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와 만남에 대해 깊이 사색할 수 있었던 나날
니체는 말했다. 무리 지어 다니는 사람들 중에 제대로 된 인생을 사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나 역시도 그런 지점에 있어서는 니체의 주장에 적극 동의하는 편에 서서 살아왔다. 오직 고독에 파묻혀 자신에 대해 고찰해 나갈 때에 무엇이든 하나라도 더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젊은 날에 니체에 푹 빠지게 된 것은 그런 그의 철학적 의견들이 나와 일치했기 때문이었을까? 그게 아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 니체를 좋아하게 된 순간부터 그런 가르침을 떠받들어 오게 된 것일까? 어느 쪽이든 나는 지나치게 무리를 지어 다니는 사람들보다는 고독한 사람들에게 더 눈길이 가는 사람이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무리 짓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보다는 홀로 구석에 처박혀 씁쓸한 표정을 지은 채 술을 들이켜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더 즐거웠던 지난 경험들도 한참이나 중첩되면서 나의 견해를 뒷받침해 주고 있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모임'이라는 단어에 지극히 부정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왜 모임을 만들게 되었는가? 하면 그것은 지난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순전히 나의 이기심 때문이었다(문장을 쓰고 보니, 모두 나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모임을 만들어 가고 있을 것이란 당연한 사실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한마디로, 글을 쓰는 삶을 살아가는 와중에 독서에 대한 갈증을 느꼈고, 그 독서를 어떻게든 일상에 끌어들이기 위한 일환으로 만들게 된 모임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기실 처음부터 모임을 떠올렸던 것은 아니었지만, 우연한 기회에 지인으로부터 그런 식의 제안을 받게 되니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우리는 모임 내에서 지정하는 책을 토대로 인문학적 토론을 이루어 나가는 활동을 중심으로 모임의 시스템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무도 찾지 않는 텅 빈 공간이었던 곳이, 하나 둘 사람들의 온기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연말 분위기로 인한 영향이었는지, 만든 지 한 달 정도 지난 모임에 파리가 날리면 앱이 알아서 띄워주는 시스템 덕분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사람들의 발길은 미약하게나마 지속적으로 이어졌고 열 명 정도가 모였을 때 마침내 첫 정기 모임을 열게 되었다. 모임을 만든 지 꼭 한 달이 되는 시점이었다. 각자가 모임에 들어오게 된 계기나 동기가 무엇인지 함께 들어보고 앞으로 모임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지에 대해서 의논해 보기 위한 자리였다. 첫 모임 날, 나는 생각보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정상적이고(?) 멋진 사람들이 나름의 굳건한 의지를 마음에 담고서 모임에 나와 있는 현실은 나에게 진실로 경악스러웠다. 흔히들 떠올리는 모임의 부정적인 면면들은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남미새, 여미새와 같은 부류, 혹은 무작정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유흥을 위해 사람들과의 만남을 자처하는, 비교적 관계의 무게를 가벼이 여기는 사람들은 우리 모임 내에 없는 듯했다. 아직까지는 처음이라 낯설어서 그런가? 아니면, 인문학 모임이기 때문에 그런가? 그것도 아니라면 이 땅의 독서 모임들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정직하고 올바르게 운영되고 있는 건가? 역시, 경험해 보지 않고 무언가에 대해 판단을 내리기에 세상은 너무나 넓다.
