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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경찰학교에서 경제를 배운 사람

생각해 보니 부자에 도전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서

by 봉필


앞서 말했듯이 중앙경찰학교에 머물면서 열네 권의 책을 읽을 수가 있었는데, 그중 두 권의 책이 경제 관련 책이었다. 두 권 중에서도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열네 권의 책 가운데 가장 먼저 읽었던 <언스크립티드(부의 추월차선 완결판)>은 나의 최근 삶을 뒤흔들어 놓은 책 가운데 하나다. 문학소년이었던 고등학생 시절부터 경제나 자기 계발, 재테크 서적과는 한참이나 거리를 유지한 채로 지내왔었다. 예술가가 되기 위한 소양을 기르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돈에 관련된 서적은 어쩐지 읽고 싶지가 않았고(그렇다고 엄청난 소양을 쌓은 것은 아니었지만), 자기 계발 서적은 방황하던 중학생 시절 이미 대부분 탐독하면서 모두 뻔한 말들만을 늘어놓는다는 깨달음을 얻고는 멀리하며 지내왔었다. 그렇게 지내다가 우연히 한 SNS에서 이 책에 관련된 리뷰를 보고 경제 관련, 자기 계발 서적임에도 스마트폰에 메모를 해 두었던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인생이 바뀌었다나 뭐라나.


"결국 창업하라던데?"


중앙경찰학교 입교를 앞두고 만난 친구와의 대화에서 독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우연히도 그 친구가 이 책을 소장 중이라고 말하기에, 읽고 난 감상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더랬다. 종국적으로 창업하라는 이야기로 책이 끝나버린다는 친구의 간단명료한 서평에 약간의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읽어보겠다는 심산으로 친구에게서 책을 건네받고 무사히 학교로 가지고 들어갔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난 뒤, 친구의 간단명료한 서평과는 달리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며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을 묵직하게 받았다고. 앞으로의 인생 계획을 보다 섬세한 부분까지 수정해야겠다는 강한 압박감마저 들었다. 나는 지금껏 눈을 감고 살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어쩌면 나 역시도 경제적인 고난들을 직접적으로 겪어가는 삶을 살아가지 않았더라면 그저 친구처럼 겉으로만 뻔하게 드러나 있는 책의 메시지들을 냉소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그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확실히 다양한 경험들을 쌓으며 보다 진취적인 태도로 삶을 바라보게 되었고, 그 속에서 경제적인 고민들을 숱하게 겪어 온 상태였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단순히 창업을 하라는 하나의 메시지만을 가진 책으로는 읽히지 않았던 것이다. 인생의 전반적인 모순들에 대한 나름의 통찰과, 실제로 자신이 사업을 통해 이루어 낸 부의 경로들을 간단하지만 명료하게 말해주고 있는 책이었다. 나도, 부자를 꿈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젊은 시간을 주고 늙은 시간을 산다"


책의 구절 가운데 가장 공감이 갔던 문장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 젊음은 온전히 고생하는 시간으로 치부하는 행태를 두고, 책의 저자는 세상이 만들어낸 하나의 각본이라고 말한다(그래서 제목이 각본에서 벗어나라는 뜻의 언스크립티드이다). 생각해 보면 그리 틀린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릴 수가 있다. 우리들 대부분은 사회에 적응하게 되는 서른 즈음부터, 혹은 이르면 이십 대 중반부터 스스로의 노후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당장 젊은 시간을 즐기지 못하면서 보다 안정적으로 나아가는 방법에 지나칠 정도로 몰두하게 되는 시기를 맞이한다. 우리나라에서 무언가를 행하려고 하는 나이가 이십 대 후반이나 서른이라고 하면 아직까지도 주변에서 만류하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것이 여전한 현실이지 않은가. 기실, 숱한 모험과 도전을 반복하며 다양하고 진취적인 경험들을 해나가도 충분한 나이임에도, 우리는 노년의 평안에 사로잡혀 순전히 '안정'이라는 단어에만 지나치게 집착하여 젊은 시간을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소비해 나간다.


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의 말처럼, 99퍼센트의 인류는 잉여인간일 수밖에 없다. 나머지 1퍼센트의 창조적, 그리고 통찰적 인간들이 생산적인 일들을 인류를 위해 해나갈 뿐이다. 솔직히 지금에 와서도 내가 99퍼센트인지 1퍼센트의 인간인지 확신은 없지만(99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 어떤 것도 도전해 보지 않고 스스로의 한계를 정하기에는 아직까지 너무나 젊다고 느꼈기에, 부딪쳐보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자리 잡았을 뿐이다. 그리고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 그저 안정적이기만을 바랄 뿐이라면 평생토록 내가 99퍼센트의 인간인지 1퍼센트의 인간인지 알 수 없지 않은가. 일단은 젊은 시기에 부를 한 번쯤 창출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왜 지금까지 그런 사실을 애써 모른 척하며 나는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생각으로만 살았던 걸까 약간의 후회도 느꼈다. 아무튼 그런 생각들을 떠올린 채 당장 경찰 공무원이라는 직을 수행해야 하는 내가, 부의 창출이라는 목적지를 향하기 위해서 가장 접근하기 쉬운 루트는 '투자'였다.


