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을 다녀온 어느 날
TV 속에서 어린 여자가 울고 있다.
청각 장애를 가진 할머니의 주검을 껴안고 수어로 말하고 있다.
"나, 할머니 있어서 행복했어."
"나 만나줘서 고마워."
"내 할머니 돼줘서 고마워."
"우리, 또 만나자. 다시 만나자."
몇 번이나 봤던 드라마의 장면인데, 그날 비로소 눈물이 흘렀다. 엄마가 떠난 지 3년을 훌쩍 넘은 어느 날이었다.
대학 동기의 부친상 부고를 받고 문상을 갔다. 고인에 대한 추모의 마음보다는 상주들의 노고를 걱정해 주고 오랜만에 마주한 지인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문상. 나이가 들어가면서 문상은 으레 그런 것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3년 반쯤 시간이 흘렀던 터라 엄마에 대한 기억이 무뎌져 있었고 문상객으로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어색하지 않았다.
먼 곳에서 온 지인들이 열차 시간을 맞춰 자리에서 일어날 때, 나도 걸어서 집으로 왔다. 가을바람이 꽤나 쌀쌀했고 먼지마저 일어나 발길을 서둘렀다.
저녁을 먹고 TV를 보다가 내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알아차렸다. 어린 여자가 하는 말들이 나의 심장을 쓸어내리며, 울컥하는 마음과 함께 미처 보내지 못했던 엄마가 떠올랐다.
나는 엄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의 주검을 바라보며, 엄마의 몸집이 참 작아졌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무심하던 세월 동안, 엄마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는 생각만 맴돌았다. 한 달 꼬박 매일 요양병원으로 엄마를 만나러 가면서도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만 했었다.
엄마에게 유일한 자식이었던 나는, 네가 너 때문에 산다라는 말을 수천 번 들으며 부채를 안고 있었다. 그래서 엄마가 고마웠다. 함께 살면서 수없이 부딪히고, 다투고, 소리 지르고, 울기를 반복하며 지칠 대로 지쳤으면서도 고맙다는 마음은 내 가슴을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나는 TV 속 어린 여자처럼, 엄마에게 다시 만나자는 말 한마디를 건네지 못했다. 정말 길었던 힘겨움만 생각했었다. 엄마와 함께 살 때는 불효를 저지르는 천하의 나쁜 자식으로, 요양병원으로 모신 후에는 인간의 도리도 모르는 파렴치한으로 친척들의 질타를 견뎌야 했다. 긴 시간 끝에서 나는 무척 지쳐 있었다.
엄마의 죽음은 나에게 이젠 더 이상 욕먹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왔다는 의미였고, 장례 기간 동안 울지 않았다.
그런데 새삼스레, 이제야 엄마의 슬픔과 고통을 마주하게 되었다. 엄마는 나를 만나 행복했을까, 다시 만나고 싶을까...
그에 대한 답은 궁금하지 않다.
엄마와 나는 만났었고, 긴 생을 함께했고, 그리고 헤어졌다.
그리고 엄마에 대한 부채도, 고마움도, 미안함도 보낼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생은 그렇게 서로의 어느 순간을 지나며 아픔을 남길지라도, 우리가 만났었다는 것만이 진실이니까.
이제 정말 헤어진 거다.
이제서야 엄마를 보낸다.
창 밖으로 내리는 비가 나의 가슴을 쓰다듬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