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름을 고이 접어둔다

삶의 대면

by 정언

퀼트 가방 하나를 만들며

드라마를 지겹게 보던

긴 여름을 고이 접어 둔다.


더위를 버티기 위해 여름 내 두문불출 지낸 건 아니다. 그저 그런 시간이 필요해서였다.

봄을 앞두고 출근한 나의 직장은 온갖 군상이 모여 있는 잡화점 같았다. 사람들은 자신의 불편은 감추지 않았고 나의 불편은 애써 외면했다. 내가 살아남는 방법은 오직 침묵이었던 시간들이, 나를 여름 속에 가두었다.


첫 출근 전날 밤 무례한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받으면서 나의 불편함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불편함은 이 직장을 벗어나지 않고는 끝나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드는 순간.

오히려 나도 하고 싶은 대로 할 권리를 얻은 느낌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도시락을 싸서는 지하철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다.

나에게 주어진 일을 처리하면서, 그들보다는 좀 더 나은 사람이라는 마음으로, 나의 평안을 주문했다. 일과가 마무리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면서 마음속에 하루하루의 블록을 쌓았다.


그러니 나의 여름은 쌓은 블록을 하나씩 내려놓는 시간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보냈다.

퀼트를 즐기지는 않지만 손수 만든 가방 몇 개 정도는 가지고 있다. 한 땀 한 땀 바느질하고 조각을 맞추면서 내 안에 있던 상념을 내려놓는 시간이 필요할 때마다 버릇처럼 시작해서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집중을 한다. 이 여름은 그렇게 보냈다.


여름이 끝날 기색을 보이자 나는 외출을 했다. 미술관에서 김홍도 「황묘농접」의 고양이와 나비가 서로를 응시하는 장면을 보며, 그 옛날 어떤 사람도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의 상념을 내려놓았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조심스레 말을 걸어 보았다. 대답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냥 묻고 싶었을 뿐이다.


미술관 휴게 의자에 앉아 넓은 창을 보니 쨍한 하늘과 구름, 나무와 풍경을 담은 물결이 다가와 있었다. 건축가는 창을 통해 보는 풍경은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하다. 삶의 어떤 부분도 창을 통해 내 마음에 담는다면 그런대로 아름다운 날들이 많을 것이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나는 미술관을 나오며, 어쩌면 내가 떠나보낸 여름이 나에게 남긴 말들이 하나씩 떠오를 거라고 생각했다.

무슨 말을 나에게 남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말에 답을 하게 될 것이다.


삶이 쉽지는 않지만

그리 어렵게 대할 것도 아니니

어떤 답이든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