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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레국화 Jun 26. 2024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

셰한 카루나틸라카, 『말리의 일곱 개의 달』

1983년부터 2009년까지 무려 26년간 이어진 스리랑카 내전. 이는 아시아 사상 최장, 최악의 내전이었다. 실종자는 14만 명이 넘고, 사망자는 약 10만 명에 달한다. 숨진 이들 중 대다수는 민간인이었다**. 내전이 남기고 간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여전히 실종자를 기다리는 가족들이 존재하고, 내전 중 벌어진 전쟁 범죄에 대한 진상 규명은 지지부진하다. 그 수많은 죽은 이들이 사후세계에서도 편히 쉬지 못하고 원귀가 되어 이곳저곳 떠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인간의 죄악은 과연 극복될 수 있을까? 이 거대한 비극을 새로운 희망과 함께 그린 소설이 있다. 스리랑카 출신 작가 셰한 카루나틸라카의 장편 소설 『말리의 일곱 개의 달』(유소영 역, 인플루엔셜, 2023)이다. 2022년 부커상을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수상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마술적 리얼리즘’ 소설이다***. 즉, 사후세계와 유령들이 등장함과 동시에, 스리랑카 내전의 실제 사건들이 교차되고 주인공 역시 실제 인물에 기반한다. 주인공 ‘말리’의 모델은 스리랑카 내전 중 살해당한 전쟁 사진작가 ‘리처드 드 소이사’이다. 스리랑카 내전은 크게 다수 민족이자 불교도 중심의 ‘싱할라족’ 대 소수민족이자 힌두교도 중심의 ‘타밀족’의 대결 구도 속에 벌어졌다. 소이사는 말리처럼 정부군과 타밀 반군,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이르기까지 노선을 따지지 않고 사진을 찍으며 전쟁의 참상을 기록했다. 또한 그 역시 아버지는 싱할라족, 어머니는 타밀족으로, 이분법적인 종족 구분과 차별의 근거가 허구에 불과함을 드러내는 산증인이었다. 그는 1990년 납치 및 살해당한다. 비밀리에 ‘암살단’을 운용했던 정부 측 소행으로 추정되었지만, 용의자들은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작가는 이렇듯 죽음의 진실이 가려지는 상황에서 “산 사람이 아무것도 모른다면 죽은 사람들이 말하게 놔두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죽은 자를 소환하여 진실을 추적하도록 한다. 말리는 죽었다. 그러나 자신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말리가 있는 곳은 ‘중간계’로, ‘빛’으로 가기 전 단계이다. ‘빛’은 천국, 부활, 망각, 혹은 “당신이 필요로 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있는 곳]”(p.28)이며, ‘중간계’는 “길 잃은 망자들로 가득 찬 연옥”(p.145)이다. 말리에게는 ‘일곱 번의 달’, 즉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주어진다. 그 안에 그는 자신이 왜 죽었는지를 알아내어야 한다. 그래야 ‘빛’으로 들어가 다음 생을 살 수 있다. 이제 유령이 된 그에게는 어디든 이동하며 산 자들을 몰래 ‘바라보는’ 능력이 있다. 그는 자신의 시신이 토막 난 채 호수에 버려지는 장면도 보게 된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는 이렇게까지 무참하게 죽은 것일까.


한편, 산 자의 진실 찾기 역시 동시에 진행된다. 말리의 하우스메이트였던 두 친구, ‘딜런’과 ‘재키’이다. 딜런은 말리의 동성 연인. 재키는 내심 말리에게 연정을 품고 있다. 그리고 이들과는 다소 다른 목적으로 말리의 흔적을 따라가며 그의 부재를 의식하는 두 인물이 있다. 첫 번째는 딜런의 아버지이자 “타밀족 앞잡이”(p.194)라 불리는 청소년부 장관 ‘스탠리.’ 그는 말한다. “내 아들 주위에 어떤 존재가 있는 것이 느껴져. (...) 기분 나쁜 한기.”(p.461) 두 번째는 법무부 장관 ‘시릴’이다. 사법제도를 타락시킨 장본인이자 ‘정부의 충실한 일꾼’으로, 암살단을 조직한 바 있다. 그는 말리의 실종 사건을 조사하겠다는 구실로 말리가 목숨을 걸고 찍은 내전 사진들을 몰수하고 원본인 네거티브 필름마저 빼돌린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말리. 그는 결심한다. “친구가 내 네거티브 필름을 찾도록 도우려고. (...) 그러지 못하면, 내가 보았던 것들이 영영 사라지고 말아. 빗속의 눈물처럼.”(p.225)     


