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조금 헤매도 쓰러지지만 않는다면

매일 올바른 한 곳만을 바라볼 순 없는 인생이니

by 봉필


문득 다가온 가을의 찬바람을 맞으며 그런 생각이 스쳤다.


보잘것없는 나라도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올바른 방향으로 계속해서 나아갔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기는 했어도 쓰러지지 않고 계속해서 발을 내디뎌 왔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 처음부터 원대한 목표, 커다란 꿈을 설정하고자 하는 행위는 오히려 지나친 피로감을 불러올 수 있다. 미숙한 상태에서 겪어보지 못한 위대한 무언가를 떠올린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스트레스이고, 막상 떠올린다 해도 어떤 식으로 이루어나가야 할지에 대한 막막함은 지울 수가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렇게 떠올린 대상이 내가 진정으로 원해서 세운 목표가 맞는지 감히 확신할 수도 없을 것이다. 세상에 대해서 한참이나 모르는 나이에 원대한 꿈을 강요받는 것은 어떤 의미로 하나의 폭력인 셈이다. 어린 날의 나는 지나치게 큰 꿈과 닥치지도 않은 문제들에 허덕이며 당장 그 나이에 해야 할 일들을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었다. 지나고 보니 그때의 방황이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져다주기는 했지만, 조금은 막연하게나마 부딪치면서 나아갔어도 괜찮았을 거라는 아쉬움은 여전하다. 까짓 거 조금 헤매도 되는데 말이야.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해 험난한 소년 시절을 보냈었다. 시골 촌놈으로 태어났지만 부족할 것 없이 유년 생활을 보내왔던 나에게 아버지의 사업 실패는 인생 전반을 흔들어 놓은 일생일대의 사건이라 할 만했다. 그 사건 덕분에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줄곧 '전학생'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다녔다. 경상도에서 나고 자랐던 나는, 전라남도 목포를 거쳐 경기도 남양주, 그리고 시흥으로 전학을 다녔다. 적응할라치면 옮기고, 또 정이 들었다 싶으면 옮겨버리는, 지독한 야바위의 어느 잔엔가 갇힌 듯했달까. 아버지의 사업 실패가 숱한 전학의 원인이었다는 사실은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그전까지는 그저 전학이라는 약간 특수한 형태를 반복할 뿐이지 다들 그런 식으로 고만고만하게 살아가는 줄로만 알았다. 아직도 목포에서 지내던 시절 단칸방 벽 한 면 전체를 뒤덮었던 곰팡이와, 장마철에 비가 오면 천장 곳곳에서 떨어지던 빗물을 받아내기 위해 바닥에 여기저기 흩어 놓았던 물통들과, 현관문을 열고 나가 3미터 정도의 거리에 떨어져 있던 푸세식 화장실은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것의 이름은 '가난'이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일찍 철이 들었던 탓인지, 어려서부터 학업에 있어서는 꽤 열의가 있었다. 가난이라는 콤플렉스는 내가 남들보다 어떤 면에서 뛰어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고 부추겼다. 그런 열등감이 당시 내 삶의 원동력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중학교 2학년까지는 그런 단순한 메커니즘으로 전교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열등감 콤플렉스가 평생에 걸쳐 나의 인생을 지지해 줄 리는 만무했다. 딱 그 정도에 맞는 수준으로 유통 기한을 다해버렸고, 중학교 3학년에 들어서 인생 전반에 대한 고민들과 함께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물음이 시작되었다. 누군가는 흔한 사춘기였을 것이라고 가볍게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 그것은 또래 아이들이 흔하게 고민하는 것보다는 약간은 더 깊이 있는 것이었다. 또래 아이들이 그저 어른들이 말하는 길로만 착실히 따르거나, 혹은 제대로 된 방향성 없이 그저 반항할 뿐인 가운데서, 나의 머릿속에 떠갔던 인생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들은 함부로 털어놓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떠가는 말을 붙잡듯이 가볍게 나눌 만한 이야기도 아니었고, 눈에 띄게 무게를 잡으며 뱉어대기에는 어딘가 건방져 보일까 염려스럽기도 했었다.


