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한, 완성이 아닌 과정이겠지만
어릴 시절부터 줄곧, 나에게는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명이 하나 있었다. 내가 언제,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을 해 나가든 이 생에서 반드시 성취해 내야만 하는 것. 이 세상의 모든 낭만을 한 줄기로 이어주는 찬란한 빛, 소망, 그리고 열정. 그 이름은 바로 '사랑'이다. 다른 모든 것들에 미숙하더라도 이것 하나에 있어서만큼은 성숙할 수 있는 인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왔고, 또 그만큼 마땅히 노력해 왔으며, 결코 좌절하지 않는 굳센 심지로 고난과 역경을 버텨내며 살아왔다. 어느 것 하나 끈질기게 이어왔다고 내세울 만한 것들이 많지 않음에도, 나의 마음 한 편이 든든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내가 살아 있음을, 그리고 살아가야 함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사랑'에 이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삶과 사랑에 있어서 만큼은 그 누구보다 진심인 삶을 살아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있다.
대체 무슨 일을 하관데 사랑하지 않고 살아가오-
사랑하지 않는 삶은, 나에게 있어 살아가지 않는 삶과 같이 모순적인 말이다. 사람들이 흔히 우스갯소리로 내뱉곤 하는, 6.25. 전쟁통에도 아이는 계속해서 태어났다는 식의 말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우리는 사랑하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는 생명체라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가 삶의 목적으로 마땅히 가리키며 나아가야 할 방향 역시도 그곳에 있는 게 아닐까. 복잡한 삶 속에서 간결한 진리 하나 부여잡기 위한 나의 몸부림은, 끝끝내 사랑이라는 동아줄 하나를 부여잡는 데에까지 이르게 된 셈이다. 그리고, 나는 진정으로 그 가치에 우리 생의 모든 목적과 진리가 담겨 있음을 믿는다. 혹여 오해할까 덧붙이자면, 이 글은 결코 어느 특정 종교라든가 종교적 믿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내 삶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가 겪어 온 사랑을 굳이 굳이 쪼개고 나누어 분석해 본다면, 총 세 시기로 나누어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전반기는 순수하고 무지한 상태에서 이것저것 손에 잡히는 대로 다 입에 넣어보거나 손가락으로 쉴 새 없이 모든 것들을 쿡쿡 찔러보던 유아기와도 같은 시기였고, 중반기는 이성, 그러니까 여성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스스로와 타인의 간극을 조절하지 못하던 시기였다. 마지막으로 돌풍과도 같았던 한 사람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한 후반기는 마침내 관계 속에서의 나에 대해 알고, 상대방에 대해 잘 알게 된 상태에서 어떤 관계를 만들어나가야 할지 하나의 명확한 방향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사랑에 연습이 있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우리의 인생은 언제나 실전을 통해 배워나갈 수밖에 없으니 실패라는 경험을 온몸에 새기면서 사랑을 깨우쳐 가는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 보면 험난했지만, 결국 어느 정도 원하는 구간에 들어설 수 있어서 다행이었던 나의 지난 사랑을 줄줄이 읊어보도록 하겠다.
전반기는 말 그대로 황무지에 홀로 선 채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모래 폭풍 속에서 갈피를 전혀 잡지 못하던 시기였다. 첫걸음마를 떼는 시기가 누구에게나 있듯이, 사랑이라는 출발점 앞에 선 모두가 겪어나가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성인이 되고서 처음 발을 들였을 때의 막막함을 지금도 생생히 떠올릴 수가 있다. 이성에 눈을 뜬 것은 중학생 때였지만, 사랑을 현실로 끌어오기에는 다소 벅찬 시기였다. 앞으로 어떤 성인이 되어 어떤 일들을 해 나가야 할 지에 대해 지나치게 골몰하는 애늙은이였던 나는 그 흔한 학창 시절 로맨스를 현실에서 실현해 내지 못했었다. 당장 인생의 진중한 고심을 짊어지고서 어찌 또래 여자 아이들과의 소꿉장난에 관심을 가질 수가 있었겠는가. 몇몇 소녀들의 고백이 있기는 했지만, 그런 마음을 받아주기에 나는 한참이나 어리고 미숙했었다. 소녀시대나 원더걸스와 같은 걸그룹들의 성숙한 매력에 한 눈 팔려 또래 여자 아이들의 매력을 크게 느끼지 못했었다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본격적으로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 직업군인이 되었을 시기부터였다.
