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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잇독 Dec 17. 2019

사람은 왜 암에 걸릴까

운이 나빠서?

질병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 질병과 고통은 일맥상통한다. 세월이 지날수록, 의학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평균 수명은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질병의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중 우리를 가장 두렵게 하는, 현대의학의 가장 큰 적은 단연 암이라 할 수 있다.


암은 생명과 직결된다. 생존율이란 단어가 암의 등 뒤를 바짝 따라다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암에 대해 점점 익숙해지고 있지만, 그만큼 암을 우리의 삶에서 완전히 제거해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깊숙이 들여다보면 인간이 암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이 실상 별로 없다. 암이란 거대한 실체 앞에 인간은 무력하고 연약한 세포의 혼합물로 전락한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본인이나 가족의 암으로 고통받고 있다. 고단한 일상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지인 또는 연예인들의 암에 걸린 소식을 심심치 않게 접한다. 안타깝게도 최근엔 전 국민의 심장을 뜨겁게 했던  2002 월드컵의 주역 유상철 감독의 췌장암 소식을 들어야만 했다.


가끔 치료반응이 좋거나 완치가 되어 방송에 복귀하는 연예인들을 통해, 우리는 암이 치료가 될 수 있다는 희망적인 소식도 접하곤 한다.


얼마 전 소식을 알린 허지웅 작가 및 방송인이 대표적이다. 약 1년 전 악성림프종을 진단받은 후 항암치료를 마치고 치료반응이 좋아 방송에 복귀한 반가운 소식이었다. 물론 완치 판정을 받으려면 5년 동안 재발하지 않아야 한다는 기준이 만족되어야 한다.


90년대를 풍미한 무협만화 [용비불패]의 류기운 작가는 2015년부터 [용비불패]를 뛰어넘을 역작 [고수]라는 웹툰을 연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2018년 12월을 기준으로 휴재를 해야만 했는데, 허지웅 작가와 같이 악성림프종을 진단받았기 때문이었다. 약 1년이 지난 2019년 12월 16일. [고수] 연재를 복귀한다는 소식으로 근황을 알린 류기운 작가는 다행히도 그의 건강이 많이 회복되어 정상 생활에 복귀해도 좋다는 소견을 받았다고 전했다. 허지웅 작가와 마찬가지로 향후 4년 동안은 지속적인 검사를 통해 재발이 되지 않아야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다.


이 글을 쓰며 잠시 검색을 해보니,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여러 명의 연예인이 암에 걸렸다는 것을 기사를 통해 알게 된다.


혹시나 직, 간접적으로 암이란 질병을 경험한 사람이 아니라면, 연예인들의 암 완치나 방송 복귀 소식을 접하고는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겠다.


"역시 의학은 힘은 대단해. 이제 암도 거의 정복되었네"
"연예인들 보니 치료 잘되는 것 같은데"
"조기발견만 하면 웬만하면 다 고칠 수 있는 것 같은데, 정기검진 꾸준히 잘하면 되겠네"


라며 암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닐까 우려되기도 한다.


의학의 뛰어난 발전으로 과거에 비해 암의 조기발견과 진단율이 올라간 것은 사실이다. 치료율도 많이 증가했다. 하지만, 여전히 현대의학은 암과의 싸움에서 승기를 잡지 못하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대체 암은 왜 걸릴까.

흔히 우리는 유전 또는 환경적 요인 때문이라고 두리뭉실하게 말한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가족 및 친척 아무도 암에 안 걸렸어도 나는 암에 걸릴 수 있다.

아무리 술, 담배를 안 하고, 유기농 음식을 먹고, 꾸준히 운동하고 깨끗한 자연환경에 살아도 암에 걸릴 수 있다.

이는 유전과 환경적 요인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요인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만약 이 요인을 단순히 "운"이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몇 년  유명한 과학잡지 싸이언스 (Science)는  편의 논문을 게재하며, 암이 '운이 나빠서 걸린다'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The Bad Luck of Cancer


라는 표현과 함께 말이다 [1,2].



