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하나, 퇴사 후 일 년이 지난 시점

여전히 근거 없는 여유가 있었던 올해 초

by 봉필


퇴사 후, 시간은 잠깐의 쉼도 없이 빠르게 흘러갔다. 만약 직장에 그대로 머물렀더라면 세월은 그보다 빨랐을까? 아니면 더 느렸을까? 그런 의미 없는 물음들 속에서도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을 따름이다. 어떤 때는 빠르게, 어떤 때는 느리게 그저 인생은 그렇게 흘러갈 뿐, 그와 같은 인생이라는 드넓은 바다에서 인간은 그저 멍하니 낚싯대를 드리운다거나 하염없이 그 파란 물결을 바라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스친다. 뚜렷한 계획도 없이 망망대해로 뛰쳐나온 내가 감당해야 했던 세월의 파도들은 적당한 수준으로 내 삶을 갉아먹었다. 너무 지나치지도 않고 너무 부족하지도 않게 말이지. 그 결과,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퇴사 직후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삶을 살아가는 내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거기에는 또한 슬픈 감정도 기쁜 감정도, 그렇다고 딱히 허무하다고 할 만한 감정조차도 남아있지 않았다. 1년이 흘렀구나. 그런 피상적인 감상만이 떠갈 뿐이었다.


퇴사할 당시에 작정하고 특정한 기간을 설정해 둔 것은 아니었지만, 어림잠아 2년 정도의 시간 안에는 무엇이든 이루어 내겠다는 막연한 다짐을 떠올리기는 했었다. 그 기간의 절반이라는 시간이 어떤 식으로든 흘러가 버렸다는 인지 정도를 했을 뿐, 어떤 특별한 기념비적인 날이라는 생각 따위의 신선한 발상을 하지는 않았다. 세세하게 훑어보면 나름의 굴곡들도 발견해 볼 수는 있었다. 퇴사 직후 경제적 행운이 뒤따라 주기도 했었고, 소중한 사람들과 아주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고, 지겨웠던 연애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고, 앞으로 죽을 때까지 해 나가야 할 일과 그런 일을 바탕으로 규칙적인 일상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뭐 하나 뚜렷하게 남들에게 내세울 만한 업적들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잘 살아내고 있다는 확신 정도는 할 만했던 1년이었던 셈이다. 퇴사를 감행하지 않았더라면, 그저 이전과 똑같은 1년을 직장 내에서 흘려보내고 있었을 것이 뻔했다는 면에서는 다행스럽기도 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도 아마 상상하기 힘들었겠지. 그렇게 생각해 보면 대책 없는 퇴사이긴 했지만, 나름대로 내 삶에서의 변곡점 역할은 톡톡히 해주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 나이를 만으로 따져 보았을 때, 서른에서 서른 하나가 된 시점이기도 했다. 마침 직장을 나왔던 작년 2월은 내 생일이 겹쳐져 있는 달이라 하나의 분기점으로 셈하기에도 참 편리한 시점이었다. 어린 시절에 한껏 낭만을 품었던 서른이라는 나이에, 꽤 괜찮은 이벤트를 하나 터뜨린 뒤로 살아온 지난 일 년은 정말로 낭만이었던가. 그 지점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감히 단언할 수가 없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에 지금의 이 시간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 때에는 좀 더 긍정적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어쨌거나 지난 세월을 부정적으로 바라볼 정도로 처참한 상황에 처해있지는 않기에, 조금 더 판단을 유보해도 괜찮겠다고 느낄 뿐이다. 그리고 그런 판단쯤 조금 뒤로 미룬다고 해서 우리네 인생이 당장에 어떻게 되지도 않는다. 오직 중요한 것은 지금 살아내고 있는 일상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라고.


경제적으로도 행운과 위기가 교차했던 작년 한 해였지만, 그럼에도 어떻게든 다시 제자리로 복구할 수가 있었던 퇴사 1주년이었다. 꾸역꾸역 투자 수익만으로 지난 직장에서의 1년 실수령액을 벌어들일 수가 있었다고. 사실 엄청난 수익의 극대화를 기대하고 꿈꿨던 작년이었지만, 인생은 좀처럼 나에게 순탄한 길을 쉽게 내어주지 않았다. 그래, 이래야 싸울 맛이 나지. 그저 그런 치기 어린 마음으로 다시 다가올 기회를 위해 좀 더 낮은 자세로 기다릴 따름이다. 작년의 우여곡절을 겪고 나니 돈으로 돈을 불려보겠다는 나의 야망이 조금은 사그라들기도 했다. 일찍이 그런 투자 활동보다 좀 더 가치 있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내 삶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했으니, 조금은 힘을 빼고 다른 일들에 집중하겠다는 전략 쪽으로 무게를 싣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일확천금의 꿈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말이지.


