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안부
중고 마켓에서 식물을 판매한다는 것을 알게 된 뒤, 거의 매일 식물을 사러 다녔던 적이 있다. 그 무렵 나는 직장에서 힘든 일을 겪어서 쉬고 있었고, 가족과 지인 모두 자신의 삶이 바쁜 시기라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었다.
목표는 식물을 사는 것이라기보다는 식물 판매자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는 것이었다. 거래 희망 장소를 확인하고 지도앱에서 한 시간 이내 거리에 있는 곳을 골랐다. 식물을 사러 가는 길은 낯설었다. 처음 가보는 거리, 아니 처음 걸어보는 거리를 나는 여행자처럼 두리번거리면 걷고 또 걸었다.
자동차에서 보던 거리와는 사뭇 다른 풍경을 보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처음 마주한 듯했다. 분명 자동차를 타고 몇 번이나 지나갔던 거리인데, 달랐다. 내가 사는 곳에 대해 나는 참 모르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살고 있는 곳을 알지 못하기만 한 게 아니라 살면서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었다. 내가 힘들 때 그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방식으로 위로를 건넸지만, 이해할 수 없는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나는 사람들을 알지 못했다.
식물을 사러 가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달랐다. 잘 키우기를 당부하는 사람, 가격을 낮게 내놓았다고 하소연하는 사람, 아무 말 없이 식물만 건네주는 사람, 키우고 있는 식물들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는 사람. 그리고 키우던 식물이 뿌리내리면 그저 줄 테니 다시 보자는 노부인도 있었다.
식물의 상태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주로 웃으며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쪽이었다.
그해 봄, 두 달을 꼬박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나는 그렇게 걷고 또 걸었다.
걷는 동안, 우연히 열리는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걷다 보니 좋아하는 거리도 생겼다. 그 방향에서 식물을 파는 사람이 있으면 얼른 예약을 하기도 했다. 식물을 사서 돌아올 때는 화분을 살 수 있는 매장을 검색해서 경유지로 추가하는 날도 있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걷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낯선 거리를 마냥 걸으며 지나온 시간을 희석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었다.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풍경에 전하는 안부는, 나를 세상 속에 홀로 서 있어도 외롭지 않게 이끌어 주었다.
내가 마주한 우연은 갖가지 시선으로 다가왔고, 나는 그 시선들에게 안부를 물으면 그만이었다. 내가 왜 그곳에 서 있는지 묻지 않았고 나는 굳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되는 그냥 안부를 물으면 되었다. 탈진하여 주저앉아 있던 나에게 그저 앉을자리를 내어 주는 시간이었다.
그랬다. 나는 사람들에게 힘겨운 상황에 대해 늘어놓으면서 위로받고 싶었지만, 가장 큰 위로는 묻지 않는 것이었다. 말로 떠들고 소리 지르며 내가 얻은 것은, 그 상황을 다시 떠올리는 결박에 가두는 것이었다.
아주 오래전에 마음이 힘들어 휴가를 낸 적이 있었다. 은사님을 만나서 울고 싶은 마음에 연락을 했었다. 은사님은 휴가에 대해 묻지 않고 공원에서 노인들을 위한 봉사 활동하는 곳에 같이 가자고 했다. 그날 가슴에 맺힌 말은 그대로 내려앉았고, 묻지 않음으로 나를 위로해 주는 은사님의 미소를 안고 돌아왔다.
이제는 식물을 사러 길을 나서지 않는다.
말하지 않을 줄 알기 때문에.
화분이 늘어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묻지 않고 덤덤히 있어 준 남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