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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쓰북 Jul 20. 2022

1. 처음 경험한 승진 스트레스

나만 누락하고 싶지 않았다

2017년 겨울, 연말 평가를 받는 면담에서 팀장님은 나에게 말씀하셨다.


"내년이면 대리 승진 대상자가 되니까 미리 준비할 수 있는 항목들은 챙겨줬으면 좋겠어. 특히 어학 점수는 가능하다면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점수로 부탁해."


다가오는 2018년에 내가 연차로 대리 승진 대상이 되니 미리 준비를 하라는 말씀이셨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지만 그 당시에 승진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것 중에 하나가 어학 점수였다. 

영어 시험 점수가 특정 점수 이상이 나와야 가산점이 나왔고, 그렇지 않더라도 일정한 점수대에 있어야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학 점수를 취업 이후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보다 더 스트레스를 받았던 건 그냥 내가 승진 대상이 된다는 그 자체였다.

같이 입사한 동기 중 석사를 전공한 친구들은 먼저 승진했고, 그것과 별개로 눈에 띈 경우는 더 빠르게 조기 승진을 한 사례도 존재했다.

매년 승진 발표는 연말에 전사 공지로 나오다 보니 그 리스트에서 누락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다. 남들 다 가는데 나만 못 갈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2018년은 다른 때보다 나에게 무척 혹독한 한 해가 되었다.

연초부터 어학 점수를 만들기 위해 주말 이른 아침에 학원을 다니며 공부했고, 원하는 점수를 만들기 위해 여러 차례 시험을 보며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리고 그와 별개로 개인 자기 계발 성과로 자격증도 2개 취득해야 해서 1분기에는 계속 공부만 했다. 

다시 생각해봐도 이때 일찍 공부를 했던 게 정말 다행이었다. 2분기부터 미친 듯이 바빠졌기 때문이다.


물론 팀에 대리 승진 대상자는 유일하게 나 하나였지만 그래도 장담할 수 없기에 일에서도 분명하게 성과를 내야 하는 게 당연하고, 더 고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승진 대상자에게 어렵거나 큰 일을 맡기는 분위기가 있었던 터라, 팀에서 누구도 해보지 않았던 일이 내게 맡겨졌다.

그리고 그 일은 나에게 몹시 버거웠다. 일단 업무를 하기 위한 배경지식을 쫓아가는 것부터가 힘겨웠고, 남의 코드를 해석해 수정하고 개발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누구도 먼저 해본 사람이 없어서 조언을 청할 수가 없었다.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으니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숨 막혔다.

그런 와중에 고객사 담당자는 타이트하게 시간을 주고 하루 매 시간 단위로 나를 재촉했다. 매일같이 야근을 해도 해야 할 일은 끝이 나지 않았다.


어느새 팀에서 주간보고 리포트를 올릴 때 내 이름이 걸린 업무가 전체의 반 이상이 되어 모두가 놀란 적도 있었다.

계속 야근이 반복되는 건 내가 무능해서 그런 걸까, 내 잘못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매일 저녁 맥주를 마셨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졌지만 육체적으로도 건강이 나빠졌다.


그때 못하겠다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하필 승진 대상자였기에 할 수가 없었다. 

힘든 티라도 내고 약한 모습을 보이면 괜히 나의 승진에 영향이 갈까 봐 걱정됐다. 그래서 버티고 버텼던 것 같다.

다행히 사내 전보로 팀을 옮겨 합류한 선배를 같이 붙여줬고, 이제는 혼자 짊어질 스트레스가 나눠져 마음의 여유는 생겼지만 여전히 야근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보통 사람을 줄 때 순수하게 사람만 주지 않기에 일도 늘어서 매주 주말에 하루는 출근을 했다. 그래도 같이 할 사람이 생겼다는 게 큰 위안이 됐었다.


일에 지친 나머지 휴가를 써도 다른 무언가 하고 싶단 생각도 들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여름휴가를 뒤늦게 가을에 썼는데 어딘가 떠나지도 않고 집에서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로 보냈다. 

겨우 상황이 나아진 건 11월이 되었을 때였다. 봄부터 미친 듯이 달려왔던 업무가 그제야 마무리가 되었다.


보통 연말 평가 면담을 12월 중순에 진행했는데, 이때는 신기하게 11월 초에 평가 면담을 했다.

팀장님은 올 한 해 어땠냐고 하셨다. 새로운 업무를 진행한 초반 능력이 부족해 따라가기가 힘이 들었던 부분은 아쉽지만, 그래도 전보다 팀에 많이 기여했다고 생각한다고 말씀드렸다.

나의 대답에 팀장님은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고 11월 말에 모두가 예상치 못했던 타이밍에 갑자기 공개된 승진 발령에 나의 이름이 있었다. 

무사히 예정대로 승진에 성공한 것이다.


승진의 기쁨은 과연 얼마나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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