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도는 시간 속에서 방황하는 영혼 통제하기
인간이 진정으로 갈망하는 것은 자유일까, 아니면 통제일까?
이 질문은, 철학적으로도 그 고찰의 역사가 참으로 오래된 물음표 가운데 하나이다. 그 이전에 인간의 '자유 의지'가 존재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기나긴 논쟁이 있어 왔지만 아직까지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듯, 인간이 진정으로 원하는 쪽이 자유인지 통제인지 역시도 여전히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어떤 면에서는 자유를, 어떤 면에서는 통제를 갈망한다는 식의 두루뭉술한 답변을 문장으로 끄적인 다음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고. 어쩌면 살아있기 때문에 그런 삶의 모순들과 부딪히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그 끝을 하나하나 헤아리기도 버거운 여러 한계지점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모순을 바라보며 숱한 물음표만을 띄울 뿐인 우리가 아닌가. 오히려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버리면 고뇌를 조금 덜어낼 수는 있겠지만, 삶 속의 균형을 잃고서 영원히 잘못된 길로 빠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정답을 찾으려 노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끝끝내 얻게 되는 해답이 진정한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애매함을 유지하면서, 우리는 마땅히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 보면, 백수의 삶이란 보다 자유(혹은 방종)에 치우치기 쉬우니 적절한 통제가 곁들여져야 한다는 말씀.
약 반년 동안 시공간적 제약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다 보니, 나는 반대로 극심한 통제를 갈망하게 되었다. 직장인들이 간절히 원하는 종류의 자유도 일정 수준을 벗어나 방종으로 변모하게 되면, 그 또한 삶 속에 고통으로 피어나기 마련이다. 원하는 시간에 눈 뜨고 원하는 시간에 잠을 청하기, 여러 미디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도파민이 충만한 삶을 살아가기, 혹은 어디든 떠나기로 마음먹은 곳으로 무작정 떠나기 등등. 대개 그런 유의 '일탈'은 뚜렷한 직장을 가질 때에만, 그러니까 오직 일탈이라는 정의에 충실히 부합할 때에만 일정 쾌락을 얻을 수가 있다. 그 일탈이 일상으로 굳어지는 순간, 우리의 욕구는 또다시 새롭게 정의되어 버린 그 일상으로부터의 새로운 일탈을 꿈꾸게 되는 것이다. 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지겨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늦은 시간에 일어나는 것도, 여러 미디어로부터 무방비하게 노출되는 것도, 가족들과 떠나고 싶을 때에 아무런 제약 없이 떠나는 것조차도. 나는 통제를 갈망하기 시작했고, 그에 걸맞도록 새로운 일상을 꾸려가기 시작했다.
지나치다 못해 흘러넘치는 자유에 싫증을 느낄 즈음, 인생은 적절히 내 삶 속에 위기를 투척해 주었다. 앞선 글에서 언급했던 경제적, 관계적 위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백수생(?) 일대의 위기 속에서 나는 일상을 바로잡기 위한 과업을 떠올려 냈다. 육체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 모두를 충족하는 과업을. 일단은 삶의 주축이 되는 일과를 세우는 것으로부터 차근차근 그 세부적인 일과들을 짜임새 있게 갖춰 나갔다. 글쓰기, 운동, 경제 활동. 이 세 가지를 적절히 버무려 세부 조항들을 설정해 나갔는데, 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글쓰기: 브런치스토리, 네이버 블로그 각각 1일 1포스팅, 글감이 떠오를 때마다 스레드 앱에 글 한 편씩
운동: 헬스장 1시간
경제 활동: 오전에 일어나 경제 뉴스 확인 및 틈틈이 트레이딩
어떤 일과는 계획한 대로 매일 지속적으로 해 나갈 수 있었고, 또 어떤 일과는 간헐적으로, 또 어떤 일과는 진행하던 가운데 포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글쓰기와 운동, 경제 활동이라는 커다란 삼박자는 어떻게든 버무려져 지금까지 어떻게든 유지될 수가 있었다. 오랜만에 열정을 더할 만한 활동들로 인해 삶에 활력이 돌았고, 이전까지는 좀처럼 꾸준히 하지 못했던 근력 운동을 통해 끈기와 인내를 길러낼 수도 있었다. 또한, 보다 세심하게 심혈을 기울여 돈을 굴리다 보니 나름대로 괜찮은 수익률을 다시금 되찾기도 했다. 별다른 규칙이나 통제가 없던 상황 속에서는 감히 꿈꾸지 못했던 건강한 삶이 제대로 굴러가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나는 스스로가 설정한 일과를 모두 성실히 해나가기 위해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했고, 모든 일과를 마친 뒤에는 녹초가 되어 있었기에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만 했다. 그것은 누군가 강요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째깍거리며 움직이는 시곗바늘의 움직임과도 같았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겪어 나가고 있는 일반적인(?) 통제와는 확연히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월급과도 같은 보상을 조건으로 제약을 걸어놓지도 않았고 내 삶 자체가 그 누구의 이익과도 연결되어 있지 않았기에, 사회인들이라면 해 나가는 흔한 사회생활과는 다르게 타인들과 아무런 관련도 갖지 않는 나 혼자만의 싸움을 지속해 나갔다. 어느 누구도 그 일상의 결과가 실패에 이른다 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오직 나만이 열과 성을 다해 꿋꿋이 일구어 나가야 하는 일과였기에, 상당한 의지와 노력을 수반하는 행위였다. 자칫 방심하면 이전의 방종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미끄럼틀을 타고 밑으로 하강하는 것처럼 쉬웠기에, 때때로 그런 연유들로 인한 극심한 고통과 스트레스가 찾아오기도 했다. 자유에 따르는 책임을 나 혼자만이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은 그 자체로 고난이었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가 게으르게 빈둥대고 있는 내 뒤통수에 커다란 일격을 가해 나를 채찍질해주었으면- 하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결국 뒤통수를 때리는 것도, 맞는 것도 모두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서 다시금 바쁜 일과에 뛰어들 뿐이었지만.
