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과 갈증
한참 전, 일몰을 보러 갔다가 염전을 보았다. 염전에 가두어 둔 물이 지는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그 사진을 다시 보다가 가슴 벅찼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정돈된 칸마다 바닷물을 가득 채운 모습에서 나를 보았을 것이다.
나는 결핍이라는 단어를 달고서 살았다. 경제적 궁핍 속에서 노년을 바라보던 부모 그리고 무남독녀인 나. 부족할 것 없이 자란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늘 부족했다. 부족했기 때문에 나는 노력해야 했고, 노력은 많은 것을 채워주었다. 남들이 조금은 부러워할 만한 직업, 넓은 평수의 아파트, 남편과 두 아들, 그리고 사랑스러운 강아지까지.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처음부터 내 손안에 있지 않았기에 노력해야 하고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생각으로 편히 쉴 수 있는 날은 드물었던 것 같다. 더구나 노력해서 얻은 것들이기에 지켜야 했고 지칠 줄 몰랐다.
가진 것들은 다시 나에게 결핍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러므로 나는 항상 갈증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염전의 물이 마르고 소금을 수확하면서 느끼는 풍요가 나에게는 갈증으로 다가왔다.
결핍은 내가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노력해야 한다는 압박을 했다. 자주 연락을 하고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노력은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결핍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 속에 불쑥 들어오는 내가 그리 반갑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있었다. 나는 주변의 사람들을 놓아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운했고 그다음은 궁금했다. 그렇지만 연락하지 않았다.
직장에서 심각한 문제를 겪고 쉬었던 일 년 동안, 내 근황을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들의 연락처를 하나씩 지워나갔다. 인간관계 정리를 한 셈이지만 정리당한 사람들은 전혀 아쉬울 것 없을 테니 잘한 일이다.
그 자리에 나는 화분을 들이기 시작했다. 외출을 하고 오면 내 손에 식물이 들려 있었고, 남편이 눈치채지 않게 하기 위해 화분 사이에 며칠 숨겨 두기도 했다. 의사는 우울감으로 인한 행동이라고 했지만, 나는 결핍을 채우려는 방어 기제임을 알고 있었다.
지독한 화분 수집은 병충해를 입어 식물이 하나씩 쓰러지면서 멈추었다.
결핍과 갈증의 고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염전에 가두어 둔 물을 바다로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이젠 편안함에 이르렀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결핍은 세상에 나오면서부터 입고 있는 속옷이다. 감추면서 살 수는 있을 것이지만 버릴 수는 없는 그런 것이다.
삶은 행주를 반듯하게 접어 서랍 속에 넣고,
손수건을 다려 차곡차곡 쌓으면서 결핍을 채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