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의 부재
저녁 설거지를 하며 TV에서 흘러나오는 대사가 귀에 콕 박혔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의 한 구절이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노라고
안주로 무엇을 시킬지 고민하는 장면이라 웃음이 터졌다. 뒤이어 떠오른, 선택의 순간마다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던 기억으로 그날밤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선택한 길에 대한 후회는 아니었다.
직장에 다닐 때 온 경험과 열정을 쏟은 프로젝트가 있었다. 내 삶을 흔들어 놓을 것이라는 걸 알았지만, 설렘과 다짐은 그 일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진행 과정에서 직장 생활의 어떤 순간보다 두근거렸고, 마치 이 일을 하기 위해 내가 직장에 다닌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새로운 방향을 향하는 그 프로젝트의 매력에 푹 빠졌다.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었기에 옳다는 판단이 서면 거침없이 달렸다. 그리고 나는 산산이 부서졌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 다수가 새로운 환경에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에 무덤덤했다. 이전 근무 환경과 달리 자유로운 일상을 누리는 것에 민감했다. 사람들이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한 행보를 내디디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행보에는 자신의 안위가 더 많이 보였다.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나는 긴장을 호소했지만, 불편함으로 돌아왔다. 때로는 '당신이나 잘하라'는 비난도 들려왔다. 생각의 방향이 같을 거라고 믿는 사람들과 몇 번이나 대화를 시도했지만 실마리는 풀리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그곳을 떠나기로 했다. 어쩌면 나도 누리고 있었을 자유로운 일상을 내던졌다. 내가 지향하는 가치는 다른 곳에서 홀로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속내를 유리처럼 드러냈고, 나의 심장은 유리처럼 부서졌다.
유리 심장을 보호해 줄 가면이 필요했었다. 안타깝게도 그때 나는 가면을 혐오했다.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오히려 투명하게 소신을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답답함은 내려앉았다.
나도 가면을 쓸 줄 알았어야 했다. 사람들의 심장을 뛰게 할 수 있는 가면을 썼어야 했다.
나는 유리처럼 부서진 심장으로 긴 시간 아파했다. 그리고 유리 파편을 줍기 시작했다.
단단한 듯했지만 유연성 없던 내 모습, 복원할 수 없는 그 시간들을 정리한다.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들을 바꾸어 놓았다고
나지막하게 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