군대에 들어와 남자들만 지속적으로 마주하다 보니, 자연스레 소녀들의 향기가 그리워졌다. 어릴 적 동경했던 소녀시대 누나들의 나이와 비슷한 나이대에 접어들었으니, 내 또래 소녀들도 마땅히 성숙해져 사랑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껏 이성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이성과의 관계를 시작해야 할지 더없이 막막하기도 했지. 나는 우선 연락처에 저장되어 있던 여자 아이들에게 무작정 연락을 돌려 보았고, 그러다 우연히 초등학교 동창생과 연락이 닿아 첫 연애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한없이 어리고 미숙했던 스무 살의 행동과 생각이었으니 결코 관계에 있어 성공할 리는 만무했다. 나는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어째서 참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가슴 쓰린 상처를 움켜쥔 채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할 수 있었다. 가슴 아픈 첫 연애를 마무리 짓고서 일 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친한 친구로부터 두 번째 연인을 소개받아 말랑말랑한 연애 감정이라든가, 여자의 마음은 남자의 마음과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아주 조금은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로 몇몇의 인연들과 스쳐가듯이 100일을 채 넘기지 못하는 연애들을 반복해 나갔다. 어린 시절에 가졌던 연애나 사랑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환상이 현실 속에서 내가 사랑을 실천해 나가는 데에 명확한 장애물이 되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이런 건 진정한 사랑이 아니야. 다른 욕망들에 쉽게 휘둘린다거나 최선을 다하지 않고 망설이게 되는 건 그녀가 내 사랑의 대상으로서 부족하기 때문이야. 더 좋은 상대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스스로의 노력보다는 외부의 대상이나 환경을 탓하며 더 충만한 사랑을 갈구했었지. 어쨌거나 그런 모진 현실을 겪어 나가면서 차츰 참된 인간관계란 그 기간에 있어서도 일정 시기를 넘어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에 이르게 되었고, 그 부분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더해가기 시작했다.
중반기, 스스로에 대해 장기 연애가 불가능한 놈이지 않을까 하는 고심을 머릿속에 가득 채운 상태로, 여전히 영원한 사랑이라든가 첫눈에 반하는 극적인 연출을 기대하고 고대하던 시기였다. 초반에 비해 덜한 구석이 있기는 했지만, 사랑은 여전히 나에게 눈부신 이상(理想)으로 남아 있었다. 내가 연애를 장기적인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지 못하는 원인을 스스로의 부족함이 아니라 대상의 미숙함에서 찾을 정도의 오만함이 조금은 남아 있던 시기였다. 이성의 초반 감정이나 반응에 대해서는 뚜렷하게 읽고 행동할 수 있었지만, 그 노력을 꾸준히 유지해 나가는 데에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군대를 전역하고 일본에 잠시 머무르다가 수능을 다시 치른 뒤 대학에 입학했던 시기. 아직까지 남아 있는 파릇파릇한 젊음을 은근히 만끽하면서도 불안정한 현실에 조금은 지쳐 있었다. 나는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몇몇 인연을 만나면서 관계에 대해 탐구해 나갔고, 마침내 일 년이 넘는 기간의 연애를 경험하기도 했다. 20대 후반에 접어들었을 무렵,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8살이었던가) 연인과의 만남에서였다. 내가 20대 초반에 그러했듯 사랑에 한참이나 미숙한 친구였지만, 그런 점들에 대해 미리 인지하고서 인내하는 노력을 지속하면서 내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우리 관계는 일 년이 넘게 지속되고 있었다. 그런 시기를 거치면서 나는 깨달았다. 관계의 정수라고 할 만한 것은, 한 순간의 환상이나 드라마틱한 연출, 혹은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운명의 상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주는 헌신과 노력, 그리고 관계에 대한 책임에 있다는 사실을. 지금까지 지나친 환상으로 쌓아 올린 기대들로 인해서 그 당연한 진리를 애써 무시해 왔었다는 사실을 깨우치며 나는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다. 결국 그 친구와는 평생을 함께하는 인연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 경험은 내가 이후에 사랑을 해 나가는 데에 있어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사랑을 노력한다는 건, 정말로 말이 된다.
