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적정 온도
나는 식은 커피를 좋아한다.
드립퍼에서 방금 필터를 통과한 따끈한 커피를 마주할 때면 한참을 기다린 후 한 모금씩 마신다.
애초에 차가웠던 것과는 달리 아련한 온기가 남아 있는 식은 커피를 좋아한다.
사람도 식은 커피처럼 한 모금의 온기를 전해 주는 인연이 참 좋다.
나는 친구나 지인에게 먼저 연락을 하는 사람이다. 가끔씩 카카오톡 친구 프로필을 넘겨 보다가 '잘 지내는지'라고 툭 던진다. 휴대폰 주소록을 넘기다가 문득 전화를 하기도 한다. 누군가 힘든 상황이면 공감하고 위로해 주기 위해 자주 연락을 하고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준다.
내가 타인에게 가진 관심과 친절, 공감이 나에게도 베풀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세상 사람들 마음이 모두 같지 않다는 것을 모르던 시절에 나는, 때로 상처를 받았다. 더구나 한 번 인연을 맺으면 언제나 그 마음일 것이라는 철없는 생각을 할 때는 상처를 받는 일이 잦았었다.
여기에 더해서,
면전에서 나를 칭찬하고 고마워한 사람들은
절대 뒤에서 나를 비난하지 않으리라 믿고 있는 바보.
그게 나의 모습이었다.
내가 바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건 10여 년 전쯤이다. 그 무렵 자신의 내밀한 고민을 털어놓던 사람이라, 내가 진심으로 걱정했던 지인이 어느 날부터 연락을 받지 않고 외면했다. 나에게 처음 있는 경험은 아니었기에 서운함은 있었지만, 그러려니 넘기고 있었다. 현명한 후배가 나에게 이유를 알려 주었다. 아마도 자신이 감추고 싶은 과거를 알고 있는 나를 그 사람은 멀리하고 싶었을 거라고.
정말 서글픈 상황이지만 다음 순간에는 '이해'가 되었다. 나를 멀리한 사람들은 자신의 지난 시간을 멀리하고 싶었던 거라고...
뜨겁게 다가가 자신에게 위로가 되려고 했던 나의 마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밀어내고 싶은 부담으로 변했다. 사람의 적정 온도는 어디쯤일까?
뜨거운 커피는 마실 수 없다.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는 단숨에 들이켜고 만다.
그래서 나는 식은 커피의 온도가 사람의 적정 온도라는 혼자만의 결론에 다다랐다.
나는 오래 만난 지인들이 있다. 생각해 보면 '그들과 나 사이'는 식은 커피처럼 한 모금씩 마시며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기에 딱 좋은 거리다. 물론 한 때 뜨거운 사이였던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둘 중 하나의 관계로 바뀐다. 아예 잊히거나 식은 커피가 되어 다시 온기를 가지게 되거나.
이 순간 되물어본다. 나의 뜨거운 마음을 밀어냈던 사람이 식은 커피로 다시 다가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도 그냥 식은 커피가 되면 되는 것이다. 사람 사이의 일에 왜 그랬냐는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지금 마주 볼 수 있다는 것이 좋지 않은가?
지금 창 밖으로 눈이 내린다.
오랜 지인이 내일 만나자고 연락을 해 왔다. 식은 커피 같은 사람이다.
나는 식은 커피가 좋다.
그렇지만 뜨거운 커피를 마주할 때의 짙은 향도 좋아한다. 천천히 식히면서 음미하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