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지극히 가벼운 동기라 생각하겠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가득 쏟아부으며 이어갔던 나의 일상은 날이 갈수록 차츰 식어가며 지지부진하게 늘어졌고 어느새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버린 듯했다. 음악 장비를 사들이고, 기타에 한껏 애정을 담아 연주 실력을 늘리고, 연습실에서 하루 종일 목청 터져라 노래를 부르며 시간을 보내도 언제부터인가 좀처럼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언제까지고 막막한 현실을 애써 외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서서히 잠식해 나간 탓이었다. 제대로 음악에 매진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지고, 꽤 시간을 들여 음악에 몰두해 보았지만, 결과적으로 나의 열정이나 흥미, 혹은 관심이 그런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 만큼 충만하지는 않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졌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어디까지나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 그리고 단순한 보상 심리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현실적인 고민이 점차 커지게 되면서 워킹홀리데이 경험 때 익힌 일본어를 바탕으로 해서 일본인들을 상대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유튜브를 하면 어떨까 하는 식의 잡다한 아이디어들을 떠올려 나가기 시작했다. 대단한 열정이나 흥미가 샘솟지는 않아서 적확한 목표나 방향성을 잡아나가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말이다. 나는 방황하는 가운데 두 다리를 땅에 붙이고 서 있지 못했다. 꽤나 부유(浮游)하면서 그저 떠가는 시간 속에 속수무책으로 두 팔과 다리를 휘젓기만 했었다는 생각이다. 처음 가졌던 불같은 열정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흩어져 버렸다. 그저 달리 할 일이 없어 연습실과 아르바이트 가게를 하염없이 들락거리기만 할 뿐인 나날들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어느덧 2019년은 클라이맥스를 향해 내달리고 있었고, 학교를 자퇴한 지 꼭 1년이 되는 순간을 앞두고 약간의 초조한 마음이 느껴지기도 했었다. 특별한 계획 없이 학교를 뛰쳐나오기는 했다만, 금방이라도 무언가, 무엇이든 될 수 있을 줄 단단히 착각했더랬다. 인생의 녹록지 않은 풍파를 그렇게도 겪었으면서 늘 새삼스럽게 깨달아가는 인생이다. 그럼에도 언제나 솟아날 구멍은 하늘의 무너짐에도 불구하고 한 줄기 빛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짙은 어둠 속에서 나아가야 할 길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 아무래도 결혼을 빨리 해야 할 것 같다"
하루는 늦은 새벽 시간대까지 유튜브를 시청하며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데, 형이 현관문을 열고 터덜터덜 들어와 주저앉으며 나에게 말했다. 다소 힘이 빠진듯한 음성과 함께 술냄새가 그윽하게 풍겨왔다. 당시 형은 경찰 공무원으로 재직 중에 있었고 5년 가까이 만난 여자친구가 있었다. 나는 형의 대사와 목소리, 그리고 분위기를 통해 형의 말이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지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별 일이 없으면 승진 시험을 마무리 지은 뒤 내년이 되면 만나고 있는 여자친구와의 결혼을 차차 준비해 볼 것이라고 나에게 미리 언질을 주었던 터였다. 그랬던 형이 결혼을 빨리 해야 할 이유는 오직 한 가지밖에 없었다. 바로 새 생명이 예기치 못한 타이밍에 찾아와 버린 것.
"축가 뭐 하지?"
당장 철없는 농담으로 형의 무거운 말을 가볍게 받아치긴 했지만, 속으로는 현 상황에 대해서 요모조모 헤아리기 시작했다. 조카가 생긴다. 내가, 삼촌이 된다. 그런데 백수 삼촌이라니 어쩐지 폼이 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카 입장에서 보았을 때 유일무이한 삼촌이라는 존재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마음속에서 폭발적으로 자라나는 것이 느껴졌다. 어차피 어떤 식으로든 돌파구를 만들어 당장의 진척 없는 일상에서 뛰쳐나갈 심산이기도 했었다. 어떠한 즐거움도 찾을 수 없게 된, 답답한 연습실에 틀어박혀 있던, 아무런 목적의식도 없이 고기냄새를 맡아가며 서빙을 해야 했던 일상을 깨부숴야만 했다. 자, 이제 이상(理想) 속에서 거닐던 나날들은 단칼에 청산하고 현실로 돌아와 삶을 재정비할 시간이다. 나는 무라도 썰겠다는 심정으로 칼을 빼들었다.