이 이론을 처음 주장한 토마세티 박사는 2015년 싸이언스에 첫 논문을 발표하고 의과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3]. BBC 등 수많은 일반 언론과 과학계에서 이 문제를 다루며 논란을 일으켰고 비난도 일었다. 하지만 2년 뒤인 2017년, 토마세티 박사는 더 많은 데이터와 함께 한번 더 자신의 이론을 검증한 논문을 싸이언스에 출판한다 [4].


이 주장을 좀 더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1) 위에 언급한 "유전"과 "환경적" 요인으로 발생하는 암은 전체의 약 1/3 정도일 뿐이며

(2) 나머지 2/3 (약 66%)의 암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가 자연적으로 분열하는 동안 우연히 발생한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축적되어서 발생한다

라는 것이다.


좀 더 쉽게 얘기하면,

우리 몸의 세포는 일생동안 새로 생기고 죽는 일을 반복한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약 40-60조 개의 세포들 중 이러한 작업을 더 자주 수행하는 세포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피부 세포, 혈액세포, 장상피 세포와 같은 세포들이다. 우리 몸을 건강하고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세포들이다.


피부는 매일 각질을 발생시키고, 상처가 나면 재생을 시키고, 몸 전체를 보호한다. 혈액세포는 끊임없이 피를 만들고, 면역세포를 만들어 낸다. 위, 소장, 대장 같은 기관에서는 매일 먹는 음식물의 소화를 위해 세포가 만들어지고 죽고 재 공급된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을 끊임없이 하기 위해 필수적인 세포가 바로 각 장기에 분포하는 "줄기세포"이다.


이 줄기세포가 많이 분포하고 활동을 활발히 하는 기관일수록,

세포분열이 활발하고 확률적으로 돌연변이가 많이 발생한다.


대부분의 경우, 소수의 돌연변이는 설령 발생하더라도 암에 걸릴 가능성이 낮지만


돌연변이의 축적이 계속되다 보면,

어느 순간 암이 발생하는 시점이 온다.


이것이 현대 과학이 말하는 암의 발생에 대한 설명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저명한 3대 대표 과학잡지 중 하나인 싸이언스에서 말하는 내용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 논문 직후 네이처에서는 보란 듯이 환경적 요인의 중요성에 대해 다루는 논문을 게재했다는 것인데, 어찌 보면 당연한 과학적 검증의 과정이다)


물론 이 "Bad Luck" 이론은 전체 암의 약 2/3에 해당하는 경우이다.


유해화학물질이나 세균 및 바이러스 (담배, 석면, 자외선, 헬리코박터균등)에 의해 암이 발생되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이를 환경적 요인이라고 한다. 유전적으로 발생하는 암도 존재한다.  

하지만 전체 암의 발생률을 고려할 때 암과의 연관관계가 통계적으로 밝혀진 물질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과학에서 말하는 암에 대해 아주 중요한 문장이 있다.


암은 하나의 질병이 아니다.
Cancer is not a single disease.


암이라 해도 발생 부위에 따라 다 같은 암이 아니고 (위암, 간암, 폐암, 대장암, 혈액암 등)

같은 부위에 발생해도 같은 암이 아니며,

분자생물학적 특징이 유사해도 암은 개별적 행동을 보일 수 있다.


요즘 펜벤다졸이라는 약물이 한국에 유행이다. 획기적인 기적의 항암제로 온/오프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 약물은 동물 구충제 (내부기생충 치료제)로 쓰이는데 특히 강아지 구충제로 일반인들에게 알려져 있다.


성분명: 펜벤다졸 Fenbendazol

브랜드명: 파나쿠어 C (Panacur-c)


요즘 한국에서는 이 약물이 거의 품절 상태로, 구하는 것 자체가 하늘에 별따기라고 한다. 그래서 해외직구를 통해 사람들이 구입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통관에 걸려서 어렵다고 한다.


먼저 이와 관련된 한국의 법에 대해 짚어보면,


사람이 복용하기 위해 한국에서 파나쿠어를 구입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이유는,


1. 동물용으로만 허가가 난 제품이기에
2. 동물병원에서 수의사에게 "동물"이 진료를 받고
3. 수의사의 처방전을 받아야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집에 반려견을 키우는 경우, 반려견을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서 회충, 십이지장충, 편충, 촌충 등의 기생충을 없애기 위한 목적으로 수의사가 처방을 해주지 않으면 이 약을 구입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미 여러 가지 루트를 통해 이 약품이 판매되었고, 현행법상 불법이긴 하지만, 처벌로 이어진 소식은 아직 접하지 못했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아마존이나 월마트 등에서 처방전 없이 구입이 가능하다).


