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처럼 떨어진다

마침표의 미학

by 정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최영미 시인의 「선운사」첫머리이다. 꽃송이째 툭 떨어지는 동백꽃을 떠올리게 하는 이 구절을 웅얼거리는 시간이 잦아질 무렵 직장을 그만두었다.


나는 오랫동안 한 직장에 머물렀다. 직장에서 맡은 일과 자주 바뀌는 시스템에 적응을 꽤 잘한다는 말을 들었다. 일을 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나에게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도할 때 참여를 하기도 했다.


정년퇴직까지 직장을 다닐 것 같은 사람. 그 사람이 나였다.


퇴사를 결정한 것은 업무에 적응을 못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나를 여기에 내어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아서 일 잘하는 사람으로 보였지만 나름대로 힘겨운 것들이 있었다. 가장 힘든 것은 내가 하는 일이 이젠 가치 없어 보인다는 공허함이었다.


그래서 마침표를 찍기로 했다.

동백꽃이 툭 떨어지듯이 그렇게 직장에서 훌쩍 떠났다.

붉은 채로 떨어진다

동백꽃은 왜 붉은 꽃송이째 떨어질까?

아마도 동백꽃은 한 잎 한 잎 시들어가며, 고운 자태가 망가져 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을 것 같다.


가지에 달려 있던 그 모습 그대로 떨어져 있는 동백꽃은, 나에게 묘한 이끌림으로 다가왔었다. 나이 들면서 시들한 사람이 되어 직장에서 뒷방으로 밀려나기 싫어 자세를 다잡아왔었다. 그리고 잘 해내고 있다는 자존감으로 당당했다.


동백꽃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무는 열매를 맺기 위해 꽃의 시간을 오래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나의 말은 바쁜 사람들 숨소리에 묻히고, 묵묵히 일하는 모습만이 미덕으로 남는 순간이 왔다. 나는 눈치챌 수 없을 만큼 조금씩 안으로 시들고 있었다.


마침표를 찍었다.


후배가 왜 그만두냐고 물었을 때 우스개 소리로 흰머리가 나기 시작하는데 염색하기 싫어서라고 한 적이 있다. 일자리 구하기 힘든 시대에 철없는 소리로 들렸을 말이다.


직장을 다녀야 하는 이유는 많다. 그렇지만 내가 그만두면서 한 말은 '다니기 싫어서요.' 한 마디였다.

그 많은 이유를 생각하고 싶지 않을 만큼 다닐 수 없었다.


자신이 시들고 있는 것을 알면서 나무에 매달려 있기보다는 툭 떨어지는 쪽을 선택했다.


지금 붉은 모습으로 남아야

다시 붉어질 힘이 생길 거라는 바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