다시 공무원 공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3개월 정도 경험했었던 공부에서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으니 말이다. 9급 공무원이 되어 살아가는 내 모습은, 현실적인 낭떠러지에 매달린 상태에서도 어쩐지 쉽게 그려지지가 않았다. 내세울 것이라고는 직업 군인 경력과 고등학교 졸업장뿐인 나에게 어떤 직업적 선택지가 남아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방에서 시끄러운 소음이 흘러나왔다. 어엿한 직장인이라면 회사에 머무를 낮 시간대, 야간 근무를 앞두고 방에서 게임에 몰두 중인 형이 소음의 원인이었다. 그 소음의 원인은 누가 봐도 영락없는 방구석 겜돌이의 모습이 아닌가. 이런 사람이 경찰 공무원이라니. 물론, 출근 이후에는 지옥 같은 업무들로 인해 바쁘게 움직이고 사건 사고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들에 시달리면서 착실히 공무를 수행해 나갈 형이었지만(실제로 관할 경찰서 내 평판이 좋은 편이다), 그때 그 순간만큼은 어쩐지 경찰이라는 직이 적잖이 만만하게 생각되었다고. 경찰 공무원,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릴 적부터 학업에 있어서는 형에게 뒤처진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고등학생 때는 공부에 흥미를 잃어 손에서 연필을 완전히 놓았던 나였지만, 중학교에 다닐 적에는 나름 전교권의 성적을 유지하기도 했었고, 뒤늦게 수능을 준비해서 괜찮은 성적도 받아냈었던 나다. 경찰 공무원 시험이라고 합격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형의 말에 의하면, 불규칙적인 근무 패턴이 단점이기는 하나 보수도 각종 수당들이 더해져 9급 공무원에 비해서 괜찮은 편이라고 했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서 일처리를 하는 단순한 공직들보다는 활동적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나와 잘 맞을지도 모르겠다고도 형은 덧붙였다. 그렇게 나는 곧바로 경찰 공무원 시험 준비에 돌입했다.
여전히 마른 체형을 유지 중이었던 터라 체력 평가에 있어 약간의 부담감은 있었지만, 필기시험이나 면접에서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틈틈이 체력과 체격을 키워가면서 부지런히 공부에 정진해 나갔다고. 음악적인 열정을 한껏 누그러뜨린 뒤 명확하게 떠올린 목표 의식이었기에, 수험 생활은 그리 고통스럽지 않았다. 이전에 뒤늦게 수능을 준비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설레고 벅찬 감정들에 둘러싸여 매일매일 성장해 나가는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했었다. 어느새 해는 바뀌어 2020년이 밝았고, 형은 2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다가온 4월. 상반기 순경 공채 1차 필기시험에서는 보기 좋게 낙방을 했더랬다. 아쉬움은 없었다. 한번 정도는 경험 삼아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기도 했고, 진짜 시험은 8월에 있을 하반기 시험으로 어느 정도는 윤곽을 잡고 있었으니까. 하반기 시험마저 떨어진다면, 경찰 공무원은 포기하고 아예 다른 길을 모색하겠다는 굳은 각오로 심기일전하여 마음을 다 잡았다. 그리고 정말로 운이 좋게도, 다가온 두 번째 시험에서 당당히 합격을 따낼 수 있었다. 조카가 세상에 나온 지 4개월 만의 일이었다.
일단 당장에 부끄러운 삼촌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지만, 인생 전반을 놓고 보았을 때 계속해서 이어갈 만한 업은 아니라고 일찌감치 생각했었다.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나는 합격과 동시에 퇴사 계획을 머릿속으로 그려 나갔다. 경찰 공무원이 되기 이전까지는, 나름대로 목표를 지닌 상태로 인생을 헤쳐왔다고는 해도 주로 단편적인 흥미 위주로 다양한 경험들을 추구해 왔다는 느낌이 강했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나 자신의 성격이나 흥미, 그리고 삶을 대하는 자세를 파악해 둔 상태였기에 보다 철저한 준비를 통해 세상에 나가볼 심산이었다. 당장 경찰 공무원이라는 직에 합격을 했을 뿐 그 어떠한 일도 경험해보지 않은 상태였지만, 이전까지의 내 삶을 바탕으로 어렴풋하게나마 공직과 어우러지지 못하는 나를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분명 오랜 기간 그런 조직 사회에 몸담고 있지 못할 성미를 지니기도 했고, 그런 점을 빠삭하게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래 근무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경찰 공무원으로 지내야 하는 나날들을, 그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반드시 거쳐나가야만 하는 하나의 과정 정도로만 여겼었다고.
"그래서, 이번엔 얼마나 하다가 그만두려고?"
주변 친구들 역시도 나의 합격 소식을 듣자마자, 내 생각과 결이 같은 물음들을 던져왔다. 어떤 면에서는 이미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녀석들이었다. 당분간은 먹고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 앞으로의 길에 대해 고민할 시간적인 여유는 충분한 셈이었다. 대략적으로 내가 서른다섯이 되기 전까지는 하고 싶은, 할 만한 일들을 찾아 나선 뒤에 경찰직을 내려놓아야겠다는 다짐을 굳혔다. 처음부터 말했지만, 어릴 적부터 경찰을 꿈꿔왔다거나 나라에 봉사하고 헌신하는 마음을 가지고 시험에 응시했던 것이 결코 아니었다. 단순히 현실적으로 조카에게 부끄럽지 않은 삼촌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리고 조카에게 용돈을 한 푼이라도 더 쥐여주기 위해서 경찰 공무원의 길을 택했던 나였다.