지난여름 어떤 계기인지 모르지만 미국의 한 유튜브 영상이 한국에 번역되면서 이 약품이 관심을 얻기 시작했고, 놀라운 속도로 온라인 상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열기는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는 듯하다.


더 이상 아무 치료법이 없는 말기 암환자들에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일 테고, 펜벤다졸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암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새삼 체감하게 된다.


펜벤다졸 사건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영상 말미에 다음과 같은 주장이 제기되고, 이를 믿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는 것이다.


제약회사는 이미 펜벤다졸이 암을 치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싸구려 개 구충제를 항암제로 사용하면 제약회사가 돈을 벌지 못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펜벤다졸의 항암효과를 숨기고 있으며, 항암제로 판매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더 비싼 항암제를 팔아서 이윤을 극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음모론은 분야를 막론하고 존재한다. 하지만 해당 분야에 실제 종사하는 사람에게 음모론의 효력은 미미하다. 매일 같이 암을 대하고, 연구하며 실험실과 병원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수도 없이 존재한다. 암 관련 논문을 검색해 보면 전 세계적으로 1년에 약 20만 건, 하루에도 약 500건 이상의 논문이 출판된다.


제약회사 음모론의 결정권자들 중에는 최소 몇 명 (아니면 상당수가) 그의 사랑하는 가족을 잃거나 본인이 암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음모론이 사실이라면 그 사람들은 남몰래 펜벤다졸을 먹고 암을 치료했을까? 그리고 그 사실을 철저하게 숨기고 살고 있을까?


펜벤다졸이 정말 획기적으로 암을 치료한다면 누군가는 분명히 약으로 만들려고 뛰어들었을 테고, 떼돈을 벌고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람 중에 한 명이 되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그런 사람이 나온다면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인류의 영웅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암은 하나의 질병이 아니다 (Cancer is not a single disease).


펜벤다졸이란 약 하나로 암을 치유할 수 있을 확률은 지극히 낮다. 보조요법으로라도 뛰어난 효과가 있음이 입증되었다면 어떤 형태로든 임상에 사용될 것이다. 설령 내가 제약회사 의사 결정권자라 하더라도 선뜻 대규모 투자를 시행하지 않을 것이다. 기초과학 결과, 동물 실험, 전임상 결과, 안전성 평가 등 복잡하고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한 물질이 이미 수없이 존재하지만, 최종적으로 환자에게 쓰일 만큼 암 치료에 획기적인 약물이 개발되는 일은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기적은 존재한다. 하지만 의학 연구는 기적을 근거로 수행되지 않는다.


4기 췌장암의 5년 생존율은 불과 1-2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최소한 지금까지의 확인된 자료로만 본다면 말이다. 반대로 말하면 1%의 기적도 동시에 존재한다. 그래서 한 인간으로서의 나는 1%의 기적으로 말기 암환자가 치료되길 바란다.  


하지만, 현대의 발달한 과학, 수학, 통계학은 무자비하게 99%의 비극을 예측한다. 그것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요인이다.

 

*지금도 암으로 고통받고 있는 모든 환자분들과 가족 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힘든 치료의 과정을 잘 견디시고 좋은 치료의 결과가 있길 기도드립니다.  


참고문헌

1. https://science.sciencemag.org/content/347/6217/12 

2. https://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most-cancer-cases-arise-from-bad-luck/

3. Tomasetti C, Vogelstein B. Cancer etiology. Variation in cancer risk among tissues can be explained by the number of stem cell divisions. Science. 2015 Jan 2;347(6217):78-81. doi: 10.1126/science.1260825. 

4. Tomasetti C, Li L, Vogelstein B. Stem cell divisions, somatic mutations, cancer etiology, and cancer prevention. Science. 2017 Mar 24;355(6331):1330-1334. doi: 10.1126/science.aaf9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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