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들어 봤는데, 꽤나 잘 돌아간다
중학생 때였을 것이다. 어느 학년 어느 학기, 기말고사가 마무리되고서 방학만을 기다리고 있던 우리들에게 각 과목의 선생님들은 수업시간 때면 저마다 준비해 온 영화나 특정 영상을 틀어주며 수업 시간 동안 우리들이 무료하지 않도록 해주었다. 그 기간만큼은 서로의 합의 하에 선생과 학생이라는 신분을 내려놓고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저마다 시간을 보냈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은 자신이 준비해 온 영상을 우리들과 함께 시청하기도 했지만, 대개 본인만의 할 일을 한다거나 우리에게 조용히 하라는 당부를 남기고서 교실 밖으로 나가 수업 시간의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릴 때 돌아오곤 했다. 아무래도 좋았다. 일 년 동안의 모든 시험을 마친 학생에게 학교는 놀이터였으며, 수업 시간은 '자유 시간'이라는 단어와 맞바꾸어도 결코 어색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 시기만큼은 정말로 그랬다. 인생의 나날이 수능과 가까워지면서 그와 같은 낭만이 점차 흩어져 가기는 했지만, 그 시절의 여유로운 추억만큼은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떠올릴 때마다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요즈음의 학교도 그때와 같으려나? 유튜브도 활성화되어 있지 않았을뿐더러 스마트폰도 나오기 전이었던 시절이라 선생님들이 준비해 오는 영상이나 영화들이 참으로 흥미진진했었지만, 넷플릭스, 왓챠, 유튜브가 만연해 있는 지금은 시험 기간이 끝나고서 방학 전까지 학생들이 수업 시간을 어떤 식으로 흘려보내고 있을지 도통 짐작이 가질 않는다. 그 시절 그 낭만은 어떤 식으로 변모해 있을까- 문득 궁금해지는 밤이다.
갑자기 뜬금없이 그 시절 이야기를 왜 하느냐 하면, 그 당시 과학 선생님(그 선생님이 담당한 과목이 정말로 과학이었는지 지금의 기억으로는 확실하지는 않지만)이 틀어주셨던 '시크릿' DVD 영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그 영상에는 다소 미신적이면서 신비로운 내용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우리가 삶 속에서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서 이루기 위해 그 목표를 구체화해 나간다면 온 우주가 우리를 도와줄 것이라는, 좀처럼 믿기 힘든 내용이었다. 한편으로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허무맹랑한 이야기라 느끼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류의 엄청난 비밀을 알려주듯이 읊어대는 영상의 내레이션에 압도되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영상은 사람들 사이에서 꽤나 유행했었고, 그 영상의 내용은 이후에 책으로도 출간되었다고 한다. 여러 자기 계발서에서 흔하게 다루곤 하는 '자기 암시'의 원조격이랄까. 아무튼, 그때 당시 어린 마음으로 봤을 때는 충격이 상당했었다. 분명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헛소리인 것처럼 느껴졌지만, 어딘가 묘한 설득력도 지니고 있는 메시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뚜렷한 성취랄 것도 없었던 시기이긴 했지만, 학교 공부를 해 나가면서 스스로 숱한 자기 암시를 불어넣었던 경험은 있었기에 어느 정도는 고개를 끄덕일 만한 부분들이 분명히 있기도 했다. 이를테면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심리적 현상도 있지 않은가. 스스로를 대상으로 심리적 구체화를 거듭하다 보면 정말로 그러한 뜻을 성취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이 세상에서 마냥 거짓부렁으로 치부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인생은 언제나 필요한 순간에 생각지도 못했던 방법으로 적절한 해답을 제시해 주곤 한다.
원하는 모든 것들을 구체화하는 것만으로 기적을 이루어낼 수 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내 경험을 토대로 위와 같은 문장 정도로 인생을 정리해 볼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료한 삶 속에 어떤 방점을 찍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그림도 미리 그려보기도 하고 땀과 눈물도 흘려가며 간절한 마음을 담아야 하는 법이니까.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쳐 신비주의를 뒤집어쓴다거나 지나친 현실에만 몰두한 나머지 풀이 죽어 허무주의에 이르러서는 안 된다. 어느 정도의 현실적인 노력과 어떤 신비주의적인 간절함이 적절히 배합되면, 인생은 마땅히 우리를 이끌어 줄 것이라 믿고 있다. 지금까지 내 삶 속에서 나름의 성취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 모두 그런 식으로 내 삶 속에서 펼쳐져 왔었다는 사실은 결코 놀랍지 않다.