누군가는 나의 동기나 계기를 얄팍한 것이라며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의 시선에서 그 동기가 지나치게 가벼워 보인다 할지라도, 당사자인 나는 그 누구보다 그 직을 얻는 데에 진지했고 그런 자세를 바탕으로 목적의식을 부여잡으며 최선을 다해 원하는 결과를 거머쥘 수 있었다는 사실에는 한 치의 거짓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와는 다르게 오랜 시간 경찰을 꿈꿔오고, 나라에 헌신할 마음을 충분히 갖춘 경찰 준비생들이 많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런 이들이 생각하기에 나의 동기가 지나치게 세속적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는 사실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들의 간절한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나 역시도 그들이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다. 그저, 그들의 애쓰는 마음과 노력이 나에 비해 모자란 것이었다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절차와 방식에 따라 공정한 경쟁을 치른 결괏값이었으니 내가 떳떳하지 못할 이유 역시 없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나의 입직 계기가 그렇다고는 해도, 근무하는 동안에도 그 누구보다 열심히 업무에 대해 고심하며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었기에 스스로에게 부끄럽지도 않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내가 선택한 길이니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지만 말이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공직자로서의 품위나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 혹은 봉사하고자 하는 의지와 같이 숭고한 가치는 아니었을지라도, 스스로에게 떳떳하고자 하는 마음과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근무해 나갔고 나름대로 인정도 받을 수 있었던 경찰관 생활이었다. 생각해 보면, 어떤 일을 해나가는 데에 있어서 동기나 계기가 꼭 많은 사람들에게 납득 가능한 방향으로 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추앙받을 정도로 훌륭한 마음가짐과 동기를 통해서 어떤 일을 헤쳐나가는 것은 당연히 나무랄 데 없이 멋지지만, 그렇게 거창하지 않아도 자신만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을 통해 업적을 이루어내는 것 또한 칭찬받아 마땅한 멋진 일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나름의 몫을 해내는 방향이라면, 그의 발단이 미숙하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누가 감히 손가락질을 할 수 있겠는가.
결국에는 스스로의 흥미나 적성이 사회 전체적으로 해가 되지 않고, 오히려 긍정적일 수 있다면 건강한 가치관이라고 판단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나 같은 경우에도 나름의 재미를 추구하고 흥미와 적성을 발현하는 가운데 궁극적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은 것이니, 내가 재미만을 추구한다고 손가락질을 할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부터 위대한 사람은 없다. 날 때부터 올곧고 건강한 가치관을 가지고서 우직하게 고집하며 나아가는 사람 역시도, 없다. 깨지고 부딪히고 때로는 주저앉아 울기도 하면서도 꿋꿋이 자신만의 인생 방정식과 공식을 만들어 나가면 된다.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욕구의 실현도 어느 정도는 따라주어야 하는 것이다. 기부를 하고 싶은 마음을 키운다고 해서 기부를 할 경제적 여유가 갖추어지지는 않는다. 자신의 부를 쌓고자 흥미와 적성을 바탕으로 노력을 기울인 사람이 마침내 기부를 할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거창한 생각만을 가지고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면 사회에 아무런 쓸모가 없는 방구석 몽상가로 남을 뿐이다. 집 밖으로 나가 행동하기 위한 작고 얄팍한 생각이, 처음부터 위대하지 않다고 해서 그것이 위대한 일로 이어지지 않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완벽한 봉사정신만을 요구하며, 돈을 한 푼도 주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경찰, 소방관, 군인으로 남아 우리나라를 위해 봉사하려 하겠는가. 무슨 일이든 우리를 당장에 움직이게 하는 것은 숭고한 가치나 정신이라기보다는 이기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에서부터 나오기 마련이다. 그래도 밥은 먹고살아야지, 이 나이에 뭐라도 하면서 살아야지 하는 단순한 푸념들이 대부분의 우리가 일하는 이유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쉽게 납득할 수가 있을 것이다. 같은 연유로 나처럼, 고작 조카 용돈 줄 심산으로 시험 과정을 거쳐 성실한 경찰관으로서 사회에 봉사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굳이 처음부터 거창한 한걸음을 내딛기 위해 행동하지 않은 채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다. 여자들로부터 관심을 얻기 위해 방구석에서 기타를 연주하다가 어느새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록스타가 되어있을 수도 있고, 유명 작가 J.K. 롤링과 같이 단순히 살림에 보탬이나 되어보려 소설을 써나가다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 하찮은 이유이든, 단순한 흥미에서든 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일단 해보기 바란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이유들을 찾을 수도 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만한 위대한 일을 해나가고 있을 수도 있다.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 스스로에게 깃들어 있는 위대함을 그 누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