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에게도 봄은 온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어느 누구에게나 사랑할 자격은 충분히 주어진다. 설령, 나처럼 직업이 없는 백수라 할지라도 말이다. 누군가 헛소리하지 말라며 손가락질을 한다면, 나는 당당히 내가 백수임을, 그리고 사랑하고 있음을 말해 주겠다. 굴곡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험한 인생길 한가운데서 잠시 쉬어가는 사람에게도 언제나 뜨겁게 타오를 수 있는 열정은 존재하는 법. 백수도 연애할 수 있다. 백수도, 사랑할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한 뜨거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아직 퇴사를 감행하기 전에, 그러니까 아직까지 경찰 공무원이었을 때 나에게는 연인이 있었다. 그 사람과는 1년 반 동안의 시간을 함께 했었다. 내가 아직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을 때 1년, 그리고 퇴사한 뒤 반년 정도였다. 그녀라는 사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밑 빠진 독' 혹은 '아낌없이 받는 나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지난 사랑을 돌이켜 본다면, 바람을 피웠던 두 명 정도의 지난 연인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연인들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그 나머지에 대해서는 나 스스로가 다분히 의도적으로 모질게 헤어진 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나의 전 연인은 내 연애 역사상 최악의 연애였다고 단 한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서로에게 수없는 상처를 준, 어느 정도의 트라우마가 될 만한 굵직한 사건들을 기억 속에 남긴 연인이었다. 이런저런 사소한 사건들을 일일이 여기다 주절거리는 것보다는 단 하나의 비유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이미 오래전 블로그 글에서 내가 일찍이 표현한 바가 있는 문장이다. 그러니까-
그녀는 밑 빠진 독이었고, 나는 그녀에게 물을 쉴 새 없이 떠다가 부어대는 500ml짜리 플라스틱 생수병이었다.
내가 온몸을 다 바쳐 스스로를 가득 채운 다음, 그녀에게 모든 것들을 부어도, 그녀는 일시적인 갈증을 해소하기만 할 뿐 결코 채워지지 않는 커다란 독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지나치게 갈구했기 때문이라는 원인으로 말해볼 수도 있겠으나, 나 스스로가 생수병만큼의 좁은 마음을 지닌 사내였기 때문으로도 해석해 볼 수가 있다. 내가 어떤 대양이라든가, 적어도 호수나 연못 정도의 넘쳐흐르는 물을 가둘 수 있는 넉넉한 사람이었다면, 그녀 스스로가 내 품에 풍덩 뛰어들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해 본다. 어쨌거나 나는 생수병이었고, 그녀는 나와 같은 생수병이 될 수 없는 밑 빠진 독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녀를 채우고 채우려다 지쳐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그녀 역시도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사랑에 지쳐 돌아섰다. 그와 같은 결말은 이미 우리의 크고 작은 다툼들 가운데서 선명하게 윤곽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런 사실들을 알면서도, 우리는 서로에게 상상 이상의 고통들을 안겨 준 후에야, 상처투성이의 몸을 꼬옥 끌어안은 채 서로에게서 몸을 돌려 각자의 길로 나아갔다. 그것이 2024년 여름의 일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몇 번의 스쳐가는 인연을, 말 그대로 스치듯이 거쳐 갔다. 무려 7년 전의 연인과 연락이 닿아 잠시 어른이 되어버린 서로의 모습에 낯설어하기도 했고, 이전의 연애와 대비되는 사람을 만나 서로 나누었던 미묘한 감정 상태를 사랑이라 착각하기도 했다. 그 모든 사건들은 정말이지 물 흐르듯 서로의 삶을 스쳐 지나갔고, 단지 그뿐이었다. 내 삶에서 그 이상의 소용돌이나 전환점이 되지는 못했다. 게다가, 본격적인 백수 생활을 해 나가는 가운데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경로가 마땅히 없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의 처지를 괜찮게 생각해 준 친구를 통해 소개를 받기도 했으나, 서른이 넘은 인생들의 씁쓸함을 나누었을 뿐 어떠한 끌림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렇게 부유하고 있던 나에게 사랑의 물꼬가 되어준 것은 다름 아닌 독서 모임이었다.
"책도 읽고 교양도 쌓으면서 뭐... 사랑도 시작할 수 있으면 좋지."
