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라면에게 기대어본다

망각과 치유

by 정언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하고 말았다.

몇 달 전부터 현관문 앞 공동 구역에서 불쾌한 냄새가 났다. 지나갈 때마다 창을 열어 두었지만 이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문을 열고 나설 때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마다 숨을 참아야 하는 고역이 따라왔다.

보름 전쯤, 그 냄새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옆 집에서 현관문을 열고 환기를 하고 있었는데, 역한 냄새가 확 느껴졌다. 거동하지 못하는 노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던 냄새의 근원을 확인한 셈이다.


그날 이후 나는 그 냄새를 견디기 위해 긴장해야 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 빨리 오지 않으면 짜증이 났고, 집으로 들어올 때는 거의 뛰어와 비밀 번호를 눌렀다.

그 냄새는 오래전 엄마가 6년 반을 지냈던 요양 병원의 기억을 소환하는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요양 병원이 아니라, 내가 방문할 때마다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노여운 눈빛이었다.


참을 수 없었다.

관리 사무소에 냄새가 매일 나는데 원인을 알아봐 달라는 전화를 넣으면서, 두려움과 찝찝한 그 무언가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고 속으로 말하고 있었다.


가을의 초입에 들어설 무렵에도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긴장감을 느꼈던 적이 있다. 집 근처 지하철 역사 안에 나이 많은 여자 노숙인이 자전거를 세워 두고는 음악을 크게 틀고 있었다. 처음엔 충전을 하러 왔나 보다 하며 지나쳤다. 그런데 며칠 째 퇴근 길마다 목격하면서 긴장은 불편으로 바뀌었다.


어느 날 눈이 마주치자 노숙인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함께 살던 시절 방 안에서 거실을 오고 가며 집안일을 하는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눈빛을 다시 마주한 것이었다.


처음엔 사소한 말다툼이었다. 아파트 1층에 살 때, 경비 초소가 우리 집 베란다를 들여다볼 수 있는 상황에서 이제 갓 서른이 된 딸의 속옷을 그 앞에 널어두는 것이 화끈거려 한 마디 하면 돌연 화를 내는 엄마. 빨래가 많아서 두 번 하려고 남겨 두었는데 이제 당신 옷은 빨지 않느냐며 소리 지르는 엄마.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만 가는 갈등과 다툼이 이어졌다.


엄마가 버릇처럼 말했다. 그것도 말귀를 다 알아듣는 사내아이 둘을 곁에 두고.

"내가 지금이라도 나가서 식당 일을 하든지, 길에서 굶어 죽어도 너하고는 안 산다."

"나한테 이렇게 하고, 네가 아들한테 대접받을 줄 아나."

나는 천하의 나쁜 딸이 되었고, 동시에 자식에게 버림받을 운명이 되었다.


며칠을 견디다가 지하철 신고 센터에 문자를 넣었다. 그러나 노숙인은 떠나지 않았고 이젠 출근 시간에도 그 자리에 있었다. 마치 일부러 기다렸던 사람처럼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집요하게 항의했다. 지하철 관계자에게 아이들 키우는 동네에 이런 사람이 있으니 좋지 않다면서 국가가 보호해 줄 방법이 있지 않냐는 그럴듯한 이유를 댔다. 그리고 노숙인은 사라졌다.


관리 사무소 직원이 우리 층을 방문해서 냄새를 확인했고 환경 미화팀에 연락해서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냄새의 원인을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고, 옆 집에서 병 수발하고 있는 부부의 지를 안타까워하기 때문이다. 우리 집 말고도 같은 층에 두 가구가 살고 있다. 다들 불편하지만 그냥 지나가버리면 되는 공간이니 참고 있을 것이다.


나의 고통은 기억 저 깊은 곳에서 오는 것인 줄 알기에...

나는 관리 사무소에 그다음 조치에 대해서 연락해 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점심 식사로 평소에 거의 손대지 않던 컵라면을 꺼내 물을 부었다.


컵라면의 강렬한 냄새가 집안 전체에 퍼졌다.


나는 그 냄새의 기억을 지우려고 한다. 컵라면이 나의 고통을 지워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냄새에 대한 나의 집착을 끊어주기를 바라며 컵라면에 기대어 본다.

망각은 치유를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