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여유가 갖추어지니 본격적으로 시작된 독서와 글쓰기
23살이란 나이에 군대를 전역한 이후로는, 경제적인 여유를 바탕으로 무언가를 이루어 왔다기보다는 온몸으로 부딪치며 자본에 연연하지 않고 벌어들이는 족족 내 밑거름이 될 경험들과 맞바꾸어왔다는 생각이다. 티끌 모아 티끌이라는 생각으로(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어린 나이의 나는 경제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고 온몸으로 부딪쳐가며 얻어내는 경험이라는 자산을 늘리는 데에만 집중했었다. 때문에, 현실적인 돈 문제를 계속해서 맞닥뜨려야만 했지. 자전거 여행을 마친 뒤에 일본 워킹 홀리데이를 준비하면서 이미 군대에서 벌어놓은 돈은 모두 소진한 상태였기 때문에, 일본에서부터 본격적인 가난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러 해프닝들로 인해, 21세기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배고픈 나날들을 낯선 일본 땅에서 근근이 이어가야만 했고, 일본에서 돌아온 뒤에도 아르바이트생이면서 동시에 수험생의 신분으로서 쥐 죽은 듯 지내기도 했다. 대학생 시절에 돌입하고는 학자금과 생활비라는 고난에 짓눌려 주 5일 이상 일하는 아르바이트의 노예로 지내야만 했다. 경제적인 여유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는 삶이었다.
마침내 경찰 공무원 합격 소식을 전해 들은 뒤부터는 그런 삶을 '당분간' 청산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나의 변덕이 또 언제, 어느 방향으로 튀어나갈지는 알 수 없었지만, 군 생활 이후 4년 만에 찾아온 번듯한 직업이었으니 반가운 마음이 들 수밖에. 아마도 큰 이변이 없는 한 2~3년 정도는 궁핍한 생활을 면할 수는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런 여유가 내 삶에 찾아왔다는 것이 어느 정도 실감이 날 때쯤, 깊이 잠들어있던 하나의 욕구가 샘솟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음악에 대한 열정에 결코 뒤진 적이 없었던 '글'에 대한 욕구였다.
길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약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지겹도록 딱딱한 법리적 내용이 쓰여있을 뿐인 수험서만을 주야장천 읽어댔기에 글을 읽어나감에도 읽는 것 같지 않았던, 결코 채워지지 않았던 심적 갈증을 해소시켜야만 했다. 보다 풍부하고, 머리를 야들야들하게 만들어주면서 간지럽게 감성을 태우는 그런 글들에 빠져들고 싶다는 충동을 수험 생활 동안 착실히 키워나갔다고. 마침내, 합격을 하고 중앙경찰학교에 입교하게 되었을 때에도 나에게 가장 큰 설렘으로 다가왔던 것이 독서였다. 중앙경찰학교에서의 교육 기간은 나의 그런 갈증과 설렘을 충족시켜 주기에 아주 충분한 환경이었다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라는 무지막지한 팬데믹이 전 세계를 뒤덮은 가운데, 2020년 12월 26일 입교 예정이었던 우리들은 그 예정보다 이틀을 앞당긴 24일 크리스마스이브날 중앙경찰학교에 입교해야 했다.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 차 따뜻하게 보냈어야 할 상징적인 날에, 생의 마지막 날을 맞이하여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돼지와도 같이 경찰학교에 들어(끌려)가야만 했다. 분명 고난과 역경을 뚫고 합격을 따낸 것이었기에 입교하는 젊은이들의 표정은 밝아야 마땅했겠지만, 내 기억이 맞는다면 이브날의 입소라는 치명적인 쓰라림으로 인해 모두의 얼굴은 우울감으로 뒤덮여 있었다. 나를 포함한 당시 우리들의 얼굴에서 표정만으로도 음성이 흘러나왔더라면 아마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신이시여, 왜 저희에게 이런 시련을...
입소한 우리가 우울함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은 단지 입소일이 앞당겨진 때문만은 아니었다. 수험생 신분이던 2020년 초부터 유행하기 시작해 필기 시험일이 늦춰지기도 하는 상황을 빚어내기도 했던 코로나19로 인해 경찰학교 교육기간 동안 모든 외박과 외출을 금지당하는 초유의 사태를 미리 알아차렸기 때문도 있었다. 처음 입소할 때만 해도 여건이 나아지면, 팬데믹 상황이 조금이라도 개선이 된다면 외박은 안 되어도 외출이라도 보내줄 것이라며 학교 측은 우리를 달랬지만, 결국 중간중간의 희망적인 루머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단 한 차례도 교육 기간 동안 바깥 사회로의 발걸음을 허락받지 못했었다. 당시에는, 이보다 슬픈 이야기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생각마저도 긍정할 수 있었다고. 마침내 모든 교육이 끝나던 날, 학교에서 지방청까지 운행해 주는 버스에 올라 교내를 한 바퀴 돌 때 목격할 수 있었던, 어느 한 교수진이 내건 플래카드는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305기의 첫 외박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아무튼, 그렇다고 계속해서 주저앉아 좌절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언제나 마음먹기에 따라 위기는 기회로 둔갑하기도 한다. 어두운 면이 있으면 반드시 어딘가에 밝은 면이 존재한다. 인생은 그래서 살 만하다. 미리 학교에 들어왔으니, 나가는 날 역시 이틀이 빨랐다(이렇게라도 긍정하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그리고 팬데믹으로 인해 입교 초기 교육생들 간의 접촉이 엄격히 금지되었으며 동시에 수업이나 훈련 역시 2주간 진행되지 못했는데,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생활반에서 꽤나 길고 여유로운 자유 시간을 가질 수가 있었다. 동기들은 무료함에 스마트폰으로, 혹은 가지고 온 노트북으로 게임을 하기도 했지만, 책에 굶주려 있었던 나에게는 오로지 그 하나의 욕망을 분출할 절호의 기회와도 같은 시간이었다. 나는 닥치는 대로 책을 탐닉해 나가기 시작했다.