그러면서 '일상의 중요성'에 대해 나는 다시금 되돌아보게 되었다. 인생은 죽는 순간까지 달려야만 하는 마라톤과 같다.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번뜩인 뒤로는 줄곧 화려하게 빛을 발하다가 서서히 꺼지는 드라마 속 주인공과도 같은 삶은, 어디까지나 드라마라는 픽션 속이기에 가능할 뿐이다. 우리가 대개 행복을 느끼곤 하는 때는 오직 찰나의 순간일 뿐, 지루하고도 허무한 순간의 지속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어떤 과정을 거치든 지지부진한 권태와 지루함을 이겨낸 사람에게만 응당한 결과가 주어질 뿐이다. 그 결과란 것도 오직 찰나의 순간에 반짝하고 사라질 뿐이고, 우리는 그 뒤로도 계속해서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달려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지금 현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로또 당첨이나 대기업 취직, 꿈에 그리던 이상형과의 결혼식과 같은 우리의 소망은 이뤄진다 해도 결국 하나의 사건에 의한 단 한 번의 반짝임에 지나지 않는다. 로또 당첨 이후에도 큰돈을 어떻게 관리해 나갈 것인지 하는 스트레스와 맞서 싸워야 하며, 대기업 취직 이후에는 그 보수에 상응하는 고된 업무와 상부의 명령과 지시라는 속박에 얽매여야 하며, 이상형과의 결혼 이후에는 맞닥뜨려야만 하는 현실 속에서 이상형의 빛이 지속적으로 현실로 퇴색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아야만 한다. 꽤나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그런 순간의 반짝임이나 남들의 부러움을 살 수 있는 결과 한 면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이하게 생각해 오기는 했었지만, 막상 백수가 되어 스스로의 일상을 가꾸어 나가다 보니 우리 삶의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 지루한 일상보다 찰나의 순간만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더욱더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다. 겨우 30년 살아왔을 뿐인 내가 주제넘게 감히 말하자면, 삶의 본질은 일순 반짝이다 사라지고 마는(대부분의 사람들이 목표로 지향하는) 찬란한 순간들보다는 무력과 권태, 그리고 어떤 공허 속에 있지 않을까 싶다. 쉽게 말해서 비중이 큰 쪽에 집중하는 편이 슬기롭게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생각이다. 찰나의 순간을 붙잡기보다는 지루하게 늘어진 일상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는 지혜가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게 아닐까.
어쨌거나 백수 생활이 반년 정도에 접어들었을 때, 나는 지난 삶을 돌아보며 기록으로 남기기도 하고, 일상 속의 소중한 경험들을 낱낱이 쏟아내면서 틈틈이 건강도 다져 나갔다. 어떤 경제적 조건을 성취한다든가 꿈에 그리던 누군가와 함께하게 된 뒤에도 그와 같은 삶을 유지할 것이란 판단이 든다면, 잘 살아나가고 있다고 판단 내려도 좋지 않을까? 당장 내일 죽어도 만족할 만한 일과들로 인생을 채우고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삶이지 않을까? 나는 어느샌가 일상의 중요성에 대해 매일같이 주변 사람들에게 설교를 늘어놓을 정도로 일상 예찬자가 되어 있었다. 실제로 내 블로그 속 대부분의 포스팅들이 그런 내용들을 담고 있기도 하다. 결국, 보다 만족스러운 일과들로 일상을 채워나가는 일이 우리가 죽음에 이르기 직전까지 꾸준히 이어가야 할 과업이자 숙제라는 생각이다. 나는 백수의 삶 속에서 일상을 계획하며 그런 가르침을 마땅히 얻을 수 있었다.
바로잡힌 일상 속에서 봇물 쏟아내듯이 내 머릿속에 떠돌아다니는 생각과 깨달음, 혹은 어떤 사건과 대상에 대한 메시지, 그리고 추억을 끄적이면서 문득 스스로가 지닌 표현의 한계에 맞닥뜨리기도 했다. 보다 유려한 문장으로, 더 구체적인 어휘로 표현하고 싶지만 좀처럼 그러지 못하는 순간들에 계속해서 부딪히곤 했던 것이다. 더 잘 쓰기 위해서는 좋은 문장들을 머릿속에 넣어야만 했다. 하지만, 홀로 책을 펼친 뒤, 남의 생각들을 찬찬히 훑어 나가는 일은 또 다른 의지와 노력을 나에게 요구해 왔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하나의 문제에 봉착하여 일상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도모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