정말이지 즉흥적이었고, 아무런 대책도 없었다고 수식할 만한 군 입대부터 시작해서 사회에 나가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던 경험 속에서도, 자전거 여행을 떠났을 때에도, 일본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났을 때에도, 뒤늦게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수능 시험을 치렀을 때에도, 경찰 공무원 시험을 치를 때에도, 그리고 어느 시점에서 사랑을 배울 수 있도록 했던 수많은 인연들을 마주했을 때에도. 인생은 나의 의지와 노력을 어느 정도 참고해 주었고,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길에 이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었다. 그 결과가 현재의 나라는 인격이고, 나는 제대로 정착한 듯한 지금의 내 삶에 상당한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봐도 전혀 안정적이지 못했던 내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깨지고 부딪히는 가운데 내 나름의 안정을 거머쥘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경험들 속에서 나는 나의 흥미와 직관으로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갖지 못해 사회의 시스템(물론 그것이 정말로 잘못되었을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이나 환경만을 탓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과 노력, 그리고 방향성으로부터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어쨌거나 어떤 방향성을 가진 채로 꾸준히 나아가다 보면 길은 반드시 그 모습을 우리 앞에 드러낸다고, 지금의 나로서는 굳게 믿을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왔다.
내 지난 백수 생활 중, 한창 글을 미친 듯이 써 내려가면서 부족한 독서량에 대한 문제를 고심하고 있던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읽어 나가는 행위에서만 유독 게으름이 잔뜩 흘러나와 좀처럼 독서가 진전되지 않았다. 특히나 그 당시에는 하나의 모순에 사로잡혀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소설과 같은 쉬운 문장들은 말 그대로 쉬이 읽어갈 수 있었지만, 내가 흥미를 가지고서 읽고 싶어 했던 어려운 철학이나 정신분석학과 관련된 분야를 읽어나가는 데에는 영 시원치가 않았다. 2024년에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아들러 심리학 입문>과 함께 보내기도 했었다. 그리 많은 분량을 담고 있는 서적이 아니었음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데에 무려 7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으니, 나로서는 답답한 심정이었다. 앞선 글에서 말했듯 나는 백수 생활을 반년 정도 해 나간 끝에 일상 통제의 필요성을 느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부분이 바로 독서였다. 어떤 식으로든 나의 일상 속에 '독서'라는 일과를 억지로라도 욱여넣어야겠다고 다짐했던 그 시기에, 인생은 나에게 아주 적절한 수단을 일러주었다.
퇴사 이후에도 간간이 연락하며 술잔을 기울였던 전 직장 동기가 한 명 있었다. 불어불문학과를 전공했던, 나보다 세 살이 많은 이 형과는 평소에도 음주와 함께 여러 철학적 담론들, 그리고 사랑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이어가곤 했다. 24년 11월의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서로의 잔을 채워주며 최근에 있었던 연애 실패와 관련된 이야기, 그리고 아들러 철학과 칼 융의 분석 심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던 와중에 불현듯 나의 대작 상대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런 이야기, 많은 사람들이랑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철학과 인문학에 관련된 모임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그쪽에서 꺼내왔고, 나 역시도 최근에 독서와 관련된 고민을 안고 있다며, 많은 사람들과 책을 읽고 생각을 공유하는 장을 마련하면 좋을 것 같다며 동의를 표했다. 그렇게 머지않아 우리 둘은 독서, 인문학 모임을 만들게 되었다. 모임장은 당연히 네가 해야지. 그 형은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모임장이라는 직책에 앉혀 놓았다. 어쩐지 귀찮은 일을 떠넘겨 받은듯한 느낌은 들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초기에는 기대만큼 뜻대로 잘 풀리지 않았었다. 24년 11월 말에 이르러 우리 둘이 '소모임'이라는 앱을 통해 모임을 개설했지만 근 한 달 가까이 단 한 사람도 모임에 들어오지 않아 초조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시기도 있었다. 괜히 만들었나, 그냥 혼자서 이어나가야 하나, 아무래도 깊은 고민을 안고 사는 사람들보다는 단순한 유흥 목적으로 앱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은 게 아닐까. 이런저런 고심들을 우리끼리 주고받고 있는 사이 어느덧 연말이 다가왔고, 마침내 사람들이 하나둘 모임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르긴 몰라도,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가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고조되었던 외로움이 한몫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모임 안에서 새롭고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하며 나름의 성장을 일구어 나갈 수 있었고, 그 안에서 앞으로의 인생을 함께 짊어지고서 나아갈 소중한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모임에 대한 인식이 결코 좋지 않았던 인생의 지난날들이 한참이나 무색해질 정도로 나는 모임을 통해 꽤나 많은 것들을 배워나갔고, 또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삶 속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에는 장단이 있는 법. 기다려지는 만남도 있었는가 하면, 두 번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을 만큼 꺼려지는 만남도 더러 있었다. 어쨌거나 독서 모임은 그렇게 내 일상 속으로 서서히 스며들어 갔고, 그토록 원했던 독서라는 활동 역시도 내 삶 속에 완전히 정착시키는 데에 성공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