약 4개월의 기간 동안 14 권의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누군가는 '에계?' 하는 소리를 내며 '겨우'라는 단어로 나의 단출한 노력을 더없이 축소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1년에 100 권씩 읽어대는 다독가들을 더러 보아왔기에, 함부로 명함을 내밀 만한 독서량은 아니라고, 스스로도 생각한다. 다만, 나의 일생을 통틀어 단기간에 이토록 많은 책을 읽었던 기간이 없었다는 점에서 나에게는 크나큰 자랑거리임을 말하는 바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많은 책들을 짧은 기간 안에 읽어낸 셈이었다. 소설, 과학, 철학, 동화, 심지어 경제 서적까지 모든 분야를 아우르며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더랬다. 독서에 있어서만큼은 '편식'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아, 그렇다고 내가 편식하는 성미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냥, 그렇다고.
그렇게 책을 읽어가는 동시에 제대로 글을 써나가기 위해 블로그도 시작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소소하게 노트에 일기나 작품에 대한 감상, 그리고 간혹 소설 등을 써내려 가긴 했었지만, 어쩐지 꾸준히 해오지는 못했다는 느낌이었다. 그런 이유로, 학교에 있는 네 달간을 완벽히 나만의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 독서와 함께 꾸준히 글을 써 보자고 다짐하게 된 것이었다고.
처음에는 단순히 책을 부지런히 읽어나가며 감상과 서평을 남기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점차 일상글이나, 살면서 떠올렸던 수많은 경험과 감상들에 대해서도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블로그에서 자신들만의 인생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사람들과도 소통할 수 있었다.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색다르고 즐거운 경험들이었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지내면서도, 그토록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니. 팬데믹이 안겨준 몇 안 되는 긍정적인 경험과 깨달음 가운데 하나였다. 나는 학교를 나온 이후로도 꾸준히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바쁜 와중에도 드문드문 블로그에 글을 적어나가는 소소한 취미를 지속적으로 실천해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어느덧 4년 가까운 시간이 지날 동안 내 블로그는 어떻게든 꾸역꾸역 살아남을 수 있었고, 최근 3개월 동안은 매일같이 글을 한 편씩 써내며 블로그를 생활화하는 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것은 다 중앙경찰학교에서 기초를 다졌던 나날들이 있었던 덕분이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어느 때인가 예기치 못하게 여유로운 기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우리가 바빠질 날들에 대비하듯, 그런 여유로운 시간들에 대해서도 역시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도록 나름의 대비는 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그런 시간이 찾아오면 언제든지 해치울 책들과 영화, 그리고 함께 시간을 보낼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충전의 시간 역시도 알차게 채워나간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일상에서 힘을 얻을 수 있고, 또 어떤 형태로든 나의 인생에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어느 순간에 번뜩이며 삶의 지혜를 안겨다 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삶은 길다면 길기는 하지만, 언제까지이고 무한히 이어질 수 없는 유한함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그 한정된 시간 속에서 자칫 하염없이 흘려보내기 쉬운 시간들을 되도록이면 무엇으로든 채워나가려는 노력을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유튜브 쇼츠를 보거나 인스타 릴스를 보는 식으로 아무렇게나 낭비하며 무의미한 순간들을 쌓아나간다면, 결국에 남는 것은 조금의 발전도 없이 그 시간만큼 늙어버린 자신밖에는 없을 것이다.
내가 오래도록 하고 싶었다거나, 혹은 하고 싶은 일 정도는 가슴속에 묻은 채로 살아가 보도록 하자.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꺼내어서 제대로 몰두할 수 있게끔 말이다. 아니면, 일상 속에서 툭- 하고 떨어지는 자투리 시간을 그런 일들로 채워보는 것도 좋다. 마침내 (나름의) 경제적 여유를 거머쥐고 좋아하는 일들을 해나갈 수 있었던 과거의 나처럼, 그리고 시간적 여유를 얻어 온전히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는 지금의 나처럼, 나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인생의 의미는 그런 식으로 무의미한 시간을 유의미하게 채워나가며 만들어 나가는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