이 소설은 사후세계를 통해 역설적으로 이승, 즉 현실의 비극성을 강조한다. 말리가 중간계에서 만난 노인 유령은 이렇게 말한다. “혹시 사후세계는 고문실 같을 거라고 상상했나? 정부의 폭탄 공격과 반군이 설치한 지뢰 사이에서 새우등이 터지는 민간인 같은 사후? 집안 대대로 물려받은 이름 때문에 잡혀서 두들겨 맞는 사후?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은 지옥, 한창 성업 중이지.”(p.39) 이승은 지옥보다 더 지옥 같다. 소리소문 없이 사람들이 죽어가는 고문실. 그에 비하면 유령들이 모인 중간계가 오히려 사람 사는 세상같다. 떠들썩한 도떼기시장. 내 몫을 내놓으라며 항의하는 목소리로 가득한 세무서 같은 곳. 게다가, 종족에 의한 차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다 같이 추레한 몰골의 유령일 뿐이다. 이승은 어떠한가. “종족은 사실이 아니에요. 그것도 허구잖아요. (...) 싱할라족과 타밀족을 어떻게 구분해요?”(p.334)라는 재키의 말에 스탠리가 “흑인이 더 빨리 달리고, 중국인이 더 열심히 일하고, 유럽인이 이런저런 것들을 발명한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p.334)라고 일갈하는 곳이 아니던가.


소설의 후반부에 이르러, 작가는 인간악(惡)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독자에게 묻는다. 잔혹한 일들을 능히 해낼 수 있고, 어리석은 편견에 오랜 세월 사로잡힐 수도 있는, 인간의 악. “어떤 신 앞에 무릎을 꿇든 우리 모두 야만인”(p.346)일 수밖에 없다면, 인간은 그가 과거에 지은 죄 앞에서 어떻게 속죄할 것인가? 또 내일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말리가 표범 유령과 나누는 대화에서 우리는 작가가 숨겨둔 답을 찾을 수 있다.     


“[표범:] 죽이지 않고 살아보려고도 해봤어. 한 달 가더군. 어쩌겠어? 난 야수인데. 인간만이 제대로 된 공감을 할 줄 아는 것 같아. 인간만이 잔인한 행위를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아.” “[말리:] 초식동물은 대체로 착하지 않나?” “[표범:] 토끼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 인간은 있거든. 난 그걸 맛보고 싶어.”(p.532)


선(善)을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존재. 그것이 인간에게 걸어볼 수 있는 가장 큰 희망이 아니겠느냐고. 이 우주에 자기 수정적인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우리 자신’이 아니겠느냐고 작가는 말한다. 자신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보게 된 말리는 그제야 평화와 망각을 거쳐 인간으로서의 새 삶을 꿈꾼다. 내전의 비극적인 진실을 규명하고 기억하는 것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 그러나 선을 향한 인간의 의지만큼은 의심하지 말 것. 이 소설이 전달하는 메시지의 미학은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는 데 있다.



*이 글의 제목은 이탈리아의 철학자 안토니오 그람시가 인용한 프랑스의 작가 로맹 롤랑의 말에서 따왔습니다.

**출처: 프레시안(2013.10.01.), <4년전 끝난 스리랑카 내전, 상처는 '현재진형형'>

***이 책에 대한 <텔레그래프(The Telegraph)>지의 추천사에서 따왔습니다. 대체로 환상성이 짙게 드러나면서도 현실성이 느껴지는 문학적 경향을 뜻합니다(출처: 문학비평용어사전).

****출처: 세계일보(2023.10.26.), <부커상 『말리의 일곱 개의 달』 세한 카루나틸라카 “말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목소리 담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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