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다른 이름
사찰을 돌다 법당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던 적이 있다. 사시 예불 시간에 맞춰 기도하러 온 사람들로 법당은 가득 차 있었다. 각자의 소원을 간절한 마음을 담아 비는 그곳에 나는 선뜻 발을 들이지 않았다.
법당 앞 돌계단에 빼곡한 신발에 시선을 두고 그대로 서 있었다.
종교적 믿음은 태어나면서부터 익숙한 촉감이었다. 가톨릭 신자였던 엄마와 이모는, 어린 내가 세례를 받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나는 익숙한 촉감으로 성당에 나갔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싹트면서 선택하지 않은 신앙을 벗어났다.
그 후 절을 찾아다니고 백팔 배를 했지만, 불교에 마음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절을 찾는 것이었다.
나는 믿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소원을 빌어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나는 자식을 위해 간절한 기도를 한 적이 없었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하는 백일기도 같은 것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여행지에서 마주친 돌탑에 돌 하나를 얹는 법도 없었다. 빌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조금은 삐뚤어진 마음이 나를 지탱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교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직장 동료가 있었다. 아들 셋 중 두 아이가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세상을 뜨고 나면 장애가 없는 한 아이가 힘들까 봐, 두 아이의 미래를 부탁하기 위해 성당이라는 공동체를 택했다.
종교를 신앙으로 선택하지 않은 날 것의 고백을 들은 것이다. 자식을 위한 애틋한 마음에서 나온 간절한 선택이었다.
나의 간절함은 어디에 닿아 있었을까 생각했다.
아들들이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였다. 토요일이면 여러 벌의 교복을 손빨래하여 햇살 아래 널어 두었었다. 일주일 동안 입었던 하얀 면티와 속옷을 삶아서 빨래 걸이에 정성스럽게 말렸다. 아들들이 신어야 했던 하얀 면양말도 삶아 손으로 다듬어 펴서 널었다.
그 정성스러운 시간이 나를 안도하게 했다.
고등학생이 된 아들들은 휴일에도 학교에 나가서 공부를 했다. 나는 점심, 저녁 도시락을 싸다 날랐다. 휴일의 안도가 추가된 셈이다.
나의 간절함은 이런 것들이었다.
소원을 빌 곳이 없었던 나는 하나씩 정성을 쌓아가는 간절함을 택했다. 빨래를 하고, 도시락을 가져다주고 나서 몸살로 병원을 가면서도 빼먹고 싶지 않았던 간절함이었다. 혼자만의 소원 비는 의식이었다.
운명의 다른 이름은 '어쩔 수 없다'이다.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위해 하나씩 쌓은 정성들이 아들들에게 무언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리하여 따라오는 결과가 어찌 되든 그것은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운명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빌지 않는다. 받아들인다.
그저 정성을 다한다.
아들들의 연필을 깎고, 일요일마다 교복을 다리던 남편의 간절함도 같은 곳에 닿아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