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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이병현 Dec 19. 2022

‘뭔가 특별한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환상의 롱테이크-쑈, <1917>

롱테이크의 두 가지 계보

얼마 전 빌리 와일더의 <하오의 연정>을 봤다. 이 작품은 별로 특출난 데가 없는 작품이다. 두 주연배우의 나이차이가 서른 살 가까이 난다는 걸 제외하면 극히 평범한 로맨스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주말 밤에 시간이나 떼울 겸 OTT 서비스를 통해 튼 영화였기에 처음엔 튀김을 씹고 와인을 들이키며 머리를 텅 비우고 보고 있었다. 집중하기 시작한 건 영화가 시작된 지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사립탐정인 주인공의 아버지가 독백을 하며 파리라는 도시를 소개하는 도입부였다. 여기서 몹시 인상적인(?) 롱테이크 장면이 하나 나온다.



처음에 카메라는 파리 도시의 풍경을 보여준다. 그런데 뒤로 물러나자 이것이 사실 도시 전경을 직접 찍은 것이 아니라 도시엽서 용도의 풍경사진이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곧이어 오른쪽 화면에서 화가, 혹은 사진가가 등장하고, 카메라가 왼쪽으로 패닝하자 대사에 맞게 연인이 한 쌍 나온다. 익살맞은 대사와 함께 거리청소차의 물줄기가 카메라 앞까지 다가와 연인에게 물을 뿌리지만, 연인은 개의치 않는다.


여기서 등장하는 연인은 그저 엑스트라에 불과하고, 이 장면은 서사적으로 중요한 장면도 아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비롯해 이어지는 모든 장면에서 카메라는 아주 간단한 세팅을 활용해, 그저 패닝 하나만으로 필요한 모든 정보와 유머까지 전달하는데 성공한다. 사진가, 청소차 등의 움직임이 더해져 전혀 지루하지도 않다. 클로즈업부터 미디엄샷, 그리고 롱샷까지, 구도도 세 번이나 변경되기에 지루할 틈이 없다.


이 모든 과정이 효율적이다. 그리고 물론 1:02~1:34까지, 무려 32초나 이어지는 롱테이크이기도 하다. 헐리우드식의 데쿠파주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이 당시 거의 모든 ‘고전 할리웃 영화’의 롱테이크들이 비가시편집에 기반하고 있었다. 아니, 롱테이크는 그저 컨티뉴이티를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할 뿐 별로 이름 붙여질 만한 기법도 아니었다는 말도 가능할 것이다.


영화 관련 채널 중에서는 이례적인 187만명의 구독자와 총 조회수 92,052,276회를 기록한 채널인 Every Frame a Painting은 조회수 2,256,362회를 기록한 (일종의 오디오-비주얼 크리틱) 영상 <The Spielberg Oner: https://youtu.be/8q4X2vDRfRk>에서 스필버그를 중심으로 현대 영화의 ‘롱테이크’를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현대영화에서 고전영화의 위와 같은 롱테이크 기술은 실전된 지 오래이고, 그나마 남아있는 롱테이크 기술의 전수자들도 두 가지 계보로 나뉘어 있다. 하나는 위와 같은 ‘고전적인 롱테이크’를 지향하는 스필버그와 같은 감독들이고, 또 하나는 전혀 다른 계보를 지향하는 엠마누엘 루벳츠키(<칠드런 오브 맨>, <그래비티>, <버드맨> 등), 로저 디킨스(<1917> 등)와 같은 (촬영)감독이다. 채널에 따르면 후자의 계보는 오슨 웰스 작 <악의 손길>의 도입부, 혹은 히치콕 작 <로프> 등을 그 시발점으로 한다.


“하지만 ‘로프’와 ‘악의 손길’을 시작으로 워너(=롱테이크)는 감독들의 명함이 되었어요. 관객은 눈치를 챘고 평론가들과 영화학도들은 이에 열광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50년 동안 이는 남보다 한 수 앞서려는 경쟁 같은 게 됐죠.”
(위 영상, 3:15부터)


여기서 “관객은 눈치를 챘고”라는 표현이 나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관객이 눈치를 챈 순간부터 이미 이것은 고전적인 법칙을 위반하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계보가 탄생한 순간이다.


가시적/과시적 롱테이크

<1917>은 위의 두 가지 계보 중 어디에 속할까?


먼저 분류작업을 명확히 해두는 편이 좋겠다. 고전적 롱테이크인 전자가 ‘The Spielberg Oner’로 명명될 수 있다면, 후자에는 위 채널도 딱히 명칭을 붙이지 않았다. 여기서 나는 임시적으로 두 번째 롱테이크의 계보를 ‘가시적(/과시적) 롱테이크’로 부르는 것이 어떨까 한다.