전 직장의 동기였던 형은, 그와 같은 한마디로 나에게 모임을 시작하자고 권했다. 결국, 그 형은 모임 외적으로 다른 사람과 만나 사랑을 이룬 뒤로 모임 자체에 소홀해졌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그 형에게는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내 인생에 큰 획을 그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감명 깊게 읽었던 카뮈를 만나게 해 줬다는 점에서 그렇고, 지금의 소중한 연인을 만나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인생의 성장과 사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도록 훌륭한 발판이 되어준 모임을 만들자고 재촉해 주었으니, 나에게 있어 인생의 은인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녀는, 작년 12월에 우리 모임이 창설되고 처음으로 모였던 그 자리에서부터 나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내가 첫 모임에서부터 그녀를 진실로 눈독 들이고 있었다고 말하면, 그녀는 과연 믿어주려나? 일고여덟 명 정도가 모였던 그 첫 모임 이후로, 우리 모임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는 사람이라고는 그중에 나와 모임을 함께 만든 형(지금은 도통 참석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존재이긴 하지만), 그리고 지금 내 연인이 된 그녀밖에는 없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참으로 쉽게 무엇이든 포기해 버리는 것 같다. 어쨌거나 모인 사람들 가운데서도 유독 빛났던 그녀의 미소는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때의 나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서른이 넘어 그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으로 무던히 살아왔었는데, 그 순간이 지나가고 난 뒤에 곱씹어 보니 그건 분명히 첫눈에 반했던 것이었다고, 내 마음이 말하고 있다. 시간이 흐른 뒤에 어떤 확증 편향으로 기억을 소급 적용하게 된 것이라도 나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어쨌거나 나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 사람이었다고 정의 내리고 싶을 뿐이니까. 사랑하는 사람과의 운명을 믿는 일의 어디가 나쁘단 말인가?
그녀에게 강한 호감을 느꼈음에도 처음부터 다가가지 못했던 것은, 나 역시도 모임에 진심으로 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겨우 첫 모임에서부터 한 모임원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결코 옳지 못하다는 사실 정도는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나의 벽을 조금씩 허물었던 것은 그녀였다. 모임원 모두와 처음 만났을 때, 그러니까 서로가 서로에 대해 잘 모르던 시기에 우리는 모임원들 간에 서로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질의했다. 나로서는 당장 하고 있는 일이라고는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이었기에 그 활동을 언급했을 따름이다. 그 이후에 그녀가 나의 블로그 글에 대해 재미있다며 개인적인 연락을 주기도 했고, 모임에 참석할 때마다 환한 미소로 나의 의견에 흥미롭게 귀를 기울여 주었던 것이다(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녀는 누구에게나 원래부터 그런 성향의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서 어떤 가능성을 발견했고, 보다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현실적인 문제-예를 들면 나에게 뚜렷한 직업이 없다던가 하는-에 그녀는 고심하며 나름대로 나를 밀쳐냈지만, 그녀 역시도 나에게 호감이 없지는 않았다는 뒤늦은 고백을 그녀로부터 받아낼 수가 있었다. 나는 특유의 말솜씨를 발휘하여 내 미래와 계획에 대해 말하면서 그녀를 끈질기게 설득해 냈고, 마침내 우리는 서로를 연인으로 대하기로 했다. 2025년, 어딜 가든 벚꽃이 한창 흩날리던 시기였다.
그녀와는, 몇몇 작은 의견의 다툼들이 간간이 있기는 했지만, 이게 바로 어른의 사랑이라는 건가- 싶을 정도로 안정적인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녀는 소중한 사람에게 덜컥 화부터 내는 법이 없고, 서운함이 남아 있을 때에는 대화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현명함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웬만한 일들에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바탕으로 세상을 헤쳐나가려 하는 확고한 의지까지 지니고 있으니, 그녀는 정말이지 '끝내주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보잘것없는 나의 신세나 처지보다 내 내면의 강함을 들여다보고 누구보다 응원해 주는 지금의 연인과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앞으로의 시간들을 모조리 함께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수많은 사랑의 시련을 거쳐 온 끝에 마침내 서른이 넘은, 백수인 나에게 사랑의 봄이 찾아와 주었다. 나는, 이 봄이라는 계절이 여름이 되고, 가을이 되고, 끝끝내 모진 겨울이 된다 해도 다시 봄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언제나 좋은 순간들만 함께하고픈 욕심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이 그렇게 녹록지 않다는 사실 또한 안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저 지금 내 곁에 머물고 있는 한 떨기 꽃을 소중히 감싸 안을 따름이다. 앞으로의 삶에서 오직 한 사람만큼은 온전히 믿을 수 있다는 굳건한 확신을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나로 하여금 그런 생각과 마음을, 그리고 내 안에 간직해 온 사랑에 대한 믿음을 밝혀주는 그녀에게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다. 앞으로, 더 좋은 사람이 되어 좋은 사랑을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겠지. 사랑하며 살아가는, 그런 삶을 그녀와 평생 함께할 생각이다. 그녀의 미소와 그런 다짐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번 생은 더없이 충만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녀를, 세상을, 이 삶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스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