경찰 공무원이 될 수 있었던 스물일곱이라는 나이까지 부끄럽게도 투자에 대해 제대로 들어보지도 못했고, 해본 적도 없었던 나였다. 어린 시절 사업에 실패했었던 아버지는 늘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도박과 사업, 그리고 주식 투자는 하지 말라고(아버지에게는 도박과 주식, 사업이 같은 선상에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물론, 아버지 된 입장에서 그런 것들이 당신의 기억 속에 안 좋게 남아 있었고, 나름대로 큰 리스크가 따르는 행위이기 때문에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말이었을 것이라고 생각은 한다. 다만, 내 입장에서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내 입장에서는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해 괜한 두려움과 공포심으로 눈앞에 펼쳐진 길들을 일정 부분 막아놓았던 셈이었으니 말이다. 아버지의 그런 조언은 어린 나의 가슴에 깊이 박히었고, 그로 인해 무려 27년 동안이나 그런 행위들을 그저 위험만 따를 뿐인 쓸모없는 행위로 치부한 채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인생 속에서 철저히 배제해 가며 살아왔었다. 그랬기 때문에 혼자 헤매고 부딪쳐 나가면서도, 경제적인 어려움에 두들겨 맞으면서도 좀처럼 그런 수단들에 대해 떠올릴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지금은 가고 없는 아버지를 아주 약간, 원망하기도 한다.


"혹시 코인 하세요?"


투자에 대한 책을 읽어나가며 생각의 폭을 넓혀가던 차, 아직 대화도 제대로 나누어 보지 못해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던 같은 생활반 동기가 나에게 물어왔다. 코인이라. 사실, 그때까지 주식이나 투자 수단에 대해 들어본 바가 전혀 없었기에 나에게는 상당히 낯선 단어였다. '코인? 그거 사기 아니에요?'라고 묻고 싶은 마음이 어쩔 수 없이 내 가슴 깊숙이에서부터 자라났지만, 그런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동기에게 물었다. 그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모르는 것이 있으면 알아가면 된다. 제대로 다 알아간 뒤에 나와 맞지 않는다거나, 세상 살아가는 데에 별반 도움은 되지 않고 해만 끼칠 것 같다 싶으면 내려놓으면 그만인 일이다. 뭐든 경험해 보고, 도전해 보자는 나의 인생 철칙과도 같은 심리는, 그렇게 한 권의 책으로 인해 '투자'라는 영역까지 뻗어 나가게 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중앙경찰학교에 머무를 당시 코인 시장은 대성황을 이루었고, 나는 운이 좋게도 초심자의 행운으로 당시 연봉의 두 배 정도가 넘는 큰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경제적으로 코로나19 시기 경제부양 정책으로 양적 완화가 이루어져, 많은 투자 시장들이 활기를 띠고 있었던 차에 마침 내가 거기에 뛰어들게 되었던 것. 2020년 말부터 2021년 초까지는 그야말로 돈 복사가 이루어진다는 말이 떠돌 만큼 자산시장의 붐이 일어났던 시기였다. 훗날 그때 벌어들인 돈은 허무하게 내 손으로부터 멀어져 갔지만, 그 경험은 나에게 귀중한 사실 하나를 알려주었다. 피땀 흘리는 노동이나 남들에게 공헌하지 않는 방법으로도, 그저 돈만으로도 돈을 벌 수가 있구나- 하는 사실을.


큰돈을 벌어들였던 경험을 바탕으로, 제대로 배워보겠다는 다짐 하에 교내에서부터 주식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나갔다. 학교를 수료하고 지구대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을 때에도 마음을 다잡고 경제나 주식에 대해 배워나갔고, 어느 정도 전반적인 경제의 흐름 정도는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이전의 투자로 쌓아 올린 자본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는 커다란 실패를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투자 공부를 지속해 나갔고, 마침내 남부럽지 않은 수익률을 유지하는 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제 기껏 4년 차 투자자에 접어들었을 뿐이지만, 나름대로의 기준을 바탕으로 괜찮은 결과들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내가 훗날 퇴사를 하는 데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을 수 있었던 데에 이 투자 능력의 지분이 꽤나 크다고도 할 수 있다.


결국에는 인생에 있어 무슨 일을 벌이든, 혹은 어떤 직업으로 꾸준히 나아가든 경제 공부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사회에 태어났으니 말이다. 이 사회에서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짊어지고 있는 고민 가운데 하나가 경제적인 부분이라는 것에도 우리는 반드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모두가 공통적으로 하는 고민이라는 것도 이해하는데, 그것에 대해 공부하지 않고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우격다짐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지 않은가. 나도 많은 경험들을 뒤로하고 다소 늦은 나이에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좀 더 빨리 경제에 대해 배우지 못한 안타까움과 더불어 늦게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경제적인 부분에서의 안정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변화시킨다. 무작정 돈만 좇으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일들을 해나가고자 하는 삶에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을 충족시키는 것만으로도 많은 여유를 느낄 수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하고 싶은 일들이 얼마나 도전적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기본적으로 먹고 살아갈 수 있는 바탕이 있다면, 몇 번을 넘어져도 몇 번을 다시 재기할 수가 있다. 오히려 쫓기지 않는 마음으로 더 안정적인(이 단어를 좋아하진 않지만) 도전을 이어나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삶이 될지도 모른다. 지금의 내가 직장을 퇴사한 뒤에도 마음 편히 글을 써나가는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것 역시도 모두 경제와 투자에 대한 공부로 나름대로 그 능력을 길러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 공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할 수 있다.


KakaoTalk_20241206_154549651.jpg 2021년 4월, 중앙경찰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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