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금기
삶이라는 창문에는 순간의 메모지가 빽빽하게 붙어 있다.
직장을 다니는 내내 일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고 새로운 프로젝트가 늘 흥미로웠다. 기획하고 실행하면서, 실질적인 승진이나 경제적 보상이 없었음에도 나는 참 열심히 일했다. 프로젝트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보다 나은 삶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신념은, 나의 창의성을 자극하고 추진력을 가속했다.
일을 하면서 맺게 되는 인간 관계도 즐거움이었다. 프로젝트를 빈틈없이 진행하기 위해 빈자리가 보이면 내가 채웠다. 구성원들의 개인사나 능력 차이로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때면 인간적인 팀장으로 다가가 해결했다.
나의 삶에는 알록달록한 메모지들이 붙기 시작했다. 격려, 감사, 다정, 애정, 응원...
메모지가 늘어나면서, 나는 자신감과 성취감으로 그때는 행복했었다. 세상살이의 고달픔을 다 잊을 만큼.
진실은 감추기 어려운 것이다.
나는 격려와 감사 뒤에 숨은 의도를 보게 되었다. 내가 진행한 프로젝트를 발판으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간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내어 준 마음은, 생각보다 인색했다.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들은 외면했다.
다정과 애정은 한시적 인연이었다. 때로는 조건부 인연이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확인하기도 했다.
나는 사람을 너무 잘 믿었다. 순간들이 눈을 가리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타인에 대한 투명한 기대는 흠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어느 순간 홀로 서 있었다.
가려진 시야 사이로 보이는 진실이 그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얼마 간은 분노하기도 했고 그들과 맞서기도 했다. 조건이 어긋나자 날 선 수군거림으로 나를 공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를 힘들게 했고 어떤 때는 삶의 교차점에서 마주치면 나를 모욕했다.
나는 고립을 선택했다.
그리고 내가 붙여둔 메모지를 하나씩 떼어냈다. 비난도 용서도 아닌 어떤 감정으로 남을 때까지 하나씩 떼어냈다.
시간이 흐른 뒤, 떼어내지 않은 메모지를 보며 나에게 위안을 건넸다.
모든 순간이, 모든 인연이 진심이 아니었던 것은 아니라는 진실 앞에 서게 되었다. 많이 얻으려고 했고, 많이 얻었다는 환상에서 걸어 나오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김형경 작가의 「성에」를 읽으며, 투명한 기대 대신 투명한 창을 가지게 되었다.
" 이 세상에는 섣불리 맞닥뜨려서는 안 된다고 알려진 크고 작은 금기들이 존재하는데 그중에는 요리사의 손톱, 작가의 민얼굴, 옛사랑의 현재 모습 같은 것들도 있다."
환상 금기.
나는 세상에 대해 가벼워졌다.
환상을 걷어낸 자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