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일정한 출퇴근이라는 일정이 없더라도, 정해진 보수가 없더라도, 백수로서도 결코 소홀해서는 안 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건강.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이, 아니 생명체가 이 지구상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는 그 순간까지 늘 건강에 대해 염려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이 삶 너머 죽음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입장에서는, 일단 건강하게 살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 가장 중요한 기틀이 되는 것은 먹는 행위에 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잘 먹어야 한다. 정말로 잘 먹어야만 무슨 일이든 해 나갈 수 있는 인생이다. 비록 소득이 되는 그 어떠한 일도 하지 않는다 해도, 당장에 아무런 계획도 없다 해도 일단은 잘 먹으면서 내 체력을 최선의 컨디션으로 유지하는 것이 마땅히 백수로서의 사명이 아닐까. 내가 예측하지 못했던 재앙과도 같은 순간이 닥쳤을 때, 이를테면 내가 겪었던 것처럼 급작스러운 경제적 위기라든가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멀쩡한 사지를 끌고 노동 시장에라도 나가야 하니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잘 먹어줘야 한다. 나처럼 집에 얹혀사는 입장에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는 이 기본적인 영양 섭취를 위해 어느 정도 노동 시장에 발을 담그고 있어야 할는지도 모르겠다. 자취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정한 수입이 없다면, 그만한 지옥도 없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아마 나도 자취하는 입장에서 퇴사를 감행해야 했더라면 조금 더 깊은 고심을 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나는 어머니 명의의 집(그마저도 절반은 은행 집이지만)에서 밥을 열심히 축내고 있는 중이다. 누군가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 대책 없이 산다고 손가락질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어딘가로 날개를 활짝 편 채 날아가기 위해 잠시 웅크리며 에너지를 비축하고 있는 중이라고, 당당히 말하련다. 그렇다, 변명이다. 어차피 무언가 결과로 증명하기 전까지는 이런저런 이유들은 모두 변명이나 핑계가 될 뿐이니, 난 그저 그렇게 말할 따름이다. 언젠가는 마땅한 결과가 나의 모든 과거들을 정당화해 줄 것이리라. 정반합을 말했던 헤겔은 이런 나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해주지 않으려나.
잘 먹은 다음에는, 잘 자야 한다. 일정한 스케줄도 없고, 어디 일하러 나가는 것도 아닌데 대체 백수가 잠을 설칠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줄로 안다.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거기서 거기이듯 백수에게도 잠을 설칠 이유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잠을 설친다기보다는 너무 과하게 자거나 낮과 밤이 뒤바뀌는 생활로 몸을 갉아먹는 생활이 백수에게는 문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앞선 글에서도 말했듯 일정한 일상을 갖지 못한 삶은 마찬가지로 지옥을 살아가는 것과 같다. 우리의 몸은 진화론에 따른다면 오랜 세월 동안 진화를 거듭하며 해의 움직임과 일치된 생활에 최적화되어 있는 상태이다. 거기서부터 조금이라도 어긋난다면 각종 질병들이 우리 몸을 쉽게 정복해버리곤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부분들부터 우리가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세세한 몸의 부분 부분들까지 조금씩 갉아먹어 나갈 것이다. 실제로 잘못된 수면 습관으로 인해 백수가 된 뒤로 스트레스 가득했던 직장 생활을 할 때보다 한참은 더 나빠진 건강을 짊어지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나날을 경험했을 때도 분명 있었다. 대체 왜 인생은 건강해지는 것보다 앓는 몸이 되기 쉬운 메커니즘인 걸까. 겨우겨우 아침 9시 정도에 눈을 뜨는 습관을 길러냈다 하더라도, 그중에 단 하루라도 해가 중천에 이르러서야 눈을 뜬다거나 하면, 그날부터 다시 시계를 올바로 맞추는 데에도 며칠씩이나 걸리곤 했다. 늦게 일어난 만큼 늦게 잠을 청하게 되니 그런 관성에 의해 다음날 아침도 내 삶에서 마땅히 삭제가 되어버리기 일쑤인 나날들 속에서 나는 힘겹게 생을 살아내야 했다.
수면 패턴을 일정하게 바로잡기 위해서는, 내가 일찍이 실천했던 것처럼 일과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눈을 뜨고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 전날부터 일찍이 잠자리 준비를 마칠 수 있고, 적정 수준의 불안과 걱정으로 인해 아침에 강제적으로 눈을 뜨게 된다. 그렇게 마땅히 취침 전까지 에너지를 모두 소모한다면, 잠을 청하는 일도 그리 곤욕스럽지가 않을 것이다. 직장을 구한다거나 하는 대업(?)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일상 속에서 파고들 수 있는 행위를 하나 둘 일상에 욱여넣는다면 수면 문제는 생각보다 간단하게 해결할 수가 있다. 나 역시도 글쓰기나 독서와 같은 주활동 이외에 건강한 일상을 만들기 위해 꼭 넣은 루틴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운동, 사람들이 흔히 '헬스'라고 말하는 근력 운동이다.