어른들이 말하는 것처럼 대학은 과연 인생에 있어 괜찮은 답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그런 어른들의 말을 믿고 대학에 가고 싶은가, 내가 지금껏 공부해 온 것은 나의 의지였을까, 아니면 단순히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함이었을까, 어른들은 어떤 확신을 가지고 아이들의 인생에 대해 공부 하나만 열심히 해나간다면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무책임한 말들을 뱉어대는 걸까. 학창 시절의 그런 고민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다고 여긴다. 그 당시 음악과 독서, 그리고 글쓰기가 내 곁에 있어주었기에 크게 비뚤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당시에 명확한 돌파구를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인생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이라 정의 내리고 나름대로 고난과 역경을 어떻게든 이겨내리라 다짐했었다. 그리고, 이미 이런 생각을 한번 머릿속에 떠올려버린 이상, 앞으로 평범하게 살아갈 수는 없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도 함께 떠갔다. 이미 빨간약을 먹은 이상, 다시 매트릭스 세상을 아무렇지 않게 거닐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남들 다 가는 대학을 마다하고(실제로 수능 성적이 대학에 갈 수 있는 수준도 아니긴 했었지만) 해병대 부사관이라는 길을 택했다. 혈기왕성했던 어린 나이에 4년 간 군대에 갇혀 나름대로 어른의 무게를 느껴볼 수 있었다. 전역한 이후로는 자전거 국토 종주를 해냈고, 일본 워킹홀리데이도 다녀왔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단순히 한 문장으로 정의 내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낄 수가 있었다. 머릿속으로 늘어놓기만 했었던 것들은 막상 현실 속에서 부딪쳐나감으로써 그 진정한 실체를 드러낸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지나치게 공상만을 펼쳐댔던 지난날들을 반성했다. 인생은,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실전 그 자체였다. 지나치게 염려할 필요도 없었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세상과 벽을 쌓아둘 필요도 없었다. 그저 부딪쳐나가면서 배우는 것이 인생이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도 없고, 처음부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완벽히 정의 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도 없다. 오히려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해서 숱한 경험들을 치르며 자신을 정의 내려가는 방식이 더 인생이라는 단어에 가까운 길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많은 경험들을 통해 깨달아나갈 수가 있었다.


여행을 끝마친 뒤, (남들이 말하기에) 늦은 나이에 대학에 진학했다. 꽤나 막연한 이유로, 나름대로 간절하게 노력한 결과였다. 1년 정도 다니다 실망감에 자퇴라는 길을 선택하기는 했지만, 그 역시도 겪어봤기 때문에 내릴 수 있었던 결단이었다. 배움에 목말라 들어섰던 대학이었지만, 고등학교의 연장선상에 지나지 않는 환경에 숱한 실망만을 그러안은 채 뒤돌아설 뿐이었다. 나는 잠깐의 방황 아닌 방황을 지나 경찰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부사관이라는 직업 이후에 가지게 된 어엿한 두 번째 직장이었지만, 역시 나와는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두 번의 공직을 겪으며, 나라는 사람은 역시 공직과는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퇴사 이후의 길에 대해 부단히 고심한 끝에, 마침내 2024년 2월에 경찰직을 내려놓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해병대 부사관, 그리고 잠깐의 여행자, 이후에 대학생, 마지막으로 경찰 공무원을 거쳐왔다. 지금은 그저,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남들에게 소개하고 다닌다. 30년이라는 세월이 짧다면 짧을 수 있지만, 참으로 길고도 머나먼 여정이었음을 내 인생을 이렇게 조목조목 짚어보면서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인생이 누군가에게는 위태로워 보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신선함에 멋져 보일지도 모른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래서 결국 백수라는 거 아니냐' 하는 다소 냉소적인 태도로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사실도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다. 아무래도 좋다. 이런 나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든 내가 이 글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같다.


이토록 휘몰아치고, 헤매고, 부딪힌다 할지라도, 쓰러지지만 않는다면 다음에 가야 할 길을 충분히 내다볼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다. 가끔은 주저앉고, 때로는 다시 일어나기 힘들 정도의 억압과 고통을 받아야 할 때도 있지만, 꿋꿋이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보면 언젠가 나아가야 할 길이 보란 듯 눈앞에 펼쳐지는 인생이다. 모두가 운이 좋게 한 번에 올바른 방향을 발견한 뒤 확신을 가지고 꿋꿋이 살아나갈 수는 없다. 애초에 그런 인생은 아무런 배움도, 가르침도 없기 때문에 운이 좋은 경우라고 말한다는 자체가 나에게는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말이다.


통제할 수 없는 것 투성이인 세상에서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기 위해서 방황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등을 알아가는 여정은 그 자체로 인생 속을 헤매는 여정일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그럼에도 즐길 수 있는 여행이기도 하다. 그러니, 인생의 어느 시기에서 헤매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 역시도 숱하게 헤매왔고, 지금도 헤매는 중이지만 결코 그런 사실로 인해 좌절하지는 않는다. 이 여정을 즐기는 것 또한, 태어난 우리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라 여기기 때문에.


헤매도 괜찮다. 다만, 쓰러지지만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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