한 달에 두 번, 둘째 주와 넷째 주 주말에 모여 책에 대한 감상과 의견을 주고받는 장을 만들어 보기로 구체적인 결정을 내렸다. 둘째 주 주말에는 모임원들의 추천을 통해 도서를 지정하여 읽고 오는 것으로, 넷째 주는 모임장인 내가 지정하는 도서를 읽고 오는 것으로. 모임의 큰 틀은 일사천리로 진행된 의논 끝에 빠르게 정해졌고, 서로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우리는 독서와 함께 토론을 병행해 나갈 수 있었다. 처음 모임을 만들었던 형과 의논하여 넷째 주에는 알베르 카뮈의 도서를 작품 세계관 순서에 맞게 독파해 나가기로 하면서 카뮈를 깊이 있게 파고들었으며, 카뮈 독파가 끝난 이후에는 <러셀의 서양 철학사>를 매달 지정된 범위만큼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지금은 근현대 실존주의 철학을 깊이 있게 파헤치기 위해 후설부터 시작해서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혼자였다면 감히 시도조차 못했을 법한 험난한 책들이 분명하다. 공동체의 강제와 모임장으로서의 책임감이 마땅히 나의 독서 습관을 다듬어 주었고, 바로 그런 부분이 내가 모임을 해 나가면서 스스로 얻게 된 가장 큰 보상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초기 3~4개월 정도에는 열 명 정도의 모임원들과 소소한 모임을 이어 나갔다. 열 명에서 많게는 열다섯 명 정도의 모임원이 모임에 들어와 있었고, 정기 모임을 할 때마다 참여하는 인원수는 다섯 명에서 열 명 정도. 그 이상을 넘어가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때때로 열 명 이상이 넘어가거나 할 때에는 불가피하게 두 그룹으로 나누어 모임을 진행하기도 했다. 어쨌든 초기에 모임원이 스무 명이 넘지 않았던 시절에는 별다른 통제나 규칙을 세우지 않아도 유연하게 대처해 나갈 수가 있었다. 독서 모임이라는 모임의 특성상 크게 튀는 인원이 없었기 때문에, 모임 이후에 간단하게 식사를 즐기거나 카페에서 못다 한 책 이야기를 한다거나, 혹은 간단하게 보드 게임을 즐긴다거나 하며 건전하고 평화로운 나날들을 보냈을 따름이다. 하지만, 모임 운영에 있어 본격적인 문제는 갑작스레 과도한 인원이 한꺼번에 들이닥쳤을 때 여실히 드러났다. 올해 여름의 어느 달이었을 것이다.
당시 모임 내에서 선정한 책(앤디 위어의 <프로젝트 헤일메리>와 조지 오웰의 <1984> 중간의 어느 시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이 유명한 탓이었는지, 이제 막 시작되는 더위에 사람들이 집에 틀어박혀 책을 읽고 싶은 욕구가 들끓었던 것이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열댓 명이 넘는 인원이 단기간에 모임으로 유입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운영진이라는 직함으로 나 포함 세 명 정도를 명목상 두었을 뿐 별다른 일처리를 하지 않았지만, 정기 모임을 진행할 때 열 명 이상의 인원이 참여하는 현상이 잦아지면서 그룹을 둘로 나누는 일이 많아지자 그룹장을 맡아야 했던 운영진들의 어깨가 조금씩 무거워지고 있었다. 게다가 다수의 인원이다 보니 이전처럼 즉흥적으로 식당과 카페를 찾아 들어가는 일은 꿈도 꿀 수 없을 지경이 되어버렸다. 어수선한 상황들이 반복되자 운영진들이 모든 인원들을 책임질 수가 없게 되었고, 때때로 몇몇의 인원들로 인해 분위기가 흐려지는 사소한 사건들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인원 유입은 지속되어 모임원 수가 가장 많았을 때에는 35명을 넘겼던 적도 있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나는 일단 운영진을 추가로 세 명 정도 더 모집했다. 모임의 모든 인원이 참여해도 각각 5명으로 구성된 그룹에 한 명씩 그룹장을 맡을 수 있을 정도로 운영진을 늘린 다음 세부적으로 직책을 부여했다. 모임 장소 예약, 식당 예약, 그리고 정기 모임 외의 모임을 관할하는 번개 담당까지. 거기에 더해 그저 명목상으로만 존재했던, 매달 거두어들였던 모임비를 조금 더 인상하여 유입되는 인원을 조절했다. 너무 적은 금액으로는 가벼운 목적으로 모임을 들락거리는 사람들을 차단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임 내 분위기를 흐리는 인원들에게 철퇴를 내리기 위해 강퇴 규정을 비롯하여 여러 규칙들도 추가적으로 제정했다. 세상의 모든 법률이 이런 식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었을까. 민주주의는 언제나 의견의 대립을 만들어내는구나. 그런 새삼스러운 깨달음 속에서 나름의 기틀을 잡아갔고, 우리 모임은 거센 파도를 잠깐의 흔들림 정도로 무사히 넘길 수가 있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모임을 운영한 지 1년이 된 시점이 되었다. 지난 11월 말에는 우리 모임의 1년을 기념하면서 일찍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송년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남은 모임비로 문화상품권 추첨을 하기도 했고, 올해 읽었던 책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평소에는 서로 나누지 못했던 인간적인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었다. 잠시 모임 운영과 인간관계에 권태를 느끼고 있던 차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좋은 에너지를 듬뿍 받으며 다시금 감사한 마음을 떠올릴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힘이 닿는 데까지 열심히 운영해 나갈 생각이다.