일상도 나름대로 탄탄히 갖추어져 있었다. 다른 누군가 나를 애써 통제하지 않아도 나 홀로 통제하고 움직이고 또 보상을 안겨주기도 하면서 당근과 채찍을 스스로에게 적절히 분배하며 살아갔다. 블로그에 매일 글을 써 올리는 행위도 나름대로 손에 익어갔고, 이곳 브런치 스토리에는 내 일대기를 세 달 동안 연재하여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그렇게 완성했던 나의 일대기는 꼼꼼히 퇴고를 하여 여기저기 잡다한 출판사들에 투고하기도 했었다. 결과적으로 서른 넘은 백수의 일대기 따위 출판하려 하는 곳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아무 데도 없었지만, 꽤 괜찮은 경험이었다는 생각이다. 언젠가 독자들도 만족하고 나도 만족하는 작품을 출판하고자 할 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경험이겠지, 뭐. 인생에 진정한 실패란 없다는 어느 현인의 말을 나는 지금까지도 믿고 있다. 오직 진정한 실패는 회한에 휩싸인 채 눈 감는 그 순간에 찾아올 따름이다. 그전까지, 그러니까 아직까지 살아있는 내가 지난날들의 실패를 실패로서 확정 지으며 운운하기에는 한참은 이르다는 생각이다. 모든 경험과 생각들이 밑바탕이 되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으니, 그 모든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글쓰기도, 일상도 안정되어 가는 만큼 독서와 그 활동을 바탕으로 한 모임 활동에도 재미를 붙여가던 시기였다. 이따금 누군가 퇴사를 후회하냐고 물어올 때면 그저 가볍게 웃음을 터뜨려 주기도 했다(이건 지금도 여전하다). 이 재미를 모르고 살았더라면 아마도 더 큰 후회를 했을 것이라고 감히 확신해 본다. 읽으면서 머리가 조여 오는 듯한 고통을 선사하는 난해한 책들을 독파해 나갈 때마다 나는 한층 더 우쭐해지기도 했고, 그런 지식과 지혜를 통해 지난 삶을 다시금 성찰하기도 했다. 카뮈의 <반항하는 인간> 속에서 나타내고 있는 정오의 철학에 깊이 감심하여 항상 양 극단의 일들 모두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결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멋진 삶을 살아내야겠다고 하루하루 다짐해 나가기도 했다. 철학에 관련된 이야기는 다른 챕터에서 따로 줄줄이 늘어놓아야겠다.


나를 한참이나 갉아먹었던 지독한 사랑을 마무리 지은 뒤에 몇 번인가 어설픈 인연들이 스쳐가기도 했고, 다시금 새로운 인연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제 머리도 클 만큼 커서 사랑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도가 터 있을 것이라 착각했던 오만한 나에게 인생은 제대로 철퇴 한 방을 내려주었다. 여전히 사랑의 갈래길 앞에서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심정으로 쉴 새 없이 휘청거리기 일쑤였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방황과 확신이라는 양극단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시계추인지도 모르겠다. 일찍이 쇼펜하우어가 고통과 권태를 극단에 놓은 비유를 하긴 했지만, 그보다 더 절망적인 모델이 내가 제시한 쪽일 거라는 건방진 생각을 해 본다. 원래 확신이란 희망을 얻었다가 빼앗긴 쪽의 좌절이 삶 속에서는 훨씬 더 큰 법이니까. 차라리 고통과 권태의 극단만을 오갔으면- 하고 바라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피투성이가 된 채 끌고 가던 사랑의 끈을 놓은 뒤에도 나는 사랑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며 몇몇 사람들에게 구애를 하기도 했고 반대로 받기도 했다. 다만, 여전히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상념을 다 지워버리지는 못했을 따름이다. 에리히 프롬은 오직 주는 행위의 사랑에 있어서 자신의 사랑이 향하는 대상이 어떠한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지만, 그 대상의 고유성을 진정으로 품을 수 없을 때에는 마땅히 도망쳐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러지 않으면 자기 파괴적인 생활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으며, 그로 인해 사랑은 물론이거니와 삶 자체가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고 본다. 순전히 내 경험으로부터 나온 깨달음이니, 나는 마땅히 사랑에 최선을 다하겠지만 앞으로도 그 대상의 고유성을 판단하는 일도 결코 게을리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런 기조를 굳혀가던 와중에, 지금까지와는 명확히 다르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멋지고 사랑스러운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프롬의 말과는 다르게, 대상은 역시나 중요했음을 깨우치게 해 준 사람.


결국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밀어붙인 끝에 좋은 인연과 조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난 좌절의 순간들에서 여성에 대한, 혹은 인간에 대한 실망과 절망만을 고스란히 가슴에 간직한 채였다면, 내 눈앞에 두고도 좋은 인연을 놓쳤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지난 사랑에 대한 상처와 고통에도 불구하고 삶과 사랑에 열정을 더하기 위해 지혜와 지식을 쌓아 나갔고, 일상을 가지런히 다듬어 갔으며, 그 분야에 대한 고찰을 끊임없이 이어나갔다. 지금 내 곁에 있는 그녀는, 그런 노력과 최선의 결실이면서, 내 사랑과 삶에 있어서는 은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와의 이야기는 정확히 퇴사한 지 1년이 지난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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