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에 뜬 달에게 소원을 빈다

쓸모없는 진지함

by 정언

멈춤을 모르는 사람은 목적지를 지나친 줄을 모르고 계속 달린다. 고속도로에 올라선 뒤에야 너무 멀리 왔음을 알게 된다.


유기동물 보호 단체 활동을 홍보하는 봉사를 한 적이 있다. 가끔 부탁받은 내용을 글로 쓰는 일에서 출발했다. 구조, 치료, 입양 소식을 글로 쓰면서 보람과 자부심이 생겼고 나를 칭찬하는 마음이 커져 갔다. 활동 기간이 늘면서 SNS 홍보물, 인쇄물, 홍보 동영상을 만드는 영역까지 역할이 늘어갔다.


직장에 다니는 나로서는 일상을 깰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한 번 시작한 일이라 멈추지 않았다.


봉사를 하는 동안 보람과 자부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만나서 의견 조율할 상황이 아니니, 내가 만든 홍보물에 툭하고 던지는 지적이 있기도 했다. 정지 페달을 급히 밟았다. 그러나 고속도로에서는 다시 속도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나는 봉사자임을 망각하고 운영자 입장에서 단체 홍보의 방향을 잡고 변화를 끌어내려하고 있었다. 퇴사 후에는 본격적으로 참가하겠다는 생각까지 하며 조금은 들떠 있었다.


내 처지를 확인하는 순간은 예고 없이 다가왔다. 단체에 홍보 직원이 들어오면서 기존 홍보에 문제점이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던 나는 보조 역할을 요청받았다. 그제야 나는 멈추었다.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떠나서 설 곳이 아닌 곳에 서려고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멈춤은 단체의 홍보 활동에 공백을 만들었고, 언제 다시 홍보물 작성을 할 수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답을 내놓지 않았다. 활동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렸었기 때문에 나를 어디쯤 놓아야 할지 몰라 다시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가 들여다본 진실은, 봉사자인 내가 쓸모없이 진지했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진지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일이든 사람이든 쓸모없는 진지함으로 몰입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어떤 곳에 서서,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를 따지지 않는다.


이런 경험으로 지쳐 섬진강을 찾은 적이 있다.

보름에 있는 여행 프로그램을 마무리하는 장면을 본 기억이 떠오른다. 당일 여행 프로그램이라 모두들 먼 곳으로 돌아가야 하다 보니, 달이 뜰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던 것 같다.

강변 모래 위에 커다란 달 모형을 올려 두고 소원을 비는 모습을 보며 그때에 나는 불편했다.


설 곳이 아닌 곳에 서 있는 달과 소원을 비는 사람들.

그렇게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 보였다.


나는 보름달이 떠야 소원을 빌 수 있다고 믿는 사람처럼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지 않아도 충분한 날들이 있다는 것을 모른 채.

때론 달이 아닌 것도 달이라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달이 아니었는데도

나는 달을 기다리며 질주했다.

그런 모습을 인정하기까지 조금 오래 걸렸다.

달이 아니어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