사랑의 후반기, 내 나이가 삼십에 걸쳐있던 시기였다. 설렘과 풋풋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퇴색되기 마련이며, 장기적인 관계를 위해서는 서로의 절실한 노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머리와 가슴으로 모두 이해하고 있었던 시기. 이제는 평생을 함께 할 만한 짝을 찾아야 한다는 나름의 조급함도 곁들여져 있었다. 경찰 공무원이라는 나름 안정적인 직함을 지니고 있었던 때라, 주변의 소개를 통해 나의 짝을 찾아 나섰던 시기였다. 나의 인생에 있어서 어떤 분기점에 이르렀다는 느낌도 있었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인생관이나 가치관과 방향을 같이 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은근한 바람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나름대로 경험치를 쌓으며 사랑에 무르익은 시기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사랑에 대한 이상을 은근히 그려내며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느다랗게 이어가기도 했었다.
진화심리학, 그리고 정신분석학과 같은 심리학, 철학 등에 심취하여 관계에 대한 지식과 지혜를 적극적으로 구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지난 연인들을 통해 경험적으로 알게 된 것과 일반론적인 지혜를 모두 습득해 나가면서 나는 완벽한 이성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자만하고 있던 그 시기에 내가 지난날들 속에서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을 한 번에 휩쓸어 버릴 정도의 강력한 폭풍을 만나기도 했다. 나의 전 연인은, 나와 지독히도 맞지 않았던, 관계에 대한 나의 경험적, 간접적 지식과 지혜를 한꺼번에 부숴버린 사람이었다. 한 사람의 고유성을 보기 위해 노력하라고, 오직 주는 것만이 사랑이라는 에리히 프롬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며 그녀의 마음을 알아보려 했지만, 그녀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과 같은 사람이었다. 오직 받기만 하면서 원하고 또 원하는 상대에게 프롬이 말한 사랑의 방식("주는 것")은 최악의 결과를 낳는 행위임을 나는 몸소 생채기로 온몸을 채워가면서 깨닫게 되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던 1년 하고도 6개월이었다.
해가 뜨기 직전의 새벽이 가장 어두운 법이다. 나의 진정한 사랑이 찾아오기 위해 그런 한바탕 돌풍이 휘몰아쳤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옥과도 같았던 전 연인과의 만남을 버텨내자, 거짓말처럼 나의 세상에는 쨍- 하고 해가 떠올랐다. 마침내, 지금의 여자친구를 만나게 된 것이다. 남들이 생각했을 때 내가 가장 보잘것없는, 누구보다 불안정한 파도에 휩쓸려 있는 것 같은 지금의 시기(물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에 그녀는 나의 참된 내면을 바라봐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다. 이상(理想)은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나가는 것임을 이제는 안다. 그녀와 함께라면 내가 지금껏 여러 글귀들을 통해 탐구해 왔던, 경험적으로 체득해 왔던 사랑의 이상을 그려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감히 말하자면, 지금까지 해 왔던 모든 관계에 대한 나의 선택이 지금의 그녀를 만나기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행복한 사랑의 형태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 마침내 서른 하고도 하나가 된 이 시점에 찾아와 준, 그리고 내 곁에서 끊임없는 용기와 힘을 북돋워 주는 그녀에게 고맙고, 또 고마운 마음이라고.
나의 사랑은 지금의 그녀로 인해, 마침내 보다 완성된 형태를 띨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