잘 먹고 잘 자고 그다음은 '잘 싸고'가 아니라 운동?
아직까지 젊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잘 먹고 잘 자면 배변활동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편이다. 게다가 이 글을 통해서 배변에 대한 꿀팁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 잘 싸는 문제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으련다. 태생적으로 배변에 곤란을 겪지 않는 유전자를 타고난 탓에 그 분야에 있어서는 전혀 전문적이지 않기도 하니, 내가 이야기하는 팁들이 진정으로 꿀팁이 되지는 않을 것이기도 하고 말이지. 그럼에도 나의 배변 팁이 있다면, 잘 먹고 잘 잔 다음에 아침에 사과와 같은 식이섬유를 먹어주는 것이다. 그냥, 그렇다고.
기실, 내가 운동을 시작하게 된 시점은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2022년 4월이다. 당시 4기였던 폐암이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갔고, 우리 형제에게는 건강에 대한 경각심을 힘껏 불어넣어 주었다. 당시에는 형과 나 모두 경찰이라는 직업으로 직장 생활을 해 나가고 있었다. 밤과 낮이 바뀌는 교대 근무 속에서도,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시위 근무를 마치고서도 틈틈이 일상 속에 운동을 채워 넣으면서 나름대로 건강 유지에 힘썼다. 형은 여러 우여곡절 가운데서도 운동이라는 일상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건장한 체격을 만들어 나갔지만, 나는 생각보다 운동에 집중하지 못했었다.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한다면 역시나 지독하게 얽혔던 지난 연인과의 연애 때문이었다.
내 글에서 꾸준히 언급되곤 하는, 23년에 들어서 소개를 통해 만났던 전 연인은 내가 운동을 하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헬스장에서 다른 여자들을 쳐다보는 게 아닌지 의심이 된다는 이유와 하체가 두꺼워지는 게 보기 싫다는 이유(다른 부위에 비해 하체가 조금 더 쉽게 두꺼워지는 편이다)에서였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시흥에 사는 내가 김포에 사는 그녀를 만나러 다녔기 때문에 운동할 시간을 좀처럼 내기도 힘들었다. 잠시 틈이 생긴다 해도 그녀와의 지지고 볶는 연애 속에 지칠 대로 지쳐버린 몸과 마음을 이끌고 헬스장까지 가는 길은 너무나 멀고 험난하기도 했었다. 사실상 2023년 한 해 동안은 헬스장에 등록만 해놓은 상태로 거의 헬스장 출입을 하지 않았다. 그곳의 트레이너 분들께 용돈을 건네드린 것이나 다름이 없었던 셈이다. 하기야, 운동을 일상의 습관으로 만드는 일은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직장인에게도 버거운 일일진대, 그야말로 재앙 수준의 연애를 해 나가고 있는 와중에는 더더욱 이루어 낼 수 없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나에게 여러 인생의 교훈(?)을 안겨 주었던 그녀와의 연애가 퇴사와 함께 어느 정도 매듭지어진 것은 어찌 보면 나에게 천운과도 같았다. 퇴사 이후에도 잠깐 동안 그녀에게 시달렸던 시기를 떠올려 보면, 내 건강에 방해가 되었던 요소는 직장이 아니라 오히려 연애에 있었다는 사실을 아주 쉽게 알아차릴 수가 있으니 말이다.
퇴사하고 가장 좋았던 점들 가운데 빼먹을 수 없는 요소가 바로 꾸준한 운동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나는 다행히도 백수 생활 가운데서 글쓰기와 독서라는 원하는 활동을 찾아낼 수 있었지만, 그 모든 활동들의 기반과 기초가 되는 건강이 없었다면 그런 활동들을 계속해서 해 나갈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당장에 할 만한 일을 찾지 못했다고 해도 건강만큼은 제대로 대비해 두어야 하는 법이다. 경제적 수입도 없는 상태에서 시름시름 앓아눕기까지 한다면 그보다 서러운 인생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일단 잘 먹고 잘 자고 건강해야겠지. 또한 마땅히 고심하면서 열중하는 일과가 있다면 잠시 동안 머리를 식힐 시간 역시도 필요한 법이다. 때때로 글을 쓰다가 잘 이어지지 않을 때, 혹은 도무지 한 글자도 쓰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을 때에는 모든 고민을 내려놓고 운동 가방을 멘 채 헬스장으로 나서곤 한다. 머릿속을 텅 비운 채 정확한 부위에 자극이 오는지를 몸으로 느끼면서 호흡에 집중하고 있노라면 집 나간 글쓰기 열정이 다시 되돌아오곤 한다. 상쾌하게 운동을 마친 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나면 꽤나 맑은 정신으로 글쓰기를 이어갔던 경험들은 역시나 건강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법 아니겠는가?
백수에게도 건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