이 두 번째 계보가 오슨 웰즈와 히치콕에게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잘 알려졌다시피 두 사람은 시스템 안에서 일하면서도 그 시스템에 균열을 내는 작업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를테면 “히치콕적인 차원”(크림프, 「사진과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과 사진』, 321쪽)과 같은 표현이 수사학적인 은유의 지위에 오른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겠다. 이러한 “히치콕적인 차원”을 열기 위해서는 당대를 지배했던 헤게모니인 ‘비가시편집’에 대항할 만한 무언가가 반드시 필요했고, 이에 따른 수단으로 호출된 롱테이크는 그저 당연한 기술에서 예술적인 인장으로 위상이 높아졌던 것이다.


<1917>의 롱테이크는 명백히 가시적 롱테이크의 계보에 속한다. 나는 처음에 영화를 보고 이것이 너무나 명백한 것이라 그다지 해명할 필요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씨네21과 KMDB에 올라온 세 편의 리뷰를 읽은 뒤, 이를 반드시 해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각 김소희, 송경원, 정지연 평론가가 쓴 글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고전영화 시기 롱테이크는 물리적 한계로 인해 오직 움직이지 않는 고정숏 내에서만 가능했으나, <1917>은 무빙 이미지의 연속으로 극단적인 롱테이크를 실현한다."

“이 영화는 과연 21세기적 엔터테인먼트 체험으로 관객을 유도하는가. 도리어 시각에 매몰된 고전적 관람 경험으로 관객을 이끄는 쪽에 가깝지 않은가.”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4900


“<1917>의 매 장면은 컨베이어벨트 위 정돈된 부품처럼 매끄럽게 조립되고 연결되어 빈틈이라곤 찾기 어렵지만 그건 완벽한 영화 기계의 구현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결국 영화 내부를 아무리 뒤져봐도 롱테이크의 필연성은 발견하기 어려웠다.”

"전자가 (초기 영화가 추구했던) 영화적 체험을 목표로 하는 반면 후자는 (관객의 분리를 전제로 한) 게임, 혹은 마술쇼의 리얼리티를 추구한다."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5147


“폭격을 막기 위한 지령을 들고 목적지까지 질주하는 병사의 시간을 추적하는 이 작품이 구사하는 카메라 워크는 이미 이냐리투 감독이 2014년, 뛰어난 촬영감독 엠마누엘 루벳츠키와 함께 선보였던 <버드맨>의 아류처럼 보이며, 전쟁의 불모함과 광기, 병사들에 대한 연민과 공포는 스탠리 큐브릭의 걸작 <영광의 길>에서 선보인 참호전의 잔혹함과 기만성을 통렬하게 성찰했던 것에 전혀 가닿지 못한다.”

https://www.kmdb.or.kr/story/9/5587


이 리뷰들엔 얼마간 혼동이 있다. 먼저 이 점을 언급해두고 싶은데, 앞서 말했다시피 이러한 가시적 롱테이크는 21세기에 새롭게 탄생한 기법이 아니다. “고전영화 시기”, 혹은 “초기 영화”에까지 이르는 계보가 있는 기법이며, 이 기법을 사용한 영화를 그 자체로 21세기라는 ‘당대성’과 연관지을 만한 근거로 성립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둘째로 이 기법은 롱테이크의 첫 번째 계보, 즉 ‘고전적(비가시적) 롱테이크’와는 구분되는 것으로, 처음부터 그것과는 대척점에서 완전히 반대의 지향점(‘가시성’)을 갖고 자라난 기법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이 영화는 당연하게도 ‘21세기적 엔터테인먼트’와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으며, 반대로 ‘롱테이크의 필연성’은 오슨 웰즈나 히치콕에게도 딱히 없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아류를 굳이 따지고 들자면 <버드맨>이 아니라 <로프>나 <악의 손길>이 언급되어야 할 것이며, 사실상 이런 식으로 ‘원조 국밥집’을 가리자면 모든 ‘클로즈업’은 릴리안 기쉬가 부활하기 전까지는 금지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당연하지만 그런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하는 사람은 영화계에 아무도 없다.

<1917>이 하고 있는 것은 ‘고전영화’의 관람 경험으로 돌아가려는 헛된 시도도 아니고, 어떤 필연성을 지닌 ‘21세기 영화’의 게임/마술쇼적 리얼리티의 추구도 아닌, 그저 대중 오락영화다운 ‘차력쇼’에 불과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어디까지나 영화적인 ‘차력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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