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개비에게 용서를 구한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by 정언

자주털달개비 화분에 물을 주다가 화분 아래로 늘어지던 줄기 하나가 툭 떨어졌다. 화분 양쪽으로 두 줄기가 늘어지며 예쁘게 자라고 있어서 꽃이 피기만 기다리던 참이다.

며칠 전부터 한쪽 줄기잎이 하나둘 말라 떨어지는 걸 보았지만, 금방 새 잎이 날 거라고 무심히 지나쳤다.


자주털달개비는 재작년 여름에 우리 집에 왔다. 늘어진 줄기 끝에 자주색 하얀 털의 잎과 분홍꽃이 달린 사진을 보고 너무 예뻐서 구해온 것이다. 북동향 집이어서 꽃 피는 것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줄기를 뻗어가며 멋스럽게 자라길 기대했다. 그렇지만 달개비는 막무가내로 키가 크더니 줄기끼리 얽히기 일쑤였다.


식물집사들에게 조언을 구하니 잘라서 삽목을 하라고 했다. 뿌리내리는 과정을 따로 거치지 않고 흙에 심기만 하면 알아서 자란다고 했다. 나는 과감하게 화분을 엎어서 달개비 줄기들을 싹둑싹둑 잘라서 새로 심었다. 얼마 지나자 달개비는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지지대를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키가 크기 커졌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화분 크기에 비해 달개비 개체수가 너무 많다는 결론에 다다르자 또 화분을 엎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줄기만 몇 개 골랐다. 생명력 하나는 타고났으니 죽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처음보다 더 과감하게 달개비를 고르고 심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며 달개비는 일 년 동안 세 차례나 나에게 수모를 당했다. 시들해져서가 아니라 생명력이 지나쳐서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자라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런데 어느 날부터 달개비가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조화처럼 그대로 몇 달을 보내는 것이다.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잎이 시들지 않으니 물을 주며 구석에 두고 있었다. 이 무렵에 나는 직장이 멀어서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만 해도 벅찼던 터라 달개비 화분에 물을 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여름이 끝날 무렵 달개비 줄기 사이로 자주색이 아닌 초록 잎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조화처럼 지내던 줄기들은 서서히 사라져 갔다. 마침내 달개비 줄기들은 화분 아래로 멋스럽게 늘어지기도 하고, 웃자라지 않고 탄탄한 모습으로 저마다의 모습으로 자라기 시작했다.


나의 무관심이, 아니 적절한 관심이 달개비가 원래의 모습으로 자랄 수 있게 한 셈인가?

약간의 머쓱함과 허탈함은 달개비가 멋스럽게 자란 것으로 해소되었다.


멋스럽게 늘어졌던 줄기가 떨어져 나가 안타깝지는 않다. 다른 줄기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으니.

너의 시간을 믿는다

자신의 생명력으로 아름답게 자랄 수 있는 달개비에게 미안함이 밀려왔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싹둑 자르고 솎아내면서 나의 미의 기준에 맞추려고 했다. 잘못했다. 달개비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내 마음에 드는 너를 원한 것이 미안하다고.

나는 사람에게도 그런 사랑을 하고 있었다.


나의 두 아들에게 말한다.

믿지 못하는 사랑을 해서 미안하다고.

그래도

네 모습대로 자라 주어서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