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위기는 대책 없는 방황을 멈추게 한다

빈털터리 백수만큼이나 이 세상에 슬픈 직함은 없다

by 봉필


퇴사 이후 6개월 정도 이어진 방탕한 삶은 급격히 불어닥친 빈곤으로 인해 단번에 막을 내렸다. 경제적 위기만큼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 절망적인 위기가 또 있을까? 아무런 목적과 바람도 없이 이리저리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며 위태롭게 버텨 나가고 있던 나의 백수 생활은 간신히 부여잡고 있던 투자라는 가느다란 끈이 끊어지면서 일대의 파란이 불어닥쳤다. 24년 8월의 블랙먼데이는 내 뒤통수가 얼얼해질 정도로 큰 충격을 나에게 안겨주었고, 나는 마땅히 심각하게 상처 입은 뒤통수를 부여잡은 채 앞으로의 길에 대해 고심해 나가야만 했다. 오직 투자라는 어설픈 노 하나만으로 언제 어디서 어떤 위기가 닥칠지 모르는 망망대해인 인생을 항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사실쯤이야 일찍이 알고 있었지만, 퇴사 초기에 맛보았던 소소한(?) 투자 성공으로 인해 잠시 인생의 뒤안길에 묻어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인생은, 내가 묻어두었던 고민과 고심들을 나도 모르는 사이 눈앞에다 한꺼번에 와르르 쏟아내곤 했다. '엎친 데 덮친 격', 작년 여름의 나를 가장 잘 설명하는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은 늘 엎치고 덮쳐오는 것들을 어떻게든 쳐내며 살아가야만 하는 무언가이지 싶다.


돈도 사랑도 잃은 시점에서 눈앞이 막막했지만, 뭐라도 하지 않으면 그대로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기에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아야만 했다.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아르바이트와 두 번의 공직을 거쳐왔지만,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경력이나 이력이 있다고 말하긴 어려웠다. 대학교도 1년인가 다니다 그만둔 상태였기에 학위로 승부를 볼 수도 없는 상황. 당장에 멀쩡한 것이라고는 아직까지 젊고 나름대로 쓸 만한 사지(四肢)밖에는 없었다. 한때 노가다와 쿠팡을 전전하기도 했으니,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그런 막일이라도 해 나가야 하나? 당장 내일부터 새벽에 일어나 인력 사무소로 출근이라도 할까? 그런 심정으로, 급한 대로 스마트폰에 노가다 관련 앱을 설치하기도 했다. 아직도 내 스마트폰에는 그때 설치해 놓은 앱들이 버젓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도 그날의 충격을 잊지 않기 위한 기념비적인 흔적이랄까.


공사판을 전전하거나 일용직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남들이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한다거나 공시에 매달릴 때부터 일찍이 전문 기술을 배워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사람들의 유튜브에 빠져 한동안 자주 시청하기도 했다. 과도한 학구열로 인해 구직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진 지금, 몸을 쓰는 노동 시장은 하나의 틈새시장으로서 자리 잡은 듯 보였다. 그런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없어, 하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꽤 괜찮은 보수로 노동을 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그마저도 레드오션이 되었다는 반박 댓글들이 있기는 했지만, 아무렴 대기업이나 공기업 경쟁만큼은 아니겠지). 나는 그런 영상들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 비록 이런 백수의 몸일지라도 아직까지 사회에서 쓰일 수 있는 놈이라고. 서른을 넘기고서 나름대로 젊다고 말할 수 있는 현장이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어 주었다.


