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국화는 울타리 너머 꽃 피운다

원하지 않는 사랑

by 정언
수줍은 용기

울타리를 넘어서 꽃을 피우는 들국화가 왜 눈에 들어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꽤 오래전 사진을 간직하고 있다. 저 사진을 찍을 무렵 나는 울타리를 벗어나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을 것이다.


나를 정말 사랑하는 이모가 있었다. 이모는 엄마에게 큰 언니였고 홀로 살았다. 동생들에게 경제적 보탬을 주거나 조카들에게는 용돈을 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분이었다. 이모는 조카들 중에서 유독 나를 예뻐했다. 엄마가 일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방학이면 나는 이모집으로 보내지기도 했다.


이모는 어디를 가든지 다른 사람들이 별나다고 할 정도로 나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사춘기가 되면서 나는 이모의 평범하지 않은 사랑이 거북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이모가 주는 용돈과 선물은 반가운,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곤 했다.

엄마는 이모에게 잘해야 한다는 말을 버릇처럼 했고 나는 그 말이 늘 부담스러웠다. 잘해야 한다는 말의 구체적 의미나 무게를 모르는 나이면서도.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나가게 되었을 때, 이모는 백화점에 데리고 가서 정장 두 벌을 사 주었다. 이모의 사랑이 거기까지였어야 했다. 나는 더 이상의 선물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모가 준 것은 사랑이었지만 원하지 않는 사랑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렇지만 이모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고, 이모에게 잘하지 않는다는 엄마의 질타가 돌아왔다.


신혼집 열쇠를 달라고도 했다. 불쑥 지인들을 데리고 방문하여 가구며 가전제품을 자랑하기도 했다. 남편과 안방에서 낮잠을 자다가, 들이닥친 사람들 때문에 방문을 잠그고 숨은 적도 있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이모의 발걸음은 더 잦아졌다.


이사를 하는 날이었다. 짐 정리로 정신없는 때였다. 이사하는 집이 궁금하다며 찾아온 이모는 살갑게 챙겨주지 않는다고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모가 돌아간 후 엄마와 언성을 높였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이모는 나를 사랑했다. 그 사랑이 얼마나 무례한지 모른 채. 이모가 그렇게 다녀가고 나면 엄마는 늘 화를 냈다. 이모가 방문하는 날이면 인사만 겨우 하는 나는, 배은망덕한 사람으로 전락했다. 내 삶의 영역 안에서, 내가 가진 것들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은 절대 이해받을 수 없었다.


내가 선택한 것은 울타리를 넘는 것이었다.

정원에서 길러지고 화병에 꽂혀 웃는 꽃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남편과 아이들마저 울타리 안에 가두고 싶지 않았다.

원하지 않는 사랑에 고마워하기보다는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이모가 긴 투병 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무심했다. 이모가 돌아가시고 문상을 다녀온 후 바로 출장길에 올랐다.


이모가 고마웠고 외로운 어린 시절 포근했었다.

그러나 나는 울타리에 갇히고 싶지 않았다. 이미 나에게는 엄마라는 벗어날 수 없는 울타리가 있었으니.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라는 말로, 원하지 않는 사랑으로, 나를 잡고 있는 사람은 엄마만으로 충분히 힘들었다.


나는 아직도 넘지 못한 기억의 울타리에 갇혀 있다.

울타리 너머 꽃 피운 들국화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