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벙커트릴로지_맥베스_2017

인간 본성에 대한 이야기-두 개의 목소리, 하나의 결말

by 최 수

* 극에 대한 일부 줄거리나 스포가 있을 수 있지만 작품을 보고 난 글쓴이의 지극히 주관적이고 감상적인 해석을 전하는 글입니다. 따라서 이 글을 전부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으셔도 되고, 생각이 다르다면 다른 그대로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연극은 그 자체로 사랑이니까요. 그럼 시작합니다:)



스크린샷 2018-06-05 오후 2.46.54.png 연극 벙커트릴로지 포스터_출처:인터파크 예매처 홈페이지


: 연극 벙커트릴로지-맥베스 편


‘눈물 젖은’ 한국전쟁 감성에 익숙한 우리에게 ‘벙커 트릴로지’가 던지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이야기-두 개의 목소리, 하나의 결말. 벙커 트릴로지 맥베스 그리고 데스노트.

“소음과 분노로 가득차 있지만 그것은 의미 없는 이야기. 꺼져라 꺼져라 찰나의 촛불아” 전쟁의 피와 광기, 환청과 죄의식, 잠식... 이야기 속 이야기로 연결되는 ‘벙커 트릴로지’와 ‘맥베스’.


바라던 것을 얻게 되면 인간은 거기에 집착하게 되고 과도한 집착은 비이성적 행동을 야기한다. 광기라고 불리는 그것.


두 인물을 교차로 보여주며 집착에서 광기로 이어지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가히 어떤 공포영화보다 섬뜩하고 관객에게 트릴로지 시리즈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하게 한다.

그러나 연극을 보는 내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은 궁금증. ‘그의 내면에 집착을 만든 것은 무엇일까?’, ‘왜 맥베스라는 부제가 붙었을까’


스크린샷 2018-06-05 오후 2.47.22.png 연극 벙커트릴로지 맥베스 작품설명_출처:인터파크 예매처 홈페이지


맥베스. 셰익스피어의 희곡이자 주인공의 이름으로 ‘그’는 자기 욕심 때문에 계획적으로 왕을 죽였지만 살인 행위에 죄의식을 느끼는 인물이다. 맥베스의 마음에서 그것은 불안감이 되고 마녀의 예언과 그에 따른 왕의 자리에 대한 집착과 광기로 나타난다.


하지만 ‘벙커’의 주인공 마크가 장군을 죽인 것은 우발적이었다. 우연한 계기로 장군을 죽이게 되고 높은 자리에 오른 ‘그’는 자기 내면의 욕망을 깨닫고, 전쟁을 수단으로 해 그 욕망을 실현하며 희열을 느낀다.

길고 지루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전쟁을 치르며 마음 속으로 그리워하던 고향의 ‘홍차.’ 그 홍차 향처럼 번진 희미한 희열.

장군이 된 마크가 전장에서 홍차 한 잔을 들이키며 보여준 비릿한 미소를 통해 알 수 있다. 그가 맛본 것은 단순 홍차가 아니라 홍차로 대변되는, 마크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성취욕 혹은 어떤 권력일 것이다. 홍차를 음미한 후 그는 더욱 성과에 집착하게 되고 무리한 전쟁을 이어나간다.


어쩌면 이것은 일본 만화 ‘데스노트’ 주인공 라이토가 처음 데스노트를 사용했을 때 느낀 그 어떤 것과 같지 않을까?


스크린샷 2018-06-05 오후 3.12.50.png 만화 데스노트 책 표지 모음_출처: 나무위키(https://namu.wiki/w/데스노트)


데스노트를 통해 자신만의 ‘정의 실현’이라는 꿈을 꾸며 라이토가 보인 소름끼치는 미소 (만화책으로만 데스노트를 접했지만 그 미소는 정말 소름 돋았다). 변해가는 마크, 홍차를 작전 지도 위에 올려놓은 채 웃던 그에게선 라이토가 보였다.

사람을 죽였다는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지만 금세 자신의 욕망에 잠식되어 변해버린 ‘그.’ 그에게 더 이상 누군가의 생명은 중요하지 않다.


맥베스와 마크와 차이는 결국 살인이라는 행위 후에 (그 행위에 정당성이 있었든 없었든) 죄책감을 느꼈는가 혹은 희열을 느꼈는가로 정리할 수 있다.


마크가 장군을 죽인 것은 정당방위에 가까운 행동이었고 순간의 사고였다. 때문에 그는 사고를 스스로 합리화하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여길 필요가 있었다. 누구보다 정의로운 군인이었으니.

허나 마크는 본인의 행동을 합리화 하다 못해 ‘옳다’고 믿게 됐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그렇게 비난하던-작전 지도 위에 홍차 잔을 올려놓고 티타임을 즐기며 전쟁을 성과 축적의 수단으로 여기는-지휘관들의 모습마저 받아들이게 된 것은 아닐까.


스크린샷 2018-06-05 오후 3.28.43.png 2015년 우리나라에서 뮤지컬로 공연되기도 했던 데스노트_출처: 씨제스 유투브 채널(https://youtu.be/U7pt9K5878o)


어쩌면 마크는 맥베스가 아니라 라이토와 더 닮아있다. 데스노트를 이용해 범죄자를 처단하며 정의를 실현한다는 명분 하에 개인의 욕심을 대입하고, 악인 처단을 넘어 살인을 ‘도구’로 삼은 라이토. 그와 다르지 않은 마크. ‘그들’의 욕심은 결국 죽음이라는 파국을 가져왔다.


죄의식이 불안을, 불안이 집착과 광기를 가져온 맥베스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된 권력으로부터의 희열, 그에 대한 집착과 광기를 보여준 마크. 그리고 라이토. 만일 이 극이 영국 작가의 작품이 아니라 일본 작가의 작품이었다면 어쩌면 ‘벙커 트릴로지-데스노트’라는 부제가 붙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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