한 때 40명까지도 바라보았던 회원수는 현재 30명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으로 적당하게 유지되고 있다. 우리 모임은 시흥시 중앙도서관의 독서 동아리가 되기도 했으며, 정기 모임 이후에 모임 후기들을 소모임 앱과 네이버 카페에 차근차근 기록해 나가면서 보다 더 넓은 곳으로 뻗어나갈 발돋움을 꾸준히 해 나가고 있다. 적확히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서 이 커뮤니티를 이끌어 가고 있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어떤 가능성을 열어둔 채 그에 걸맞은 방향으로 운영해 나가고 있다. 결국 이 모임이 무엇으로 거듭나든 우리가 모임을 처음 만들었을 때의 취지와 목적에 맞게 책을 읽어나가면서 사람들과 철학적 담론을 주고받는 그 과정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지. 그런 믿음으로 모임원들과 함께 착실히 좋은 모임을 가꾸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
글의 초입부에도 언급했듯이 나는 모임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독서 습관을 일상 속에 강제로 욱여넣을 수 있었다는 점 이외에도 모임 속에서 몇몇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지금도 내 마음속 기저에는 결국 진정한 성장은 홀로 일구어 나가는 것이란 생각이 여전히 남아있다. 애초에 다른 사람들의 생각 따위는 나의 관심사로부터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기도 하다. 글을 써 나가는 데에는 나름의 고집과 강단이 필요하기에, 다른 사람들의 말에 지나치게 귀 기울이다 보면 재미없는 장광설만을 늘어놓는 하찮은 작가가 될지도 모르니 늘 경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달까. 뜻이 맞지 않는 여러 사람들과 어쩔 수 없이 부딪히면서 삶 속에 쓸데없는 피로를 양산하기도 했다는 점에서도 내 삶 속에서 모임이라는 시공간이 나에게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왜 내가 나 좋자고 만든 모임에서 고통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때때로 억울함에 몸부림쳤던 적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고통 없는 성장은 없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고독 속에서 성장해 나가는 것을 지향하고 그런 성장을 즐기는 성미를 지니고 있기에, 그와 같은 삶의 정확히 반대편에 존재하는 인생살이 역시도 학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삶에서 중요한 덕목은 중용과 균형이니까 말이지. 뜻하지 않게 규모가 커져버린 모임 속에서 나는 경청하는 자세를 배우고, 다양한 의견들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태도를 매일매일 배우면서 익혀 나가는 중이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조율하고 보다 나은 결론을 도출해 나가는 민주주의(홀로였다면 결코 실현하지 않았을)를 실험해 보고 있다는 점에서도 나에게는 색다른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늘 배우고 익히는 가운데 인생과 사랑에 대해 더욱더 풍부하게 배워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내가 모임 속에서 얻을 수 있었던 것들 가운데 독서 습관 다음으로 크게 느끼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단연코 '사람'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좋은 사람들', 그리고 '소중한 사람'. 직장이나 학교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들었던, 나와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을 모임을 통해 만나 교류할 수 있었고, 보다 성숙한 면모를 지닌 사람과 만나 사랑에 대해서도 그 어느 때보다 깊이 있게 배워 나갈 수가 있었다. 그 모든 기적 같은 일들이 내가 그리 달갑지 않게 바라봤던 모임 내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 아직까지 일정 부분은 믿기지 않기도 하다. 역시 세상은, 단편적인 시각으로만 살아가기엔 너무나 넓고도 넓다. 아직도 배워나갈 부분들이 많다는 점에서 나는 여전한 설렘을 가지고 오늘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