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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레국화 Jun 11. 2024

‘지속 가능한’ 육아

나카지마 사오리, 『프랑스 부모는 아이에게 철학을 선물한다』

아이 낳기를 꺼리는 나라.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올해 합계출산율*은 0.68명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0.78명보다도 더 떨어진 수치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 조앤 윌리엄스가 우리나라의 출산율을 듣고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라며 머리를 부여잡는 모습이 한 다큐멘터리 영상에 담기기도 했다. 이는 우리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내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왜 아이를 안 낳는 것일까. 지난해 11월 한국은행이 펴낸 <경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저출생의 원인은 높은 ‘경쟁 압력’과 고용·주거·양육 측면의 ‘불안’이라고 한다**. 즉,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경쟁 일변도의 문화, 그리고 고용 불안과 주거비 및 교육비 부담 등이 그것이다. 학교교육에서부터 노동시장에 이르기까지 끝나지 않는 경쟁으로 인해 제 한 몸 건사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 장차 똑같은 경쟁에 노출될 아이를 위한 비용까지 부담하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현실이 이러할진대, 현재 젊은 세대에게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은 지속 가능하기가 쉽지 않다.


‘지속 가능한’ 육아는 이 땅에서 가능할까. 이에 대해 하나의 좋은 답이 되어주는 책이 있다. 프랑스의 학교교육과 자녀 양육에 대해 고찰하는 일본 작가 나카지마 사오리의 에세이 『프랑스 부모는 아이에게 철학을 선물한다』(윤은혜 역, 예담프렌드, 2018)이다. 저자는 일본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그곳에서 프랑스인과 결혼해 아이를 낳아 키웠다.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로, 큰아이가 중학교 졸업반, 작은아이가 중학생이 되는 시기를 거치며 “어쩌면 중등 교육은 [일본보다] 프랑스 쪽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p.9)고 생각하게 된다. 그녀는 이 책에 프랑스 사회가 지속 가능한 육아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풀어낸다.


프랑스 학교교육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 ‘자유롭게 생각하는’ 인간을 길러낸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철학 교육이 강조된다. 바칼로레아(고등학교 졸업 자격시험)는 철학 과목부터 시작된다. 단순히 특정 철학자의 사상에 대한 지식을 확인하는 문제가 아니다. 예컨대 ‘자유에는 그 어떤 방해도 있어서는 안 되는가?’와 같이 ‘철학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답을 써낼 수 있는 문제들이다. 자연히 학교 수업 역시 이러한 방향을 지향한다. 이를테면 중학교 국어(프랑스어) 시간에 이러한 과제가 나간다. ‘당신은 1914년을 살고 있는 프랑스의 어린이입니다. 독일과의 전쟁이 시작된 날, 아버지의 소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의 일기를 쓰시오.’ 즉, 학생들은 자기 생각을 타인에게 표현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시민교육 역시 학교교육의 중요한 목표다. 사회적 현안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리고 타인에 대한 관용을 갖춘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것이다. 중학교 학생회의 대의원회에서는 ‘어린이 시의회 의원’이 선출되는데, 이들은 시의회의 안건을 독자적으로 검토해서 채택하고 그 결과는 시의회에서 참고 의견으로 검토된다. 고등학생들은 정부의 주요 정책에 대한 반대 시위에 참여하기도 한다. 2010년에는 연금 개혁 반대 시위에 전국 고등학교 중 26.8%가 참여했고, 그 결과 약 17.1%의 학교들이 봉쇄되었다. 파업이 여느 나라에 비해 좀 더 일상적이다 보니, 교사들이 파업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프랑스 사회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일을 헐뜯지 않고 그저 투덜거리면서 불편을 감수”(p.140)한다. 


프랑스 부모들의 삶은 어떠할까. 우선, 아이들을 초등학교 때부터 ‘의대 진학반’ 학원으로 내모는 우리나라와 같이 극단적인 경쟁 압력은 눈에 띄지 않는다. 아이가 유급을 당해도 부모는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은 아이가 뒤처질 수 있지만, 유급을 도리어 새로운 학습의 기회라 여긴다. 물론 프랑스도 우리나라처럼 대학의 서열은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로 치면 일반고에 해당하는 고등학교 중에서도 명문대 입시에 치중하지 않는 학교들이 있다. 부모는 자녀의 성향에 맞게 학교를 선택한다. 국가가 양육 부담도 덜어준다. 이혼가정에 양육비가 들어오지 않으면 정부가 이를 선 구제 후 구상한다. 공립 유아 학교에서는 만 3세 이상의 아이들을 하루 종일 돌봐준다. 태권도, 미술 등 학교 밖 특별 활동에까지 사교육비가 드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본인 부담 비용은 거의 무료다. 자연히 여성의 경력 단절이 방지된다. 그러다 보니, 부모의 삶이 아이에게만 매몰되지는 않는다.


아이에게 부모의 삶 전부를 헌신하지 않는다. 프랑스에서 부모는 부모, 아이는 아이일 뿐이다. 부모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아이에게 필요한 정도로 개입할 뿐이다. 프랑스 부모는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아이를 위해 도시락을 싸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지키면서 아이의 입맛까지 고려한 합리적인 도시락을 준비할 뿐이다.(p.158)


프랑스의 합계출산율은 작년 기준 1.68명이다***. 우리나라의 두 배를 웃도는 수치다. 물론 한 사회의 출산율에는 예컨대 혼인의 인정 범위와 같은 다양한 사회적, 제도적 요인들이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책에서 읽히듯 육아와 교육의 ‘지속가능성’을 사회가 긴 호흡으로 고민하는 것이다. 단발적인 현금성 지원 위주의 저출생 대응 정책에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낯선 것’과 대면하는 순간. 이는 곧 우리가 그동안 서 있던 지평을 새롭게 보는 기회가 된다. 이 책은 일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엄마의 눈에 비친 프랑스 학교와 사회의 ‘낯선’ 풍경들을 그린다. 이 책을 통해, 오늘의 우리 독자들 역시 쏟아지는 저출생 기사들 아래 가라앉은 우리 사회와 교육의 오랜 문제들을 낯설게, 새롭게 보게 될 것이다.



* 한 여성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수. (출처: 두산백과)

** 1문단부터 이상의 내용은 시사인(2024.01.10.)의 기사 <합계출산율 0.7명 사회 한국은 정말 끝났는가>를 참조하여 썼습니다.

*** 출처: 한겨레(2024.01.22.), <‘한국 출산율 2배’ 프랑스도 저출생 고민…출산휴가·지원금 확 늘린다>

**** 이와 관련하여 오마이뉴스(2024.03.15.), <프랑스는 결혼 없이 출생률 높였다, '이것' 덕분에>의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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