내가 책임질 수 없는, 아니 책임져서는 안 되는 일로 힘들게 버티다가 병가에 들어갔다. 오랜 치유의 시간을 거쳐 업무에 복귀했을 무렵, 그 사진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들꽃의 모습을 애써 사진으로 남긴 이유를 알고 말았다. 그때 나의 삶은 화병 속의 들꽃처럼 서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서 있었지만, 나의 자존심은 뒷걸음질을 허용하지 않았다.


화병에 꽂힌 들꽃은 예쁘고 가지를 쭈욱 뻗고 있었지만 정작 뿌리는 어디에도 닿아 있지 않았다. 그해의 나도 그랬다.


나는 곤란한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내가 먼저 알게 된 일이었고, 직접적으로 관여해야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내 영역을 벗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나는 그 일을 처리하기 위해 퇴근 후에도 전화와 메시지에 시달렸고, 험한 말과 위협에 노출되었다. 상급자에게 상황을 보고 할 때면 잘 처리해 보라는, 격려보다는 책임감을 강조하는 말을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바람 불면 흔들리는 들꽃처럼 보이기 싫어, 꼿꼿하게 서 있으려고 했던 어리석은 자존심이 나를 더욱 궁지로 몰았다. 상급자는 그런 나의 성향을 알고 있었는지, 자신이 개입할 때도 반드시 나를 끌어들였다.

잘하고 있다는 타인의 말들 때문에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정말 잘하고 있는 줄 알았다. 그렇게 자존심을 지키려 했다.


결국 나는 모든 것에서 손을 떼겠다는 선언을 했고, 상급자는 그제야 본심을 드러냈다. 나는 책임감 없고 나약한 사람이 되어 긴 병가에 들어갔다.


병원에서는 내가 책임질 필요 없는 부분이었다며 잊고 쉬라고 했다. 상담센터에서는 나를 위한 응원의 말을 쏟아부었다. 산재 인정을 받았고 병가 기간도 늘어났다. 치료 지원도 받았다.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마음은 출근을 자꾸만 미루고 있었다. 그때 나는 알고 있었다. 어떤 사과와 보상을 받아도 회복되지 않는 이유.


뿌리 없이 공중에 뜬 상태에서도 환하게 웃으며 가지를 뻗고 있는 들꽃과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빛나는 자리를 지키려고 하기보다는 강요된 자존심을 지키려고 했다.

의문이 풀렸고 나는 복귀를 결정했다. 마지막 진료 날이었다.


"가서 부딪치면서 회복하는 게 아닐까요?"

"이제 괜찮네." 의사가 웃었다.


화병 속 들꽃을 보며, 뿌리내릴 자리를 고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