기실, 퇴사 직전까지 떠올렸던 수많은 직업들 가운데 몸을 쓰는 '목수'라는 직업도 있었다. 어릴 적부터 손으로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는 일을 좋아하기도 했고, 군대에 있을 때를 비롯해 사회에서 각종 땀 흘리는 노동을 통해서 어떠한 보람과 삶의 참맛을 느끼기도 했었으니까. 나의 모든 지난날들은, 나에게 일찍이 그런 적성이 있음을 알아차리고서 마땅한 직업을 지속적으로 찾아 헤맨 세월이기도 하다. 경찰 공무원을 준비하게 된 계기에도 일정 부분 그런 뜻이 숨어 있기도 했다. 책상 앞에 앉아서 하루 종일 컴퓨터 사무만을 보는 행정직이나 여타 다른 공직들은 어쩐지 구미가 당기지 않았고, 그나마 현장에서 뛰어다닐 수 있는 경찰 쪽에 흥미가 더 생겼던 것도 순전히 나의 적성 때문이었다. 이러나저러나 딱딱한 조직체계나 단순화된 업무, 그리고 교대 근무라는 어마무시한 단점으로 경찰이라는 직업을 오래 가져가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한동안 참된 노동의 길을 걷겠다는 설렘을 가득 안고 있던 와중에 문득 하나의 과업(?)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노동과 마찬가지로, 아니 어쩌면 그보다 한참 전부터 나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일 가운데 내가 아직까지 마음먹고 열심히 해 나가지 못했던 일, 바로 '글쓰기'였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소설을 쓰는 일이겠지. 일찍이 문학소년을 자처하며 소설을 쓰는 소설가를 업으로 해 나가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지만, 현실의 풍파에 시달리며 그 일을 한참이나 뒷전으로 미뤄둔 채 지내 왔었다. 어느덧 내 나이는 서른이었고, 아무런 대책 없이 퇴사한 백수였으며, 경제적 위기를 맞은 뒤에 약간은 정신을 차려 노동 시장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만약 무언가 시도해 보고자 한다면, 어릴 적 꿈을 다시 한번 현실로 가져오기 위한 몸부림을 해볼 것이라면, 바로 지금이 적기가 아닐까? 그런 생각으로 나는 먼지가 잔뜩 쌓여 있던 꿈이라는 상자를 다시금 열어보게 되었다.


글쓰기를 열심히 해 본 적은 없어서-

그런 이유를 들기는 했지만 앞선 글에서 밝혔던 것처럼 대부분의 일들에 있어 내가 진심으로 열정을 다했던 적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저 남들이 하는 만큼, 혹은 윗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남들보다 아주 조금 더, 그것도 아니라면 딱! 합격할 수 있을 정도로만. 그런 식으로 적당히 사회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수준으로만 땀을 흘리면서 애써 웃어넘기는 삶을 살아오지 않았는지 스스로가 의심스럽기도 했다.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고 도전해 보고 싶었던 일들은 일찌감치 시야에서 보이지 않는 인생 뒤편으로 치워놓은 채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어린 시절의 꿈이나 희망을 조금은 덮으며 살아가는 세상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 삶도 충분히 멋진 삶일 수 있지만(모든 삶은 아름답다), 직업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시점의 나로서는 조금 안타까운 심정을 곱씹어가며 다시금 들추어 볼 기회를 얻은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노동 시장으로 뛰어들기 직전에 멈추어 서서, 글쓰기를 나의 삶에 마땅히 녹이기 위한 시도를 해 나갔다.


일찍이 문학 소년이었던 나는, 청소년기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글에 대한 갈증을 느끼며 틈틈이 독서를 해 오기도 했고, 코로나가 극심했던 중앙경찰학교 교육생 시절, 머릿속에 들어차 있는 생각들을 풀어보겠다는 심정으로 일찍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어 가끔씩 글을 한두 편 발행하기도 했었다. 벼랑 끝 백수가 된 내가 마땅히 해야 할 과업이란, 가끔씩 갈증을 해소하는 데에 그쳤던 그런 일들을 보다 나의 일상에 가까이 두는 일이었다. 나는 매일 한 편씩 블로그에 글을 작성하기로 하고, 한편으로 소설 창작에도 힘을 실었으며, 보다 열심히 책을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러는 가운데 오랜 숙원(?)이기도 했던 브런치 작가가 되어 내 인생 일대기를 연재해 보기도 했고, 스레드를 비롯한 앱을 활용해 가며 글쓰기에 재미를 붙여나갔다. 확실한 열정과 노력은 반드시 일정 수준의 보상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을 수 있었던 작년 9월의 일이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어 내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내는 동안, 다음 메인에 내 글이 올라가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 블로그의 조회수가 나날이 늘어가는 짜릿함, 그리고 책을 통해 견문을 넓혀가는 재미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전까지는 백수 생활 가운데서 명확히 세우지 못했던 내 일상의 기준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던 것도 그때부터였다. 돌이켜 보면 그 이전과 이후에 있어 내 백수 생활은 180도 달라져 갔다. 결국 인생은 자신에게 필요한 습관들로 그 시간을 채워나가는 작업의 연속일는지도 모른다. 모든 생명체들은 규칙과 나름의 생체시계를 필요로 한다. 그러니까, 백수에게도 나름의 기준은 필요한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진정한 백수 생활은 작년 여름부터 그 틀이 갖추어졌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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